■ 방송일 : 2024년 12월 23일 (월)
■ 진행 : 정태근 변호사
■ 대담 : 노범래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정태근: 우리가 흔히 특정 애플리케이션에 가입을 한다고 하면 본인 인증 절차라는 걸 거치곤 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야기 나눌 이 랜덤 채팅 앱은 굳이 본인 인증을 하지 않아도 사용이 가능하다고 하죠. 그래서 이름, 나이는 물론이고 자신의 성별까지도 속인 채 대화가 가능했다고 합니다. 랜덤 채팅방에서 알게 된 이 여성은 남성 A 씨에게 특정 역할극을 제안하면서 자신의 집 주소는 물론이고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알려줬습니다. 그렇게 만날 날과 시간까지 정했다고 하지요. 랜덤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나눈 상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던 이 여성의 반응.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요?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던 이가 한 명 있었다고 하는데요. 그 사람은 또 누구였을까요? 오늘 사건 X파일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 X파일 정태근입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노범래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노범래: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노범래 변호사입니다.
◇정태근: 세상에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습니다만 이런 일도 다 있네 싶은 그런 사건이 아니었나 싶은데 차근차근 하나씩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느 날 경찰서에 신고 전화가 한 통 들어왔는데 자신의 집에서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의 신고 전화였죠?
◆노범래: 네 이번 사건은 속칭 세종 강간 상황극 사건으로도 알려진 사건인데요. 피해 여성이 좀 급박한 목소리로 일면식도 없는 가해자가 자신의 집에 침입하여 성폭행을 했다는 내용으로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면서 시작됐습니다. 특히 피해자는 가해자로부터 휴대전화마저 빼앗긴 상황에서 원래 만나기로 했던 친구가 피해자 집으로 온 뒤에야 겨우 신고를 할 수 있었습니다.
◇정태근: 문이 열려 있기라도 했던 건가요? 이거 어떻게 된 거죠?
◆노범래: 우선 가해자는 자연스럽게 피해자가 거주하는 집에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 앞까지 올라갔는데요. 이후 가해자는 피해자 집에 현관문을 두드렸으나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아 되돌아가는 중에 어떠한 연유에서인지 마음을 바꿔 재차 피해자의 집 앞으로 올라갔습니다. 이후 가해자가 다시 피해자 집의 문을 두드렸고 피해자가 문을 열어주자마자 가해자는 피해자의 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 피해자의 반항을 억압하고 성폭행을 저질렀습니다.
◇정태근: 아는 사람도 아니었던 거잖아요.
◆노범래: 그렇습니다. 피해자와 가해자는 일면식도 없었던 사이였습니다. 그렇다고 가해자가 평소 피해자의 주거지 또는 그 부근에서 피해자를 지켜보거나 뭐 그렇게 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이러한 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 집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어떻게 누르고 들어왔는지 또 처음에는 피해자 집에서 인기척이 없자 공동 현관문으로 들어왔다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꿔서 피해자 집으로 다시 올라간 다음에 성폭행을 저지른 것인지 뭐 이런 의문점들이 많았습니다.
◇정태근: 그럼 그냥 강간범이었던 건가요?
◆노범래: 일단 여기까지 들으시면은 일반적인 강간 범죄 행위에 대해서 일반적이라고 표현해서 좀 죄송스럽습니다만 어쨌거나 좀 특이한 점은 별로 없는 강간 행위라고 생각하실 수가 있는데 가해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여기서부터 좀 사건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적이고 특이합니다. 가해자는 수사 및 공판 단계에서 난 단지 피해자와 랜덤 채팅 어플을 통해서 성폭행 상황극을 하기로 미리 합의한 후에 집에 찾아간 거고 피해자와 사전 합의한 내용에 따라서 상황극을 한 것뿐이라고 주장을 했다는 겁니다.
◇정태근: 그러니까 피해자와 랜덤 채팅 앱에서 역할극을 하기로 합의했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한 것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는 거죠?
◆노범래: 네 맞습니다. 가해자는 랜덤 채팅 어플에서 상황극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지와 관련해서 피해자와 미리 메시지를 주고받았는데 피해자가 “누구세요?” 하고 묻고 가해자가 “옆집 사람입니다.” 이렇게 답하면 문을 열어주는 걸로 이렇게 정했다는 겁니다. 특히 가해자는 처음에 피해자 집을 두드렸을 때 인기척이 없자 공동현관 출입문으로 다시 돌아왔는데 이때 피해자로부터 랜덤 채팅 메시지로 남자가 왜 이렇게 배짱이 없냐 나 지금 화장실에 있었다 이런 문자를 받고 나서 그래서 다시 피해자 집으로 되돌아가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이렇게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핵심이자 반전은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어플에서 메시지를 주고받던 사람이 실제로는 피해 여성이 아닌 전혀 다른 제3자인 20대 후반의 평범한 회사원 남성 이 모 씨였다는 겁니다.
◇정태근: 도대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건가 싶은데요.
◆노범래: 일단 이 문제가 되었던 랜덤 채팅 앱에 대한 이야기부터 좀 해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가해자가 이용했던 랜덤 채팅 앱은 성별과 나이 등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는 어플이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라고 생각하고 상황극을 하자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이 20대 후반의 남성은 해당 랜덤 채팅 앱이 신원을 명확히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가지고 자신을 30대 중반의 여성으로 소개하고 가해자와 대화를 나눴던 겁니다.
◇정태근: 그러면 가해 남성이 대화를 했다던 그 여성이 이 피해 여성이 아니라 알고 보니 제3자였다는 거잖아요?
◆노범래: 맞습니다. 가해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이 20대 남성 이 씨가 처음부터 피해자를 지켜보면서 범행 대상으로 삼았던 거고요. 그에 따라서 가해자에게 피해자 집 공동 현관문 비밀번호를 이 메시지로 알려주기도 하고, 또 인기척이 없어서 돌아가는 가해자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내 가지고 다시 피해자의 집으로 되돌아가서 범행을 저지르도록 유도까지 하면서 범죄를 결의해서 실행하게 했거나 아니면 마치 가해자를 자신의 범행 도구처럼 이렇게 이용했던 겁니다. 근데 더욱 중요한 거는요. 가해자가 처음에는 랜덤 채팅 상대방에게 속아 상황극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하더라도 피해자가 좀 강하게 거부 의사를 표시하고 반항했다면은 중간에 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범행을 중단했었어야 됐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사안을 살펴보면 가해 남성도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음에도 자신의 욕망에 못 이겨서 성폭행을 저지른 것으로 의심될 만한 사정들이 좀 있었습니다.
◇정태근: 어떤 점에서 그랬죠?
◆노범래: 항소심 재판부가 이 가해자가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한 채 피해자를 성폭행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판단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이것들을 좀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처음 보는 그것도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과의 강간 상황극이라는 거는 원래 상대방의 동의가 없으면 그 행위 자체로 좀 중대한 범죄가 되는 그런 행위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가해자는 메시지를 통해서 합의한 실제로는 이 메시지는 제3자와 주고받은 메시지였지만 가해자는 피해자와 주고받았다고 생각했던 그 메시지에서는 그냥 강압적으로 성관계를 해달라 이런 이야기만 나눴고 협박이나 욕은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할 것인지 이게 또 어떠한 방법으로 종료가 되는지 뭐 피임 기구를 사용할 건지 뭐 이런 상황극이라고 했다면 중요하고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합의된 바가 없었습니다. 또 말씀드린 것처럼 가해자가 사용한 랜덤 채팅 어플은 별도 인증 절차가 없어가지고 성별이나 나이를 임의로 설정할 수가 있는데 가해자도 이렇다는 거를 알고 있었고 피해자와 채팅 상대가 동일인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거를 알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그러면 최소한 가해자는 집에 들어가면서 자신이 채팅했던 상대와 피해자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려는 최소한의 절차를 거쳤어야 했는데 이런 절차 없이 이런 행위가 없이 가해자는 문이 열리자마자 피해자를 바로 가늠했습니다. 그리고 성행위를 하는 도중에도 이게 만약에 진짜 상황극이라고 한다면 이 현재 상황이 좀 마음에 드는지 강압적인 분위기를 어느 정도로 할지 이렇게 상호 합의 하에 성적 만족을 위한 행위를 하는 게 일반적이겠죠. 그런데 가해자는 그런 취지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고 그래서 본인의 행위가 실제 강간일 수도 있다는 이런 생각까지는 했던 걸로 보입니다. 거기다가 가해자는 범행 이후에 112에 신고를 하려는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뺏어서 가지고 이거를 들고 피해자의 집에서 나가서 도망갔습니다. 가해자는 휴대전화를 강가에 버렸는데요. 그냥 버린 것도 아니고 휴대전화에 묻은 자신의 지문을 닦은 다음에 이걸 다시 쇼핑백에다가 넣고 버리고 이런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은 이거는 피해자의 휴대전화에 남아 있는 자신의 지문을 이용해서 수사가 들어왔을 때 이런 것들을 좀 대비하기 위한 걸로 보입니다. 거기다 가해자는 사건 이후에 집에 가서 이 어플을 탈퇴하고 또 삭제까지 했다고 합니다.
◇정태근: 하긴 그러니까 도망을 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범래: 네 그렇습니다. 이 정도가 되면은 범행에 대한 최소한 미필적 고의 그러니까 어떠한 행위를 직접적으로 의혹한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떠한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 발생해도 어쩔 수 없지 정도의 심리는 있었다고 보입니다.
◇정태근: 경찰에 신고된 이후에 검거는 바로 됐습니까?
◆노범래: 예. 가해 남성은 범행 후에 현장을 급히 벗어났지만 사건 발생 2시간 만에 경찰에 바로 검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어떤 면에서는 가해자보다도 더 중요한 거는 랜덤 채팅 앱에서 피해 여성을 사칭했던 이 씨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빠뜨릴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
◇정태근: 그렇죠 그 사람도 잡아냈나요?
◆노범래: 예. 당연히 실제 가해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던 이 씨도 검거됐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이 씨는 피해자가 살던 곳에 옆 건물에서 거주하던 20대 남성으로 범행 전에도 옥상이나 창문 등을 통해서 피해자를 지켜봐 왔다고 합니다.
◇정태근: 심지어 여성도 아니고 남성이었군요.
◆노범래: 네 심지어 정말 충격적인 부분이 있습니다. 이 씨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성폭행하는 그 순간에 이 피해자 원룸을 찾아가서 현관 앞에서 열린 문 틈으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관계하는 장면을 지켜봤다고 합니다. 본인이 범죄 행위를 유도해 놓고 이걸 지켜보는 게 죄질이 불량하다라고 볼 수가 있겠습니다.
◇정태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네요.
◆노범래: 네 정말 최악인 거는 이 씨는 피해자한테 이 랜덤 채팅을 이용한 방식의 범행을 시도했던 게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에도 피해자가 집 앞에 쓰레기를 버려 나갔을 때 일면식 없는 남성이 다가와서 채팅창을 보여주면서 저랑 대화한 여자 맞아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은 처음에도 범행 시도를 한번 했다가 미수에 그치자 계속해서 피해자를 좀 지켜보면서 범행 타이밍을 노렸던 걸로 보입니다.
◇정태근: 둘 다 마땅한 처벌받았습니까?
◆노범래: 일단 1심 재판부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이 씨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상황극을 유도한 이 씨에 대해서 주거침입 강간죄의 교사범이 아닌 주거침입 강간죄의 간접 정범으로 유죄를 인정했습니다. 이게 뭐냐 하면요. 이 씨가 가해자의 의사를 지배해서 도구로 이용해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판단한 겁니다. 바꿔 말하면 가해자는 도구로 이용만 되었다는 뜻이죠. 재판부는 실제 성폭행을 한 가해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정태근: 잠깐만요. 강간범인데 무죄 나왔다고요? 도대체 무죄 나온 이유가 뭐죠?
◆노범래: 1심 판결 이후에 많은 파장이 있었는데요. 재판부는 이 가해자는 이 씨한테 속아가지고 합의에 의한 강간 상황극을 하는 걸로 알고 강간범의 역할을 하며 피해자와 성관계를 한 것으로 보일 뿐이고 실제로는 이게 상황극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강간일 수 있음을 알았다거나 피해자를 강간하겠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부족하다라고 판시했습니다. 제가 아까 앞에서 미필적 고의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요. 1심에서는 가해자의 강간 행위에 대해서 미필적 고의를 부정한 거죠. 고의범이 아닌 과실범은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처벌합니다. 예컨대 과실에 의한 상해는 과실 치상으로 처벌이 가능하지만 과실에 의한 강간은 처벌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해자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것입니다. 심지어 피해자가 112에 신고하려고 하자 가해자가 빼앗은 핸드폰에 대한 절도 혐의까지도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정태근: 저 너무 화가 나는데요. 성폭력 책임을 피해자에게 전가한 그런 판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당연히 검찰에서 항소했겠죠?
◆노범래: 맞습니다. 1심 재판부가 가해자의 미필적 고의를 부정한 주요 논거로서 이 피해자가 강간을 당하는 연기를 한다고 오해할 수 있을 정도로 피해자의 반항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라는 문구가 있었는데 항소 이유에 대해서 검찰은 법원이 이렇게 판단한 거는 여성이 강하게 반항하지 않았다면 강간이 아니다 라는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거라고 강조했습니다. 제가 생각을 하더라도 사실 성범죄를 당하는 여성 입장에서는 공포감에 의해서 반항 행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들도 있을 것 같아가지고 검찰의 항소 이유가 더 타당해 보입니다.
◇정태근: 항소심에서 결과는 어떻게 나왔나요?
◆노범래: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가해자가 징역 5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습니다. 2심에서는 가해자가 해당 행위가 강간 상황극이 아니라 실제 강간이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이 상황극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 합의라든가 확인 절차 같은 게 없었고, 또 성행위 시에 상대방의 만족도를 확인하지 않았다거나 이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가져가서 버린 점들을 통해서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 걸로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1심에서 13년형을 선고받았던 이 씨는 징역 9년으로 감형됐습니다. 이 씨는 항소심에서는 범행을 모두 인정했고, 별건 범죄의 피해자들과도 모두 합의가 이루어져 가지고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참작이 된 걸로 보입니다.
◇정태근: 사건 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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