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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시간.
제작진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잠시만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사장 이종성 "장애인 의무고용률 지키게 노력하겠다"
2024-10-01 10:04 작게 크게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9월 29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인간을 한자로 쓰면, 사람 인. 사이 간. 사람 사이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건 이해와 배려일 텐데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연결시키고, 통합하고, 고용을 위해 애쓰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이사장님, 반갑습니다.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이하 이종성) :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 2020년 4월에 이 자리에 한 번 나오셨었습니다.

◇ 이종성 : 네.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이성규 : 그 때는 21대 국회의원 신분으로 막 입성하시고 나오셨는데. 무려 4년 만이네요?

◇ 이종성 : 그러게요. 그 동안에 좀 불러주실 줄 알았는데...! 안 불러주셔가지고 서운합니다.

◆ 이성규 : 얼마 전에 이제 그 중책을 맡으셨는데. 국회의원 하시다가, 정부 산하기관장을 이렇게 맡으시니까. 느낌이 어때요?

◇ 이종성 : 일단은 뭐 여러분들께서 이제 축하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요. 특히나 이제 지난 4년 동안 많은 국민들께서 응원을 해주신 덕분에 의정활동을 무사히 마치게 된 점부터 먼저 감사를 드려야 될 것 같아요. 말씀하신 대로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라는 것이 장애인 고용을 국가적으로 책임지는 막중한 자리거든요? 그러다보니 정치인보다 더. 어떻게 보면 어깨가 무겁고, 특정한 소임을 받다 보니까 그 소임을 최선을 다해서 해야 되겠다라는 그런 마음 각오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제 소임을 다해서 보답하겠고요. 우리 진행자께서도 제13대 이사장을 역임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선배님이신데.

◆ 이성규 : 친정이기도 하죠.

◇ 이종성 : 많은 지도. 또 조언도 당부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 4년 동안 많이 못 불러드렸으니까, 앞으로 자주. 고용공단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좀 많이 알려주실 기회를 만들어보겠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많은 분들이 아시지만, 그래도 한 번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요약해서 한 번 말씀해 주시죠.

◇ 이종성 : 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라고 하고요. 고용노동부 산하의 준정부 공공기관입니다. 말 그대로 장애인 고용과 관련한 정부 정책을 시행하는 전문기관입니다. 1990년도 9월달에 설립돼서 올해로 34년을 맞이를 했습니다. 우리 공단의 주 업무가 장애인들이 직업생활을 통해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다 함께 일하는 사회를 만드는 장애인 고용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하는 데 있습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취업 전 과정에 걸쳐서 직업능력 평가부터 직업훈련, 취업. 그리고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또 기업들에게는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원래는 지체장애인협회에서 실무를 하시다가 사무총장까지 하셨고. 국회로 가셔서 의정활동 하셨고. 보건복지위원회에서 고용공단 이사장으로 임명이 되셨는데. 인간 이종성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볼 기회가 또 있었던 것 같아요.

◇ 이종성 : 네. 그렇습니다. 특히 저하고 장애인고용공단의 인연은 저한테는 좀 남다른 면이 있습니다. 제가 30여 년 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못했어요. 못하고 있을 때. 장애인고용공단의 취업 알선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국지체장애인협회하고 인연을 맺게 됐거든요.

◆ 이성규 : 그러셨습니까?

◇ 이종성 : 그래서 지체장애인협회. 장애인 단체에서 그렇게 일할 수 있는 인연을 맺어준 공단이고요. 장애인협회에서 일하면서 장애인 문제에 대해서 많은 일들을 해왔고. 그러한 경험. 경력. 그런 것들을 바탕으로 제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장애인 문화체육과장도 하고. 또 국회의원을 거쳐서, 이사장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경험과 경력의 밑바탕을 우리 공단이 제공해줘서 오늘날의 제가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만큼 제가 공단에 대해서는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고. 돌이켜보면 지난 34년 동안 공단이 수많은 장애인들에게. 우리 선배, 동료 직원들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해 왔고. 많은 사람들의 삶을 전환할 수 있는 삶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다라고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저랑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이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돼요. 그런 면에서 우리 공단이 그만큼 자긍심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요. 앞으로도 이런 소명을 통해서 장애인들에게 희망 그리고 미래를 만들어주는 그런 역할로 보답해야 되겠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지금 휠체어를 타셨는데 원래 휠체어 타셨던가요? 어릴 때도?

◇ 이종성 : 제가 목발을 사용해서 생활을 하다가 넘어져서. 이제 어깨 회전근이 끊어지는 바람에 이제 수술을 하게 됐고. 그때부터 휠체어를 사용하게 됐습니다.

◆ 이성규 : 네. 그게 소아마비였던 거죠? 어릴 때?

◇ 이종성 : 네. 그렇습니다.

◆ 이성규 : 보통 3살 뭐.. 이럴 때 소아마비. 그런데 몇 살 때셨어요?

◇ 이종성 : 저는 이제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태어났던 그 시절에 소아마비가 굉장히 전염병으로 성행하는 전염병이었어요. 

◆ 이성규 : 창궐했었죠. 창궐.

◇ 이종성 : 그래서 지금은 세계적으로도 이제 멸종됐다고 보고가 되고 있습니다만. 또 제가 태어난 곳이 이제 전라북도 김제라는 농촌 지역이다 보니까.

◆ 이성규 : 김제 평야.

◇ 이종성 : 네. 당시만 해도 이제 시골 마을에 김제평야 소아마비라는 진단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 병원도 이제 없었던 거죠. 그러다 보니까 뭐.. 약국에서 그냥 감기약이나 사다가 이렇게 먹이고 하다 보니까 그 후유증이 많이 남아가지고. 이제 중증의 장애로 남은 거죠. 그래서 어릴 때는 이제 거의 뭐 실내에서 바깥 출입도 못하고 생활하다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에 저희 아버님께서 그 대나무로 목발을 만들어주신

◆ 이성규 : 대나무

◇ 이종성 : 네. 대나무로 직접 손수 대나무로 목발을 만들어 주셔가지고. 그 목발을 가지고 이제 학교를 통학을 하고. 또 친구들하고 어울리면서 그야말로 이제 사회생활이 그 때부터 이제 시작이 된 거죠. 우리 공단에서 장애인 근로자들이 제 직업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보조공학기기 지원 사업을 하고 있거든요. 이제 이렇게 장애인들에게 이런 보조기기. 보장구 휠체어나 목발 이제 그런 부분들이 그 삶에 얼마나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고 귀중한 가치를 갖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성규 : 네. 대학 말씀 아까 하셨는데. 그 전에 사춘기 때도 방황 같은 것도 좀 하셨나요?

◇ 이종성 : 글쎄요. 나름 주변에서는 범생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실하게 생활을 했다고는 생각을 합니다. 이 특히나 가족들을 비롯해서 주변에서 저를 사랑해 주시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가지고. 제 나름대로의 신체적 장애가 정서적 장애가 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 이성규 : 그건 아까 대나무로 목발 만들어주신 그 아버님을 비롯해서 부모님들이 나름대로 상당히 교육열이나 이런 쪽에 아주 강하셨다. 그렇게 들었습니다.

◇ 이종성 : 특히 저는 어머님의 은혜를 정말 잊지 못하는데요. 사실 교육열이라기보다는 아마 모성애의 반로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시골이다 보니까 이제 중학교부터는 버스를 타고 다녀야 해요.

◆ 이성규 : 그렇죠.

◇ 이종성 : 그런데 이 중증장애인이다 보니까 거의 통학이 불가능한 거죠. 그러다 보니까 저희 어머니께서 "너는 장애인이니까, 공부밖에는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없다"라고 항상 그렇게 이제 말씀하시고. 그래서 다른 가족들. 할머니나 아버님이 반대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를 공부시키기 위해서, 저를 들쳐업고 거의 도망가다시피 해서 서울로 이사를 저만 데리고 옮겨오게 됩니다.

◆ 이성규 : 어머니가요? 어머니 혼자? 아버지는 계시고?

◇ 이종성 : 예. 아버님하고 할머니는 농사를 지으셔야 되니까

◆ 이성규 : 김제에 계시고.

◇ 이종성 : 농촌에서는 그 사람이 곧 일손이기 때문에 사람 하나 빠지는 게 굉장히 크거든요. 그래서 그렇게 반대를 하셨는데. 그렇게 이제 서울로 와서, 교육 환경이 좋은 곳으로 정착을 해가지고. 뭐.. 덕분에 대학 교육까지 일반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치게 된 거죠. 그래서 참.. 중증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들, 특히 요새 이제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이 오로지 자식들의 미래만 걱정하시잖아요? 그리고 애태우시는 모습들을 보면 당시에 저희 어머님을 보는 것 같아서 항상 마음이 무겁습니다.

◆ 이성규 : 회계학 전공자더라고요?

◇ 이종성 : 네.

◆ 이성규 : 그런데 원래는 이공계 쪽으로 가고 싶어 하셨다면서요?

◇ 이종성 : 네. 원래는 어렸을 때 항상 꿈이 이제 과학자라고 이제 얘기를 했었는데 이공개를 하고 싶었는데. 대학교 입학 과정에서 실험 실습이라든가 이제 그런 부분들 때문에 대학교에서 입학을 좀 거부하는 이제 그런 상황이 발생을 해가지고. 여러 가족들하고 상의를 한 결과, "회계학을 하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말씀들을 하셔서. 갑자기 또 인문계로 전향을 해서 회계학을 전공을 하게 됐습니다. 진행자께서도 이제 80년대에 청년 장애인을 중심으로 한 인권운동 해오셨잖아요? 누구보다 잘 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 당시에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거의 당연하다시피 했던 시대였습니다.

◆ 이성규 : 그렇죠.

◇ 이종성 : 그래서 학교에다가 장애인 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도 없었고. 그리고 수업 환경을 이유로 입학을 거부당하는 일도 빈번했지 않습니까?

◇ 이종성 : 물론 몇몇 건들은 소송을 통해서 이렇게 구제를 받기도 했지만. 그 동안 많은 장애인들께서 노력을 하셔서 차별금지법도 마련이 되고. 또 편의시설 설치도 이제 의무화돼서 이동이나 접근 부분들도 많이 지금은 개선이 돼 있고. 게다가 이제 장애인 특별전형까지 만들어지면서 교육받을 기회도 이제 많아졌다고 생각은 듭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요새 뉴스를 보면, 가끔 가다 이제 특수학교 설립을 지역 주민들이 반대한다라는 그런 뉴스들이 나오잖아요?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이제 제도적인 발전에 못지 않게 국민들의 의식이나 인식이 좀 많이 개선돼야 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 이성규 : 아까 이제 공단 소개 말씀도 하셨는데. 장애인 단체에서 일을 하시게 된 계기도 그런.. "뭔가 사회적인 과업에 대해서 내가 일조를 하겠다." 그런 느낌도 있으셨나요?

◇ 이종성 : 대학생활도 성실하게 했는데. 중증장애인이다 보니까 그 당시에 취업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제가 졸업할 당시에 장애인고용공단이 아마 한 1년이 조금 설립된 지 1년이 좀 지난 시기였을 거예요. 그래서 공단에서 이제 추천장을 써줘서 금융이사회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담당자가 "아니, 뭐 이렇게 중증장애인을 소개를 시켜줬냐? 보내줬냐?" 하면서 면전에서 공단을 구박을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제 인생에.. 아마 잊을 수 없는 가장 큰 좌절의 순간이지 않았나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면 그 장애인들한테는 이제 직업 내 고용의 중요성이 굉장히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우리 공단이 맡고 있는 일이 바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 보니까, 정말 중요한 일이고.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 누군가의 삶을 좌우한다는 면에서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도 느끼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 모시고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우리가 이쯤 돼서 노래 하나를 듣거든요?

◇ 이종성 : 네

◆ 이성규 : 노래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 이종성 : 가수 변진섭 씨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라는 노래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 여기에 좀 쌓인 추억이 있으십니까?

◇ 이종성 : 다들 아시는 곡이라고 생각하고요. 그건 한참 유행했던 노래니까. 또 가사처럼 우리 사회가 취업이라든가. 여러 가지 면에서 힘들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들을 돌아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이성규 : 네. 그러면 이종성 이사장께서 추천하신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듣고 오겠습니다. 네. 변진섭의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거죠.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사장님 아까 어머니도 말씀을 또 하셨고, 오늘의 이종성이 있게 한 그런 분은 어머님 말고 또 있으세요?

◇ 이종성 : 네. 많죠. 그 중에서 정말 기억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분을 더 말씀드리자면. 제가 이제 장애인 단체에 입사할 당시에 회장을 맡아보시던 분이 계십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설립자이신 고 장기철 회장님이신데요. 당시 회장님께서 주장하시던 철학이 바로 장애인 당사자주의, 그리고 정치 세력화였습니다. 장애인 문제가 장애인 당사자의 관점에서 이제 해결이 돼야 되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주체가 돼야 된다는 것이 이제 장애인 당사자주의이고요. 이렇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이 정치적인 역량을 기르고 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세력화해야 된다는 것이 이제 정치 세력화입니다. 이런 철학을 배경으로 단체에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고, 또 오늘날에 저 또한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고 장기철 회장님은 장애계의 큰 인물로 기억되시는 분이십니다.

◆ 이성규 : 그런데 공단에 처음 가셔가지고,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 이종성 : 이제 임명된 지 이제 일주일 정도라서 업무 파악에 좀 더 매진을 하고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이제 장애인고용공단이 이제 공공기관이다 보니까 "많이 경직되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가 고착화 되어있다"이런 평가를 받고 있어요. 우선 이러한 조직 문화를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하고요. 특히 일선 현장에서 장애인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수고하시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을 강화하고 또 신뢰하는 조직으로 만들기 위해서 많이 노력을 하고자 합니다.

◆ 이성규 : 요즘 최근 5년간 민간 기업 장애인 고용률이 2%대로 그쳐 있다 걱정들 하던데요. 왜? 이게 올라가지 못하고 있을까요?

◇ 이종성 : 특히 이제 장애인 의무고용률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바로 이제 대기업들입니다. 대기업들 중에 이제 의무고용률을 지키고 있는 비율이 한 30% 정도밖에 안 돼요. 그리고 10년 연속으로 장애인 의무고용을 불이행하는 기업으로 명단에 공포되는 기업들도 상당수거든요. 이거는 아예 장애인 고용에는 관심이 없다라는 거죠. 그래서 흔히들 장애인 고용의 경제성이라든가, 인적 관리 등에 대한 어떤 염려, 그리고 선입견 때문에 고용을 망설이고, 또 고용부담금으로 대체해버리는 기업들이 있는데. 우리가 볼 때 장애인 고용 문제는 이제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이 됩니다. 실제로 정부나 공공기관 그리고 기업의 경우에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결단이 장애인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예를 들어서 이제 최근에 유통업, 건설업, 회계법인같이 장애인 고용이 이제 어렵다고 여겨졌던 그런 업종에서도 적극적으로 장애인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 이성규 : 회계법인.

◇ 이종성 : 네.

◆ 이성규 : 회계학 하셨으니까 그걸 더 잘 아시겠군요. 그게 이제 왜 안 되나 보면, 장애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조금 편견이 있는 거죠.

◇ 이종성 : 맞습니다. 우리 국민들 대다수도 이제 그런 부분들을 많이 느끼실 거라고 보여져요. 장애인을 경험해 본 적이 별로 없다라고 느끼실 겁니다. 아직까지는 이제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이 왕성하게 사회활동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좀 어렵기 때문에 많은 장애인들을 경험해보지 못했고. 그렇기 때문에 기업체, 사업주들이라든가, 고용 담당자들이 이 장애인들이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장애인을 채용해야 되지? 장애인 채용하면 편의시설 공사도 해야 되고. 특별히 대우해줘야 되나? 신경 써줘야 되나?" 이런 부담감 선입견 때문에 많이 우려를 하시는데요. 이건 절대적으로 잘못된 편견이라고 할 수 있죠. 참고를 하나 말씀드리자면 지난 3월에 프랑스 매스에서 열린 제10회 국제 장애인 기능올림픽이 있었거든요. 우리 대한민국이 통산 8번째 우승을 거머쥐었어요. 특히 이제 IT 정보기술 분야에서 총 10개 직종 중에 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거든요. 그래서 프랑스 대만 같이 이제 강력한 경쟁국들을 제치고, 이제 종합 우승까지 따내게 됐는데. 이런 것들을 봤을 때 장애인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고. 비장애인들하고 구분 없이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무엇보다 이제 우리 모두의 인식 개선이 좀 필요한 거죠. 내 옆자리 동료로서 장애인 근로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노력 그런 것들이 필요한데. 우리 공단이 이제 기업체들에게 이런 고용 컨설팅 서비스. 그리고 근로지원 그리고 고용환경 등을 개선하는 데까지 해가지고 다양한 지원 제도를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어느 사업체든지 장애인 고용에 관심이 있으시면 우리 공단에 문을 두드려주시면 저희가 적극 안내하고 돕도록 하겠습니다.

◆ 이성규 : 그리고 이제 지금 인식 개선 사업 말씀도 하셨고. 여러 가지 사업을 하시는데. 또 뭔가 좀 역점적으로 내가 좀 왔으니 이 일을 좀 더 해야 되겠다라는 분야가 또 있으세요.

◇ 이종성 : 아까 이제 기업들이 고용하고자 한다라고 하면 그에 맞는 인력들을 공급해 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어야 되거든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좋은 일자리에서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장애인들의 직업 역량을 강화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단에서 디지털 훈련이라든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그런 종을 발굴하고. 또 장애인들에게 훈련을 제공하고. 또 취업과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많은 종합적인 서비스를 제공을 하고 있고요. 우리 공단이 정부의 어떤 국정기조에 맞게 공단 자체도. 그리고 사업들도 변화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앞으로도 기울일 생각입니다.

◆ 이성규 : 네. 국회 계실 때 "개인 재산 제도 같은 것도 우리나라에 도입을 하자." 그런 주장도 좀 하시고. 여러 가지 일을 하셨는데. 이 시간에 일자리를 구하는 많은 분들이 계실 건데요. 어떤 말씀을 해주시겠습니까?

◇ 이종성 : 전국의 장애인 여러분 자신의 가능성을 믿고 당당히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성공이 곧 우리 사회의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공단도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열정과 도전을 응원하면서 늘 함께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 그리고 기업에게도 또 한 말씀 해주시죠.

◇ 이종성 :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기업체에서 장애인을 고용하고자 하는 관심 있는분들께서 우리 공단을 언제든 문을 두드려주시면, 우리가 장애인들의 직무 분석에서부터 맞춤형 직업훈련. 그리고 인사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을 종합적으로 컨설팅하고, 우리가 기업들의 장애인 고용 업무를 종합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성규 : 우리가 지방 조직도 꽤 많고. 그렇죠? 그 공단이?

◇ 이종성 : 그렇습니다.

◆ 이성규 : 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이종성 이사장과 함께 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이종성 : 네.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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