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12월 31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최철호 구세군 사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전 세계 134개국에서 구세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1908년에 개전한 마흔 두 번째 구세군 사역지인데요. 구세군 사관으로 일하며 한국 구세군의 역사를 함께하고 계신 분입니다. 최철호 구세군 사관 오늘의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최철호 구세군 사관(이하 최철호) : 안녕하세요. 구세군의 최철호 사관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 크리스마스 연말연시에 익숙한 게 우리에게는 이제 구세군 냄비잖아요. 빨간 냄비. 그래도 구세군이 어떤 활동을 하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떤 활동을 하시게 되나요?
◆ 최철호 : 요즘 tv 광고를 보면 이제 구세군 광고를 좀 많이 보실 텐데요. 저희가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 당신이 구세군입니다. 이런 캐치 플레이를 저희가 걸었어요. 저희는 기독교의 개신교의 한 교파고요. 그리고 저희는 복음을 전하는 데 첫 번째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취약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저희가 현장에서 차별 없이 그 나눔을 활동을 전개하는 거 이 두 가지를 저희가 그 사명을 가지고 저희가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지금 개신교 교파라고 하셨는데요. 특이하게 제복을 입는 그 교파잖아요. 왜 제복을 입으시죠?
◆ 최철호 : 이것도 두 가지 방법인데요. 첫 번째는 복장의 통일성을 가지고 어떤 저희가 사업적인 사역의 일을 할 때 효율적인 운영적인 부분에 하나가 있고요. 그리고 저희가 중앙운영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저희가 어떤 긴급 구호를 한다든지 어떤 복음을 전한다든지 했을 때에 체계적으로 빨리 신속하게 그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 속에서 군부대의 그런 시스템이 가장 적합하다 해서 영국에서 저희가 구세군이 시작이 되었기 때문에 그 창립자가 이제 그러한 내용들을 가지고 채택된 게 아마 복장이라든지 군대 시스템 운영적인 부분들을 좀 가져왔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아 이 구세군이 영국에서 왔군요. 그럼 헨리 8세가 개종한 그 종교하고는 완전히 다른가요?
◆ 최철호 : 영국은 이제 성공회가 국교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저희 구세군의 창립자는 감리교 목사였습니다. 감리교 목사였는데 그 영국의 상황적인 상황을 보게 되면 굉장히 빈민이나 계급 차이가 굉장히 좀 심했던 그런 사회적인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는 데 있어서도 함께 섞여서 예배를 못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노천에서 그냥 길거리에서 천막을 쳐서 그 사람들을 케어하고 복음을 말씀을 선포하고 돌보고 했던 처음에 시작된 지역 자체도 영국의 빈민가가 속해 있는 동부 런던 쪽입니다.
◇ 이성규 : 동부 런던이 이스트 런던이 주로, 거기서 복지도 거기서 많이 발달하고 그랬습니다.
◆ 최철호 : 그래서 시작되어진 그 태동 자체가 그런 상황을 가지고 시작되었기 때문에
◇ 이성규 : 근데 전 세계에 지금 134개국에서 구세군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조금씩 나라마다 다르기도 하고 그런가요?
◆ 최철호 : 아무래도 이제 문화적인 차이가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나라의 기후적인 온도차도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저는 지금 이제 곤색 계열의 제복을 입고 있는데 아프리카 쪽 같은 경우는 흰색 제복을 입습니다.
◇ 이성규 : 태양을 좀
◆ 최철호 : 어떤 나라는 황토색 계열의 제복을 입는다든지 그 나라에 맞는 그런 제복 색깔이나 활동도 조금씩 좀 다른 것 같고요.
◇ 이성규 : 네 저기 제목에 붙어 있는 게 s가 뭐죠?
◆ 최철호 : 네 저희가 이제 셀베이션(salvation)이 구원이라고 하는, 그래서 내가 구원을 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내가 구원을 받았으니 또 구원을 또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게 한다라고 하는 그런 의미도 있고 또 S는 또 서비스 차원의 내가 받은 그 서비스 받은 그 특혜나 어떤 다양한 형태의 것들을 또 내가 또 되돌려주는 그런 형태의 다양한 의미들을 저희가 담고 있습니다.
◇ 이성규 : 네 1908년 아까 말씀드렸는데요. 구세군이 42번째 사역지라고 이제 우리나라가 돼 있는데 그때 어떤 배경이 있어서 한국에 구세군이 전파됐나요?
◆ 최철호 : 창립자 윌리엄 부스라고 하는 창립자가 1907년도에 일본을 방문하게 돼요.
◇ 이성규 : 네
◆ 최철호 : 일본 구세군에 방문했을 때 한국 유학생이 조선 유학생이죠. 유학생이 거기에서 한국 상황이 너무 조선 상황이 너무 좋지 않다 보니까 이 한국에도 어떤 구세군의 그런 활동이나 이런 게 좀 있으면 좋겠다 라고 하는 것들을 이제 제안을 하게 됩니다.
◇ 이성규 : 그 선교사에게
◆ 최철호 : 그래서 그다음 해인 1908년도에 한국에 처음으로 개전을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제 허가두라고 하는 해외 선교사관이 와서 처음에 이제 시작을 하게 되는데 그게 처음 시작된 게 정동에 있는 구세군 서울 제일 영문이라고 하는 영문이 처음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합니다.
◇ 이성규 : 아직도 있나요? 그 자선냄비 통해서 모금 활동도 하고 재해 구호도 하고 보육시설 운영도 하고 그러는데 이런 자선 사업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게 된 건 언제부터죠?
◆ 최철호 : 저희가 1908년도에 한국에 들어와서 상황적으로 봤을 때 아동시설이나 지금은 이제 예전에 고아원이라고 하잖아요. 그 시설인 혜천원을 저희가 이제 만들어서 최초의 아동복지시설을 시작을 하게 되고요. 그리고 그때 당시에 또 윤락 여성들을 위한 또 여자 실업관이라든지 또 어떤 교육할 수 있는 교육관이라든지 이런 형태의 사회복지 시설 시스템을 갖춰서 저희가 시작을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구세군이 어떤 저희가 개신교 교파지만 많은 분들이 NGO 단체라든지 사회복지 그런 전문 기관 단체로 이제 많이 인식들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비춰지는 저희 사역 자체가 처음에 그런 자선 사업이나 이런 것들을 활발하게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하다 보니까 인식이 그렇게 좀 많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결국엔 자선 냄비가 1928년도에 거리에서 자선 냄비를 어떤 기금이나 이런 것들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졌던 게 결국에는 지금까지 이제 오게 된 거죠.
◇ 이성규 : 그런데 전쟁 당시에도 부산에서 또
◆ 최철호 : 네 부산의 자선냄비가 이제 거기서 모금을 했을 때 그 당시 화폐로 3천 환 정도가 모였어요. 근데 당시에 쌀 한가마니가 2환 초반이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그때까지 전쟁 중이었고 피난 중이었고 했는데 이 모금액을 합산해 보니까 쌀 한 130가마 정도를 구입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저희가 이 자선 냄비는 전쟁 상황이라든지 우리가 IMF 겪고 코로나 이런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거리에서 이런 모금 활동을 전개했다라고 하는 것들에 대한 좀 의미가 있을 것 같고요. 이거는 결국에는 구세군 단독적인 게 아니라 참여해 줄 수 있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기 때문에 이게 결국에는 95년이라고 하는 지속적인 그런 사업들로 연계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 그리고 또 매년 10월 첫째 주를 개전 주일로 지키고 있다면서요.
◆ 최철호 : 저희가 구세군이 처음에 시작된 이 개전을 기념하는 그 날을 어떻게 좀 의미 있게 우리가 이걸 기념할까라는 생각에서 시작됐는데 그래서 저희가 세계 선교주일라고 해서 모든 영문 교회죠. 교회에서 1년 동안에 저희가 극기 헌금을 합니다. 이게 뭐냐 하면 내가 예를 들어서 개개인마다 이제 약속을 하는 거예요. 내가 하루에 커피 한 잔을 줄이기 그리고 내가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런 그 금액 그리고 상정된 금액을 매달 저희가 일정 금액을 모아서 1년 동안 모으는 거죠. 그러한 모았던 금액을 세계 선교주일 헌금으로 저희가 드리게 되면 이거는 이제 구세군 대한본영에서 다 모금을 받아서 국제본영에 보내게 됩니다. 저희가 처음에 시작했을 때 한국 상황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외부 물자를 많이 받았거든요. 그게 이제 미국 구세군 영국 구세군 호주 이런 나라에서 많이 받다 보니까 그렇게 해서 저희가 이제 성장되어지고 많은 것들을 줄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도 또한 이런 거를 세계 선교주일을 헌금으로 들여서 지금도 어려운 그런 나라 자립되어지지 못한 나라들을 그들에게 이제 물품을 주는 건 물론이지만 그 나라가 자립할 수 있는 그런 환경적인 부분들을 또 만들어주는 데 이 기금이 쓰여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굉장히 좀 적극적으로 이런 활동들에 참여를 하고 있는 거죠.
◇ 이성규 : 그 제복 입고 활동하시다가 생긴 에피소드 같은 건 없나요?
◆ 최철호 : 일단 많은 분들이 경찰 군인 이런 여러 생각들을 하셔서 특히 저희가 이제 역사 같은 데 가면은 안내를 제가 저희가 해드려야 되는 상황들 많이 물어보시니까 그리고 제가 몇 년 전에는 이제 국방부에 어떤 관련 구세군과의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거기에는 또 제가 지금 별이 지금 2개가 있잖아요. 그 계급이 거기에 가니까 이제 별 1개 2개 이렇게 굉장히 많으시더라고요. 근데 거기에서 오는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저는 이제 투스타라고 거기서는 그러시는데 그래서 거기에서 저희가 제복을 입음으로써 오는 그런 재밌는 요소들 그리고 최근에는 장례식장 가게 되면 또 장례지도사분들이라든지 상조회사에서 또 이런 제복들을 또 갖춰 입고 그런 서비스를 하시잖아요. 그러면 또 거기에 가게 되면 또 저희가 그런 또 질문을 받게 되고요. 그리고 최근에는 어떤 휴게소에 제가 들릴 일이 있었는데 어떤 이제 국회의원 보좌관 분이 그 지역에 제가 이제 군인인 줄 알고 이렇게 다시 이번에 인사해서 오신 줄 알고 같이 이제 인사하는 그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재밌는 요소들은 제복을 입음으로써 오는 그런 재밌는 일들은 좀 많이 있습니다.
◇ 이성규 : 그렇군요.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신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날에 나눔과 사랑의 문화에 대해 얘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최철호 구세군 사관 자리하고 계십니다. 최철호 사관님 우리가 이쯤에서 노래 하나를 듣고 있는데 추천해 주시겠습니까?
◆ 최철호 : 저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신청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 이게 무슨 사연이 있습니까?
◆ 최철호 : 저희가 구세군이 1908년도에 시작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처음 시작되어졌을 때 그 교회 영문이 구세군 서울 제일 영문인데 그 영문이 정동에 있어요. 그래서 이제 덕수궁 돌담길 가까이 있다 보니까 제가 평소에 이문세 가수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 또 저에게는 또 저희 교회에 처음에 생겼던 그런 생각들도 좀 나고요. 그래서 오늘 좀 제가 추천을 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 네 최철호 사관께서 추천하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듣고 오시겠습니다. 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듣고 왔습니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자선 냄비를 통한 모금 활동과 재해 구호 보육시설 운영 등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구세군 최철호 사관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구세군 한국군국은 이렇게 어렵게 시작을 했는데 지금은 또 몽골 캄보디아 이런 쪽에 대표부도 설치하고 활동하고 계시더라고요.
◆ 최철호 : 네네. 저희가 2010년도에는 몽골을 개척을 했고요. 2012년도에는 캄보디아 개척을 해서 저희가 한국 군국이 몽골과 캄보디아 해외 선교를 저희가 지원하고 있고요. 그리고 이곳에는 저희가 해외 선교 사관을 보냈어요. 보내서 거기에서 이제 교육이라든지 그리고 이제 보육시설 운영이라든지 우물 파주기라든지 환경 개선 사업이라든지 실질적인 그 사업들을 저희가 이제 해외 사업들을 저희가 전개를 하고 있고요. 그리고 조금 고무적인 게 최근에는 캄보디아에서 현지 사관을 저희가 8명을 임관을 해서 그 현지의 캄보디아 사관이 이제 그 사역에 같이 협력할 수 있게
◇ 이성규 : 현지인이
◆ 최철호 : 그런 일들도 지금 이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그럼 이제 거기에는 한국형 구세군이 그 캄보디아하고 몽골에 나가 있는 거
◆ 최철호 : 저희가 개척을 했기 때문에요.
◇ 이성규 : 그럼 이제 모든 것이 현지에 맞추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제도 이런 게 그대로 적용되겠네요. 우리 사관님은 구세군 사관으로 일하신 지가 얼마나 되셨습니까?
◆ 최철호 : 제가 올해 12년 차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 그동안에 12년 동안 보면 한국의 기부 문화나 이런 게 어떻게 변했는지 좀 아실 수 있겠네요.
◆ 최철호 : 지금 작년 지표에 영국에서 발표된 지표를 잠깐 제가 본 적이 있는데 그 지표에 보게 되면 한국이 어떤 기부적인 문화에서는 굉장히 순위로 따지면 굉장히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현저히 떨어지는 거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느꼈던 거는요. 최근 포함해서요. 저희가 이제 12월에 거리 모금을 하는 일시적 나눔 운동을 제외하고도 개인 정기 후원이라든지 그리고 기업과 테마 별로 이제 매칭 기부를 한다든지 이런 게 굉장히 활성화되어 있거든요. 그래서 최근에는 어떤 벤처기업 회사라든지 이런 회사는 저희하고 어떤 일을 하냐면 참 재밌는 걸 좀 좋은 사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면 그분들이 저희한테 찾아오셔서 120만 원을 가져오셨어요. 어떻게 보면 적은 금액일 수 있는데 그분 입장에서는 저희들은 감사하며 받았는데 그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때 10분의 1 정도의 기부를 그분들이 생각을 했던 거예요. 그 회사에서 그 금액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겁니다. 늘어났던 금액을 그러면 이거를 어떻게 사용할 건가라고 해서 저희들이 결국에는 맞춤형 형식으로 어떤 긴급 구조에 투입된다든지 그러한 내용들을 이제 기업별로 해서 그런 매칭 연계를 저희가 진행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기업이나 개인이나 이런 기부 문화에는 굉장히 지금 적극적이고 굉장히 좀 긍정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전체적인 부분에서는 좀 기부가 한국적인 정서상 아직은 좀 부족하지 않나 그렇게 좀 보여집니다.
◇ 이성규 : 우리가 코로나 겪었잖아요. 그때는 어땠어요? 상황이
◆ 최철호 : 코로나 2020년도죠. 그때 저희가 거리 모금에 한정지어서 말씀드리면 이해를 돕기 위해 제가 금액을 말씀드리면요. 저희가 거리에서 47억 정도까지 했을 때 가장 많이 했던 금액이에요. 근데 그게 점차 줄어서 20년도 2020년도 코로나 상황에서 저희가 17억 모금을 했거든요. 그리고 지금 이제
◇ 이성규 : 1년 동안 말씀하시는 거죠
◆ 최철호 : 거리에서 한시적으로 했던 모금이요. 근데 그게 코로나 상황에도 저희가 17억이었으면 그전에 비해서 현저히 떨어졌다라고 생각되어지는데 이때 어떤 상황이 벌어지냐면 온라인 모금이 굉장히 대폭 증가합니다. 결국엔 자선냄비는 거리에서 나와서 거리를 모금해야 되는 상황인데 그 모금 자체는 모금 무게는 줄었지만 제한적이었죠. 하지만 온라인이나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되어지는 그런 후원 기부 같은 경우는 굉장히 늘었거든요. 그래서 결국에 지난 전년도에 비해서 항상 증가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그래서 기부에 참여하는 그런 방법들이 다양해지고 그리고 각 세대 층마다 내가 기부하는 그러한 취지나 그런 의미들을 부여해서 참여하는 것들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모금액 자체만 두고 증가했다 감소했다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여집니다.
◇ 이성규 : 네 그런데 그 세대별로는 어때요?
◆ 최철호 : 특히 MZ세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요즘에는 이제 모바일로 바로바로 이렇게 기부할 수 있는 그런데 조금 나이가 연세가 드신 분들은 그게 불편하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전화를 하신다든지 직접 현장에 오셔가지고 또 손 편지를 써서 그 마음을 전달해 주신다든지 그런 것 같고요. 아무래도 요즘 젊은 세대들은 쉽게 그리고 더 중요한 거는 내가 그 명분과 취지와 목적이 명확해야 됩니다. 그러면 이 세대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고 있는 것들을 보게 됩니다.
◇ 이성규 : 구세군 국제본부에서 우리가 코로나 시절에 마스크 기부를 위해서 자선 냄비를 걸었던 유일한 나라라고 그러면서 상당히 관심 있게 봤다면서요.
◆ 최철호 : 네 구세군 자선냄비가 12월에 거리에서 나오는데 이전에 이제 일본 지진 피해가 굉장히 컸던 때가 있었어요. 그때 한 번 저희가 4월로 기억되는데 그때 한 번 자선 냄비가 거리에 나왔었고요. 그 이후에는 최근에는 이제 코로나 상황에서 3월 달이죠. 3월 달에 자선 냄비를 걸었는데 그때는 마스크 기부를 받았습니다. 근데 마스크 기부를 받아서 저희가 받은 기부 금액은 적절하게 필요한 분들에게 전달이 되잖아요. 그때 가장 필요했던 분들이 환경미화원이라든지 버스 기사분이라든지 그러한 그 상황에서도 나오실 수밖에 없는 그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수밖에 없는 그 직업군에 한해서 저희가 우선적으로 배포를 해드렸고요. 근데 그때 1인당 2개 정도의 마스크를 받을 수 있는 거였어요. 결국 그때 상황은 생명과 직결되는 부분이었잖아요. 근데 그거를 나눠준다라고 하는 것들이 저는 그때 저희들이 구세군 입장에서 굉장히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내용이 전달되어져서 구세군 국제본영에서도 굉장히 한국 문화 그리고 한국이 참여하는 이러한 기부 문화에 굉장한 감동을 받았죠.
◇ 이성규 : 네 그리고 구세군 웹사이트에 가면 기부 하소소 이렇게 돼 있는데요. 소액 500원부터 기부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을 또 실천하고 계시더라고요.
◆ 최철호 : 요즘에 그런 재밌는 이야기 있잖아요. 어르신들이 이제 손주 이야기할 때 500원을 주고 이야기해야 된다는 그런 재밌는 이야기 있는데 500원이라고 하는 그런 의미가 우리가 쉽게 어떤 것들을 이제 기부도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들도 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길거리에서 아니면 내가 식당에서 어디 있는 공간에서 내가 어떤 잠깐 핸드폰을 꺼내서 그런 기부 하소소 캠페인에 참여한다든지 쉽게 할 수 있는 방법들 그리고 금액이 크지 않지만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이거를 어떻게 보면 구세군 자선냄비는 구세군 모금 자체가 나눔 운동을 전개하는 무브먼트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많은 사람들을 참여할 수 있는 데 저희가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이러한 재미있는 요소들을 저희가 하나하나씩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 이성규 : 근데 이제 아까 MZ세대 말씀을 하셨어요. 근데 우리나라가 이제 지금 구세군 자선냄비와 구세군의 모금 패턴과 이런 것도 다 포함된 거지만 전반적으로 젊은 세대들이 그래도 조금 관심을 점점 보여야 좀 활성화되지 않겠어요?
◆ 최철호 : 요즘에 그 세대들이 고민하는 게 굉장히 여러 다양하죠. 어떤 결혼 문제도 있고 취업 문제도 있고 여러 상황들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저는 이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하나의 옷감을 만드는 데 있어서요. 씨줄과 날줄이 서로 엮여져야 함께 상호의존성이죠.연결되어져 있는 부분들로 해서 굉장히 아름다운 그런 우리가 옷을 만들어낼 수 있고 어떤 옷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데 이게 MZ세대뿐만 아니라 여기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 전체 전 세대가 함께 우리가 좀 따뜻한 그러한 모습의 사회를 좀 만들자라고 하는 데 있어서 이런 의미를 두고 좀 참여해 주시면 어떨까라는 것들을 저희가 이 시간을 통해서 부탁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 오늘이 12월 말일이에요. 올해가 이제 마무리되는 날인데 올해는 최철호 사관님이 생각하기에 어떤 해였습니까?
◆ 최철호 : 올해는 개인적으로 개인적으로는 좀 감사함이 많았던 해였는데요. 근데 아무래도 제가 이제 목회 현장에 있다 보니까 많은 어렵고 저희가 도움을 줘야 되는 분들을 많이 만날 때가 있어요. 근데 체감 온도 지난주에 굉장히 많이 추웠잖아요. 근데 저희가 지금 기온에 내가 느끼는 체감 온도는 더 추워지는 그런 상황인데 우리가 도움을 줘야 되는 그분들은 상상할 수 없는 체감 온도를 갖고 계시거든요. 그렇다면 지금 저희가 거리에서 종을 울리면서 이분들이 많은 분들이 도움주시는 이 손길의 온정이 더 필요한 또 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성규 : 내년에는 조금 색다른 계획 같은 거 있으세요?
◆ 최철호 : 구세군에서 하는 사역 가운데 많은 참여를 해 주시는데 저희 구세군 뿐만 아니라 이제 모금하는 그런 단체에도 넓게 보게 되면은요. 이게 모금했던 금액이 사용하는 부분에 요즘에 많이 이야기가 더 나오잖아요. 그래서 그 관련된 내용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개하고 지금 공개하고 그런 시스템 화되어 있지만 많은 분들이 느끼기에는 좀 제한적인 것 같아요. 근데 이것 또한 저희 구세군이 하는 일들 처음에 제가 말씀드렸던 사람을 구하는 사람들 이게 구세군이 함께 협력해 주는 모든 분들이 우리뿐만 아니라 이게 우리가 구세군이다라는 생각들로 그 자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저희가 좀 더 투명하고 정직하게 그리고 좀 더 소통하면서 사역들을 전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이성규 : 마지막으로 연말연시에 주변에 아직도 쪽방촌 상당히 어려운 분들이 많지 않습니까? 이분들을 위한 나눔을 위해서 청취자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하시죠.
◆ 최철호 : 저희가 항상 하는 말인데요.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나 많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관심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좀 더 배려하고 우리의 관심과 배려가 결국에는 우리 각자를 안전하게 만들고 건강한 사회 구성원으로 함께 살 수 있는 그런 생태 환경을 만든다라고 생각했을 때는요. 서로 어렵지만 그래도 함께 협력할 수 있는 서로 도울 수 있는 그 따뜻한 온정이 오래 가기 전에 더욱 훈훈하게 넘쳐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이성규 : 네 마지막 날이긴 하지만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나눔과 기부의 상징 구세군 빨간 냄비와 일생을 함께하고 계신 최초로 구세군 사관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최철호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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