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12월 1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이수련 배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회 시즌이죠. 친구들을 만나서 많은 얘길 듣다 보면 유독 걱정도 습관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사실 인생에 있어서 신중한 조심성은 어느 정도 생활에 긴장을 주지만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들은 그만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실수한 기억, 실패한 기억은 있습니다. 그러나 실수는 나중을 대비하기 위한 좋은 기회로 남을 수도 있겠죠. 걱정해도 소용없는 것들에서 자신을 해방시키십시오.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얻는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시립대학교 이성규 교수입니다. 오늘은 걱정에 대한 얘기로 문을 열어봤는데요. 12월은 유독 걱정과 후회를 많이 하는 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잊을 것은 잊고 빨리 새로운 날을 꿈꾸는 것이 좋겠죠. 이런 의미에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후회할 틈도 없이 변화무쌍한 인생을 살고 계신 분입니다. 가슴이 뛰는 인생에 도전하기 위해 대한민국 여성 1호 대통령 경호관을 그만두고 배우의 삶으로 다시 인생을 시작하신 분인데요. 청와대를 떠난 배우라는 책의 저자 이수련 씨의 인생 얘기 함께 들어봅니다. 그 전에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좋은 소식 굿피플 굿뉴스 이현웅 아나운서 먼저 만나보시죠.
◈ 이현웅 아나운서> 안녕하세요. 아나운서 이현웅입니다. 따뜻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따뜻한 소식 전해드립니다. 첫 번째 소식입니다. 정부가 내년부터 둘째 이상 아동에게 지급하는 지원액을 더 늘립니다. 저출산 고령사회기본법 개정으로 둘째 이상 아동의 첫 만남 이용권 지원액을 더 지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 건데요. 지금은 출생 순위에 상관없이 200만 원을 지급하지만 내년부터는 첫째 아이는 200만 원, 둘째 이상은 300만 원으로 지원액을 늘립니다. 두 번째 소식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지난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저소득 장애인 가정에 방한 이불 세트를 기부했습니다. 갑자기 추워진 겨울을 보내는 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부의 뜻도 함께 전했는데요. 기부된 물품은 한국장애인재단을 통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자 장애인 40가정에 전달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취약계층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해 기부가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소식입니다. 경기도가 최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들에게 돌봄 수당을 지원하고 야간과 휴일에 돌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내년 4월부터 운영합니다. 경기도는 지난 7일 이런 내용을 담은 어디나 돌봄 사업을 발표했는데요. 앞으로 야간과 휴일에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장애인 복지관 또는 교육 지정기관 등을 공모로 선정해 지원합니다. 아울러 장애인 복지기관 이용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 속한 가정에 매달 가족수당을 지급해서 심리적 소진을 예방할 방침입니다. 굿 피플 굿 뉴스 아나운서 이현웅이었습니다.
◇ 이성규> 대통령 경호관으로 모든 것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순간 모든 걸 박차고 나와서 경력 한 줄 없는 배우로 다시 시작한 인생입니다. 이분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말은 지금 가슴 뛰는 인생을 살고 있나요? 이 한마디였는데요. 대통령 경호관에서 연예계로 청와대를 떠난 배우를 출간한 이수련 배우, 오늘의 주인공으로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수련 배우 (이하 이수련)> 안녕하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성규> 우선 어린 시절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그 우심방 결손? 그게 뭐죠? 그 병을 타고나셨더라고요.
◆ 이수련> 생각보다 드물지 않은 흔한 병인데 우심방 중격 결손이라고 해서 자라면서 그 정맥과 동맥의 피가 섞이는 그런 심장 구조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께서 굉장히 걱정을 많이 하셨죠.
◇ 이성규> 그 어린 몸에
◆ 이수련> 그래서 부모님이 그 어느 정도의 나이가 들 때까지는 수술을 또 못한다 그래서 그 수술을 할 수 있는 나이까지 계속 병원 출입도 하고 입원도 상시하고 그랬었어요.
◇ 이성규> 네 그래서 약냄새 또 의료기기 소리 이런 부분이 상당히 익숙했다고 어디에 나와 있더라고요.
◆ 이수련> 맞아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 기억하면 정말 최고로 어렸을 때 기억이 그 삐삐 하는 병원 기계음 그런 기억들이 있고 어머니께서 저 침대 머리맡에서 쪽잠 주무시고 이랬던 기억이 제가 기억하는 제일 옛날 기억이고 또 그래서 지금도 병원 가면 그 약품 냄새 나면 그때 기억이 다시 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런데 그 어린 소녀가 태권도를 배우셨더라고요.
◆ 이수련> 근데 또 이제 성격 자체가 활달하다 보니까 부모님은 그래도 딸이니까 좀 무용이나 발레나 이런 걸 했으면 좋겠는데 그때도 그렇게 육상부 하고 싶어 하고 축구하는 거 좋아하고 그래서 그렇게 고집을 부려서 어렸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어요.
◇ 이성규> 태권도. 몇 년 동안 태권도를 배우셨어요.
◆ 이수련> 초등학교 때는 정말 계속해서 배웠고 중고등학교 갈 때까지도 해서 지금은 태권도 5단입니다.
◇ 이성규> 근데 그 태권도 하고 막 이러면 공부를 안 했을 것 같은 느낌도 드는데 공부도 되게 잘하셨더라고요.
◆ 이수련> 약간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한테 걱정을 끼치다 보니까 착한 딸이 되어야겠다는 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크게 어긋나지도 않고 또 딱히 어떤 다른 데서 엄청난 소질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보니까 그냥 태권도 다니고 나머지 시간에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학습지 풀고 이러면서 학원은 못 갔었어요. 그래서 학원은 못 가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그냥 어느 정도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요.
◇ 이성규> 그 이력을 보니까 이화여대 영어영문과를 나오시고 또 언론고시 공부를 또 하셨더라고요.
◆ 이수련> 사실 지금은 영문도 모르고 영문과를 간다고 하는데 저는 사실 제가 태권도도 하고 그랬어서 또 IMF 세대거든요. 고등학교 때 그냥 등록금 안 내는 학교가 어딜까를 되게 많이 고민하다가 처음엔 사관학교를 지원을 했어요. 근데 신체 검사를 하러 가서 보니까 군의관이 저는 심장병이 있기 때문에 선천성 심장병이 있는 사람은 안 된다 그래서 사관학교를 못 가고 정말 그때 어떻게 수능 시험 점수에 맞춰서 이화여대를 가게 됐어요. 근데 학교를 다니면서 정말 많은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중에 하나가 방송국에서 프리랜서 리포터를 했었는데 이게 재밌다 하다 보니까 그래서 졸업할 때쯤 되니까 그럼 내가 방송국에서 계속 꾸준하게 일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을 해서 그럼 PD나 기자 뭘 생각할까 해서 언론사 입시를 준비를 했었어요.
◇ 이성규> 시험도 많이 치시고 그랬겠네요. 여기저기
◆ 이수련> 시험은 사실 치기 전에 제가 이제 앉아서 차분히 공부를 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한두 달 정도 이제 공부를 하다가 언론사 입시를 공부하려면 신문을 많이 봐야 되잖아요. 그런데 그때 당시에 신문 하단에 대한민국 대통령 경호실에서 여자를 처음으로 공채로 뽑는다라는 공고가 났어요. 그래서 언론사 입시를 공부하다가 갑작스럽게 이거다 너무 가슴이 뛰는 거예요. 생각만 해도. 재밌을 것 같고 그래서 지원을 했는데 정말 운이 좋게도 그때 언론사 입시를 준비할 때 봤던 많은 과목들 종합 교양, 시사상식, 한국사 이런 거라든지 또 제가 어렸을 때 태권도를 했으니까 신체나 체력 시험도 가능할 것 같았고 또 영문과 출신이다 보니까 영어도 또 많이 중요하거든요. 경호관 같은 경우는 보안 업무이기 때문에 회의를 하거나 이럴 때 통역을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런 영어 시험 같은 거를 많이 중요시하는데 그런 것들이 잘 맞아떨어져서 정말 감사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준비했던 거는 언젠가는 저렇게 다 이용이 되는군요.
◆ 이수련>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사실 어렸을 때 되게 꿈이 없어서 막막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그때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거에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서 살았는데 그것들이 언젠가 한순간에 저한테 좀 더 다른 길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지나고 나니까 들더라고요.
◇ 이성규> 그때 여성 경호관이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1호인 거죠. 그때 경쟁률도 치열했겠네요.
◆ 이수련> 굉장히 치열했죠. 정말 치열했고 또 여자 경호관을 많이 뽑지는 않았어요. 그러니까 전체적으로 예전부터 남성들을 많이 뽑았던 조직이기 때문에 그때 어떤 시험이나 이런 것들을 패스할 수 있는 정도의 인원을 뽑다 보니까 경쟁률이 굉장히 치열했던 걸로 기억을 합니다.
◇ 이성규> 그래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을 근무하셨네요. 세 분의 대통령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을 옆에서 경호를 하셨네요. 생활은 어떠셨어요? 청와대 생활.
◆ 이수련> 그렇죠. 회사가 청와대였죠. 그래서 또 이제 근무상, 임무상 제가 근접해서 같은 행사를 많이 띄워야 되는 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또 회사 근처에 살았었어요. 청와대 인근에서 거주를 했는데 그래서 하다 보니까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그 경호원들이 운동을 하는 시설이 있어요. 그걸로 문 열고 들어가서 운동하고 체력 단련하고 또 사무실 가서 저희는 이제 그 안에서 또 같이 식사도 하니까 밥 먹고 행사 있으면 같이 행사하고 또 가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경호관도 책상이 있어요? 사무실이 있어요? 이런 거 물어보는데 저희도 이제 행사 같은 경우 많은 계획도 해야 되고 그런 것들을 준비해야 되니까 그런 것들 많이 하고 또 사격 무술 체력 경호관들이 해야 되는 것들도 많이 하면서 거의 제 20대 대부분을 청와대에서 보냈습니다.
◇ 이성규> 그래도 10년 동안에 기억 남는 일도 있었을 것 같아요.
◆ 이수련> 정말 많았고 사실 제가 여중 여고 여대를 나왔어요. 여중 여고 여대 소위 수녀 라인이라고 하는데 또 이제 여대다 보니까 군대를 갔다 온 선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근데 경호실이 다분히 좀 군대적인 조직 문화가 많이 남아 있는 곳이었는데 적응을 하다 보니까 사실 처음에는 선배들이 저 때문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니까 제가 훈련을 받을 때 저희 같은 경우는 군사 훈련도 많이 받는데 조교들이 시키잖아요. 저기 보이는 저 골대 찍고 옵니다. 선착순 1 2 3 합니다. 하면은 힘듭니까? 그러면 아닙니다. 해야 되는데 힘듭니까? 그러면 네 너무 힘들어요 이러니까 저희 동기들이 전부 다 저보고 고문관이라고 같이 얼차려 받고 그런 것들을 적응하면서 사실 오히려 전혀 반대되는 분위기에서 많이 쉬는 시간 있으면 같이 족구하고 축구하고 이런 문화에서 지금은 그게 더 익숙하게 자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이제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니까 또 조금 떠나고 싶어지시던가요? 어떻게 해서 또 뭔가 가슴이 안 뛰게 되더라,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들으셨나요?
◆ 이수련> 사실은 정말 좋은 경험을 많이 했어요. 그러니까 외국에서 오는 미국이나 중국, 일본, 러시아 정말 유수의 국빈들이나 정상들을 제가 또 영문과 출신이다 보니까 근접에서 수행을 했고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는 기회도 있고 많은 것들을 배우고 정말 좋았는데 그냥 어느 날 사무실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은 공무원 하면은 안정적이니까 좋은 직업이다라고 많이 생각들을 하시는데 저는 그 안정적이라는 게 저한테 어떤 의미로 다가왔냐면 그냥 미래가 너무 예측 가능한 거. 그러니까 내가 5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될지 10년 후에 어떤 모습이 될지 그리고 이 조직에서 장차 나아가서 최고로 오를 수 있는 직위가 어딘지 이게 좀 예상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너무 재미가 없는 거예요.
◇ 이성규> 조직에서 최고는 대통령이잖아요.
◆ 이수련>저희는 그렇지 않고요. 만약에 저희 같은 경우는 이제 대통령 경호실장이었죠. 그때 당시에는. 근데 그것도 너무 멋있긴 한데 어렸을 때 그런 거 있잖아요. 공부하기 너무 싫을 때 나 대학 가면 뭐가 바뀔 거야, 연애하면 바뀔 거야, 뭐 돈 벌면 나 뭐 해야지 이런 게 있는데 이게 너무 흘러가는 예측 방향이 뻔하다 보니까 그럼 난 이제 설레는 게 없는 건가 내가 뭐 노력해서 바뀌는 게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떻게 보니까 좀 무섭기도 하고 너무 뻔하고 예측 가능한 게 그냥 그 순간에 모든 게 다 싫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그럼 난 도대체 뭘 하고 싶은지를 고민하다 보니까 정말 다양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그냥 정말 제가 33살에 10년 일했던 청와대에 사표를 딱 냈죠. 사실 어렸을 때 저희 작은아버지가 원로 연극 배우셨어요. 정말 어렸을 때부터 연극 무대를 많이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너무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는데 그때는 그냥 저런 배우나 연예계 일을 하시는 분들은 엄청나게 훌륭한 어떤 탤런트가 있거나 재능이나 끼 있거나 사람들이 그 사람을 보기만 해도 쟤는 타고났다 이런 거를 할 수 있을 만한 사람만 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는 내가 어디 가서 그런 얘기를 하는 것도 너무 창피하고 부끄럽고 난 안 될 것 같고 이런 생각을 했는데 경호관으로서 10년을 살다 보니까 저희는 솔직히 안 되면 되게 하라,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 악이다 깡이다 약간 이런 훈련을 받다 보니까 뭐 안 될 게 뭐야 나라고 안 될 게 뭐 있어 이런 근자감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냥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거 한번 해보는 거지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 또 사실 제가 IMF 세대라고 말씀을 드렸던 것처럼 어렸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거에 대한 그런 분출을 확 못했던 것 같아요. 그냥 그런 것들이 부모님한테 어떤 경제적인 부담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근데 경호관으로서 이제 10년을 살다 보니까 그럼 이 정도 내가 자립했으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한번 내 힘으로 해볼 수 있지 않나라는 그 시점이 왔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터무니 없이 주변에 모든 만류를 뿌리치고 30대 초반에 배우를 시작했습니다. 부모님 너무 많이 말렸고요. 특히 우리 저희 경호관 여자 경호관 후배들이 선배님 1기인데 그래도 저희한테 좀 계속 지속적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그게 미안했어요. 너무나 미안하고 이 친구들한테 제가 좋은 본보기나 또 울타리가 되어 줘야 된다는 생각도 있었는데 그게 너무나 이제 만류가 있어서 제가 사는 집 현관 문 앞에 밤새 그렇게 막 쪽지들을 써서 붙여놓고 가는 거예요. 편지를 써서 가지 마세요. 가시면 후회합니다. 안 됩니다. 말릴 겁니다. 이래서 그런 것들이 굉장히 기억에 남아요.
◇ 이성규> 그 이후에 여성 경호관들이 몇 명이나 더 지금 활동을 하고 있죠?
◆ 이수련> 인원 보안이기 때문에 정확한 인원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굉장히 지금 많이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이성규> 네. 이제는 그러니까 문을 딱 열고 들어가시니까 이제 문이 열렸네요.
◆ 이수련> 네. 다행히 그래도 제가 그렇게 오시범을 보이지 않았는 다행인지 꾸준히 뽑혀서 정말 다방면에서 활용을 하고 있는 걸 저도 뉴스로 자주 보고 있습니다.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평범한 인생을 박차고 나와서 꿈을 향해 부단히 달리는 분과 얘기 나눠보고 있는데요. 청와대를 떠난 배우의 저자 이수련 배우 자리하고 계십니다. 이수련 배우님 어떤 노래 하나 추천해 주시겠어요?
◆ 이수련> 저 제가 최근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데 Em Beihold의 Numb Little Bug라는 노래를 추천합니다.
◇ 이성규> 이 노래 사연이 있나요? 아니면 생각이 특별한 게 있나요?
◆ 이수련> 제가 제 나름의 목표가 인생이 좀 가슴 두근두근하게 설레게 사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음악도 그렇고 또 가사도 그런 부분이 많이 공감이 되더라고요.
◇ 이성규> 네 그럼 이수연 배우가 추천한 Em Beihold의 Numb Little Bug 듣고 오겠습니다. Em Beihold의 Numb Little Bug 듣고 오셨습니다. 근데 이수연 배우님 원래 이름이 어디에 찾아보니까 이미령이라고도 나오고.
◆ 이수련> 맞아요. 개명한 건 아니고 원래 본명이 경호관 시절에도 이미령이었고요. 배우로서 좀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서 방송명을 이수련으로 쓰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근데 수련이면 연꽃 아니에요? 근데 좀 무술하고 연결시켜서 또 다른 해석도 할 수 있겠네요?
◆ 이수련> 맞아요. 저는 사실 수련 꽃을 사람들이 다 연상하기를 바랐는데 사람들이 전부 요새도 수련하니?
◇ 이성규> 상무관에서?
◆ 이수련> 뭐 심신수련 잘하고 있냐고. 어쩔 수 없네요.
◇ 이성규> 예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여성 1호 대통령 경호관 출신으로 설렘이 있는 인생을 찾아서 배우의 길을 걷고 계신 이수련 씨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수련 배우께서 생각하기에 근데 도전했던 나이가 뭐 서른셋, 배우로 입문한 거잖아요. 그 나이 관련해서 출발선이 너무 늦었다는 등 그런 얘기는 없었나요?
◆ 이수련> 시작부터 너무 많이 들었고요. 사실 제가 전공도 그렇고 살아온 이력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이 연기를 어떻게 시작해야 되는지 전혀 감이 안 왔어요. 그래서 정말 이제 막 그때 검색을 해보니까 뭐 입시학원 같은 데서 연기를 지망하는 10대 아이들이 배우는 학원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갔는데 거의 제가 이모벌인 거예요. 이거 저만 서른셋이고 나머지 아이들은 거의 10대 그 아이들이랑 정말 배우가 되기 위한 기초 훈련 발성 발음 또 무슨 감정 표현 네 발로 기어봐라, 뭐 해봐라, 웃어봐라 이런 것들을 다 했어요. 근데 그럴 때 사람들이 막 제가 더 이제 열심히 오히려 10대나 이런 친구들은 그냥 주어졌기 때문에 하는 게 있는데 저는 정말 악착같이 했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마땅한 그 시점에 제가 도전을 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고 또 그렇게 조금씩 하면서 저의 실력이 쌓였을 때쯤에 제가 정말 조약한 그런 프로필을 만들어서 오디션을 보러 다녔어요. 근데 제작사 가면 이러는 거예요. 저 문 앞에 있는 프로필 박스에 놓고 가세요 이래요. 그럼 전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서 그냥 문 열고 들어가서 30대 패기로 안녕하세요 저 신인 배우 이수련인데 제 프로필 보시라고 다 놓아드리고 인사하고 굳이 그러고 나왔거든요. 근데 그런 것들이 많이 또 좋게 보였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분들은 굉장히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 너무 늦으셨어요. 이제 와서 어디서 뭐 좀 이쁘다는 얘기라도 들었어요? 막 이렇게. 직업으로 한 것 같아요?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얘기 너무 많이 들었고 근데 그런 것들에 대해서 이제 돌아나오면서 생각을 할 때 처음에는 좀 내가 정말 늦었나 이런 생각이 들다가 아니 늦으셨으면 그 나이에 적합한 배역을 하면 되고 만약에 외모가 모자라면 그런 외모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 되고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냥 그게 제일 쉬워서 나한테 막 던지는 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이성규> 근데 두 달 동안 죽어라고 찍었는데 시사회에 가보니까 목소리도 안 나오고 얼굴도 안 나오고 액션만 조금 나왔다면서요. 왜 그렇게 된 거예요?
◆ 이수련> 저도 이제 이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이 제작하시는 분들도 그런 입장도 많이 있고 하겠지만 처음에는 사실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경호관 출신이고 태권도가 5단이고 몸 쓰는 걸 잘한다는 얘기를 듣더니 약간 액션 배우 혹은 스턴트처럼 저를 이제 활용을 하신 거죠. 그래서 사실 대사가 많지 않으니까 중요하지 않은 대사 몇 개 주고 그러니까 액션을 소화하게 한 후에 마지막에 편집하실 때는 액션만 남게 근데 저는 사실 저는 괜찮았는데 뭐 그거 뭐 그래 내 경험으로 쌓으면 되지 했는데 부모님을 모시고 그 시사회를 간 거예요. 혹은 또 이제 시사회도 초대를 못 받아서 영화를 제 돈 내고 부모님 모시고 갔는데 부모님 뵙기가 너무 제가 죄송해서 부끄럽고 그래서 다음번에는 좀 더 좋은 역할로 해서 부모님을 진짜 초대를 해야지 이런 생각을 오히려 각오를 다지게 됐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 작은 아버지가 왜 연극을 하셨다고 그랬잖아요. 그 작은 아버지는 뭐라 하셨어요?
◆ 이수련> 작은아버지 힘든 길이니까 하던 일이나 열심히 해라 그런 생각도 하셨고 근데 지금은 또 잘 되는 거 보시면서 우리 집 안에 그런 피가 있나, 있나 보다, 응원한다 생각하시더라고요.
◇ 이성규> 그렇게 버틴 6년. 그런데 지금의 이수련은 어떤 배우다 한번 말씀해 보세요.
◆ 이수련> 제가 올해 굉장히 좋은 일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출연했던 작품이 저희 청년 시리즈 어워즈에서 작품상을 받기도 하고.
◇ 이성규> 그 어떤 작품이었죠?
◆ 이수련> 그거는 이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사이렌 불의 섬이라는 방송이었는데 저와 비슷한 저는 그때 경호 리더로 나갔고요. 굉장히 많은 특정직에서 일을 하고 있는 여성 직업군의 사람들이 그들의 어떤 열정이나 이런 것들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관찰 예능 같은 프로그램이었는데 작품의 신선도나 이런 것들이 좋게 평가를 받아서 상을 받았고 이런 것들을 통해서 이제 알려지면서 아직도 저는 난 그냥 배우 이수련이고 싶은데 경호관 출신 배우 이수련으로 많이 기억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근데 상을 받고 조명을 받으면서 제가 예전에 출연했던 작품들 중에 정말 저는 다양한 역할을 제가 찾아서 했거든요. 불륜녀, 사기꾼, 마담 이런 것들 범죄자 역할을 일부러 많이 찾아 했었어요. 다양한 인생을 살고 싶어서 근데 그런 것들이 댓글이 달리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배우 사실 사이렌의 경호팀 리더 아니야. 이 배우 그때는 몰랐는데 이 배우였다. 알아보시는 댓글이 많으면서 그게 너무 좋더라고요. 그냥 그냥 배우 이수련도 좋지만 그 역할로 기억이 되는 그런 부분들이 저한테 굉장히 큰 감사함으로 와닿았어요.
◇ 이성규> 참 말씀을 이렇게 듣다 보니까 새로운 걸 계속 찾고 또 시도를 계속하고 열심히 살고 막 이런 분 같아요. 그런데 그 첫째는 간절함, 둘째는 시간이었다고.
◆ 이수련> 저는 글쎄 그러니까 선천성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그 어렸을 때도 부모님이 다른 분들이 저한테 수혈을 많이 해주셔서 제가 건강을 되찾았대요. 약간 그 느낌이 있어요. 제 삶에 대한 부채의식. 그러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 덕분에 살고 있는 거라는 느낌이 너무 강하면서 어차피 이렇게 사는 거면 조금 내 인생이 그냥 요새 젊은 사람들 어린 분들이 유행하는 쇼츠나 이런 영상들 있잖아요. 그런 짧은 영상이 아니라 굉장히 오래오래 좋은 공감을 울릴 수 있는 클래식한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내가 어떤 배우가 돼야 되지? 내가 내 인생에 어떤 감독이 돼야 되지? 내가 내 인생을 어떻게 써나갈까 이런 것들을 좀 계속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조금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가치 있게 멋있게 살다가 두근거리게 살다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또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 그게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 이성규> 책에도 그렇게 썼었죠. 두근거리고 살다가 가치 있게 죽자. 그 얘기가 그 얘기군요. 또 저 책에 본인 소개에 대통령 경호관의 사격 노하우로 인생을 조준하는 나는 배우 이수련이다. 인생을 조준하는 삶은 뭘까요?
◆ 이수련> 제가 이거를 여중 여고 여대를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 사격을 해본 경험이 없잖아요. 근데 경호실 들어가면 저희는 총기를 굉장히 능숙하게 다뤄야 되니까 꾸준하게 사격을 연습해요. 근데 처음에 너무 총을 못 쏘니까 사람들이 놀렸어요. 니 총만 산탄총이냐고 너무 안 맞는다 그랬는데 그럴 만큼 또 이제 절실히 연습을 했죠. 근데 어느 순간 제가 그걸 알게 된 게 총기를 쏴보신 분은 알겠지만 저 멀리 있는 타깃을 자꾸 집중해서 보면 절대 총이 안 맞아요. 근데 내 눈앞에 있는 이 조준선 조준경 안에 있는 것들에 집중을 하면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타겟에 어느 순간에는 맞게 되거든요. 근데 그걸 제가 깨우치면서 사욕을 정말 잘하게 됐어요. 지금도 담배꽁초 맞힐 정도로 정말 잘 쏘는데 이게 약간 인생이랑 비슷한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자꾸만 멀리 나는 저게 되고 싶고 저것만 향해서 하다 보면 이 길이 너무 멀고 가지도 않고 맞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럴 때는 그냥 내 눈앞에 타겟이 멀리 보일지언정 그 안에 있는 조준선에만 집중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거기 닿게 된다 라는 걸 저는 지금도 제 인생의 노하우로 생각을 하면서 제가 주어진 눈앞의 일에 충실하다 보면 언젠가 내가 꿈꾸는 거기 닿게 되겠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정말 그러면서 표정이나 모든 게 지금도 가슴이 뛰고 계신 분 같아요.
◆ 이수련> 사람들이 저한테 부정맥 유발자라고 하는데 전 진짜 가슴이 좀 두근두근거리게 하는 그 순간을 제가 찾아다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못했던 거 못해본 거에 도전하는 것도 너무 좋아하고 최근엔 그래서 회 뜨는 것도 배우고 있어요. 가지가지 다 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거.
◇ 이성규> 그것도 방위산업 대사로 활동하셨던데 이게 뭐예요?
◆ 이수련> 제가 또 이전 이력이 또 경호관이었고 또 경호실에 있을 때 전 세계 그 경호 총책임자 협회 APPS라고 있어요. 거기 한국 연락 담당관이었어요. 그 친구들이 이제 전 세계에 있는 이런 경호 총책임자 친구들인데 저한테 지금도 연락을 해와요. 그때 당시에 관계가 좋았어서. 그러다 보니까 이제 한국에서 생산되는 여러 가지 총기나 무기들을 외국에서 방한하는 국빈들이나 아니면 한국에 계신 대사님들한테 영어로 소개를 하고 디엑스, 디펜스 익스비션이나 아니면 아덱스가 있을 때 제가 그런 것들을 소개를 하면 그 친구들 입장에서는 훨씬 공신력 있다고 들어주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기회들이 또 자연이 연결이 되면서 제가 한국에 있는 생산하는 많은 그런 방위산업 제품들을 소개하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어렸을 때 많은 분들한테 받은 피로 살았다 그래서 나도 좀 좋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런 말씀을 얼핏 하셨는데 그 의미가 뭐죠?
◆ 이수련> 정말 말 그대로 저도 똑같은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그러니까 하나는 정말 단순하게는 지금도 헌혈을 꾸준히 하고 헌혈 굉장히 많이 했어요. 몇 백 회 했고 장기 기증 서약도 다 했는데 그런 것들은 그냥 정말 1차적인 거고요. 정말 경호관으로서의 삶에 제가 굉장히 많은 부분을 지금도 가지고 있는 게 저희는 그때 경호할 때 죽는 훈련을 많이 하거든요. 근데 죽는다는 건 인간의 본능에 위배되는 건데 그 반대되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해요. 왜냐하면 어떤 상황이 왔을 때 내 생명으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그런 훈련을 많이 하는데 지금도 굉장히 그런 기회가 많이 있어요. 사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떤 사람들을 좀 구해줘야 될 때도 많이 있고 할 때 굉장히 망설이지 않고 그런 것들에 뛰어들게 되는 것 같아요. 이게 여러 가지가 같이 조합이 돼서 그런 거지 제가 뭐 엄청난 대단한 걸 하고 있는 것 같지 않고 언제든지 기회가 됐을 때 좀 가치 있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를 써버리자라는 생각을 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 이성규> 마지막으로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마디 해 주시죠.
◆ 이수련> 오늘 이렇게 좋은 자리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이 자리 역시 저한테 굉장히 두근두근하거든요. 언제나 저도 꾸준히 제가 목표하는 바를 향해서 좋은 배우가 되려고 노력을 할 건데 이제 연말인데 여러분들한테도 뭔가 두근두근거리는 설레는 매일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그러니까 내일이 여러분들한테 두려움이나 근심이나 불안함이 아니라 두근거림과 설렘으로 다가오기를 진심으로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청와대를 떠난 배우의 저자 배우 이수련 씨와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 이수련>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최근 30대 여의사가 뇌사 장기기증으로 5명을 살리고 마지막까지 생명을 구하다 떠났습니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의 임상 조교수인 고 이은혜 씨인데요. 가족들은 사명감으로 의사가 된 고인의 뜻을 받들고 마지막까지 생사 기로에 있는 이들을 살리기 위해 슬픔에도 어렵사리 기증을 결정했습니다. 고인은 총 5명의 환자에게 심장 폐장, 간장 두 개의 신장을 기증하며 새 생명을 나눠줬는데요. 아름다운 마음처럼 하늘의 별이 되시리라 믿습니다. 부디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바래보겠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끝 곡은 루시아의 부디입니다. 그리고 저는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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