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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일] 20:20~21:00
제작진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잠시만요] "가을사랑 신계행, 포크 장르 버리지 못하는 이유"
2023-02-20 15:00 작게 크게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2월 19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신계행 가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가을사랑 신계행, 포크 장르 버리지 못하는 이유"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전기기타보다는 통기타가, 그리고 화려하고 빠른 힙합보다 수수하고 감성적인 포크가 사랑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추억 한 켠으로 남기기엔 우리가 너무나 사랑했던 그때 그 시절, 그 노래 포크. 오늘의 주인공은 가수 신계행 씨입니다. 7080 그때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포크 이야기 같이 나눠볼 거구요. 어쨌든 가수 신계행 씨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신계행 가수(이하 신계행)> 네, 안녕하세요. 신계행입니다.

◇ 이성규> 네, 지금 성함을 말씀드렸고. 기억하고 계신 청취자 여러분도 많겠지만 자기소개 한번 해 주시죠.

◆ 신계행> 네, 85년도에 ‘옴니버스’ 앨범으로 데뷔한, ‘사랑 그리고 이별’로 데뷔를 했고요. 지금까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가을 사랑’을 부르고 88년도에 ‘안개 걷히는 날’ 그리고 91년도의 3집 앨범, 2006년도의 4집 앨범 ‘사랑이 온다’ 그리고 2016년도에 ‘소중한 사람’으로 여러분들께 지금까지 사랑을 받고 있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는 노래하는 신계행입니다. 감사드립니다.

◇ 이성규> 요즘 그동안 한 3년 동안 공연 여건도 좋지 않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 신계행> 조금씩 풀리기는 하지만, 예전같이 그렇게 많이 풀린 건 아니고. 2023년도를 내다봐야 되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기는 해요. 그런데 2022년도보다는 새해가 들어서면서 더 많은 기대를 하게 되는 거죠. 여러분들하고 함께 못했던 공연이라든지 공개 방송 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큽니다.

◇ 이성규> 그 강한 열망을 ‘너튜브’로 좀 풀으셨더군요?

◆ 신계행> 네. 그 ‘너튜브’는 정말 여러분들에게 아직 그동안의 공백 기간이 몇 년 동안 있었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이제 공연을 보지를 못하니까 좀 했으면 좋겠다, 다른 가수들도 하는데. 그런 의뢰를 받아서 저도 하게 됐는데 제가 직접 원고를 쓰고 선곡을 하다 보니까 어려움이 많네요. 그래서 이렇게 새삼스럽게 작가분들의 중요성을 알았고요. 50분씩 하다 보니까 시간을 채우지 못해서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그런 게 들어오지는 않고, 일단은 지금 조금씩 조금씩 이제 구독자 수도 늘면서 저도 그곳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대화를 하면서 그동안의 공연의 문화가 많이 바뀌었구나, 그런 걸 많이 느끼고 있어요.

◇ 이성규> 지금 말씀하셨듯이 예전과 다르게 또 요즘에는 확실히 인터넷을 활용해서 팬들하고 소통을 또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많이 늘었죠?

◆ 신계행> 그런 것들이 좀 생소하기는 하죠. 하지만 이제 조금씩 익숙해지려고 노력을 하고 있고요. 아무래도 통기타 그러면 예전 음악만 생각하시는데, 지금까지도 제가 이제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기타라는 거는 시대 반영을 해서 노래를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새롭게 바뀌어가는, 너무나 빨리 변해가는 이 시대에 내가 통기타를 들고 있지만 그래도 그 반영을 하기 위해서 ‘너튜브’가 많이 제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좀 전에 트렌드가 빨리 변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추억의 장르’, ‘추억의 노래’,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고 이랬을 때는 어떠셨어요?

◆ 신계행> 글쎄, 추억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이제 좀 올드한 느낌이 들어서 저는 추억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고. 지금도 계속해서 ing라고 하고 싶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통기타가 우리에게 추억이라든지 학창시절에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나게 하지만, 지금 통기타 음악도 많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이제 예전에 했던 그런 음악하고 바뀌었고. 요즘 친구들은 어떻게 보면 보고 들은 게 우리보다 훨씬 많아서 정말 정말 잘하더라고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또 세월을 느껴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그 삶에서 묻어나는 게 있지 않을까. 그런 깊이로 우리가 지금 버텨나가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런데 ‘추억의 노래’라고 하는 포크송, 포크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고 하셨습니까?

◆ 신계행> 그래서 저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이제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하모니카, 그때는 하모니카가 계명으로 있는 게 아니고 한 줄로 이렇게 된 거였잖아요. 그거 갖고 이제 기타를 사주셨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이걸 왜 사주셨는지 이해를 못 했고. 고등학교 이제 들어가면서, 고등학교 한 후반쯤에 제가 가요 책을 사서 그냥 그 오선지에 손가락 그 모양만 보고 했다가 제가 이제 아르바이트로, 제가 고향이 제주도이다 보니까 통기타 동아리가 이제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리로 표현한다면 육지에서 오신 분이 저희 통기타 동아리를 만들어 주셨죠.  

◇ 이성규> 쉬운 말로 ‘육지 것’ 막 이런 게 생각나는데. 좋은 일 하셨네요?

◆ 신계행> 네, 그래서 그 선배님이 우리한테 이제 통기타를 가르쳐 주신다고 하니까 그렇게 모여서 통기타를 하다가, 모 방송국에 전국에 그런 게 있잖아요. 방송에 출연하는 그런 게 있었어요. 지금 그걸 얘기해도 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데 아마 여러분들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그래서 저도 거기에 있다가 그곳에 계신 선생님께서 네가 한번 서울에 나갈 기회가 된다면 종로에 가면 약속 꽃잎이 있고 그리고 저기 명동에는 쉘부르라는 곳이 있는데 너를 한번 테스팅 해보면 어떻겠냐. 제주도에서만 있지 말고. 그래서 이제 우연한 기회에 제 친구가 명동에 가게 돼서 함께 갔다가 제가 쉘부르로 가게 됐죠.

◇ 이성규> 오디션에 되신 거네요?

◆ 신계행> 그때는 그냥 제가 기타를 안 가져서 다른 사람 기타 빌려서 했는데 제주도에도 이렇게 기타 치고 노래하는 사람이 있냐고. 그래서 그때 합격하고 집에 왔죠. 왔다가 나중에 이태원 선배님, 그때 당시에 이제 심사위원 하셨던 분이 이종환 선생님하고 이태원 선배님하고 권태수 선배님이셨는데 이태원 선배님이 전화가 왔어요. 혹시 노래할 생각이 있느냐고. 그래서 그렇게 해서 시작이 된 거예요. 

◇ 이성규> 그 후로 쭉 이제 앨범도 내시고 노래를 계속 부르셨군요?

◆ 신계행> 네. 제주도에서는 제가 ‘정남극단’이라고 그래가지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늘 합창단만 있다가 이제 졸업하면 뭔가 다른 걸 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때 당시에 극단 단장님께서 저희 학교에 동아리를 만드셔가지고 극단도 한번 들어가 봤었죠.

◇ 이성규> 연기도 하신 거예요, 아니면 거기서도 노래를 하신 거예요?

◆ 신계행> 제가 표준어를 써서 선생님께서 기대를 하고 연기를 시키셨는데, 결국은 음향으로 갔죠. 그렇지만 그때 당시에 그게 많이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배비장전’이라든지 ‘대왕은 죽기를 거부했다’ 이런 거를 연극 포스터, 그때는 포스터 붙이기가 힘들었잖아요. 우리가 일일이 다니면서 붙이고 다녔으니까. 그런 게 많이 기억이 나네요.

◇ 이성규> 요즘은 보면 아이돌 가수 하다가 연기로 많이 빠지는데, 이제 연기를 먼저 하시다가 노래를 선택을 하셨군요?

◆ 신계행> 근데 그때도 음향을 해서, 나한테는 연기는 재주가 없고 음악적인 면에서, 그래서 그때 클래식 다방을 많이 갔던 것 같아요.

◇ 이성규> 네. 그러면 저건 언제 하신 거예요? 한참 활동하시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봉사도 한 그런 기록이 나오던데?

◆ 신계행> 그건 계속해서 이제 제가 음악을 하다 보니까 그분들하고도 연관이 돼서. 그런데 제가 제 친구가 하는 ‘두레소리’라고. 두레가 우리나라 고유의 언어죠. 그런데 그 친구가 처음에 교통사고 유자녀를 돕는 것부터 시작해서 화상 환자 그리고 지체장애인분들을 위해서 모금 활동을 할 때 저도 같이 참여를 하게 돼서요. 

◇ 이성규> 몇 년 하셨습니까?

◆ 신계행> 8년 정도 했었죠. 그러다가 제가 2006년도에 음반을 낼 때 드문드문 가다가 2016년도 이후로는 제가 거의 못 갔죠. 지금은 그 친구들이 실종 아동 찾기도 하고 있더라구요. 근데 제가 늘 미안하죠. 소식을 계속 접하면서도 참여를 같이 못 하는 게 미안하고.

◇ 이성규> 이제 앞으로 YTN 나오셨으니까 또 이제 한 분 한 분 같이 하시면 되죠.

◆ 신계행> 네, 그러려면 건강해야죠. 제가 건강해서 외부에서 소리를 낼 때 정말 30분 내면 한 3시간 노래한 거랑 똑같더라고요. 근데 지금도 변함없이 그 친구들이 활동하는 거 보고 제가 정말 부끄럽고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죠.

◇ 이성규> 근데 외부에서 소리를 낸다는 게 야외를 말씀하시는 거죠?

◆ 신계행> 그렇죠. 거리에서 하는 거니까. 그리고 그 모금통에 자기 용돈을 아껴서 또 차비를 아껴서 또 아이들을 시켜서 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거든요. 그럴 때마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정말 감사한 분들이시거든요. 제가 그 우리 얼마 전에 강원 산불 났을 때도 많은 분들이 해서 마음을 주어서 했고 지금 또 튀르키예라든지 시리아도 똑같은 마음으로 가지 않나, 이런 생각합니다. 

◇ 이성규> 다시 또 세시봉 시절로 돌아가 보면, 아까 음악감상실 이런 쪽에 많이 다니셨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그때 세시봉 열풍 대단하지 않았어요?

◆ 신계행> 글쎄요. 저는 그때 세시봉은 잘 모르겠고요. 저는 그냥 쉘부르 그리고 그 명동 안에 있던 오비스 캐빈이라고 있었어요. 그래서 그게 아마 층층별로 그룹이 나오고 듀엣이 나오고 통기타 음악이 나오고 아마 그랬었던 걸로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오비스 캐빈은 제가 어떻게 해서 가게 됐냐면, 양희은 선배님이 그날 출타 중이셔서 못 나오게 돼서 제가 갔는데, 엄청 떨리더라고요. 근데 그 느끼는 그거 있잖아요. 근데 아무래도 통기타를 하다 보니까 양희은 선배님을 존경할 수밖에 없고. 그때 당시에 제가 늘 정말 방파제에서 노래를 할 때 정태춘 박은옥 씨의 노래라든지. 

◇ 이성규> 그러니까 제주도 방파제를 말씀하신 거죠?

◆ 신계행> 그렇죠. 그리고 그때 당시에 통기타를 치셨던 분들의 음악을 되게 사랑하긴 했죠. 그중에서도 아무래도 양희은 선배님을 뺄 수가 없죠. 여자니까.

◇ 이성규> 근데 이 통기타와 포크의 매력, 그 뭔가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시는 거 아니겠어요?

◆ 신계행> 악기 중에서 가장 우리 사람의 몸하고 사람의 소리하고 가장 가까운 게 기타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저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 있어도 늘 안고 다니진 않잖아요. 근데 기타는 늘 안고 있고. 

◇ 이성규> 안아야 되네요.

◆ 신계행> 네. 그리고 어느 곳에 가 있든지 우리가 기타를 치면 모든 사람들과 함께 공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시간과 장소가 되고. 같이 함께 노래를 하면서 또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게 기타의 매력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소지하기 쉬운 거잖아요.

◇ 이성규> 늘 안고 다니는 기타의 그 매력 이걸 담아서 노래를 하나 좀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 신계행> 아무래도  여러분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가을 사랑>을. 지금 계절은 아니지만 우리가 이제 봄을 앞두고 있는 <가을 사랑>은 어떤지 한번 들어봐 주세요.

◇ 이성규> 그러면 신계행 씨의 라이브로 <가을 사랑>을 듣고 오겠습니다. 

신계행 / <가을 사랑> Play

◇ 이성규> 네 ,신계행의 <가을 사랑> 라이브로 들으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그리운 음악의 포크 가수, 신계행 씨입니다. 우리가 늦가을이 아니라 늦겨울에 가을 노래 들었잖아요. ‘빗소리는 너의 목소리’, 그런데 신계행 씨가 가을비 같은 목소리 같아요.

◆ 신계행> 감사드립니다.

◇ 이성규> 바로 앞에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포크 얘기를 하면, 80년대 중후반부터 가요계 판도가 상당히 빠르게 바뀌었잖습니까. 막 리듬감 있고 빠르고.

◆ 신계행> 네, 댄스 음악으로 바뀌었죠. 

◇ 이성규> 그 당시 가요가 이쪽으로 막 넘어갈 때, 그 변화 과정이 어떠셨어요?

◆ 신계행> 그때 참 많이 힘들었죠. 왜 그러냐면 선배님들이 이제 다른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머지 막 이렇게 저같이 중간에 어중간하게 알려졌던 사람들은, 얼굴도 안 알려진 사람들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없었죠. 하지만 그래도 그때 당시에는 라이브 카페가 많이 있어서 함께 할 수 있었던 그런 시간이 있었고. 어떻게 보면 생계도 같이 변화가 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거든요. 어쩌면 그게 우리에게 강인한 그런 힘을 줬던 그런 계기가 됐었던 것 같고. 그때 당시에 음악을 만들었던 분들은 그 시대에 또 우리의 아픔이라든지 다 못한 노래들을 가사로 표현해서 음반을 또 음악을 만들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아마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느 곳에 있든지 그걸 쉽게 떨쳐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자기가 적응을 하면서 가슴 한쪽에서는 그래도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을 계속 남겨두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때 당시에 <가을 사랑> 또 <사랑 그리고 이별>이 사랑을 받았지만. 오히려 2000년도 넘어서 대학 축제 때 제가 통기타 하나만으로 대학 축제를 다닐 때 이제야 그분들이 중년이 돼서 대학 때 학창시절을 생각하면서 저에게 이제 사랑을 많이 주실 때 ‘아, 그럴 때 보람이 참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절대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통기타를 놓으면 안 되겠구나, 이 생각을 하고 있죠.

◇ 이성규> 원동력일 수도 있고.

◆ 신계행> 네, 제게 힘을 주는 거죠.

◇ 이성규> 주변에 또 그런 힘을 주는 다른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 신계행> 그럼요. 왜 그러냐면 제가 25주년 기념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어요. 데뷔 25주년. 그때 당시에 정말 학창시절에 편지로 주고받았던 친구들이 다 결혼해서 아이들 또 시부모님 또 아니면 또 남편 손잡고 선물 하나씩 들고 왔을 때 제가 꼭 시집, 장가보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고요. 지금도 아직도 가족같이 만나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이 자기가 가장 어려울 때 언니의 음악을 듣고 언니하고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그때 많이 위안이 됐고 힘이 됐었다고 그런 얘기를 할 때 정말 이 길을 선택하기를 참 잘했구나,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죠.

◇ 이성규> 신계행의 목소리로 끝까지 여기까지 오신 거를 잘했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군요?

◆ 신계행> 그렇죠. 어떻게 보면 몇 년 있으면 이제 포크의 음악을 또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않나. 그런데 제 입장에서는 지금 계속 노래를 하다 보니까 생각이 드는 건 뭐냐면,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말고 모든 음악들이 다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같이. 그러면 내가 어떤 때는 정말, 예전에는 그런 노래를 안 불렀는데 최근에 와서 갑자기. 제 노래를 전에는 할 생각도 못 했었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이렇게 자기가 자꾸 이렇게 뭔가를 느껴가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선호도가 바뀌니까 모든 음악이 같이 공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 이성규> 근데 그 포크의 선구자가 있었죠. 피터 시가라고. 이분이 지금 말씀하신 거를 담아서 이 얘기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시대를 살고 있는 민중의 희로애락을 담지 않는다면 포크 음악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포크 음악이 무언가를 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떤 것들을 좀 담아내야 될까요?

◆ 신계행> 아무래도 내가 지금 가장 고민되는 거. 또 크게 아웃라인으로 따진다면 시대가 변화되는 그 모습에서 내가 혼자 점같이 너무 작아 보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을 때, 어떻게 보면 큰 아웃라인으로 생각을 했을 때는 그런 음악을 만들고 싶지만 대중 가수는 뭐예요.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이잖아요. 그러면 똑같은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 음악을 만들어야 되는 거거든요. 저는 멜로디보다는 가사가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제 노래가 대부분 파노라마 같이 이렇게 수채화로 된 노래들이 많은데, 지금은 어떻게 보면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친구들이 많잖아요. 가사 속에서 보면. 그거를 가만히 듣고 보면 그 친구들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근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고, 그걸 단지 이제 우리가 그때는 정말 직접적으로 표현을 못 했던 거를 우리 요즘 친구들이 그런 표현을 하다 보니까 부러움 반, 우려 반 이런 것들이 있는 거죠. 

◇ 이성규> ‘포크 가수 신계행’의 목소리로 살아오셨는데, 앞으로 대중들에게 어떤 가수로 인식되고 싶으세요?

◆ 신계행> 아무래도 제가 노래하는 사람이니까 꾸준히. 누군가가 기타를 놓더라도 저는 절대 기타 못 놓을 것 같고요. 그리고 그 음악을 계속하면서 음반을 계속 내야 된다는 그런 생각하고 또 음반을 내면서 공연도 함께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신계행은 외모를 좋아하는 게 아니고 제 노래를 좋아하는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여러분들의 사랑에 부흥되는 그런 음악을 계속 만들어야 될 것 같고. 여러분들이 세월을 먹으면 나도 같이 세월을 먹으면서 또 그 후손들이 또 제 음악을 사랑해 주는 그런, 오래도록 정말 가슴에 남는 그런 가사와 멜로디를 부르는 그런 가수로 남고 싶어요.

◇ 이성규> 앞으로 2023, 올해에 대해서 기대감이 있으시던데 활동 계획 있으세요?

◆ 신계행> 아무래도 2016년도에 5집 앨범을 발표를 하면서 PR을 많이 못 했는데, 여러분들과 함께 이제는 호흡을 하면서, 앞에서 정말 여러분과 함께 얼굴 마주 보면서 공연을 하는 게 꿈이고요. 그 다음에 서서히 또 6집 앨범도 준비를 해야 되지 않나. 교수님께서도 좋은 가사 있으면 저한테 써주세요.

◇ 이성규> 알겠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가수 신계행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어렵게 모셨는데, 우리가 노래 하나를 더 듣기를 원합니다. 어떤 노래 하나 들려주시겠습니까?

◆ 신계행> 제가 몇 년 동안에 공연을 못 하면서 느꼈던 게 여러분들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다시 한 번 느꼈는데, 그거를 이제 5집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했습니다. 제목이 <소중한 사람>.

◇ 이성규> 그러면 신계행 씨와는 우선은 여기서 인사드리고 잠시 뒤에 오늘 끝 곡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신계행> 감사합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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