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2년 6월 2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이욱 테너 &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마샬대 음대 성악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NATS 국제가창교사협회 초대회장 이욱 교수, 바리톤에서 테너로 전향한 건..."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클래식은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마음의 위안을 전해주는 특별한 매력이 숨어 있는데요. 그 매력을 소개해주실 분 모셨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국제무대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성악가죠. 이욱 테너입니다. 안녕하십니까.
◆ 이욱 테너(이하 이욱)> 안녕하세요.
◇ 이성규> 반갑습니다. 우리 청취자 여러분들께 한번 직접 소개도 해 주시고 인사도 해 주시죠.
◆ 이욱>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마샬대학교에서 성악과 뮤지컬 학과장 맡고 있는 이욱 교수입니다.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너무 반갑습니다.
◇ 이성규> 그러니까 이제 미국 한국 막 오가시면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가 보네요. 요새 근황은 어때요? 그쪽 미국 쪽 근황이나 본인의 활동 근황은.
◆ 이욱> 제가 일단은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웨스트버지니아 주립대학인 마샬대학교에서 성악 뮤지컬 학과장 맡고 있고요. 그리고 NATS라는 National Association of Teachers of Singing이라고 미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사실 가장 큰 교사 협회에요. 그래서 거기에 웨스트버지니아. 그다음에 오하이오 그다음에 펜실베니아 주를 합친 트라이스데이이라고 있는데요. 거기 협회 회장을 맡고 있고요. 그리고 작년부터는 한국에도 지부를 세워서 같은 협회의 회장직을 맡고 있고, 그다음에 지금 각국 돌아다니면서 연주회하고 있고요. 다음 달에는 또 비엔나 오스트리아에서 연주회랑 컨퍼런스도 진행할 예정이고, 그리고 각국에서 오페라랑 뮤지컬 디렉팅하고 그다음에 요즘에는 또 실용음악이 미국에서도 많이 대세여서 실용음악도 가르치고 하면서 한국 미국에서 후학 양성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아 네 그러니까 지금까지 NATS라고 부르는 교사협회, 이게 지금 몇 개나 있는 거예요?
◆ 이욱> 개수로 세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일단은 미국은 전 주와 전 지역에 다 있고요. 그리고 이제 1년에 한 번씩 이제 내셔널 컨퍼런스 해서 각 지역에서 다 모여서 한 군데 모여서 해요. 재작년에는 상황 때문에 이제 온라인으로만 했는데, 3년 전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마지막으로 했고 올해는 코로나 상황이 조금 괜찮아져서 이제 일주일 정도 뒤에 7월 달에 시카고에서 내셔널 컨퍼런스가 열립니다. 그래서 그런 컨퍼런스도 있고 학생 콩쿨도 있고 그다음에 여러 배움의 기회 제공하는 그런 협회입니다.
◇ 이성규> 아까 마샬대학교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마샬 그러니까 좀 딱딱한 느낌도 들고 그러는데, 주로 어떤 분야를 가리키시나요.
◆ 이욱> 제가 일단은 박사 학위를 받은 게 성악이니까 일단은 성악 위주로 가르치기는 하는데요. 그런데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점점 뮤지컬이랑 그다음에 실용음악 쪽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어서, 그래서 거기에 발 맞춰서 실용음악도 가르치고 그 다음에 뮤지컬도 가르치고 있고요 근데 주로 가르치는 분야는 성악이지만, 어쨌든 음악은 가창에 관련된 거는 두루두루 다 가르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실용, 뮤지컬 이런 걸 다 하시는군요. 그런데 지금 한국 잠깐 들어오신 거죠? 사시려고 오신 거 아니죠?
◆ 이욱> 잠깐 지금 연주회랑 컨퍼런스 때문에 잠깐 들어왔고요. 미국은 겨울방학은 3주 정도밖에 안 되는데 여름 방학은 좀 길어요. 한 두 달 반에서 세 달 가까이 돼서 그래서 지금 여름 기간에는 한국에서 일하고,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미국에서 보통 시간을 보내고 연주를 하고 후학 양성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한국에서 일을 하신다. 그러면 어떤 일 한국에서 하세요?
◆ 이욱> 한국에 와서는 일단은 제가 말씀드렸던 NATS 컨퍼런스를 하는데요. 제가 미국이랑 그다음에 해외에서 유명하신 교수님들을 이렇게 초청을 해서 그분들을 이제 오프라인으로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다음에 유명하신 교수님들도 한국에서 초빙을 해서 마스터클래스 해서 학생들이 굉장한 저렴한 가격이나 아니면 관객 입장에서는 전부 무료로 해서 이렇게 학생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주고 그다음에 교사님이나 아니면 교수님 되시고 나면 사실 너무 바빠가지고 이렇게 계속 개발하시기가 힘들거든요. 그래서 그 자기 개발의 기회를 제공을 하고, 계속 자기 개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게 이제 NATS 일이고 그런 일들을 한국에서는 주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면 언제쯤 돌아가세요?
◆ 이욱> 다음 주 수요일에 돌아갑니다.
◇ 이성규> 이제 곧 며칠 안 남았네요.
◆ 이욱> 며칠 안 남았습니다.
◇ 이성규> 외국에서 생활하신 지가 11년 정도 됐나요? 그런데 저도 조금 외국 생활을 해봤지만 추억들이 많이 생기게 되는데 또 힘든 일도 있고, 어떠세요? 사시기가.
◆ 이욱> 일단은 저는 개인적으로는 좋은 점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가장 힘들었던 건 사실 지난 3년인데, 지난 3년은 한국 포함해서 전 세계가 전부 다 힘들었으니까 힘들었다고 얘기하기에 조금 불공평할 것 같고, 좋은 기억 힘든 기억 많이 있지만 이제 아무래도 힘든 기억은 고국을 떠나서 이제 가족들과 친구를 못 보는 게 사실은 가장 힘들죠. 그래서 그거 말고는 사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미국에도 가족이 있잖아요.
◆ 이욱> 미국에도 이제 외가 식구도 있고 그다음에 제 가족이 있지만, 그래도 이제 아버지 어머니도 보고 싶고 할머니 잘 계시나 걱정도 되고, 한국에서 제가 한국에서 태어나기만 안 태어났지 초, 중, 고등학교 군대 대학교까지 다 한국에서 나왔거든요. 그래서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이 한국에 있다보니까 그 당시에 사귄 친구들을 못 보는 게 조금 아쉽죠.
◇ 이성규> 이번에는 많이 만나셨습니까.
◆ 이욱> 네 이번에 좀 많이 만나고 돌아갑니다.
◇ 이성규> 또 공항에 그 친구들이 아쉬운 배웅을 하러 가겠네요.
◆ 이욱> 다들 직장생활 때문에 바빠서 만나는 것도 한국 사람들이 너무 바빠서 다들 월차 내고 만나고 그랬어요.
◇ 이성규> 요즘 K-콘텐츠가 아시다시피 전 세계적으로 대단하잖아요. 미국서 보실 때 또 그쪽에 종사하시는 분으로서 어떤 느낌이 드세요?
◆ 이욱> 제가 11년 전에 갔을 때는 전혀 이런 게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싸이도 나오고 그러면서 한국을 조금씩 알기 시작하다가, 지금 bts 팬은 정말 제 학생들의 한 절반 이상은 굉장히 열렬한 bts 팬이거든요. 저보다 더 잘 알아요. 그래가지고 이 멤버, 저 멤버 이렇게 저한테 자꾸 물어보는데, 저는 한국 사람인데도 그 친구들이 더 많이 알 만큼 bts 인기가 대단하고요. 그리고 오징어 게임 등 이제 넷플릭스에서 나오는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워낙 대단해서 제가 이제 학생들 되게 지쳐 있을 때 오징어 게임들 이야기 하길래 제가 딱지를 만들어서 줬어요. 딱지 치기도 하면서 놀았는데, 너무 그게 재밌다고 하고 입소문이 나서 쉬는 시간마다 다른 과 애들도 와서 딱지 접어달라고 이야기를 할 만큼 그래서 딱지 접어주고 한번 치고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다. 하고 복도에서 딱지 치는 것도 보고 애들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는 게임하는 것도 보고 하면서, 이게 제가 11년 전에 미국 갔을 때랑은 굉장히 달라졌고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 이성규> 음악인의 길을 걸으실 때에 혹시 아버님 영향을 좀 받으셨나요? 아니면 반대하셨는데 이 길로 들어오셨나요.
◆ 이욱> 저는 사실 아버지가 워낙 이 분야에서 독보적이신 분이시고 가장 큰 성공을 이루신 분이어서 사실은 음악을 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안 했는데 근데 이제 아버지께서 제 재능을 봐주시고 응원을 해주셔서, 보통 이제 집 같은 경우는 아들이 음악 한다고 하면 부모님이 반대하시잖아요. 저희는 반대로 저는 자꾸 안 하려고 그러고, 아버지께서 오히려 추천을 해주셔서 그래서 아버지의 추천으로 음악을 하고 그다음에 이렇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근데 아버님께서 추천하실 때, 아버님 같이 대중 가수 쪽으로 추천하셨어요? 아니면 지금 하시는 클래식 쪽을 추천하셨어요.
◆ 이욱> 클래식을 하기를 원해 하셨어요. 왜냐하면 아버지께서는 원래 성악가가 꿈이셨는데, 그런데 그 당시에 집안 형편이라든지 여러 가지 사정이 조금 여의치가 않아서 그래서 대중 가요를 하신 부분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성악을 못했던 것에 해당되는 한이랄까요. 좀 아쉬움이 늘 있으셨는데 그래서 이제 아버지는 오히려 저한테 클래식 쪽을 가라고 추천을 해 주셨고, 저 또한 클래식은 아버지가 하시는 가요랑은 조금 다르니까. 이 부분은 그래도 괜찮겠다 싶어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예 그러셨군요.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이욱 테너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 이욱 교수님이라고 해야 될지, 테너 이욱 교수님이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는데, 노래 한 곡 좀 듣는 시간이거든요. 어떤 곡을 소개하시겠습니까?
◆ 이욱>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를 신청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본인 걸 안 하시고 또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 추천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 이욱> 지금 아직도 조금씩 상황이 괜찮아지고 있지만 여러 가지로 힘들잖아요. 그리고 지금 분쟁과 전쟁과 인종 간의 갈등, 여러 가지 있는데, 이 가사 끝에 보면 ‘이 별에서 처음 태어나 사는 우리 손 잡아요’라고 되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다 처음 살아봐서 서툴러서 우리가 분쟁이 있는 거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 잘 살자라는 메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지금 이 시대에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 이성규> 그럼 테너 이욱 교수님이 소개하신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를 듣고 오겠습니다. 이소라의 바람이 부네요.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국제 무대를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는 성악가 이욱 테너입니다. 이욱 테너님, 클래식은 어렵고 또 진입 장벽이 높은 장르라고 인식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그런 분들에게 클래식의 매력 이런 것이다. 이렇게 소개시켜 주신다면요?
◆ 이욱> 사실 장르가 조금 어려울 수 있어요. 왜냐하면 일단은 클래식은 이제 외국어로 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진입 장벽이 높은 것은 사실인데요. 제가 보기에 가장 큰 매력은 어쿠스틱 음악이다. 마이크와 음향 장비가 없이 그냥 악기의 순수한 악기와 그다음에 순수한 가창된 목소리로만 으로도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 클래식의 매력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사실은 클래식의 묘미를 보시려면 라이브 음악을 들으셔야 돼요. 사실 CD랑 비디오로 보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그래서 무료 공연이나 아니면 낮에 열리는 굉장히 저렴한 공연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각 문화회관이나 아니면 각 연주홀의 점심에서 열리는 그런 콘서트를 가벼운 마음으로 한 5천 원에서 1만 원 정도, 가벼운 마음으로 가셔서 그 어쿠스틱에서 올리는 이 진동감을 몸에서 이렇게 느끼고 하시면, 클래식의 매력에 빠지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이성규> 어쿠스틱의 매력. 참 또 새로운 말씀을 좀 듣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그중에 테너, 테너가 되시는 데는 어떤 분의 영향을 받으셨는지, 아니면 본인의 취향이었는지 모르겠네요.
◆ 이욱> 일단은 원래는 전 바리톤으로 시작을 했는데요. 근데 테너가 돈을 더 잘 벌더라고요. (웃음) 그래서 원래 음역대가 안 되는데 억지로 전향을 했고요. 그리고 이제 미국에서 바리톤으로 성공을 하려니까 미국 애들이 이렇게 공격이 훨씬 더 크고 바리톤으로 제 신체 사이즈로는 승부가 안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테너로 억지로 전향을 했고요. 그리고 제가 성악을 하는 데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미친 음악가는 좀 너무 식상한 대답일 수 있지만 파바로티예요. 제가 고등학교 때 아무 생각 없이 이제 TV 채널을 돌리고 있었고, 그 당시에 약간 우울증이라고 하면 좀 너무 심각하지만, 어쨌든 되게 이렇게 의기소침해 있고 이렇게 자신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튼 클래식 채널에서 파바로티가 부르는 아베마리아를 듣고 영원히 치유되는 느낌을 받았어요.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사람의 심장을 이렇게 두근두근거리게 할 수 있나. 그리고 나도 만약에 저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지금 제 우울증과 이 침체되어 있는 마음을 이렇게 기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서, 파바로티가 제 성악 인생에 가장 큰 영향력을 준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이성규> 파바로티가 이제 큰 영향을 주셨구나. 근데 이제 영향은 파바로티한테서 받았고, 활동을 하시다가 국제무대에서 이제 테너 이욱, 이렇게 활동을 하시면서 있었던 재밌는 일들 있으세요.
◆ 이욱> 재밌는 일은 일단은 제가 국제무대에서 어쨌든 쓸 수 있게 된 계기는 사실 저는 파바로티 같은 소리가 없어요. 그래서 없지만, 제가 늘 무대에서 첫 리허설 때 저만큼 준비해오는 사람은 늘 아무도 없었어요. 그리고 늘 제일 많이 공부해 오고 그다음에 제일 먼저 오고 그다음에 제일 마지막에 가고. 그래서 열심히 하니까 아무런 연고 없이 온 저에게 굉장히 많은 기회를 줬어요. 그래서 이 땅은 여전히 노력을 굉장히 많이 하면 기회를 주는 땅이구나 해서 굉장히 연주를 하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내가 이 세상 최고의 목소리는 아니지만 내가 정말 이 속해 있는 단체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제일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보니 나에게 계속 기회를 주는구나 해서 그런 감동이 있었고, 그래서 미국에서 계속 활동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 이성규> 근데 그 아까 속해 있는 단체라고 그러면.
◆ 이욱> 그다음에 오페라 이제 제가 영화 프로그램 같은 것도 가고 그러면 보통 한국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그리고 대부분 외국 사람이고 하는데 제가 늘 제일 준비를 많이 해오고 학교에서 오페라 올라갈 때도 제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만큼 제가 준비를 제일 열심히 해오고, 첫날 악보를 다 외워서 가니까요. 그래서 오페라 디렉터만큼 많이 알고 가니까 제일 인정을 많이 해주고, 그래서 제가 가장 좋은 소리가 심지어 아니라 할지라도 저를 최우선으로 짜주는 모든 스케줄을 보면서 미국은 기회의 땅이 여전히 맞구나라고 생각을 했고, 그게 참 인상이 제일 깊은 에피소드인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랬군요. 근데 지금 제일 먼저 오고 제일 많이 연습하고 제일 늦게 가고, 그 부분에서 약간 본인의 소신과 철학 이런 게 조금 느껴지긴 하는데요. 성악가로서 이욱은 어떤 철학이 있다. 이거 한번 말씀해 주실래요?
◆ 이욱> 저는 성악가로서의 철학보다는 이제 그냥 음악인으로서의 철학은 다들 본인의 전공을 살려서 자기가 이 세상에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 같은데요. 근데 성악은 이제 늘 시와 그다음에 노래의 조화예요. 그래서 절대로 음악만 있을 수 없고, 시만 있을 수 없고, 그 두 가지가 늘 조화를 이뤄야 되거든요. 그래서 음악은 조화 없이 하모니 없이는 무의미하기 때문에, 내가 이 음악을 통해서 사람 세상에 분쟁이 있을 때, 그 분쟁을 음악이 화합할 때 가장 아름다운 소리가 나듯이 음악을 통해서 그런 메시지를 세계에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우리가 같이 합을 맞춰서 피아노와 음성과 시와 이 작곡가의 뜻이 합쳐지고, 저의 연습을 통해서 무대에서 이렇게 하모니가 이루어지듯이, 우리도 의견이 좀 달라도 같이 화합 합시다라는 메시지를 늘 무대를 준비하면서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그게 성악가로서의 제가 가지고 있는 철학입니다.
◇ 이성규> 아까 잠깐 얘기가 나왔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교사단체에서 이게 이제 비영리 단체.
◆ 이욱> 예 맞습니다.
◇ 이성규> 이제 한국에 있는 학생들에게도 도움을 주고 계신데, 그 얘기 좀 더 해주실래요?
◆ 이욱> 제가 이번에 세종대학교에서 지난주 토요일에 제2회 대한민국 NATS 콘퍼런스를 열었는데요. 제가 초빙 강사가 일단은 미국에서 현직 교수이신 한인 교수님 여섯 분이 오셨고, 그리고 버클리 음대의 보컬 학과장이신 앤 페컴 교수님, 그리고 음성학으로 세계 아마 탑 파이브에 드실 거예요. 유타대학교의 린 맥스필드 교수님을 모두 모셨어요. 이분을 사실 개개인적으로 찾아가서 레슨을 받거나 강의를 들으려면 정말 많은 돈을 줘야 돼요. 근데 제가 어쨌든 회비도 모으고 그다음에 여기저기서 지원을 받아서 이 모든 지금 제가 말씀드렸던 이 훌륭한 교수님의 모든 강의를 학생들에게 모두 무료로 제공을 했어요. 그런데 그랬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무래도 지금 세상이 힘들다 보니까 음악에 뜻이 있어도 음악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이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비영리 단체를 통해서 그래도 지금 이런 특수한 교육을 받기 힘들더라도 우리가 많이 도와줄 테니까, 계속 용기를 잃지 말고 그리고 계속 공부를 이어가라라는 뜻에서 그런 것을 했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 이성규> 그런데 이런 좋은 일들이 코로나가 없었으면 더 활기를 띄었을 수도 있겠는데, 아쉬움도 있네요.
◆ 이욱> 코로나가 참 여러 가지로 힘들게 하고 있네요.
◇ 이성규> 물론 이제 본업이신 성악가로서의 공연 또 이런 부분들도 많이 위축됐죠?
◆ 이욱> 그래도 지금 미국 같은 경우에는 그래도 많은 규제가 풀려서 그래서 미국이랑 유럽 위주로 일단은 공연 계획들을 잡아나갔고 그다음에 곧 실행할 예정입니다.
◇ 이성규> 소개 좀 해주세요.
◆ 이욱> 네 일단은 비엔나에서 오스트리아에서 8월 2일에 제 독창회를 오스트리아에 있는 피아노 교수님과 그다음 기타 교수님과 함께 하게 됐고요. 그리고 10월에는 펜실베니아에 위치한 대학교에서 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NATS 컨퍼런스 및 콩쿨을 주최하고 그다음에 이제 섭외하고 주최하는 행사를 제가 진행하게 되었고요. 그리고 11월에는 이제 뉴욕 오페라 아메리카에서 사랑의 묘약 이제 제가 네모리노로 주역으로 연주를 하고요. 네모리노는 사랑의 묘약에서 주역 테너 역할입니다. 그리고 마샬대학교에서 뮤지컬 그다음에 오페라 디렉팅을 12월 초에 하게 되고요. 그리고 12월에 웨스트버지니아 심포니 오케스트라랑 협연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 이성규> 이거 뭐 꽉 찼네요.
◆ 이욱> 조금 무리하게 짰습니다.
◇ 이성규> 찬바람 나면서 추울 때까지 꽉 소화하시려면 바쁘시겠습니다. 앞으로 성악가 이욱. 또 테너 이욱 대학 교수로서 활동 많이 하시는데, 꼭 이것만은 좀 새롭게 하고 싶다는 꿈이 있으세요?
◆ 이욱> 제가 이루고 싶은 꿈은 한국에 있는 비전인데요. 한국에서는 자기가 어느 대학 출신이 아니다. 아니면 내가 어느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다. 아니면 내가 어디 소속이 아니다 하면 좀 위축되어 있는 경향이 아직도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개인적으로 너무 속상하거든요. 그래서 그리고 자기가 능력은 있지만 단체에 속해 있지 못하고 해서 뭔가 이야기를 할 때 왠지 좀 네가 뭔데 이런 이야기를 하냐 하는 식으로 좀 기를 주기는 아직도 풍습이 좀 있어서, 그래서 제 꿈은 한국의 젊은 음악가들이 한국 기준으로 봤을 때 좀 나댈 수 있는, 자기의 하고 싶은 것과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했을 때 손가락질이랑 비아냥을 안 받을 수 있게 제가 조금 방패나 우산이 되어 줄 수 있는 게 제 꿈입니다.
◇ 이성규> 버팀목이 되시겠다는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고요. 마지막으로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마무리 인사해 주시죠.
◆ 이욱> 지금 너무 힘든 시기에 그래도 한국이 제가 한국인으로서 너무 자랑스러운 거는 미국에서는 늘 한국에 대한 보도가 나오거든요. 그래서 코로나를 가장 잘 극복하고 있는 나라. 이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동료 교수들도 다른 눈으로 보고, 그리고 문화 그리고 이런 예술 쪽에서 한국이 점점 세계의 리더가 되는 모습을 볼 때 제가 용기를 많이 얻어갑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있으면서 힘든 점들도 많이 있지만 이렇게 국가적으로 위상이 점점 높아가고 있는 것에 대해서 좀 자긍심과 힘을 가지시고, 파이팅해서 끝나가는 코로나 잘 극복해 나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이욱 테너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이욱>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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