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5년 9월 21일 (일요일)
■ 진행 : 김영민 아나운서
■ 대담 : 정희영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내용 인용 시 YTN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김영민 아나운서 (이하 김영민) : 스포츠는 단순히 기록을 세우는 경쟁만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더 넓히는 힘이 있죠 오늘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서는 배구 국가대표 선수에서 대학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또 서울특별시 장애인 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시면서 스포츠의 가치를 교육과 정책으로 이어가고 계신 분 모셨습니다.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의 정희영 교수 만나봅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정희영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 교수 (이하 정희영) : 안녕하세요.
◆ 김영민 : 네, 반갑습니다.
◇ 정희영 : 네, 반갑습니다.
◆ 김영민 : 제가 앞서서 교수님에 대해서 짤막하게 소개를 하긴 했지만 정식으로 청취자분들께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릴게요.
◇ 정희영 : 네, 안녕하세요. 저는 배구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소중한 경험을 시작으로 현재는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요.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희영이라고 합니다.
◆ 김영민 : 너무 멋있으세요. 이렇게나 많은 타이틀을 가지고 계시다니.
◇ 정희영 : 고맙습니다.
◆ 김영민 : 딱 뵈면 배구 선수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 정희영 : 아, 그래요?
◆ 김영민 : 뭔가 키도 크시고 제가 옛날에 어릴 때 아버지랑 같이 배구 경기 보러 가기도 하고 그랬었거든요. 거기 가면 배구 선수들이 다 너무 멋있으시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랐는데, 언제 국가대표 배구 선수로 활동을 하셨어요?
◇ 정희영 : 언제라고 시기를 특정하면 제 나이가 유추가 되기 때문에. 저는 국가대표 배구 선수로 활동했던 경험이 있고 정확히 언제였다는 것을 말씀드리기보다는 그 시절은 제게 있어서 스포츠 인생에 뿌리를 다진 시점이었다. 그리고 선수로서의 그러한 경험이 지금은 교수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나 또 장애인체육회에서 행정 일을 할 때, 많은 정책들을 고민할 때도 현장에 땀이라든가 열정을 이해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는 근간을 만들어 줬다고 생각합니다.
◆ 김영민 : 국가대표는 어떤 마음으로 임하게 돼요?
◇ 정희영 : 상당히 울컥울컥합니다. 제가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외국에서 코트에 섰을 때 그 마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는데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래서 지금도 스포츠 경기를 보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 김영민 : 국가를 대표한다는 것, 정말 명예로운 자리잖아요. 너무 부럽습니다. 배구 선수로의 길에서 은퇴하시고는 곧바로 학업에 전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게 일반적인 루트인가요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으셨나요?
◇ 정희영 : 일반적인 루트는 아닌데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현재까지도 항상 습관적으로 다이어리를 항상 쓰고 있는데요. 저는 늘 다이어리에 해야 할 일 그리고 목표 이런 것들을 항상 기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는 항상 여성 선수로서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다는 현실적인 생각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고요. 그래서 늘 운동은 언젠가는 그만둬야 됐다, 끝날 수가 있다 그렇지만 공부는 평생 이어갈 수 있다는 다짐을 하고 있었던 것 같고요. 특히 아버지께서 운동을 하더라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고 말씀을 해 주셨던 가르침이 제 인생의 나침반이 됐었던 것 같습니다. 또 제가 하나 열중한 게 있다면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체육학과 학생이면서도 목적 없이 행정학과 수업을 가서 같이 계속 청강하면서 듣기도 하고요. 생각해 보면 배움 자체를 제가 소중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들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고 또 학문과 현장 정책을 읽는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 김영민 : 그 밑거름을 바탕으로 이 자리에 계신 것 같아요. 2021년에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이사로 시작을 하셔서 지금은 부회장직을 맡고 계신데, 처음에 장애인체육회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었어요?
◇ 정희영 : 제가 장애인체육회와 인연을 맺게 된 거는 제가 비장애인 선수로 활동을 하면서 경기장에 있을 때 경기장에 관중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제가 우연한 기회에 사회복지 현장에서 한 10년 동안 일을 할 수 있었던 경험이 기회가 있었어요. 그때 장애인 현장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시각장애인 세계 축구 대회에 자문위원으로 활동을 잠깐 하게 되면서 그 현장을 보게 된 것이 기회가 됐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스포츠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제 스스로도 상당히 감명을 받았고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동등한 인간인데 조금 비장애인에 비해서 좋지 못한 환경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고 이들을 위해서 노력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운이 좋게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에 2021년에 이사로 참여하게 되었고, 현장에서 직접 다양한 분들을 만나 뵙게 되고 체육이 누군가의 삶을 바꾸는 큰 힘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고요. 또 자연스럽게 더 많이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회장으로서의 책임감이 이사 때보다 훨씬 더 무겁지만 그만큼 스포츠와 장애인 복지가 연결되는 지점을 넓히는 데 더욱더 힘써야 되겠다는 다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올해 4월 제45회 장애인의 날에 또 보건복지부 장관 표창을 받으셨죠? 너무 축하드립니다.
◇ 정희영 : 감사합니다.
◆ 김영민 : 가장 크게 인정받으신 부분이 어떤 점일까요?
◇ 정희영 : 먼저 감사드리고요, 제가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다 보니 어떤 분들은 고위직에서 보수를 받는 자리라고 생각하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곳에서 월급을 받지 않고 또 순수하게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봉사자로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늘 장애인 당사자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래서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이 인정을 받지 않았나 생각하고요. 또 하나는 저희가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소속의 또 서울시청 소속의 장애인 직장운동경기부 선수나 지도자 또 전문 체육 선수들에게 대학 교육의 길을 열어주는 일을 꾸준히 추진해 왔습니다. 그래서 숭실사이버대학교와 산학협력을 통해서 장학금을 주고 이러한 활동을 해온 것을 높이 평가해 주신 것 같은데요. 그래서 단순히 경기력 향상에 머무르지 않고 선수들이 학문과 또 사회 속에서 더 큰 매력을 설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한테는 또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 김영민 : 이 외에도 기업의 장애인 선수단 창단을 독려하고 선수와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모델을 만드는 데도 힘쓰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기업들이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 정희영 : 이건 정말 저희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가 잘하고 있는 일인데요. 전국에서 유일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선두적으로 시작을 했고요. 먼저 기업이 장애인 선수단을 창단하고 지원하는 것은 단순한 사회 공헌을 넘어서서 기업과 선수 모두 성장하는 상생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기업은 장애인 선수단을 통해서 사회적 가치 또 ESG 경험을 실천할 수가 있고요. 이것은 기업의 이미지 제고 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장애인 선수들에게는 안정적인 훈련 환경을 제공하고 또 일자리가 보장되면서 선수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가 있지요. 그래서 기업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줄 때 선수들은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어요.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기업과 선수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그래서 단순히 기업의 후원이 아니라 기업 문화의 다양성 그리고 포용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고요. 결국 기업이 장애인 체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사회적 책임을 넘어서 기업의 지속 가능성 그리고 경쟁력 강화로도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시기를 바라봅니다.
◆ 김영민 :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많은 기업 관계자분들이 아마 러브콜을 보내지 않으실까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 장애인 선수단의 운동복도 지원을 하셨어요? 관련한 에피소드 좀 들려주시죠.
◇ 정희영 : 네, 저희가 서울특별시 장애인체육회가 베트남 장애인체육회와 매년 스포츠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지난 6월에 베트남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현지 장애인 선수들을 보니까 제대로 된 운동복 없이 또 낡고 해진 옷을 입고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좀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너무 안타까워서 같이 간 우리직원들과 우리가 조금 도움을 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상의를 해보니 저희 체육회 쪽에 조금 여벌의 운동복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저희 입장에서는 작은 나눔이었지만 그분들이 큰 기쁨을 느꼈고 저 역시 스포츠가 국경과 언어를 넘어서 서로를 연결하는 힘이 되었다는 걸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그때 경험이 지금도 저에게 있어서는 체육 즉, 스포츠의 가치라는 것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는구나라는 가르침을 주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고 이번에 베트남 장애인체육회에서 서울에 방문했을 때 너무 또 즐겁게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 김영민 : 너무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까지 공유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YTN 라디오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부회장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정희영 교수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중간에 잠시 출연하신 분들의 신청곡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볼 텐데요. 어떤 곡 가지고 오셨어요?
◇ 정희영 : 저는 제 인생곡이 뭐가 있을까 하루 종일 고민을 해봤는데 많은 곡들이 있었어요. 이 곡은 특히 가사가 너무 좋아서요.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부탁드립니다.
◆ 김영민 : ‘가사가 좋아서’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가사를 잘 곱씹으면서 한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자전거 탄 풍경의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듣고 올게요.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울시 장애인 체육회 부회장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정희영 교수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희 노래 듣고 왔는데, 이제는 부회장님에 대한 얘기를 조금 더 나눠볼까 해요. 교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배구라는 키워드는 절대 빠질 수가 없잖아요. 언제, 어떤 계기로 배구를 처음에 시작하셨어요?
◇ 정희영 : 맞습니다. 제 삶에서 배구는 빼놓을 수 없는 시작점 그리고 뿌리 같은 존재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제가 배구를 처음 접한 거는 학창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 체육 선생님이 수업 다 끝난 다음에 저희 반으로 들어오시더니 교실 맨 뒤에 앉은 학생들은 방과 후에 운동장으로 좀 와요라고 하시더라고요.
◆ 김영민 : 아, 키 순으로 앉으니까요?
◇ 정희영 : 네. 그래서 저는 수업이 끝난 다음에 갔는데 선생님은 맨 뒤에 앉으니까 당연히 키가 큰 학생들을 불렀다고 생각하셨죠. 근데 저는 그 시절에 키가 정말 작았거든요. 그래서 선생님이 저를 딱 보시더니 ‘너는 집에 가’ 이러시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냥 가기가 싫었어요. 뭔가 재미있었을 것 같고. 그래서 끝까지 남아서 배구공을 만져봤죠. 사실은 어떻게 보면 그 작은 선택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가지 않고 계속 버티고 하다 보니까 한 달 동안 졸랐던 것 같아요. 배구 좀 시켜주세요. 결과적으로는 배구를 할 수 있게 되었죠.
◆ 김영민 : 그렇군요. 그럼 언제부터 키가 크셨던 거예요?
◇ 정희영 : 저는 키가 계속 작다가 고등학교 3학년 들어가는 그 겨울 방학 때 14cm가 자랐습니다.
◆ 김영민 : 성장통이 엄청나셨을 것 같은데요.
◇ 정희영 : 그랬었던 것 같은데, 그 전에는 상당히 작았고요. 14cm가 더 커서 현재 키는 175이긴 한데, 당시 저는 배구 현장에서도 그리 큰 키가 아니었어요. 제 별명이 ‘무서운 숏다리’였습니다.
◆ 김영민 : 그러셨군요. ‘무서운’이라는 수식어가 상당히 좀 두렵게 다가오기도 해요. 선수 정희영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 정희영 : 저는 선수 시절에 지도자 선생님들은 저를 ‘정희영은 농땡이꾼이야’ 제 동료들은 아 ‘쟤는 참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국가대표가 됐다’ 막 이러면서 좀 시샘하는 동료들도 있었죠. 근데 저는 저를 제가 가장 잘 알 거 아닙니까? 저는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그리고 노력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큰 재능을 갖고 있다는 것보다는 훈련 하나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훈련 중에 제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게 느껴지면 다른 선수들이 다 쉬고 있을 때 혼자 체육관에 가가지고 될 때까지 연습하는 억척스러움이 저는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히 배구는 혼자 잘하는 것보다는 팀워크, 동료애 이런 것들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항상 열심히 했고 늘 성실하게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서로를 북돋우는 선수가 되고자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 김영민 : 혹시 잊지 못할 경기 있으세요?
◇ 정희영 : 국가대표 선수로 뛸 때는 매 순간이 소중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할 순간은 지금까지도 국제대회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 코트에 섰던 순간인데요. 제가 선수 활동을 할 때도 별로 큰 키가 아니고 다른 선수들에 비해서 조금 앳돼 보였어요. 저희는 국제 대회다 보니까 항상 도핑을 하지 않습니까? 그거를 하는데 대회가 끝나고 저희 트레이너 선생님이 그 통에 넣어서 선수 하나를 뽑아요. 근데 제가 지목이 된 거죠. 당시에 있었던 세계 도핑방지위원회 위원들께서 저를 보더니 너무 작고 갸날프니까 ‘너 선수 맞냐’ 이런 과정도 있었고 너무 어리다 진짜 맞냐 하면서 저를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화장실까지 쫓아와서 그 도핑 테스트를 했던 그 장면이 기억에 아직도 생생합니다.
◆ 김영민 : 그러셨군요. 그리고 또 강단에 계시잖아요.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 에는 ‘제2의 인생을 위해서 공부하는 만학도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워낙에 다양한 연령층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굉장히 보람 있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은데, 이야기 보따리를 좀 풀어주세요.
◇ 정희영 : 말씀하신 대로 저희 대학교 또 특히 스포츠 재활복지학과는 제2의 인생을 계획하고 계시는 중장년층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리고 또 요즘 건강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저희 학과를 선택해 주시는 분들도 많고 또 저희 통계를 보면 비장애인에 비해서 장애인 대학 입학률이 상당히 낮은데, 저희 학과는 장애인 체육 선수들이 상당히 많이 입학해 있어요. 국가대표 선수들도 많고. 장애인 체육 선수들의 경험이 저도 같이 공감하면서 가장 보람 있게 느끼는 부분이기도 한데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과연 제가 공부를 할 수 있을까요’, ‘자신 없어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못 할 것 같아요’하고 말을 했던 분들이 지금은 너무나 새로운 도전에 대한 자신감도 넘쳐나고 그리고 운동하던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해주십니다. 저는 이들에 대한 가능성을 더 느끼게 되었고 또 이런 얘기들을 들을 때마다 또 교육이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고 또 새로운 꿈을 열어주는 과정이라는 것을 늘 체감합니다. 그래서 더 책임감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학생들의 변화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 김영민 : 누군가의 삶을 변화시키고 더 확장해 줄 수 있다는 게 너무 뿌듯하면서도 어깨가 무거우실 것 같다는 생각도 좀 듭니다. 교수님께서는 스포츠와 복지를 통한 국민 삶의 질 향상을 교육의 목표로 삼고 계신데 제자들에게 특히 강조하는 점도 있으세요?
◇ 정희영 : 제가 잘 몰랐는데 어느 순간 항상 이 말을 하더라고요. ‘사람이 중심이어야 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다르지 않다’ 그중에서도 특히 세 가지를 강조하고 있더라고요. 말씀드린 대로 첫 번째는 사람을 중심에 둬라. 스포츠든 복지든 결국 목적은 어떻든 개인의 행복 그리고 사회적 포용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냐. 그걸 잊지 말아라. 그리고 두 번째는 판에 박힌 지식보다는 융합적 사고를 가져라. 스포츠를 단순히 경기나 체육활동만으로만 보지 말고 복지나 교육, 건강, 문화 모든 것을 융합해서 바라볼 수 있는 통합적 시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는 말로만 그치지 말고 실천해라 그리고 책임감을 가져라라는 것인데요. 이론이나 정책을 배우는 데만 머무르지 않고 현장에서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행동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래야 너희가 진정으로 우리 국민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고 스스로도 성장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더라고요.
◆ 김영민 : 교수님께서는 선수셨고 교수이시면서 장애인 체육 행정가이시기도 하잖아요. 이게 각각 다른 역할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 통하고 도움이 되는 역할일 것 같기도 하거든요. 이 역할들이 어떤 식으로 상호작용을 하나요?
◇ 정희영 : 먼저 제가 ‘행정가’ 이렇게 말하는 건 좀 거창할 것 같긴 하지만 제가 하고 있는 일이 그 일이기도 합니다. 선수, 교수, 행정 이 세 가지가 말씀하신 대로 역할이 서로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저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선수 시절 때는 현장의 경험 그리고 스포츠의 본질적인 가치를 배웠다면 교수 때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문적 지식이라든가 또 교육적 방법으로 후학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또 서울시 장애인체육회에서 행정 일을 할 때는 선수와 학생들에게 얻은 통찰 이것들을 정책에 반영해서 현장과 제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 영역이 맞물리면서 현장 교육 정책이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 그 안에 스포츠의 가치가 더 넓게 확산되는 시너지가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영민 : 현장, 교육, 정책 하나하나 균형 있게 다 경험을 하고 계시면서 스포츠 산업에 종사하고 계시네요. 인간 정희영 교수님의 일상에서 가장 큰 활력소가 되는 건 뭘까요?
◇ 정희영 : 벌써 한숨부터 나오죠.
◆ 김영민 : 왜요?
◇ 정희영 : 일이 상당히 많은 것 같고, 보면 제가 거의 한 4-5년 동안은 휴가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거의 날마다 주말까지도 저희는 대회가 있기 때문에 생활체육 대회라든가 그래서 쉬지 못하고 달려왔던 것 같습니다. 선수 시절 또 교수를 하고 있고 장애인 체육에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쉼없이 달려왔는데 또 요즘 제 일상에서 가장 큰 활력소는 무엇일까라고 생각해 봤더니 오히려 잠깐 잠깐 멍 때리고 있는 거, 또 차 안에서 잠깐잠깐 책을 볼 수 있는 것들, 그리고 우리 서울시 장애인체육회 직원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선수들을 만나서 또 그들의 열정을 느낄 때도 저는 큰 힘을 받고 좋은 사람들과 평범하게 하는 이런 평범한 시간이 저한테는 큰 에너지가 아닐까. 그래서 결국 저한테 활력소가 되는 것이라고 하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는 따뜻한 움직임 그리고 울림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 김영민 : 워낙에 바쁘셔서 그런지 일상 속에서 다가오는 작은 쉼표들이 활력소로 자리하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해 주셨습니다.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서울시 장애인체육회의 부회장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스포츠재활복지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정희영 교수와 긴 이야기 열심히 나눠 봤습니다. 시간이 다 되어서 오늘은 여기서 인사를 드리도록 할게요. 교수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 정희영 : 감사합니다.
◆ 김영민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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