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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 06:40, 12:40, 19:40
제작진진행: 이원화 변호사 / PD : 김양원 / 작가 : 강정연
화마 피해 뛰쳐 나갔더니 칼 든 남자가…"태어나지 말았어야" 자책하던 고시원 살인마
2025-08-25 12:46 작게 크게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8월 25일 (월)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강은하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한 고시원에서 벌어졌던 사건입니다. 0월의 어느 날, 아침 8시가 막 지났을 즈음  당 고시원에서 아주 날카로운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죠. 불이 났다는 여성의 외침과 함께, 곧이어 화재경보기도 요란하게 울려댔습니다. 불이 시작된 곳은 고시원 3층이었는데 불과 함께 피어오른 시커먼 연기는 순식간에 고시원 복도로 구석구석으로 퍼져나갔죠. 방안에서 아직 잠들어있던 투숙자들 역시 깜짝 놀라 앞다퉈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고시원 특성상 방도 다닥다닥 붙어있고 무엇보다 복도가 특히 비좁았는데 탈출하려는 투숙자들 앞을, 한 남성이 가로막았습니다. 탈출을 위해 복도로 뛰쳐나온 투숙자의 앞을 막아선 건 다름 아닌, 해당 고시원 3층에서, 5년 넘게 살아온 30대 남성 정 씨였습니다. 그는 모자와 옷, 신발까지 모두 검은색으로 맞춰 입고 그저 우두커니 서있었다고 하죠. 마치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듯이 말입니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50cm짜리 회칼을 휘두르며 탈출하려던 여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이른바 논현동 고시원 방화 살인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총 6명이 사망하고 7명이 크게 다쳤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오늘 사건 엑스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엑스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은 로엘 법무법인, 강은하 변호사와 함께 합니다. 변호사님, 어서오세요.

◇강은하 변호사(이하 강은하): 안녕하세요. 강은하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오늘은 퀴즈를 하나 내면서 시작해볼까 하는데 변호사님 혹시 현재 대한민국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사형수가 몇 명이나 있는지 아십니까?

◇강은하: 50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압니다.

◆이원화: 2025년 6월 기준으로 총 57명이라고 하더라고요. 물론 우리나라가 법적으로 사형제를 유지하곤 있습니다만 1997년 12월 30일 이후, 단 한 차례도 집행된 적이 없어 사실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 이야기를 왜 꺼냈냐면 오늘 사건의 범인이 이 57명 가운데 한 명이기 때문이죠.

◇강은하: 사형이 선고되는 경우 자체가 매우 드물고요, 그럼에도 사형이 선고됐다는 건 그만큼 중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소개해드릴 이 사건은 이른바 강남구 논현동의 고시원 방화 살인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입니다.

◆이원화: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강은하: 2008년 10월 20일 오전 8시15분쯤 논현동 한 고시원에서 5년째 살던 정씨는 3층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렀습니다. 이 고시원에 사는 69명의 투숙자 가운데 40여명은 인근 영동시장과 식당에서 일하는 재중동포여서 새벽 근무를 마친 뒤 방으로 돌아와 불이 난 시각까지도 곤히 잠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원화: 아침 8시가 좀 넘은 시간이면, 출근을 준비중이라거나 학생이라고 한다면 아직 자고 있었을 수도 있는, 그런 시간인데 불이 났다는 비명소리에 정말 아수라장이었겠다 싶습니다.

◇강은하: 화재 경보기 소리가 들리고 연기가 방으로 새어 들어오자 놀란 투숙자들은 서둘러 방을 빠져나왔지만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원화: 누구였죠?

◇강은하: 그건 바로 정씨였습니다. 그는 검은색 상하의와 모자를 착용하고 있었고 얼굴에는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있었습니다. 정씨는 또한 몸에는 여러 흉기를 지니고 있었고, 화재로 인한 정전이나 연기가 날 것에 대비한 듯 머리에 쓰는 소형 플래시도 소지하고 있었습니다. 첫 번쩨 희생자는 복도로 달려 나온 중국동포 여성 A씨 였습니다. A씨는 중국에 있는 아들 수술비 2,000만 원을 모으려고 한국에서 하루 13시간씩 일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다고 합니다. A씨는 정씨에게서 가슴, 배 등 전신의 20∼30곳을 칼에 찔렸습니다. 저항 흔적이 A씨의 손목과 다리에서 수없이 나타났는데, A씨는 한 번 저항한 뒤 달아났다가 쓰러진 상태에서 발로 다시 저항한 것으로 추정됐습니다.

◆이원화: 피해를 입은 여성과 아는 사이었나요? 복수라도 계획했던 겁니까? 

◇강은하: 아닙니다. 정씨는 그저 그냥 불특정 다수를 노렸던 것으로 밝혔졌습니다. A씨에 이어 불을 끄기 위해 소화기를 집어 든 취업 준비생 20대 남성 B씨도 무방비 상태로 배에 칼을 맞았습니다. B씨는 배를 움켜쥔 채 “이제 죽는구나” 했다고 하는데요, 필사적으로 정신을 차린 B씨는 정씨의 얼굴을 가격한 뒤 도망쳐 총무실에 간신히 숨은채 신고 전화를 했다. 구조되기까지 30여분간을 홀로 버틴 그는 사경을 헤매다 사건 엿새 만에 겨우 의식을 찾았다고 합니다. 이어 4층으로 이동한 정씨는 40대 여성 C씨와 마주치고 C씨를 무자비하게 공격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20대 여성 D씨가 놀라 자리에 주저앉자, 다음 타깃은 D씨가 되었습니다. D씨는 가족 몰래 고시원에서 살며 학비를 벌던 효녀였다고 합니다. D씨 또래 아들이 있던 C씨는 목숨을 걸고 D씨를 지키려 정씨를 붙잡았고, 손목을 내리쳐도 C씨가 끝까지 붙잡고 있자 정씨는 C씨의 목을 찔렀습니다. 


◆이원화: 그러면 이 남성이 사람들을 해코지 하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던 건가요? 

◇강은하: 정씨는 경찰 조사와 구속영장 실질심사에서 “과거 회칼을 사서 살인을 준비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실행에 옮기지 못했고 한때는 자살도 생각했다”며 “고시원비와 휴대전화 요금, 벌금을 낼 돈도 없어 ‘이렇게 살면 뭐 하나’ 하는 생각에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끔찍한 점은 더 있습니다.

◆이원화: 뭐였죠?

◇강은하: 실제로 정씨가 범행을 결심한 것은 4년 전인 2004년 2월경이었다는 것입니다. 정씨는 당시 서울 동대문구 황학동 중앙시장에서 흉기, 강남구 도곡동의 한 총포사에서 가스분사기, 고시원 인근 편의점에서 라이트용 기름 4통과 부탄가스 100여개를 각각 구입했다고 합니다. 이어 2005∼2006년 사이에도 흉기를 샀고, 2009년 10월에는 논현동의 한 문구점에서 검은색 물안경을 사는 등 범행에 필요한 물건을 차례로 사들였습니다.  정씨는 그만큼 치밀하고 착실하게 범행을 준비해왔던 것입니다

◆이원화: 4년 전부터 범행을 준비했고, 해당 고시원에서만 5년 가까이 거주햇다 이야길 해주셨잖아요. 그러면 혹시 주변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 같은 건 못 느꼈을까요? 

◇강은하: 당시 30세였던 정씨는 주변 사람들의 증언에 따르면 평소에도 말이 많고 남의 일에 참견하기 유별나게 좋아하는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씨는 고시원에서 정기적으로 소방 점검을 할 때 유독 자신의 방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고 합니다. 이를 이상히 여긴 고시원의 총무는 강제로 문을 열고 정씨의 방에 들어갔다고 하는데요, 정씨의 방에는 장난감 총, 인형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으며 특히 인형은 마치 사열하듯이 가지런히 서랍장에 놓여 있었다고 합니다. 정씨는 받은 월급을 인형뽑기로 탕진하여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적도 있었을 정도로 인형뽑기에 중독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정상진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쓴 일기장 4권도 발견되었는데 그 내용이 충격적이었습니다.
        
◆이원화: 어떤 내용이 담겨있었죠?

◇강은하: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몸과 두뇌가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다” 등의 자책과 “조국은 나를 버렸다. 이젠 필사의 항쟁뿐이다. 내 마지막 숨이 멎는 그 순간까지.”, “신이 내게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면 난 복권 100억원 당첨보다 이 지구를 우주의 먼지로 폭파시켜 달라고 할 것.”이라는 등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였습니다. 한편, 다시 사건 당일로 돌아가서 정씨는 소방차와 경찰이 도착하자, 피해자인 척 소방 대원들에 의해 구출되며 1층으로 내려왔는데요, 경찰은 정씨가 온몸이 피칠갑이 되어 있는데 자상은 없는 걸 보고 수상히 여겨 바로 체포했습니다. 그 후 정씨는 현주건조물방화죄, 방화치사죄, 살인죄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 되어 2009년 4월 22일 사형이 구형되었고, 2009년 5월 12일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정씨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정씨는 그대로 사형이 확정되어 현재까지 미집행 사형수로 교도소에서 복역 중입니다.

◆이원화: 앞서 변호사님께서 불우한 어린시절을 겪었다,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다, 이야길 해주셨는데 혹시 심신미약을 주장한다거나 그러진 않았겠죠?

◇강은하: 정씨는 우울증과 심신미약 상태였음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정신감정에서는 2년 이상 만성적인 우울증을 갖고 살아왔지만, 일종의 신경증일 뿐 현실감은 있는 상태이며 정신병질적 성격은 없어 보인다는 판정이 나왔습니다. 재판부 역시 이를 받아주지 않았고요, 판결문에서 "사람을 살해한 뒤 경찰의 총에 맞아죽겠다는 범행동기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치밀한 범행계획을 짠 데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진지한 참회를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사형을 선고한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법정 최고형에도 절망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정씨가 지금도 미집행 사형수로 아직 멀쩡히 살아있기 때문이죠. 피해자 유가족들은 내 가족을 잔인하게 살인한 범인이, 내가 낸 세금으로 먹고 자고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며 울분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이원화: 유가족들이 고시원 주인을 상대로 소송도 걸었다, 들었는데 어떤 문제를 제기했던 거고, 어떻게 됐는지도 궁금한데요.

◇강은하: 유가족들은 고시원 주인과 서울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는데요, 재판부는 고시원 주인이 고시원 복도의 폭을 다중이용업소안전관리특별법 시행규칙상의 기준보다 좁게 설치하였다거나, 소방관계법령에 의한 소방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할 증거가 없고, 모든 소방기준을 통과한 사실이 인정되며, 정씨의 고의 불법행위를 고시원 주인이 예견할 수 없었다고 하였고, 서울특별시 소속 119 구급대원들이 화재신고를 받고도 늦게 출동하였거나, 현장에 도착하여서도 구조작업을 지체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서울특별시의 책임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원화: 변호사로서 아쉬운 대목은 없으십니까?

◇강은하: 고시원은 숙박업이 아닌 다중이용업소에 해당되는데요, 침구 세탁, 객실 청소 등 숙박에 필수적인 부대 서비스의 제공을 전제로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다중이용업소는 숙박업에 적용되는 것보다 소방시설이나 안전시설 등의 기준이 완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건에서 피해가 더 확산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던 것이죠. 다중이용업소법 제2조 제1항 제1호에서는 “다중이용업”이란 불특정 다수인이 이용하는 영업 중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생명ㆍ신체ㆍ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것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영업을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고시원은 ‘영업 중 화재 등 재난 발생 시 생명ㆍ신체ㆍ재산상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것’으로 행정청은 소방시설이나 안전시설 등의 기준을 적정하게 정하였어야 합니다. 만일 행정청이 행정입법의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한 부작위가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어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 있는 경우라면 국가배상청구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원화: 이 사건 직후, 고시원 관련법이 제정됐다 들었거든요, 어떤 내용인가요?

◇강은하: 그 후로 피난유도선,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되고 통로 폭도 90cm에서 최소 120cm 이상으로 강화되었습니다. 뒤늦게나마 소방 및 안전 기준이 개선되어 피해를 확산 방지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원화: 사건엑스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집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엑스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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