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 : 2025년 4월 30일 (수)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임흥준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여성 A 씨와 남성 B 씨는 2019년부터 5년 넘게 교제해 온 연인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범한 연인 사이는 아니었죠. 남성 B 씨는 자신의 연인인 A 씨를 폭행한 혐의로 1년간 감옥살이를 하고 이제 막 출소를 한 상황이었습니다. B 씨를 사귀면서 수백 번도 더 들었던 이야기였습니다. 더 이상 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친구였던 B 씨는 너무나도 집요했죠. 혹여 가족들에게 해가 될까봐 A 씨는 결국 B 씨를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또다시 반복된 폭력. 여성 A 씨는 영원히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감을 느꼈다고 하죠. 그리고 그 공포감은 결국 절대 벌어져선 안 될 끔찍한 비극으로 발전하고야 맙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해당 사건은 교제 폭력의 교제, 폭력에서의 정당방위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는데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문제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임흥준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임흥준: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임흥준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교제 폭력이라는 게 사기는 친밀한 사이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말하는 건데 연인 사이이기 때문에 처벌은커녕 제대로 신고도 못하고 계속해서 폭력에 노출되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임흥준: 맞습니다. 과거에는 데이트 폭력을 폭력 자체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볍게 다뤄지는 경우가 많았고, 당사자 역시 남녀 모두 상당수가 주변에 알리거나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쨌든 2010년대 후반 들어 데이트 폭력 역시 중요 폭력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 내에서도 강해졌습니다.
◆이원화: 여성이 됐든 남성이 됐든 연인이 폭력을 행사할 때 내가 이거 막겠다고 방어 목적으로 때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게 또 쌍방 폭행이 돼서 함께 기록이 남는 경우도 제법 많죠.
◇임흥준: 근데 쌍방 폭행이 법적인 용어는 아니나 사회 일반에서 흔히 쓰곤 하죠. 그리고 대부분의 일반적인 법 감정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먼저 맞았으니 방어를 위해 일부 폭력을 써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법적으로 정당방위로 인정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피해자임에도 억울하게 폭행죄로 처벌을 받고 전과도 평생 남을 수 있습니다.
◆이원화: 오늘 살펴볼 이 사건 같은 경우 교제 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어 버린 그런 사건이죠.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요?
◇임흥준: 이 사건 주인공 여성 A 씨는 초등학생 때 어머니가 아버지의 가정 폭력을 피해 집을 나갔다고 하고요. 본인도 10대 때부터 술에 의존했다고 합니다. A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지만 이를 지속하기 어려웠고요. 결국 2019년 어 노래방 도우미로 일하다 손님으로 온 남성 B 씨와 교제하게 됩니다. 그런데 B 씨가 술에 취하면 전 남친이랑 좋았냐는 등 과거 남자 이야기를 꺼내며 A 씨를 폭행했다고 합니다. 특히 피해 초기인 2019년경부터 2021년경 사이에는 A 씨가 B 씨의 폭력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폭행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쌍방 폭행 혐의로 입건된 적도 있습니다.
◆이원화: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여성이 살려달라 신고를 할 만큼 폭력의 정도가 굉장히 심했던 모양이더라고요.
◇임흥준: A 씨는 2019년 7월부터 2013년 5월까지 112 신고 고소 등을 통해 모두 31차례나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폭행의 정도가 심해지던 2022년경에는 B 씨가 A 씨의 목에 칼을 들이댄 채 때리고 담뱃불로 A 씨의 몸을 지진 적도 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B 씨가 A 씨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때려 A 씨는 안와골절로 인해 시력이 감퇴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린 31차례의 피해 호소에 수사기관이나 사법부가 묵묵부답이었던 것은 아니고요. B 씨는 2023년경에 A 씨에 대한 교재 폭력으로 특수상해 등의 혐의가 적용되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기도 했습니다.
◆이원화: 사실 실형을 선고받고 1년을 살 정도면 진짜 심했던 거죠.
◇임흥준: 그렇죠. 데이트 폭력으로 바로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그 정도면 경미하다고는 절대 볼 수 없죠. 그런데 문제는 그 이유입니다.B 씨가 출소한 지 일주일째 되는 날 A 씨에게 연락하여 정말 때리지 않는다며 집으로 와달라 애원한 것입니다. A 씨는 B 씨의 요청을 거부하면 찾아와 난동을 피울 것 같아 무섭기도 했고요. 또 B 씨가 감옥에 있는 동안 수차례 사과 편지를 보냈기에 B 씨를 믿고 집으로 찾아가게 됩니다. 당연히 예상하셨겠지만 B 씨의 폭력 수위는 한층 강해졌습니다. B 씨는 ‘너 때문에 감옥에 왔다’라고 하며 A 씨의 목을 졸랐고요. 주먹으로 얼굴을 때려 A 씨의 턱 부위가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A 씨는 도망가고 싶었지만 휴대전화도 뺏겼고, 주변에 논밭밖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집 밖을 서성이다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때 안방 문 틈새로 B 씨가 자는 모습이 보였고, A 씨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됩니다.
◆이원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거죠?
◇임흥준: A 씨는 B 씨가 자고 있던 집에 있는 이불에 라이터로 불을 붙였습니다. 불은 주택 전체로 번졌고, A 씨는 B 씨의 집이 전소하여 불이 완전히 꺼질 때까지 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원화: 그러면 이 남성은요?
◇임흥준: 당연히 B 씨는 불에 타 죽었습니다. A 씨는 현주 건조물 방화 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고요. 이에 A 씨와 검찰 모두 항소하였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일부 A 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형을 징역 10년으로 감형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의 범행이 정당방위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장기간의 교제 폭력으로 인한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고려하였습니다. 또한 A 씨가 불이 번진 후 현관 밖으로 나와 화재를 지켜보며 불이 꺼지면 안 되니까, 만약 그 불이 꺼졌다면 제가 죽었다라고 진술한 점을 들어 확정적 살해 의도보다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판단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원화: 그런데 이 사건이 알려지고 어떤 논의들이 치열하게 오가고 있냐면요. 이 여성의 행동을 정당방위로 볼 수는 없는가 이 부분이거든요. 교제 폭력에 장시간 노출된 여성이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건데요. 일단 재판부의 판단은 정당방위로 볼 수 없다 이거죠?
◇임흥준: 결론적으로 재판부는 A 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보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정당방위 주장에 대해서 술에 취해 잠든 B 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에 비춰 A 씨에게 직접적인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상황이 아니었다며 사람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지니므로 교제 폭력에 시달린 A 씨에게 당시 주어진 유일한 방안이 저항할 수 없는 B 씨의 생명을 빼앗는 방법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고 판결했습니다.
◆이원화: 이게 정당방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여지는 혹시 없을지요?
◇임흥준: 글쎄요. 변호사로서 제 답변을 드린다면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어렵다가 제 의견일 것 같습니다. 보통 정당방위 요건 중 가장 문제되는 것이 현재성 요건인데요. 현재 침해라는 것은 침해가 당장에 절박해 있든가 또는 아직 계속되고 있는 침해를 말합니다. 따라서 이미 끝나버린 침해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죠? 사건으로 돌아가 보면 A 씨가 B 씨의 집에 불을 지를 당시 B 씨는 자고 있었고 A 씨에 대한 직접적인 폭행은 멈춘 이후였기 때문에 A 씨가 정당방위 요건 가운데 현재성을 충족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사료됩니다. 다만 이 사건을 바라보는 한 인간으로서의 제 답변을 드리자면 B 씨의 지속된 폭행으로 인해 A 씨의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정당방위의 현재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취지로 A 씨를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이원화: 그런데 교재 폭력으로 살인이 발생했을 때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사례가 혹시 있었나요? 재판부가 정당방위 인정에 너무 소극적이다 이런 지적도 나와서 그렇거든요.
◇임흥준: 구체적으로 살인이 발생했을 때 정당방위 인정받은 사례는 없고요. 다만 유사한 사례가 하나 있긴 합니다. 2020년 7월경 20대 여성이 자신을 산으로 끌고 가 청 테이프 등으로 묶고 성폭행을 시도한 30대 남성의 혀를 깨무는 일이 있었는데요. 남성은 파렴치하게도 여성의 행위가 중상해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수사기관은 여성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봤고 남성은 감금 및 강간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반대로 아마 법학도라면 모두 알고 있을 만한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의 주인공 최말자 씨는 당시 정당 방위를 인정받지 못해 처벌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이 사건은 앞선 사건과 내용은 완전히 판박인데 1964년도라는 시대상을 고려하여 가부장적인 분위기 속에서 최말자 씨가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다행인 점은 올해 이 사건 관련하여 재심이 61년 만에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어쨌든 한국 법원의 정당방위 인정이 소극적인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원화: 예전에 또 그런 사례도 있었죠. 우리나라에서 그 아버지로부터 장기간 성폭행에 노출돼 있었던 사람이 남자친구와 함께 아버지를 살해했던 사건, 그 사건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집행유예를 받았었던 그런 이제 굉장히 파격적인 판단이 있었죠. 몇 년 전쯤으로 기억하는데요. 37년 동안인가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아내가 남편을 돌로 내리쳐서 죽인 그런 사건이 하나 있었는데 이때도 아내의 변호인 측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때도 정당방위는 인정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임흥준: 사건 당일 남편이 자신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아내는 화를 못 이기고 남편을 돌로 내리쳐 죽인 사건입니다. 물론 아내는 37년의 결혼 생활 동안 남편에게 칼로 찔리는가 하면 여러 번 머리를 맞고 기절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는 등 가정폭력에 시달려 왔습니다. 아내의 변호인 측은 그간의 지속적인 가정 폭력을 문제 삼으며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아내의 행위가 사회 통념상 정당방위에 해당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다만 법원은 사법기관이 중재했다면 아내가 피해자로 인지가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며 범행의 동기를 인정하여 참작 동기 살인으로 일반적 살인보다 비교적 짧은 징역 4년을 선고했습니다.
◆이원화: 네. 정당방위 말고 과잉방위라는 것도 있죠.
◇임흥준: 형법 제21조 2항이 과잉방위 규정인데요. 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경우에는 정황에 따라 그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원화: 되어 있습니다.
◇임흥준: 최근에 과잉 방위로 무죄를 받은 흥미로운 사건이 있습니다. 소개해 드리자면 사건 당일 친오빠 집에 갔다가 밤늦게 들어온 피고인이 동거남에게 외도 의심을 받았는데요. 동거남이 술에 취한 채 친오빠를 해치겠다며 흉기를 챙겨 차에 올라타게 됩니다. 차에서 동거남은 피고인의 목에 흉기를 갖다 대기도 하고 흉기로 허벅지를 내려치기도 했습니다. 결국 몸싸움이 벌어지자 피고인이 몰래 챙겨온 과도로 동거남의 오른쪽 가슴을 한 차례 찌르게 됩니다. 그런데 재판부는 과잉 방위를 적용하여 피고인을 최종 무죄로 확정했습니다. 정당방위나 과잉방위가 인정된 사례가 극히 드문 점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사례로 보여지긴 합니다.
◆이원화: 그러네요. 물론 상황은 다릅니다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았던 사건과 비교해 보면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보세요?
◇임흥준: 결국은 동거남이 흉기를 든 채 피고인을 차에 태운 점, 운전하는 내내 욕설과 위협을 한 점 등이 고려됐을 거고요. 또 피고인이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하고 운전 중인 동거남을 찌를 이유가 없다는 점도 고려됐을 겁니다. 특히 늦은 밤 공포스러운 상황 등 사건 당시 상황이 과잉방위 요건에 부합해 보이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항소심 재판부도 동거남이 흉기를 들고 피고인이나 피고인의 가족에게 여러 위해를 가하려고 협박하는 상황이었다며 극심한 공포감 속에서 피고인이 냉정을 잃고 그런 행동을 한 것은 법이 인정하는 과잉 방해로 본다고 판시했습니다.
◆이원화: 교제 폭력 상황에서 정당방위의 인정 범위를 넓혀야 한다, 학대 증후군으로 겪는 피해자의 심신미약 상태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이세요?
◇임흥준: 글쎄요. 정당방위를 쉽게 인정하는 것 또한 분명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스스로 방어할 권리를 폭넓게 인정한다면 오히려 폭력과 사적 제재, 복수 같은 행위가 만연해질 수 있겠죠. 긴 세월의 법학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국가에게 형벌권을 독점시키는 이유는 어느 정도 납득하실 겁니다. 다만 앞서 말씀드렸듯이 세계적인 추세나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변화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꼭 교제 폭력이 아니더라도 가정폭력, 불법 추심과 같은 분야에서 학습된 무기력으로 피해자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법부도 이러한 부분에서 범행의 동기를 참석하여 선고하고 있기는 하지만 명확한 법제화를 통해 피고인이 된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봐주는 것 그것이 우리 사회의 법 감정에 맞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원화: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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