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 : 2025년 1월 24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민혜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던 김신혜 씨가 최근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출소하던 날 그녀의 옆에서 꽃다발을 건네며 만세를 부르던 이가 있었습니다. 혹시 가족인가 싶었지만 아니었죠. 그렇다면 그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시간을 돌려 35년 전 부산 엄궁동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90년 1월 부산 사상구의 엄궁동 낙동강변 도로에서 남성 2명이 남녀를 습격해 남성이 크게 다치고 여성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수사력을 총동원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죠. 그렇게 1년하고도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 놀랍게도 이 살인 사건의 유력 용의자가 붙잡혔습니다. 별다른 증거도 없었는데 말이죠. 앞서 처음 시작할 때 자신이 짓지도 않은 죄로 무려 24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했던 김신혜씨 이야기 들려드렸는데요. 그녀의 출소에 만세를 부르며 그 누구보다도 기뻐했다는 이 남성의 정체는 바로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누명을 쓰고 21년간 옥살이를 했던 장동익씨였습니다. 그는 과연 어떤 마음으로 그녀를 바라봤을까요? 그리고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기에 그는 그토록 오랜 시간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만 했던 걸까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의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민혜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김민혜: 안녕하세요. 김민혜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김신혜씨 사건 같은 경우는 저희 사건 엑스파일에서도 다뤘던 케이스인데 이렇게 무죄가 나오게 돼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김민혜: 정말 다행입니다. 김신혜씨는 지난 2천년 3월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한 혐의로 체포됐고, 이후 재판 과정에서 강압적인 수사에 거짓 자백을 했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해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무려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인정받은 건데요. 무기수 중에는 처음으로 재심이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이 재심 재판부는 당시 경찰이 확보한 증거는 위법 수집됐으며, 김 씨의 자백도 동생을 보호하기 위한 허위 자백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이어서 술에 탄 수면제 때문에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공소 사실도 정확히 증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무엇보다도 24년 동안 일관되게 자신의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무죄의 가장 강력한 증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원화: 그런데 김신혜씨가 출소할 때 영상 보신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옆에서 꽃다발을 건네면서 만세를 부르던 분들이 있었거든요. 언뜻 보면 잘 아는 사이인가 보다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알고 보면 이분들 역시 김신혜씨처럼 누명을 쓰고 오랜 기간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분들이었죠.
◇김민혜: 바로 윤성여 씨와 장동익 씨였는데요. 윤성여 씨는 화성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복역했다가 진범이 자백한 뒤에야 무죄 판결을 받고 출소하신 분이고요. 장동익 씨는 지난 1990년 1월 발생한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21년간 복역하다가 마찬가지로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분입니다. 오늘은 장동익 씨 사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이원화: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하나씩 차근히 짚어보죠. 때는 1990년 1월 부산에서 살인 사건이 하나 발생했죠.
◇김민혜: 네. 당시 이 사건은 엄궁동 2인조 살인 사건이라 불렀는데 남성 2명이 남녀를 습격해 남성 피해자는 크게 다치고 여성 피해자는 사망한 사건입니다. 피해자 2명은 1990년 1월 4일 새벽 1시 반쯤 주차를 해놓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요. 이때 갑자기 괴한 2명이 이들을 공격했고 여성을 협박해서 차량을 엄궁동으로 이동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괴한들은 피해 남성의 손을 묶어서 낙동강에 밀어 넣었어요. 근데 남성 피해자가 테이프를 풀고 밖으로 나와서 격투를 벌였고, 이후 도망쳐서 근처 공장에 숨어 있다가 그곳 직원에게 발견돼서 다행히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 그러나 여성 피해자는 이후 엄궁동 낙동강변 갈대숲에서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사망한 여성은 발견 당시 두개골이 분쇄 골절돼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가격당한 모습이었습니다.
◆이원화: 말씀해 주신 내용에 따르면 여성은 안타깝게 사망했습니다만 남성은 다행히 목숨을 건졌잖아요. 그렇다면 몽타주라든지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내용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김민혜: 경찰은 피해 남성의 진술에 따라 용의자들을 쫓았지만 검거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피해 남성이 “범인들이 자신의 상의를 벗겨 몸을 결박하려고 하자 내가 차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직접 말해줬다”고 진술을 했는데요. 경찰은 피해 남성이 범인들에게 굳이 차량 트렁크에 테이프가 있다고 말해줬고 또 테이프를 이용해서 자기 손을 결박했다는 게 이 부분이 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수사가 잘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1년 1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갑자기 경찰에서 유력 용의자를 체포하게 됩니다.
◆이원화: 범인들이 증거 하나 남기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용의자를 특정해낼 수 있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하거든요.
◇김민혜: 경찰이 체포한 용의자 2명이 바로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인데요. 당시 경찰은 공무원 사칭 혐의를 받은 2명이 다른 죄를 추궁하는 과정에서 이 살인 사건의 범죄 사실을 자백했다며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즉 두 용의자들은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피해자를 우리가 죽였다며 자백을 했기 때문에 이 사건의 용의자로 특정됐다는 것입니다.
◆이원화: 본인이 죽이지도 않았는데 내가 사람을 죽였다 이야기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사실 자백만큼 강력한 증거가 있을까 싶긴 한데요.
◇김민혜: 그렇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자백이 진실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경찰은 용의자들에게 이 살인 사건에 관해서 자백을 하게끔 지독하게 괴롭혔어요. 폭행은 기본이고요. 물고문도 하고 쇠 파이프에 다리를 끼워서 거꾸로 매다는 행위에 잠을 재우지 않는 행위까지 정말 고문의 고문을 이어갔습니다. 특히 최인철 씨 말에 의하면 쇠파이프가 휘어질 정도로 고문을 당했다고 합니다.
◆이원화: 그러면 애초에 경찰들은 왜 이 사람을 용의자로 특정을 했던 건가요?
◇김민혜: 우선 용의자 중 최인철 씨라는 인물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요. 1991년 11월 당시 경찰은 한 피해자가 을숙도 공터에서 공무원을 사칭한 사람에게 돈을 뺏겼다 이 신고를 받고 공무원을 사칭한 최인철 씨를 붙잡았어요. 그리고 나서 경찰은 최인철 씨를 금품 갈취, 강간 상해 뭐 감금 등의 혐의는 물론이고 바로 이 사건 엄궁동에서 있었던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까지 지목했고요. 최인철 씨가 지목한 장동익 씨도 공범으로 구속됐습니다.
◆이원화: 그럴 만한 근거가 있었나요?
◇김민혜: 당시 낙동강변 주변에서 공무원 사칭하며 돈을 갈취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 위협한 뒤에 돈을 받고 보내주는 그런 수법이었다고 해요. 이들 중 한 명은 키가 크고 다른 한명은 키가 작았다 뭐 이런 이야기가 돌았고요. 그런데 하필 낙동강변 살인 사건에 피해 여성과 함께 있다가 도망쳐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던 한 남성 피해자 있었잖아요. 남성이 사건 직후 경찰에 살인 사건의 범인 2인조에 대해서 한 진술이 한 명은 키가 크고 1명은 작았다 이렇게 진술을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경찰에 잡혀온 건 최인철씨 한 명이었는데 경찰이 공범이 있지 않냐고 집요하게 수사를 하니까 최인철 씨가 장동익 씨를 지목해서 장동익 씨도 잡혀 옵니다. 그러고 보니까 마침 이 2명이 한 명은 키가 크고 한명은 작고 그런 거죠. 경찰은 갑자기 최 씨와 장 씨 이 두 사람을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용의자로 특정해서 자백을 강요한 겁니다.
◆이원화: 두 명은 무슨 사이였을까요?
◇김민혜: 당시 경찰의 억지 수사에 의해서 공범으로 엮여진 사이라고밖에 볼 수 없죠. 살인 사건의 피해 남성이 한 말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 명은 체격이 크고 한명은 작다고 했고, 또 사건 현장 손수건에서 범인 중 한 명의 혈액형이 AB형이라는 게 밝혀졌는데 하필 또 최인철 씨 혈액형이 AB형이었어요. 경찰은 그렇게 2명에게 자백을 받아내서 두 사람 중 체격이 큰 최 씨가 각목으로 피해자를 구타했고, 또 이후 키가 작은 장 씨가 돌을 이용해 살해한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버렸습니다. 그렇게 최인철 씨와 장동익 씨는 낙동강변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돼버린 것입니다. 그 후에는 경찰에서 검찰 다시 검찰에서 재판까지 뭐 술술 이어졌어요. 그런데 재판 과정에서 2명이 모두 억울하다면서 계속 무죄를 주장했는데 그 누구도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원화: 그 둘이 해당 사건의 피의자다라는 증거가 뭐 뭐가 있었나요? 그런데도 재판에서 실형이 내려진 겁니까?
◇김민혜: 경찰과 검찰은 2명에게 강도 강간, 강도 살인, 특수감금 등의 혐의를 추가하고 또 재판부는 이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그대로 받아들여서 무기징역을 선고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죄의 증거는 오직 하나였어요. 두 남자의 자백 이 자백만으로 무기 징역의 실형이 내려진 것입니다.
◆이원화: 고문 과정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최 씨 같은 경우에는 겨자 있잖아요. 이걸 매워서가 아니라 두려워서 먹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던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김민혜: 정말 안타까운 사실인데요. 지난 2003년 복역 중에는 장 씨 어머님도 돌아가셨어요. 아들이 수감된 이후 10년간 혼자서 보따리에 사건 기록을 짊어지고 전국 각지를 돌면서 우리 아들의 억울함을 좀 풀어달라고 호소하던 어머니였습니다. 그 이후 2018년에는 검찰의 과거사위원회가 26년 만에 재조사에 착수를 했고, 결국 2019년 4월 17일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 수사 당시 피의자들에게 ‘고문과 폭행에 의한 자백을 받아냈고 검찰도 허위 자백에 대한 검증 없이 기소하는 과오가 있었다’ 이렇게 발표했습니다. 발표로 이제 재심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됐고요. 복역을 다 마치고 나온 최인철씨와 장동익씨가 재심 청구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후 2020년 1월 5일 재심 신청 과정에서 법원이 사과를 했고요. 같은 해 7월에 방송에 박준영 변호사님과 장동익씨가 함께 출연을 해서 더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결국 2011년 1월 부산고등법원은 최인철, 장동익 씨가 강도 살인 범인으로 몰려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1년간 복역한 뒤 모범수로 출소해서 제기한 재심 청구 재판에서 두 사람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또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부가 피해자 장동익, 최인철 씨와 그 가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는데요. 국가는 피해자와 가족에게 약 72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입니다. 그런데 참 안타까운 건 결국 이 사건은 영원히 미제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바로 공소시효 때문인데요. 이 사건은 1990년 발생한 이후 이미 31년이 지나면서 당시 강도 살인죄 공소시효였던 15년도 이미 당연히 지나버렸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범행의 잔인성, 당시 만연했던 불법 수사 관행 무고한 인물들의 장기 복역과 출소, 재심을 통한 무죄 판결, 마지막으로 공소시효 소멸에 따른 사건의 영구 미제화까지 한국 형사법 논의에서 영원히 회자될 사건으로 남게 됐습니다.
◆이원화: 사건X파일.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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