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앱 소개

YTN 라디오


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 06:40, 12:40, 19:40
제작진진행: 이원화 변호사 / PD : 김세령 / 작가 : 강정연
서서히 죽어가는 여성의 모습 촬영…한 사진작가의 비뚤어진 미학
2025-01-21 18:57 작게 크게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5년 1월 21일 (화)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김민혜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배관공으로 일하던 남성 이 씨는 유독 사진 찍는 걸 좋아했습니다. 당장 돈이 되진 않았지만 자신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게 바로 사진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진전에 입상하며 전문 사진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협회에도 가입하고 몇 차례 상을 더 받기도 했죠.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더 특별한 사진을 찍지 못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요. 그런 그가 고심 끝에 주목했던 주제가 있었으니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이란 주제에 점점 더 집착하던 그는 자신의 아내를 죽어가는 것처럼 연출해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지만 무언가 계속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던 중 한 가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고 하죠. 이 씨는 미용사 A씨에게 모델로 성공하게 해주겠다며 사진을 찍자고 설득했습니다. 이 씨는 과연 그녀에게 왜 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제안을 했던 걸까요? 며칠 후 미용사 A씨는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는데요. 오늘 사건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사건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김민혜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변호사님 어서 오세요.

◇김민혜: 안녕하세요. 김민혜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워낙 경악스러워서요. 해외 언론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를 했던 그런 사건이라고 하거든요. 이 사건의 가해자 배관공이자 사진 작가였던 이동식이라는 인물이죠.

◇김민혜: 이동식은 1940년 대구에서 태어나 6살에 부모를 잃고 14살의 상경해서, 넝마주이라고 하죠. 폐지나 고철을 주우면서 살아가다가 몇 차례 특수절도 혐의로 감옥도 다녀오고요. 출소한 이후로는 보일러 배관공 일을 하면서 사진에 취미를 붙여서 이것저것 사진을 찍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원화: 사진전에서 상도 몇 번 받았다는 것 같더라고요.

◇김민혜: 당시 이동식의 배관공 한 달 월급이 27만 원이었는데요. 월급의 5배가 넘는 150만 원짜리 일제 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고 다닐 정도로 사진에 몰두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이동식은 닭이 죽어가는 사진을 찍었는데 이 사진으로 공모전에서 입상을 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닭이 죽어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라는 게 엄청 특이하다 보니까요. 당시 사진계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후에도 각종 대회에서 10여 차례나 입상을 더 했습니다.

◆이원화: 자신이 좋아하던 취미를 전문적으로도 인정받았다는 게 참 대단한 일이다 싶은데요. 계속해서 사진 작가로 일을 해 나갔나요?

◇김민혜: 이후로도 이동식은 한국 사진작가협회에도 가입을 하고 자신만의 전시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이동식이 처음에 죽어가는 닭 사진으로 주목을 받았었잖아요. 그래서 계속 죽음을 담은 사진에 집착을 하게 되고 뭔가 죽음이라는 것을 가장 극적이고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당시 일본 누드 사진집을 탐독하면서 성과 함께 죽음에 빠지게 돼요. 그러면서 이동식은 전문 모델을 고용해서 밧줄로 묶거나 기이한 포즈를 취하게 해서 나체 사진을 촬영하는가 하면요. 당시 자신의 아내도 모델로 해서 마치 아내가 죽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연출을 해서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연출된 사진에서는 진짜 리얼한 그 꺼져가는 생명력 같은 걸 느낄 수 없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끼고 뭔가 연출된 죽음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어 어 그래서 결국 가서는 안 될 길 범죄에 발을 들이게 됩니다.

◆이원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김민혜: 자신이 다니던 퇴폐 이발소의 직원이었던 당시 24살 김경희 씨에게 접근을 해서요. 사진 모델을 제안합니다. 출세를 시켜주겠다며 누드 사진을 찍어보자 제안을 한 겁니다.처음에 김경희 씨는 거절을 합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동식이 모델로 성공하게 해주겠다, 일당으로 5만 원을 줄 테니까 하루만 이발소 쉬고 나랑 촬영을 해보자. 뭐 이렇게 끈질기게 부추겨요. 그래서 결국 김경희 씨가 모델 일을 수락했고 이동식은 김경희에게 촬영을 하자면서 함께 시흥에 있는 호암산을 올라갑니다. 

◆이원화: 어디서 사진을 찍으면 좋을지도 이미 계획을 해놨던 거네요.

◇김민혜: 네. 사건 당일이 1982년 12월 14일이었는데요. 12월이라 추운 날씨였고 그래서 이동식은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감기약을 하나 구매합니다. 그리고 산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전에 김경희에게 추우니까 감기약 먹어둬, 이러면서 감기약을 건네줘요. 그래서 김경희는 아무 의심 없이 약을 받아먹는데 곧 땅바닥에 쓰러지며 괴로움에 몸부림을 치게 됩니다.

◆이원화: 무슨 일이 생긴 거죠? 혹시 감기약이 문제였나요?

◇김민혜: 그렇죠. 사실 이동식이 미리 준비한 청산가리를 넣은 캡슐 두 알과 함께 물약을 건네준 거였거든요. 그래서 김경희가 약을 받아먹자마자 죽어가는데 이동식은 그 죽어가는 피해자를 카메라 2대로 촬영을 합니다. 그리고 나중엔 옷을 벗기고도 계속 찍고요. 그렇게 21장의 연속 사진이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숨을 못 쉬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입을 벌린 채 죽어가는 피해자의 모습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습니다.

◆이원화: 정말 엽기적이고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후에는 어떻게 됐습니까?

◇김민혜: 이 피해자가 숨이 끊어지자 이동식은 사체를 낙엽으로 덮고요. 옷이랑 신발을 한 40미터 떨어진 곳에 버렸고요. 피해자의 사체는 이듬해인 1983년 1월이 돼서야 한 주민의 신고로 발견됐고 경찰은 탐문을 통해서 이동식을 용의자로 특정해 체포를 하게 됩니다.

◆이원화: 그런데 경찰 입장에서는 누가 이런 일을 벌인 건지 처음에는 범인을 특정하기가 굉장히 난감했을 것 같거든요.

◇김민혜:  가장 먼저 사체 지문을 통해서 신원을 확인해 보니까 경북 경주 출신의 김경희 씨로 밝혀졌고, 경찰은 곧 피해자 주변 인물들을 탐문을 해 보니, 당시 피해자 주변 인물들은 그녀의 본명을 전혀 몰랐어요. 근데  대신 진 양이라는 예명을 썼다고 하는데요. 그렇게 경찰이 피해자 손님들을 일일이 조사하던 중에 자신을 사진 작가라고 하는 한 단골이 피해자를 자주 찾았다, 이런 진술을 확보하게 됩니다. 그 사진 작가가 이동식이죠. 그래서 경찰이 이동식 집으로 찾아가서 진 양을 아냐고 물었어요. 이동식이 안다, 내가 진 양 단골이다 이렇게 태연하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원화: 범행을 저지르고 한 달 가까이 시간이 지난 시점이라 어느 정도 안심하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김민혜: 심지어 당시 수사반장님이 이동식한테 사진 좀 볼 수 있냐 그렇게 청을 하니까 이동식이 자신의 작품을 100장 정도 내놨어요. 대부분이 여성 나체 사진이었고 또 칼에 찔려 피 흘리는 모습도 있었고 목을 맨 모습 시체인 척 가장한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었는데 그 기괴한 사진들을 아무렇지 않게 100장 정도 쭉 다 수사관 앞에서 보여준 거예요.

◆이원화: 혹시 사망한 여성분의 사진도 나왔나요?

◇김민혜: 수사관들이 기괴한 사진에 압도를 당해서 정신이 팔려 있는데 갑자기 이동식이 그중 사진 한 장을 급하게 문갑하고 벽 사이로 밀어 넣는 걸 수사 반장님이 딱 포착을 합니다. 그래서 그 사진을 꺼내 보니까 무릎까지 올라오는 갈색 부츠에 회색 치마를 입은 한 여자가 낙엽 위에 누워 있는 모습이에요. 얼굴은 하얀 천으로 가려져 있었어요. 이상하잖아요. 그래서 수사 반장님이 사진에 대해 집요하게 추궁을 하니까 이동식이 하는 말이, 모델을 고용해서 그냥 연출 사진을 찍은 거다 이렇게 둘러댔습니다. 그럼 사진이 한 장만 남아 있는 이유는 뭐냐 그렇게 물었더니 사진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이것만 남기고 나머진 다 버렸다,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숨진 피해자의 동거남이 사진 속 옷과 갈색 부츠를 보고 진양이 맞다고 확인을 하는 진술을 해줬어요. 이동식이 피해자의 단골 손님이었고 자신을 사진 작가로 소개했다더라 그런 증언까지 해주고요. 또 이후에 체포된 이동식은 말을 바꾸기도 했습니다. 진 양을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사진만 찍고 보냈다. 내가 가고 난 후에 자살을 했나 보다 이렇게 발뺌을 했다고 합니다.

◆이원화: 그런데 경찰에서도 심증은 있더라도 이 사람이 범인이다 죽였다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했을 것 같거든요.

◇김민혜: 그래서 경찰은 또 다른 단서를 찾았습니다. 피해자로 밝혀진 사진 뒷면에 현상소 주소가 있었어요. 그래서 현상소를 찾아가 보니까 종로에 있는 한 무허가 현상소였어요.현상소 직원이 하는 말이 그 이동식이 그동안 맡겼던 수상한 사진들에 대해서 범죄 현장 검증 사진인 줄 알았다 그렇게 진술을 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그 직원은 이동식이 경찰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동식이 굉장히 비싼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했잖아요. 이 비싼 카메라 덕분에 이동식이 살인마라는 걸 더 확신할 수가 있었습니다.

◆이원화: 비싼 카메라 때문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런 게  어떤 의미죠?

◇김민혜: 사진작가협회 홍순태 교수님이 수사팀에 합류를 하게 돼서 사진 분석을 해요. 우리가 잘 보면요. 누구나 다 살갗에 솜털이 있잖아요. 보통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이 살갗의 솜털이 눕게 됩니다. 그런데 사진 속 피해자 피부에 솜털이 서 있다가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서서히 눕게 되는 게 다 사진에 남아 있는 거예요. 결국 이동식이 피해자가 살아 있을 때부터 죽어가는 것을 다 찍었다는 것이 입증이 되면서 증거로 채택된 것입니다. 이동식 입장에서는 사실 자승자박한 꼴이 되는 거죠. 또 이후 이동식 집에서 청산가리를 발견했고 결국 이동식은 이쯤 되자 범행을 다 자백을 하면서 원본 필름을 사무실 벽에 넣고 그 위에 벽지를 발랐다 이렇게까지 진술을 하게 됩니다.

◆이원화: 앞서도 잠시 이야기 드렸습니다만 한 인간이 죽어가는 모습을 예술이라 치고 사진으로 남기려 했던 너무나도 엽기적인 범행이었기 때문에 당시 해외 언론에서도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김민혜: 그렇죠. 그런데 당시 그렇게 자극적으로 연일 보도가 나간 이후에 경찰서로 전화가 한 통 왔다고 합니다.

◆이원화: 어떤 전화였죠?

◇김민혜: 이동식 전처의 가족들이 한 전화였습니다. 사실 당시 이동식의 전처의 행방도 10년째 묘연했기 때문에요. 이 전처의 가족들은 이동식이 전처도 살해했을 것으로 의심을 해서 신고를 한 겁니다.

◆이원화: 충분히 의심될 만한 그런 상황 아닌가 싶어요. 

◇김민혜: 사실 당시 수사반장이었던 서기만 씨가 훗날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이동식이 제게 실토한 피해자가 무려 22명이었고 거기에는 이동식의 전처도 포함돼 있었다"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추가 피해자들을 조사해서 밝힐 수도 있었지만 너무 엽기적인 모습이 외신에 알려졌잖아요. 그래서 당시 정부가 나라 망신시키지 말고 얼른 끝내라 그렇게 경찰에 압력을 넣어서 결국 사건이 중간에 종결됐고 더 이상 수사를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원화: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수사를 통해서 밝혀졌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데 후대에 가서 봤을 때 단 한 명이라도 이런 안타까움을 느끼지 않게끔 우리도 신경 써야겠다 이런 생각도 드는 것 같습니다.

◇김민혜: 맞습니다. 이후 이동식은 살인 및 시체 유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요. 이후 형량이 무겁다면서 항소에 상고를 거듭했지만 모두 기각을 당했고요. 사형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그리고 1986년 5월 27일 서울 구치소에서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집행이 서울 구치소 서대문 시절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었고요. 이동식은 이곳에서 집행된 마지막 사형수였습니다.

◆이원화: 사건 X파일,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