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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 10:15~11:30
제작진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앞에 분이 계산하셨어요" 92세 참전용사 울린 무명의 손님, 영웅에 한끼 식사를...
2024-07-25 16:30 작게 크게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7월 25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손희원 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 스틸러브 대한민국 시간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였습니다.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224라는 작전명으로 대한민국을 기습 침범했던 전쟁이죠.6.25 전쟁 오늘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4화의 주인공은요. 이 전쟁의 직접 참전했던 참전 용사이십니다.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손희원 회장님 스튜디오에 모셨어요. 회장님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손희원 회장 (이하 손희원)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귀빈 : 네 어서 오세요. 회장님 우선 대한민국 6.25 참전유공자회 단체 소개 좀 해주세요.

◇손희원 : 우리 6·25참전유공자회는 74년 전이죠 불법 기습남침을 했을 때 우리나라가  아주 누란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때 나라를 구하고 그리고 지켜낸 이 호국 영웅들이 다시 뭉쳐서 호국 안보 활동을 하고 있는 그런 단체입니다.

◆박귀빈 : 6.25 참전 유공자회 회장님이십니다. 손희원 회장님이시고요. 회장님 들어오실 때 제가 회장님께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오늘 입고 나오신 의상에 대해서 좀 설명 좀 부탁드려요. 회장님

◇손희원 : 고맙습니다. 이 제복은 우리나라 대통령께서 그것도 정부에서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신 그 노병들을 잊지 않고 존경하는 뜻으로 이것을 마련했습니다. 작년 6월 14일이죠. 영빈관에서 그때 참전 유공자와 그리고 국가유공자 가족 이런 분들을 모시고 그 자리에서 6.25 대표인 저하고 우리 동료 2명. 3명에게 대통령께서 직접 착복식을 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전국적으로 각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착복식을 하고 그다음에 참석 못한 분들은 본부에서 전부그 배송을 했습니다. 그래가지고 모두가 입게됐죠.

◆박귀빈 : 국가유공자분들께 제복을 나라에서 이렇게 드린 건데 지금 쓰고 오신 모자도 함께 그날 받으신건가요? 6.25 참전 유공자라고 지금 써 있는데요. 너무 멋지신데 사실 저희가 YTN 라디오가 지금 유튜브 채널로 보이는 라디오로 나가고 있거든요. 그래서 회장님이 모자를 쓰셔서 그 모자 쓰신 모습도 너무 멋있으시지만 이게 모자 창이 조금 크네요. 그래서 회장님의 얼굴이 자세히 좀 안 보셔서 안 보여서 회장님 모자를 좀 벗어주실수있으세요?

◇손희원 : 안 그래도 좀 벗고 싶습니다.  

◆박귀빈 : 우리 손희원 회장님 6.25 국가유공자 회장님이신데 직접 6.25 참전하셨었고 참전 당시가 나이가 어떻게 되셨었어요?

◇손희원 : 20살에 했죠

◆박귀빈 : 20세 그럼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되실까요?

◇손희원 : 지금 92세입니다.

◆박귀빈 : 청취자 여러분 6.25 참전 용사이신 20살 때 6.25에 참전해서 나라를 위해 싸우셨던 손희원 회장님 92세에 지금 회장님으로서 이 자리에 나와주셨는데 다시 한 번 오늘 출연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저희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에 많은 분들이 정말 나오시는데 최고령 출연자께서 나오셔가지고요. 제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불편한 거 있으면 방송 중에라도 알려주시면 제가 바로바로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손희원 : 늙은 사람을 이렇게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까 말씀을 드리다가 그만뒀는데 그 제복에 대한 반응은 설명을 좀 드릴까요?

◆박귀빈 : 네 말씀해 주세요.

◇손희원 : 이런 기회에 말씀드리면 이 제복을 입은 우리 회원들이 굉장히 긍지를 가지고 자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옛날에는 조끼 같은거 간단하게 우리가 만든걸 입고 다니다가 제복을 입으니까 품위도 유지되고 그랬습니다. 그런데 이 제복을 입고 시내에 볼일이 있어 나간다든지 그러면 식당에 가족과 같이 가서 식사를 하고 또 뭐 카페도 가고 이런 게 있는데 저한테 들리는 보고는 우선 시민들이 알아서 오셔가지고 인사를 한답니다.아직까지도 참전 용사들이 살아 계시느냐고 

◆박귀빈 : 제복을 입고 계신 거를 보고 와서 인사를 하시는 군요.

◇손희원 : 놀래가지고 인사를 하고 존경심이 바르죠. 그리고 어떤 경우는 식사를 하고 나면 손님께서 모르게 식사비를 대납하고 가시고 며칠 전에 또 보고받아 보니까 한 군데는 카페 가서 가족들이 이걸 입고 나가서 커피를 먹고 있는데 케이크가 들어온다는거지 우리는 이거 시키지도 않았다 그랬더니 아닙니다. 모 손님께서 어르신 감사하다고

◆박귀빈 : 케이크를 선물하고 가셨군요?

◇손희원 : 그렇습니다. 그런 완전히 국가에 대한 헌신하신 분에 대한 국민들의 존경심이 달라졌지요

◆박귀빈 : 기분이 어떠세요?

◇손희원 : 이것은 무슨 뜻인가 하면 이 자체가 결국은 나라의 자주국방 소위 나라를 사랑해하고 애국심이 있어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게 없는 나라가 아무리 보강하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이 제복이라고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고 이렇게 나라를 위해서 희생하신 분을 정확히 좋게 대접하면 또 다른 영웅들이 발생 안 하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우리 안보를 위해서 참 좋은 현상이다. 대단히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고맙게 생각합니다.

◆박귀빈 : 저희가 감사드려야죠. 우리 국가유공자분들 그럼 다 동일한 지금 회장님께서 입고 나오신 이 제복을 입고 계신 건가요?

◇손희원 : 그렇죠

◆박귀빈 : 그러면 우리 청취자분들이 지금 보이는 라디오를 오늘 잘 봐두셨다가 혹시 거리에서 길을 걷다가 어디 뭐 식당에 갔는데 이 제복을 입고 계신 국가유공자분들을 보신다면 여러분이 평소에 마음속에 갖고 있었던 그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도 만약에 국가유공자분들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되면 누구나 그런 감사한 마음을 표현을 할 겁니다. 당연히 그런데 그동안은 그걸 저희가 별로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 이 제복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고 역할을 하고 있는 거네요.

◇손희원 : 그렇습니다.

◆박귀빈 : 지금 듣고 계신 청취자분들에게 우리 손회장님과 조금 더 이야기를 풀어갈 텐데 그전에 짧게 저희가 회장님 OX 퀴즈를 준비했거든요. 지금 팻말 갖고 나오셨잖아요. 제가 한 4~5개 되는 질문을 짤막하게 드릴 텐데 OX를 들어봐 주세요. 그래서 일단 OX만 해주시고 그리고 나서 또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1번은 대신에 주관식입니다. 시작해 보겠습니다. 초등학생들이 많이 헷갈려한다는 질문부터 해볼게요. 1번 6.25 전쟁은 북침이다 아니다. 남침이다.

◇손희원 : 남침이다

◆박귀빈 : 2번 6.25 전쟁 발발 이후 최후의 방어선은 금강이다

◇손희원 : 아닙니다

◆박귀빈 : 맥아더 장군이 인천 상륙작전 이후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었다

◇손희원 : O입니다

◆박귀빈 : 3번 6월 25일 새벽 4시 작전명 폭풍 북한은 빠른 속도로 남침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다.

◇손희원 : 네 O입니다

◆박귀빈 : 4번 당시 남한에는 탱크가 없었다.

◇손희원 : 네.

◆박귀빈 : 5번 6.25 전쟁에는 한국과 북한 군인들 외에도 전투에 참여했던 제3의 용사들이 있었다.

◇손희원 : 네

◆박귀빈 :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6.25 전쟁에 대한 짤막한 상식 사실 저희가 당연히 다 알고 있어야 되는 그런 내용 OX로 먼저 정확하게 우리 회장님께 답변을 드렸는데요. 한 번씩 좀 여쭤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첫 번째 6.25 전쟁 북침에다 남침이다. 이거 대부분은 다 아시는데 요즘에 어린 친구들은 이게 북침 남침 되게 헷갈려해서 북침 아닌가? 북한이 쳐들어왔잖아 이러면서 북침 아니야? 이러는 경우 많더라고요. 이거 남침 이죠. 회장님

◇손희원 :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밀리게 나간 거 아닙니까?

◆박귀빈 : 그렇죠 북한이 기습적으로 남을 쳤습니다. 남침이에요. 이거는 반드시 알아두셔야 되고요. 6 25전쟁 발발 이후에 최후의 방어선은 금강이 아니었군요.

◇손희원 : 예. 낙동강이죠.

◆박귀빈 : 낙동강이었습니까? 최후의 방어선이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입니다.북한 인민군이 작전명 폭풍에 따라서 빠른 속도로 남침을 해서 3일 만에 서울을 점령을 했군요. 3일 만이면 굉장히 빨리 점령한 거 아닌가요?

◇손희원 : 그렇습니다. 그냥 밀고 내려간 거죠. 전쟁을 했다기보다도

◆박귀빈 : 그냥 밀고 내려온거군요

◇손희원 : 방어할 수가 없죠. 왜 그런가 하니 우리는 전차가 없지 않습니까? 또 전차를 때릴 수 있어 파괴시킬 수 있는 대전차포도 없어요.

◆박귀빈 : 아까 탱크도 없다고 하셨었죠

◇손희원 : 탱크 물론 없고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무기가 없는 거예요. 소총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전쟁을 하고 탱크를 막습니까? 탱크 보면 아무리 총을 쏴봐야 바위에 계란치기 이죠. 그래서 3일날 결국 탈환을 당한 거지요.

◆박귀빈 : 그래서 낙동강이 최후의 방어선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요. 그럼 남한을 지키기 위해서 최후의 방어선도 낙동강까지 내려가야 되는 거네요. 그 당시 상황은 어땠을까요?

◇손희원 : 그 당시 상황이 아마 대구 부산을 제외하고는 전부 다 제대로 점령했거든요. 인민군들이 그 당시에 그래서 사실은 낙동강 전선에서 우리가 그 방어를 못 했으면 그건 뭐 더 이상 없습니다. 소위 부산 바다에 빠져야 된다 죽든지 안 그러면 항복하는 길밖에 그런 정말 최고의 절체절명의 그런

◆박귀빈 : 낙동강에서 지켜냈군요.

◇손희원 : 그 당시 다부동 전투라는 게 있어요

◆박귀빈 : 네 그게 가장 치열했던 전투라면서요

◇손희원 : 그렇습니다. 다부동 전투가 아마 그 전투에서 패했다면은 아까 말씀드린 대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아마 존재하겠느냐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참 대단한 전쟁 중요한 전쟁인데 사투를 하고 해서 정말 인민군을 물리치고 정말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거죠. 그래가지고 처음으로 공격을 하고 서울도 탈환하고 그해 10월 1일날 38선을 돌파하고 이런 그때 전투라기보다도 계속 우리가 후퇴한 것처럼 저놈들도 그냥 최대로 도망쳤으니까 계속 밀고 올라간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압록강까지 우리가 도달한 거 아닙니까

◆박귀빈 :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맥아더장군의 인천 상륙작전 이후에 그래서 압록강까지 올라갈 수 있었군요.

◇손희원 : 그 당시 우리 병사들이 압록강 물을 떠가지고 온 것을 이승만 대통령께 드렸다는 그런 일화도 있습니다마는 그렇게 됐는데 중국 중공군들이 그 당시에 한 80만 명인가 100만 명 정도라고 저는 기억합니다

◆박귀빈 : 그렇습니다. 그래서 낙동강 전선을 지켜냈던 다부동 전투가 굉장히 중요한 전투였는데 그래서 6.25 전쟁 기념식 이번에 최초로 대구에서 열렸는데 그 의미가 있었던

◇손희원 : 바로 그 의미가 금방도 말씀드렸지만 국가의 명운이 달린 그 전투가 다부동 전투인데 그 전투를 다시 한 번 국민들에게 상기시키고 기억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

◆박귀빈 : 그랬군요

◇손희원 : 그래서 그런 뜻도 있고 그리고 또 그 지역에 우리 참전 용사들이 정부에서 하는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자부심도 생기고 그래서 이걸 하게 됐다고 저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 회장님의 개인적인 경험도 좀 여쭤보고 싶습니다. 6.25 전쟁 휴전 직전까지 금성전투 백암산 전투 이어졌었는데 여기서 큰 공로를 세우셨다고요? 회장님

◇손희원 : 제가 큰 공로라는것보다는 저는 공병입니다. 공병은 사실 집도 짓고 옛날에 경부고속도로도도 공병이 투입해서 어려운 공간에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전투시에 전진할 때는 우리 공병이 제일 앞에 나가야 됩니다.

◆박귀빈 : 그렇군요.

◇손희원 : 통로를 개척해야 되고 그리고 강이 있으면 부교를 설치해야 되고 교량이 파괴됐으면 복구해야 되고 이런 걸 했기 때문에 선두에 나가야 되고

◆박귀빈 : 선두에 나가야 되고 후퇴할 때는 또 마지막까지 있어야 되겠네요

◇손희원 : 아군이 다 후퇴한 후에 교량을 폭파하다든지 한강다리 폭파하는 식으로 그때 한강다리는 6.25때 폭파 했으니까 이거 공병이 한거죠. 그렇게 폭발하고 도로도 폭발해서 저렇게 기동을 못하도록 하는게 공병입니다. 그런데 제가 소대장으로 백암산 전방 파괴하라는 임무를 받고 특공대를 조직했지 경비병 그다음에 폭파병 한 15명 정도 조직해가지고 바이패스가 되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새벽 지역 선정을 해가지고 도로 폭파해서 하고 그다음에 또 포약을 장전해가지고 그 산사태를 만드는 거죠. 그 도로를 폐쇄하고 이거 하는데 아군이 다 철수할 때까지 이거 맨날 장비를 해놓고 폭파 장비를 기다리라니까 밤새도록 참 고생이 많았지.

◆박귀빈 : 그렇습니다.

◇손희원 : 성공을 했어요. 폭파 성공하고 나 후퇴한 다음에 화랑무공훈장 받았습니다.

◆박귀빈 : 지금 말씀 잠깐 하셨는데 화랑 무공 훈장 받으셨어요. 지금 스튜디오에 가져오신 거 소개해주세요.

◇손희원 : 저거는 뭔가 하면 6.25 참전을 한 우리 참전 용사들이 사실은 다 훈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박근혜 대통령 계실 때인데 6.25 참전 용사들에게 호국영웅 이라는 칭호를 주면서 사실 기장입니다. 훈장이 아니고 근데 저걸 우리 회원들은 훈장으로 좀 바꿀 수 없느냐 하는데 기장을 참 훈장으로 바꾼다는 거는 참 어려운 문제죠.

◆박귀빈 : 화랑무공훈장을 받으신 우리 손희원 회장님과 이야기 나누고 있는데요. 시간이 훌쩍 갔습니다. 마무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6 25 참전 유공자에서 또 전승 기념행사도 하신다고 하는데요. 이건 언제죠?

◇손희원 : 기념행사는 매년 하고 있죠. 이것을 전에는 재향군이 내서 했습니다.그러다가 2010년부터 정식으로 하고 지방은 지방자치단체장 책임하에 주관하 관장해서 하는데 위에 하는데 금년에만 대구에서 정부에서

◆박귀빈 : 그렇습니다. 동락리전투와 화령장전투 같은 전승기념행사를 6.25참전유공자회가 주관해서 하고 있습니다.  참 여쭤보고 싶은 게 많았었는데요. 오늘 시간이 훌쩍 지나가서요. 마무리를 해야 되겠습니다. 앞으로도 6.25 전쟁 올바로 알리기에 많이 힘써주시기를 바라고요. 회장님 저희 마지막으로 인사 어떻게 하는지 밖에서 이야기 듣고 오셨죠? 이야기 후손들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 잠깐 짧게 해주실까요?

◇손희원 : 굳이 그걸 말씀드리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6.25 때 선배들이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치고 희생을 한 그 6.25 정신 호국 정신 이것이 계승이 돼가지고 이것을 후배들이 기억에서 다시는 이 땅에 참혹한 그와 같은 동족상잔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겠다 그렇게 하려면 6.25를 기억하라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그런 교훈을 우리가 잊지 마시고 우리 후배들이 해주길 바라고 그다음에 뭐 바란다면 우리 노병들에게 후배들도 잘 우리를 본받아서 따라주시면 좋겠고 우리를 굳이 뭐 기억해 주신다면 그저 나라를 구한 호국 영웅들이 있었다 이렇게 기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박귀빈 : 기억하겠습니다. 마무리해보죠. 스틸러브

◇손희원 : 대한민국

◆박귀빈 :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4화 대한민국 6.25 참전 유공자회와 함께 했고요. 손희원 회장님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손희원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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