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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시간[월~금] 10:15~11:30
제작진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굿바이 김민기, 최지선 평론가 "한 시대를 상징하는 문화적 아이콘, 벌써 그립다"
2024-07-23 16:20 작게 크게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4년 07월 23일 (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 대학로 문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민기 학전 대표가 암 투병 끝에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삶을 노래하고 그 노래로 시대의 아픔을 대변했던 김민기 이제 그 시대의 상징은 역사로 길이 남게 됐는데요.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이정표로 남은 그의 생전 발자국들을 추모해 보겠습니다. 책 한국 팝의 고고학의 역사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전화 연결해 보죠.평론가님 안녕하세요.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 : 네 안녕하세요.

◆박귀빈 : 지금 막 흘렀던 노래는 봉우리라는 노래인데요. 잠시 후에 한번 몇 곡 불러보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지금 이 노래 그리고 지금 그 노래 전에 김민기 학전 대표의 목소리 인터뷰를 저희가 좀 준비를 해봤어서 많은 분들께 들려드렸는데 평론가님 들어보니까 어떠세요? 생전 목소리 들으시니까

◇최지선 : 또 추억이 또 방울방울 올라오네요. 많이 또 그냥 제가 가까이서 뵌 분은 아니지만 제가 이제 어릴 때 직접 이렇게 음반 발매되고 그랬을 때 기다렸다가 듣고 했던 분이라서 또 마음이 아프고 또 그리워질 것 같습니다.

◆박귀빈 : 부고 소식이 전해지고 정말 각계에서 애도 물결이 일고 있습니다. 대중문화계에서 고 김민기 대표가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 참 궁금합니다. 어떻게 정의해 볼 수 있을까요?

◇최지선 : 많은 분들이 이제 소개를 하실 때 이제 가수이고 작곡가이고 그리고 이제 공연을 기획하고 연출한 그리고 한 공연장의 대표다 이렇게 소개를 간단히 해볼 수도 있을 텐데요.이렇게만 또 딱 잘라서 말씀드릴 수 있는 분은 아닌 것 같아요. 또 많은 분들이 사랑하시고 아끼고 또 그냥 알려진 노래들 그런 곡을 만드신 분이기도 하지만 그런 곡을 통해서 또 말하자면 한국 포크의 대부로 추앙받는 인물이시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분이 이제 음악 활동과 공연을 만드신 그런 시기가 1970년대 그리고 80년대에 이제 많이 활동을 하셨고 90년대에 또 공연장을 설립을 하셨는데요. 음악이나 공연에 관심이 있던 분들에게는 문화적 아이콘이기도 하고 또 나아가서 한 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하는 그런 인물이다 이렇게까지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박귀빈 : 어떻게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인물이네요. 평론가님 한국 팝의 고고학이라는 책을 보면 말 그대로 정말 고고학자들이 하나하나 옛 것을 발굴하면서 그 의미를 짚어보는 그런 책인데 우리 한국 팝에 대한 걸 아주 깊이 있게 분석을 하셨는데 1960년대 70년대 80년대 이렇게 하나씩 짚으셨더라고요. 근데 책 안에 보면 합법화의 좌절과 지하의 암약 이런 표현을 하셨어요. 굉장히 어려운 표현인데 어떤 의미로 이런 표현을 쓰신 건가요?

◇최지선 : 네 김민기님의 음악을 어두운 저래서 제목을 달았는데 일단 합법적이라는 말이 있고 지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김민기님이 음악 활동을 하실 때가 1970년대와 80년대 였는데요. 이때는 이제 아시다시피 많은 분들이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이 집권하던 시절이잖아요. 그래서 당시는 굉장히 또 시대적으로 암울하고 또 억압적인 그런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여건 속에서 김민기 선생이 마음껏 그냥 합법적으로 음악이나 공연 활동을 펼칠 수는 없던 시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그래서 그때 그분의 이제 활동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저희는 이제 직접적으로 합법화의 좌절 이라고 표현을 드렸고 그다음에 이제 지하에서의 어떤 활동이라고 이제 표현을 저희가 드렸는데 80년대에 비주류 음악을 칭할 때 보통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잖아요.그러니까 이게 언더그라운드라는 뜻이 그냥 한글로 번역해서 저희가 지하라는 뜻을 쓰긴 쓴 건데 원래 이제 언더그라운드라고 하면 tv에는 잘 나오지 않고 공연을 중심으로 라디오 정도는 방송을 하시지만 tv 쇼 프로그램 같은 그런 곳에는 나오지 못하거나 낼 수 없거나 아니면 거부하시는 분들 있는데 그분들이 이제 또 공연장을 중심으로 활동하시는 분들 이런 분들을 언더그라운드라고 보통 가리켰거든요. 그래서 김민기님도 활동이 어쨌든 언더그라운드적인 영역에 계셨던 거고 본인이 합법적으로 마음껏 자유롭게 활동을 하실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 지하 라는 단어를 썼는데 언더그라운드와 달리 이제 합법적으로 그러니까 불법을 음악을 본인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시려면 불법적으로 하셔야 됐던 거예요.그래서 지하에서의 암약 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그러니까 몰래 활동을 했다는 뜻이 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합법적이지 않은 루트와 방식으로 활동했다는 의미로 그런 이런 구절로 요약을 한번 해보았습니다.

◆박귀빈 : 당시에 어떤 시대였고 어떻게 음악 활동을 했는지가 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네요.평론가님 설명을 들으니깐요. 가수 양희은 씨가 불러서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죠.아침 이슬. 이 노래가 김민기 대표의 작품인데 사실 시대적으로 김민기 대표 노래들이 불리지 못했던 시절이 꽤 길었었죠.

◇최지선 : 그게 이제 사실은 대학생 시절에 처음 71년에 데뷔 앨범을 발표를 했는데요. 이때도 사실은 음반은 사실 나왔어요. 나왔는데 이제 그 이듬해에 신입생 환영회가 있어서 본인이 이 노래를 초청이 돼서 노래 부르기를 기도를 했는데 그때 경찰서로 갑자기 연행이 되고 그러면서 이 음반도 압수가 됐어요. 그러니까 음반 자체가 금지된 건 아니었지만 음반이 압수됐으니까 들을 길이 없는 것이었고요. 그리고 이제 75년 정도가 되면 이 음반도 아예 이제 이 노래를 포함해서 금지곡들이 되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이제 바로 이 군에 입대를 하시게 됩니다.

◆박귀빈 : 근데 보면요. 이 김민기 대표의 노래들을 잘 들어보면요. 가사도 정말 담백하고 좋은 곡들이고 실제로 김민기 대표도 그냥 대중 음악으로 만든 거다 이렇게 말을 했었거든요.근데 도대체 왜 이 노래들이 김민기 대표의 노래들이 시대의 저항의 어떤 상징처럼 여겨졌던 걸까요? 그래서 이제 금지곡이 되고 그랬을 것 같거든요. 왜 그랬을까요?

◇최지선 : 아무래도 노래 가사들이 어쨌든 젊은 청년이 고뇌를 담고 어떤 시대에 대해서 이렇게 본인이 이제 그냥 자의식적으로 노래 가사들을 썼지만 그런 식의 노래 가사를 쓴 사람들이 그 당시에는 거의 없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한대수 씨 같은 경우나 김민기 씨 같은 경우 이런 분들 아니면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글을 써서 노래를 직접 창작을 하는 그런 사례들도 드물었을 뿐만 아니라 이 가사가 본인의 이제 여러 가지 경험을 담았지만 이런 가사들조차도 그 시절에는 허용이 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금지곡이 말도 안 되는 사유들로 김민기 씨뿐만 아니라 많은 노래들이 금지곡이 되었었죠.

◆박귀빈 : 80년대에 민중가요 노래패 노찾사 이것도 김민기 대표의 어떤 시작으로 알고 있거든요. 당시에 이 노찾사를 이제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어떤 특별한 이유 같은 것도 있었다고 보세요.

◇최지선 : 일단은 김민기 씨가 서울대 출신이고 미대 출신인데 그곳에 있던 나중에 노래 모임들이 만들어지게 되거든요. 그곳에 있던 후배들이 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고 보시면 될 것 같고요. 또 하나는 이전에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을 만들기 전에 김민기 씨의 노래를 연극으로 만드는 노래극이라고 당시에 표현된 그런 작품들을 만들고자 했는데요. 여러 가지 이유로 몇몇 작품들이 실패를 하거나 금지가 됩니다. 그중에 하나가 아예 이제 노동자 공장 이런 당시의 삶을 그린 작품이 있었는데 공장의 불빛이라는 작품이에요. 그렇지만 이게 진짜 현실 당시에 그런 현실들을 그대로 잘 드러내주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아예 예전에 작품들이 좀 더 은유적이고 문학적이었다면 이 작품은 조금 더 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이 직면한 상황을 잘 보여준 작품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합법적으로 음반이 배포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비합법적으로 만들어서 카세트 테이프 형식으로 이렇게 아름아름으로 전해졌는데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비슷한 게 이제 이 음반이 실패하고 나서 대중적으로 실패한 거죠. 전파할 수는 없었습니다. 또 하나 이 도와주게 된 게 이제 노래를 찾는 사람들 후배들이 이제 만드는 음반에 대해서 제작을 막고 여러 가지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것이 이제 84년에 만들어졌는데 이때도 역시 이 음반도 찍기는 했는데 제대로 공식적으로 배포는 되지 못했어요. 역시나 김민기의 작품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87년도에 다시 재발매가 되면서 이제 그때는 이제 정말 대중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죠.

◆박귀빈 : 알겠습니다. 80년대에는 또 김민기 씨가 그런 활동을 했었군요. 김민기 대표를 추모하면서 좀 노래를 다시 들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요. 아침이슬과 함께 또 다른 대표곡 친구가 있습니다. 이 노래는 김민기 대표가 19살 때 그것도 즉석에서 만든 곡이라면서요.

◇최지선 : 이 노래가 이제 김민기씨가 고3인가 이제 친구들이랑 후배들이랑 야영을 갔다가 그때 사고로 목숨을 잃은 친구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친구를 다룬 곡인데 굉장히 좀 진지하고 무겁고 그런 노래 노래였기 때문에 80년대나 이후에 불러졌을 때는 좀 더 다른 의미로 사람들에게 불려졌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죽음이 있거나 그런 무거운 그런 순간들에 다시 이렇게 소환되는 그런 노래입니다. 그러니까 19살에 이렇게 만든 노래 치고 정말 굉장히 자의식적이고 고뇌가 가득 찬 그런 노래 같아요.

◆박귀빈 : 그러니까요. 친구라는 곡 지금 흐르고 있고 그리고 아침 이슬 말고 또 대표곡 중에 봉우리라고 했습니다. 이 노래는 어떤 노래죠?

◇최지선 : 80년대에 양희은 씨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제 나온 곡들이 좀 있는데요. 원래 85년에 양희은씨 음반에 실렸을 때는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이라는 곡으로 실렸었어요.똑같이 지금 낭송으로 시작하는 곡인데 굉장히 이게 낮은 목소리를 가진 김민기 씨 목소리에 되게 잘 어울리는 그런 노래인데 보통 김민기 선생이 만든 그 곡들 가운데에는 고난과 역경을 딛고 앞으로 나아가겠다 이런 의지가 담긴 곡들이 좀 많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이렇게 되게 힘들거나 슬프거나 어려울 때 뭔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그런 노래 같아요.

◆박귀빈 : 네 그러네요. 그리고 아이들에 대한 사랑도 느낄 수 있는 곡들도 만들고 실제 활동도 하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날개만 있다면 이라는 곡은 어린이들이 등장하는 노래죠.

◇최지선 : 앞서서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을 만들기 전에 뮤지컬 같은걸 만들려고 시도를 했다가 성공하지 못한 그런 대표적인 작품이 개똥이라는 뮤지컬이에요. 이게 이제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품들이 그 주변에 여러 노래 읽기 노래극 이런 형식의 이름으로 상연도 약간 하기도 하고 80년대에도 음반도 이제 만드시기도 했는데 그때 이제 상연을 못한 개똥이를 일부 곡들이 음반에 실린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게 개똥이가 원래 반딧불이 애벌레라고 보통 알려져 있는데 그때는 본인이 이렇게 반짝거리는 날개를 가진 그런 존재인지 모르고 개똥이가 이제 자기가 날개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노래를 부르는 그런 부분에 사용된 곡이고요. 이 음반 개똥이는 사실 이제 나중에 95년에 학전 소극장을 만들고 나서 록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상연을 하게 됩니다.

◆박귀빈 : 그렇군요. 사실 지금 세 곡을 조금 더 평론가님 소개를 들어봤는데 아침 이슬과 더불어서 친구, 봉우리, 날개가 있다면 설명을 해주셨어요. 이것은 미리 사실 평론가님께 저희가 좀 노래를 우리 청취자분들께 알려드리고 싶은 노래를 추천을 받아서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이 곡들 말고도 참 의미 있는 곡들이 많습니다. 단순히 대중 음악을 넘어서서 모두 다 의미를 갖게 된 배경이 있을 텐데요. 평론가님 대중음악 평론가로서 우리 문화계에서 김민기라는 이름 앞으로 어떤 의미로 기억하면 좋을지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최지선 : 김민기 선생이 사실 업적이나 공치사 이런 걸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그런분이시기 때문에 본인을 특별한 이름으로 기억해 달라 이렇게는 말씀을 절대 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이제 딱 김민기 선생의 그 공정만큼은 평가를 해야 될 것 같고요. 그런데 이제 우리 일반적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나 그냥 보통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의 음악을 듣고 감동과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그것만으로도 김민기 선생은 또 좋아하실 것 같고요. 그래서 그의 음악을 잘 모르거나 혹은 또 기억을 하고 싶으신 분들은 많이 알려진 곡들도 있지만 그 외에 다른 음악들도 한번 들어보시면 그분이 어떤 생각을 했고 또 어떤 음악을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는지 또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귀빈 : 예 알겠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오늘 인터뷰 마무리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최지선 대중음악평론가였습니다. 평론가님 고맙습니다.

◇최지선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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