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5:00~16:00)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방송일 : 2023년 8월 16일 (수요일)
■ 대담 : 박주근 리더스 인덱스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생생경제] 순간의 선택이 좌우한 LG성장의 비밀...
-LG 회의 임원자리 배치는 ‘이것’따라 달라져
-동동구리모로 락희화학 키우고 TV까지 진출
-1983년에 럭키금성, 1995년에 LG로...책임경영제로 90년대 문 열어
◇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기업의 흥망성쇠, 기업의 생존을 이끄는 것은 사람입니다. 기업과 사람을 이끄는 생생한 기업 이야기를 만나는 시간, 리더스 인덱스 박주근 대표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주근 리더스 인덱스 대표(이하 박주근)> 네, 안녕하세요.
◇ 박귀빈> 오늘은요 LG 이야기를 해볼 텐데, 성적표 이야기부터 먼저 좀 해야 될 것 같아요. 최근에 상반기 성적표를 받아든 LG 계열사의 최고경영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좀 해주세요.
◆ 박주근> 사실 제 친정집이 LG입니다. 제일 출신인데요.
◇ 박귀빈> LG에 몇 년 동안 있으셨어요?
◆ 박주근> 10년 가까이 있었거든요. 전략회의를 가보면, 옛날 구본무 회장님 살아계실 때 가보면 숫자가 되게 중요한 게 계열사 사장들이 쫙 들어오잖아요. 그러면 자리 배치를 할 때 성적 좋은 CEO들이 가까이 앉습니다. 자리가 되게 중요해요. 그정도로 기업은 결국 실적이죠. LG그룹은 이렇게 보시면 돼요. 전자 계열과 화학 계열 그리고 기타. 이렇게 보셔야 되는데 상반기 실적이 반기 보고서가 발표됐지 않습니까? 주LG 실적을 보면 딱 알 수 있는데 주LG가 2분기 실적이 매출 9% 늘고 영업이익 9% 늘었어요. 순이익은 10% 감소했는데. 이게 전자 계열은 거의 비슷하게 갔어요. 그런데 화학 계열의 LG화학과 2차 전지 에너지솔루션이 있잖아요. 이쪽이 괜찮았습니다. 그러니까 전자 계열과 화학 계열은 약간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데 이건 연봉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요.
◇ 박귀빈> 그렇습니까?
◆ 박주근> 그렇죠. 그리고 또 최근에 1분기, 2분기 실적에서 가장 도드라진 점은 LG전자가 삼성전자 영업이익을 2분기 연속 이기고 있다. 이건 삼성전자가 너무 못하니까 일어난 일인데 어쨌든 전자 계열은 실제 괜찮지만 화학 계열보다는 역시 좋지 않았다. 이제 연봉을 보면 아까 구본무 회장 연봉을 말씀하셨잖아요. 59억으로. 그다음 연봉이 높은 분이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에요.
◇ 박귀빈> 이 연봉이라는 것이, 그러니까 상여금. 바로 기업의 실적이 분기마다 나오지 않습니까? 그게 직접적으로 반영이 돼서 연봉에 영향을 미치나요?
◆ 박주근> 보통은 기본 연봉이 있고 상여금이 있는데 상여금은 직전 것도 있고 보통 3년 치를 합산해 주는 경우도 있고, 단기 성과 장기 성과를 보통 조합을 하는데. 어쨌든 직전 실적이 가장 영향을 미치죠. 두 번째 연봉 높은 분이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인데 35억 3천 받았고 그다음이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32억, 33억 정도 받았으니깐. 그리고는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15억이니깐 역시 실적에 따라서 CEO 연봉도 달라졌다. 그러니까 전자는 조금 비슷했고 화학은 되게 좋았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박귀빈> 전자 계열은 큰 차이는 없었고 화학 계열이 특히 좋았다. 이 말씀이시네요. 근데 통신 서비스 계열, LG U+ 이런 데도 영업이익은 좀 많이 늘어난 것 같던데요?
◆ 박주근> 늘어났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LG U+라든지 LG CNS라든지 기타 LG 계열사들도 나쁘지 않아서 전체적으로 삼성계열보다 LG는 선방했다.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박귀빈> 올해 성적표를 보면 전반적으로 LG는 선방했다. 이것이 총평으로 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럼 본격적으로 LG의 그 시작은 언제부터인가, 이걸 한번 짚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1947년에 설립된 락희화학공업사에서 시작됐다는데요. 맞나요?
◆ 박주근> 그렇죠. 그러니까 공식적으로는 락희공업화학이 LG에 모태라고 보는데 저는 조금 더 연장해서 봅니다.
◇ 박귀빈> 더 거슬러 올라갑니까?
◆ 박주근> 창업자가 되게 중요한데요. LG그룹의 창업자는 구인회 회장이죠.
◇ 박귀빈> 연암 구인회이죠.
◆ 박주근> 맞습니다. 1907년생이시거든요. 부친 고향이 경남 진양군입니다. 우리 삼성 이야기할 때 함안에 지수 초등학교 얘기를 했죠. 동문들이 이병철 회장 구인회 회장 그다음에 효성그룹의 홍 회장.
◇ 박귀빈> 거기 동창회 하면 거의 다보스 포럼일 것 같아요.
◆ 박주근> 그렇죠. 원래 구인회 회장도 흙수저는 아닙니다. 만석꾼의 자녀로 태어났어요. 구인회 회장의 부친이 구재서고 어머님이 허을수인데 이 허을수 분이 바로 GS그룹의허하 씨입니다. 그러니까 구인회 회장의 어머님이 허씨 가문이에요. 그래서 GS와 LG가 원래 같이 일을 하거든요. 그래서 어머님 허을수 씨가 허만정 씨의 가족이 되는 거죠. 그리고 원래 구인회 회장은 집안이 굉장히 전통 유교 양반 집이었어요. 왜냐하면 조부가 누구셨냐 하면 구연호라고 그 당시 이제 조선 말에 과급제를 급제해서 혼문과의 교리까지 하셨고 사관원 증언도 하셨거든요. 고종 때. 구대조는 승정원에 좌승지까지 했습니다. 굉장히 높은 벼슬을 한 것이죠.
◇ 박귀빈> 승정원의 좌승지면 임금이랑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 박주근> 그러니까 굉장히 유교 집안이었고 그래서 이걸 알아야 되는 이유가 구인 회장이 그 당시만 해도 학문을 하는 양반집은 장사를 안 했잖아요. 어떻게 장사를 했을까 되게 의문이 들지 않습니까? 아버지가 당시 일제의 탄압을 받아요. 근데 그걸 보고 구인회 회장이 당시에 진주를 보니까 일본인들이 장사를 다 독점을 하는 거예요. 잡화류, 문구류, 서류 이런 걸 독점을 하니까 구 회장이 이런 생각을 했다고 책에 적혀 있습니다. 우리 몸에 닿는 물건은 최소한 우리 민족이 해야 되지 않겠냐. 어제 광복절이었죠. 그래서 시작한 게 제일 처음에는 지수 초등학교 말씀드렸죠. 지수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직접 상업을 시작합니다. 20대 때. 그게 좀 발전한 게 부친으로부터 그 뜻을 보고 2천 원을 자본금을 줘요. 그리고 1931년도에 진주에다가 남동생 구철회 씨하고 구인회 상점을 먼저 개업하는 게 사실은 제일 처음 장사를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되고 나서 1945년도에 구인회 상회를 폐업하고 부산에서 조선흥업사라는 거를 설립한 다음에 그때 당시 제가 삼성 이야기를 할 때 해방 이후에 우리나라 많은 기업들이 일본이 남기고 간 기업을 인수받아서 시작했는데 그때 동동구리무을 만들었던 일본 기업을 싸게 인수해서 시작한 게 바로 락희공업사의 시작입니다.
◇ 박귀빈> 동동구리무, 그거 얼굴에 바르는 거 아닙니까?
◆ 박주근> 맞습니다. 그래서 구인회 회장의 어머니가 이제 허을수 씨라고 그랬잖아요. 그 허을수 씨의 어머니가 허만식 씨인데 이 허만식 씨가 이렇게 창업할 때 이야기를 해요. 돈을 이제 허 씨가 댔습니다. 대면서 허만정 씨가 아들이 허준구 회장인데 사업자금을 내놓고 아들을 맡기면서 구 회장한테 같이 좀 하라고 하고 우리 아들을 좀 키워줘라고 해서 시작한 게 이제 락희공업사이고 구 씨 허 씨가 같이 시작한 것이죠.
◇ 박귀빈> 그러면 구 씨와 허 씨는 구 씨 집안에서 보면 처가였군요.
◆ 박주근> 그렇죠.
◇ 박귀빈> 그래서 구씨와 허 씨가 함께 사돈 관계로 동업을 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락희화학공업사,
◆ 박주근> 그렇죠. 제일 처음에는 동동구리무 너무 잘 팔린 거예요.
◇ 박귀빈> 크림이죠?
◆ 박주근> 크림이죠. 당시에 물자가 얼마나 부족했겠습니까. 너무 잘 팔리는데 이게 재밌는 게 이 용기가 깨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 박귀빈> 화장품 담은 용기가.
◆ 박주근> 마음에 안 든 거죠. 깨지고 이러니까 불량이 들어오고 하니까 구인희 회장이 저 용기를 어떻게 할 수 없을까라고 고민하던 끝에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어보자고 시작한 게 현재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이 된 거죠.
◇ 박귀빈> 그럼 화장품이랑 플라스틱도 같이 만들었네요?
◆ 박주근> 그렇죠. 실제로는 화장품을 만들었지만 플라스틱을 만드는 용기 사업이 LG그룹의 모태가 오히려 된 거죠. 그리고 용기를 만들다 보니까 또 추가해서 치약 같은 용기도 만들게 되고,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화학을 시작으로, 플라스틱을 시작으로 중공업으로 사업을 넓힌 게 LG그룹의 모태가 된 거죠.
◇ 박귀빈> 그렇군요. 크림, 화학으로 시작을 해서 락희화학공업사. 그러니까 지금 저희가 생각하면 우리가 LG 생활건강에 보면 샴푸도 있고 화장품도 있고 칫솔, 치약 다 있어요.
◆ 박주근> 그러니까 원래 LG화학이 락희공업화학이었는데 동동구리무로 만든 것은 LG생활건강으로 갔고 그다음에 그 플라스틱 용기를 만들던 거고 화학 계열은 지금부터 계속 발전해서 현재의 LG 에너지솔루션 2차 배터리까지 간 경우로 보면 되죠.
◇ 박귀빈> 그렇게 이어지는군요. 1947년에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가 본격적인 LG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크림 동동구리무가 여기서 나오는 말이네요. 예전에 드라마에서 많이 나왔던 것인데 그러면서 플라스틱 까지 함께했던, 그래서 지금의 LG 생활건강까지 연결되는 그 흐름이 이제 머릿속에 이어졌어요. 그리고 이제 LG 브랜드 하면 또 하나 기억나는 게 금성사입니다. 금성사. 예전에 TV 만들고 막 그러지 않았었나요?
◆ 박주근> 맞습니다. 어떻게 보며 ㄴ한국 최초의 전자회사죠.
◇ 박귀빈> 한국 최초의 전자회사인가요?
◆ 박주근> 그러니까 우리가 삼성을 했고 현대그룹을 했고 LG그룹을 하지 않습니까? 특징 중에 하나가 저는 이제 비교를 할 때 꼭 고구려, 신라, 백제로 비슷하게 구별을 하는데 삼국시대처럼, 특징이 딱 있어요. 삼성그룹은 전에 얘기했듯이 항상 자본력을 딱 만든 다음에 어떤 시대의 흐름을 보고 사업 기회를 더 가서 최소의 리스크를 안고 사업을 해서 확장시키는 구조였고 현대 정주영 회장 같은 경우는 불도저 같이 일단 해보고 시작하는 식이었다면 LG는 두드려보고, 두드려보고 연구 개발에서 시작하는 게 특징입니다. 그러니까 락희공업 시작할 때도 플라스틱을 직접 만들어야 된다는 일념 하나로 만들어서 올렸고 두 번째 시작한 게 이제 바로 금성사인데 이것도 원래 시작은 구인회 회장이 일대기를 보면 1957년도에 이 전자공업 진출을 모색을 시작해요. 그러다가 1년 정도 고민을 하다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1958년도에 시작한 게 바로 LG전자의 모태인 금성사가 된 거죠. 제일 처음 만든 게 1959년 11월달에 라디오를 처음 만들어요.
◇ 박귀빈> 1958년도에 금성사를 만들고 가장 먼저 만든 게 1959년도에 라디오.
◆ 박주근> 라디오를 만드는데 A50이라는 라디오를 출시를 하는데 이게 엄청난 적자를 봅니다. 지금은 최초로 라디오니까 대박인 것 같지만 살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고 그리고 너무 귀한 물건이고 했으니까 적자를 많이 봐요. 근데 이게 언제 완전히 반전이 되냐 하면 1959년도에 했는데 1961년도에 5.16 쿠데타가 일어나죠. 이게 이제 반전의 기회가 됩니다.
◇ 박귀빈> 라디오가 필요했군요.
◆ 박주근>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홍보 수단이 필요했는데 TV는 없으니까 라디오를 택한 거예요. 그리고는 정부 차원에서 농어촌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합니다.
◇ 박귀빈> 정부 차원에서 라디오를 보내는 운동을 해요?
◆ 박주근> 이 덕분에 이제 기사회생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쨌든 LG전자가 이걸로 기사회생을 해서 그다음 해에 61년도에 첫 국산 전화기를 만들고 그리고 1965년도에 첫 냉장고를 만들어요.
◇ 박귀빈> LG 냉장고.
◆ 박주근> 그리고 TV를 그다음에 만듭니다. 그러니까 냉장고가 TV보다 먼저 나와요. 흑백 TV를 1966년도에 만드는데 1962년도, 1965년도에 흑백 TV 한 대가 얼마 정도 했냐 하면은 19인치가 6만 8천 원 했거든.
◇ 박귀빈> 지금으로 치면 얼마입니까?
◆ 박주근> 500만 원.
◇ 박귀빈> 흑백 TV가 1대에 500만 원.
◆ 박주근> 지금 이제 우리가 75인치 제일 큰 LED TV 이런 거 가격보다 더 비쌌던, 그런데 이것도 그 당시에 이렇게 비쌌는데도 추첨해서 팔 정도였죠. 그 정도로 팔렸다는 거죠.
◇ 박귀빈> TV 살 수 있는 집이 많지가 않았겠네요.
◆ 박주근> 그러니까 LG전자가 이렇게 해서 기사회생해서 TV까지 만들어서 한국전자 가전업계에 완전히 튼튼한 기회를 마련해서 지금은 가전업계 글로벌 넘버원이 됐죠.
◇ 박귀빈> 그렇죠. LG전자, 흑백 TV를 가장 처음 만든 곳인데 예전에 드라마 보면 동네에 TV 있는 곳이 한 집이에요. 그럼 온동 네 사람들이 몰려가서 막 보잖아요.
◆ 박주근> 저도 아주 어린 시절 그 시절을 보낸 적이 있습니다.
◇ 박귀빈> 그러셨어요? 몰래 가서 보셨어요?
◆ 박주근> 저희 집에 TV가 있었어요.
◇ 박귀빈> 추첨해서 한 대에 500만 원인 TV를 사셨군요. 우리 대표님 집에서는요.
◆ 박주근> 저는 그때는 아니고 한 1970년대 중반이었으니까 가격이 좀 떨어졌을 때입니다.
◇ 박귀빈> 그렇군요. 예전에 LG 하면 어떤 상품 카피 중에 이런 게 생각나요.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이게 무슨 광고였죠?
◆ 박주근> 그게 LG전자 광고였죠. 튼튼하게 만들어야 되고 그 당시에 보면 굉장히 오래 갔던 것 같아요.
◇ 박귀빈> 그 광고 카피가 머릿속에 딱 박혀 있거든요.
◆ 박주근> 그게 어떻게 보면 구인회 회장에 이어서 아들인 구자경 회장까지 갈 때, 구인회 회장이 1960년대 말에 돌아가시거든요. 그리고 2대 구자경 회장이 1970년 2월에 취임을 하시는데 구자경 회장까지 이어졌던 이런 정신들을 보면 그러니까 LG 같은 경우는 한 곳을 열심히 파서 R&D를 접해서 두드려보고 가는, 그게 어떻게 보면 어떤 사람들은 이게 너무 소심한 거 아니냐 생각을 하고 진취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그래서 항상 2등 정신 아니냐 이렇게 하는데 그렇지만 어떻게든 안정적으로는 갔다. 그 덕분에. 이게 이제 1960년대까지 LG그룹의 역사가 되는 거죠.
◇ 박귀빈> 그러고 보니 LG가 가전제품에서만큼은 거의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 박주근> 지금 매출액으로는 월프를 앞서면서 가전 쪽에서는 글로벌 넘버원을 차지하고 있죠.
◇ 박귀빈> 지금도 LG는 가전 쪽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죠?
◆ 박주근> 그렇습니다. 최근에 LG전자의 방향은 그런 b2c 가전에서 약간 b2b로 사업 방향을 바꾸고는 있지만 여전히 가전 쪽에서는 세계 글로벌 넘버원을 지금 차지하고 있는 입장이죠.
◇ 박귀빈> 그렇군요. 백색 가전을 그룹 차원에서 지원을 한다던가, 뭐 이런 것들도 있고요. 1950년대 말에 금성사, LG전자의 전신 생기면서 이제 각종 가전을 최초로 만들어내면서 LG를 점점 키워가는데. 1960년대 말에는 이미 회사 규모가 많이 커졌다고 합니다. 또 70~80년대에는 계열사도 많이 좀 확장이 되지 않나요?
◆ 박주근> 그렇습니다. 1968년도에 창업자 구인회 회장이 돌아가시고 장남인 구자경 회장이 1970년에 취임을 해서 2세대로 넘어가는데 그때 구자경 회장이 나이가 45이었어요.
◇ 박귀빈> 초대 구인회 회장이 1968년에 돌아가셨군요.
◆ 박주근> 그리고 45세인 구자경 회장이 1970년에 회장으로 취임합니다. 그때도 장자 승계의 원칙이었으니까 유교 집안이었으니까 장자 구자경이 들어왔고 그때 구인회 회장이 금성사를 만들고 이제 화학공업을 만들었다면 구자경 회장 때는 방금 말씀한 것처럼 건설 그다음에 증권, ,유통 보험, 서비스까지 사업을 확장합니다. 확장 시기죠.
◇ 박귀빈> 그게 한 70~80년대인 거네요.
◆ 박주근> 그리고 1983년도의 그룹 명칭을 ‘럭키금성’으로 바꿔요. 바꾸어서 여의도에 있는 트윈빌딩, LG의 브랜드이다시피한 이게 바로 1987년도에 준공을 합니다.
◇ 박귀빈> 그렇군요. 그때 럭키금성일 때 만든 거예요?
◆ 박주근> 그렇죠. 구자경 회장이 재임한 기간이 1970년에 들어오셔서 1995년까지 25년 기간에 구자경 회장의 시대 동안에는 영역의 확장, 그러니까 화학과 전자는 그대로 가면서 영역을 굉장히 확장하는 시기가 되겠습니다.
◇ 박귀빈> 구자경 회장. 1970년에 2대 회장에 취임한 구자경 회장은 한 25년간 회사를 이끌면서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기본적인 전자, 화학은 가져가면서. 그렇게 됐군요. 그리고 1980년대에 럭키금성일 때 지금의 LG 트윈타워도 건설을 하고요. 그렇군요. 1970~80년대까지 얘기를 했고 1990년대를 들어가야 되는데 지금 제가 들어갈까 말까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를 일단 시작을 하고 다음 시간 예고를 하고 마무리를 하는 걸로 하죠.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LG는 책임경영제를 도입한다고 들었는데 이거는 어떤 겁니까?
◆ 박주근> 이제 1990년대 들어서면서 LG가 아까 구자경 회장께서 굉장히 영역을 많이 늘렸잖아요. 이거를 방계 계열사로 분리하는 작업을 준비를 시작을 합니다.
◇ 박귀빈> 이제 계열사 분리를 하는군요.
◆ 박주근> 예를 들어서 정유는 GS칼텍스로 허 씨와의 가문 분리, 그리고 구인회 회장의 동생들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구철회 회장은 LIG로 불리는 그다음에 나머지 세 동생에게는 현재 LS그룹으로의 분리, 이런 분리 작업을 정리를 하면서 방금 말씀하신 그 책임경영제를 하면서 1995년도에 3대째 구인무 회장이 들어서거든요. 그때 지금의 브랜드로 바뀌는 거죠. 럭키금성그룹에서 LG그룹으로. 1990년대 말에 제가 입사를 하니까.
◇ 박귀빈> LG로 바뀌고 나서 입사하셨네요.
◆ 박주근> 입사하니까 선배들이 “20세기에 태양계에서 가장 큰 변화가 뭐냐? 금성이 LG로 바뀐 거다.”이런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로.
◇ 박귀빈> 그렇군요. 그러니까 사명을 일단 영어로 바꾸지 않았습니까? 근데 거기에는 많은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박주근> 맞습니다. 제가 나름대로 연구를 하면서 우리나라 한 30대 그룹들의 브랜드 CI 있지 않습니까? 브랜드 CI가 바뀐 역사를 쭉 다 봤더니 꼭 총수가 바뀌면 바뀝니다. 새로운 자기만의 역사를 쓰고 싶은 거죠. 그러니까 LG도 구인무 회장이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역사 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면서 바뀌는 거죠.
◇ 박귀빈> 알겠습니다. LG의 이야기를 오늘 했는데요. 한 1990년대까지 LG 이야기를 한번 들어봤습니다. 우리 대표님께서 LG에 들어가시고 나서까지 이야기를 했다면 다음 시간에 또 이어갈게요. 다음 시간에는 1990년대 이후에 2천년대 들어서까지 LG가 어떤 모습으로 변화되는지 그리고 우리 대표님께서는 친정 LG에서 또 어떻게 나오셨는지 퇴사 이야기도 함께 들어보고 싶네요.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오늘 기업 생생스토리, 역시 생생한 이야기 해봤는데요. LG의 이야기 해봤습니다. 리더스 인덱스 박주근 대표님 오늘도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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