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6년 7월 23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김용덕 회장 /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최근 배우 소지섭 씨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죠. <김부장>이 화제를 모으면서 오랫동안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북파공작원들의 삶도 다시 조명 받고 있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존재했지만 그 존재 자체를 숨겨야 했던 사람들. 가족에게도 그 어디에 있는지 알릴 수 없었고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도 오랫동안 이름조차 드러낼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실제 북파공작원으로 훈련을 받았고, 현재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이끌고 계신 김용덕 회장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회장님, 어서 오세요. 오랜만에 찾아오셨네요.
◇ 김용덕 : 예, 안녕하세요.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 김용덕입니다. 반갑습니다.
◆ 박귀빈 : 네, 회장님 굉장히 바쁘신 분입니다. 여러분 저희가 어렵게 모셨습니다. 앞서 제가 시작할 때 드라마 얘기를 드렸잖아요. <김부장>입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가 내용이 상당히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보시는데, 우리 회장님도 드라마 보셨습니까?
◇ 김용덕 : 예. 매회 시청한 건 아니지만 몇 회를 시청해 봤습니다만 상당히 감회도 새롭고, 공감하는 부분도 있고, 조금 영화화돼서 과장된 부분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박귀빈 : <김부장>을 계기로 북파공작원들의 삶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하는데. 일단 회장님도 보셨으니까 ‘이거는 진짜 공감되더라’ 하는 거 하고 ‘이거는 진짜 현실이랑 다르다’ 하는 거 하나씩만 짚어봐 주세요.
◇ 김용덕 : 항상 드라마나 특별한 시점 되면 북파공작원들의 생활 상황이나 실태에 대해서 수면 아래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모습이 참 가슴 아픕니다마는, 극한 훈련이나 조국에 대한 충성심, 임무 수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나 이런 거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고 있습니다마는 조금은 영화화돼서 우리 국민들이 오해하시는 부분 장면들이 몇 가지 보이는데. 그런 상세한 사항들은 나중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박귀빈 : 네, 맞아요. 북파공작원이 그려지는 영화, 드라마 종종 여러분 보셨잖아요? 그런데 아무래도 이거는 우리가 작품으로 보는 거다 보니까 재미가 빠질 수가 없어요. 액션도 그렇고 여러 가지 드라마 속에서 설정된 것들, 인물 간의 갈등, 그걸 풀어나가는 과정을 우리는 재미로 보는 경우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 회장님께서는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를 이끌고 계시고, 실제로 북파공작원의 삶을 사셨던 분입니다. 방금 말씀하셨어요, 어떤 임무를 실제로 했고, 이 작품에서 현실과 다른 부분 시청자들이 오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 내가 소상히 설명드리겠다고 하셨기 때문에 그 부분 오늘 현실적인 이야기들 많이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입대하셨는지부터 알려주세요.
◇ 김용덕 : 북파 공작이라고 하면 단순하게 한 가지만 이야기를 하시는 것 같은데.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시기에 옛날에 68년도에 저희 부대가 창설되어서 대전선 공작을 메인으로 하다가 그다음에 안기부나 정보 조직을 통해서 ‘여권 공작’ 그다음에 비 공작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냥 고정 간첩 공작이라든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아마 <김부장>에 지금 나오는 내용은 여권 공작, 정상적인 루트로 해서 적국에 침투해가지고 거기서 국가로부터 부여받은 임무 수행을 하는 과정에 나와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실제로 전선 공작팀들이 더 많은 대원들이 있었고, 더 많은 공작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서는 드라마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거기가 더 가혹한 현실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박귀빈 : ‘전선 공작’이라고 하면 뭘 말하나요?
◇ 김용덕 : 전선 공작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은 적국인 북한에 대해서 북방 한계선을 통해서 침투하는 공작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 공작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납치를 해오는 공작, 또 보복 공작도 있겠고 그다음에 정보 수집이라든지 여러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아마 옛날 68년도에는 보복이나 납치, 폭파 이런 공작들이 상당히 많았고. 6.25 전쟁 시에는 우리 아군들을 전투를 수월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적국에 들어가서 적국의 동태를 파악해서 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예를 들어서 인천상륙작전에 저희 대원들이 선두에 서가지고 북한군들의 동태를 파악해서 우리 아군들한테 정보를 전달함으로 인해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게 수행되도록 상당히 밑거름이 되었다는 성과도 있습니다.
◆ 박귀빈 : 북파 공작 업무라는 것은 북한에 중요 임무, 특수 임무를 띠고 파견된... 우리가 흔히 간첩이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습니까? 그런 표현도 맞는 표현인 건가요?
◇ 김용덕 : 어떻게 보면 맞는 표현이죠.
◆ 박귀빈 : 나라를 위해서, 우리 아군을 위해서 중요 정보 빼가지고 오고 이런 일을 하신 건데. 언제 입대를 하셔서 임무를 수행하셨던 건가요?
◇ 김용덕 : 저는 81년도에 입대를 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입대를 한 계기는 개인적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상에 대한 문제로 호적이 좀 늦게 되어서, 군대를 늦게 가서 후배들하고 가는 게 싫어서 빨리 군대를 가야 되겠다 싶어서 병무청에 갔습니다. 가니까 거기에 물색관이라고 그래가지고 그분들이 저희들한테 회유를 하기 시작하죠. 그 당시에 제시하는 조건이 너무나 좋아서... ‘16주만 훈련을 받으면 쌍권총 차고 남부 지방의 큰 도시에서 근무할 수 있다’라는 조건을 제시해서 저도 좋다고 응해서 가보니까 이런 부대였습니다.
◆ 박귀빈 : 아니, 예전에 나오셨을 때도 이런 말씀을 해 주셨어요. 우리 회장님이 내가 원해서, 북파공작원을 원해서 그 부대를 찾아간 게 아니라 그냥 군대 가신 건데 ‘우리 좋은 곳이고 이런 일을 할 거야’ 하고 갔는데 보니까 그런 일을 그런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곳에 가신 거잖아요. 어떠셨어요?
◇ 김용덕 : 그 당시에 저희들이 들어갈 때는 흑백 TV 시대에 저희들이 입대를 했죠. 입대를 해서 들어가서 16주만 받으면 다시 우리가 사회에 복귀하는 형태로서 근무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을 받고 혹독한 훈련도 견뎌내가면서 했습니다마는, 16주가 끝나는 시점에 저희들이 알게 된 것은 북파공작원의 생활을 지금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돼서 상당히 저희들이 당혹스러웠죠. 그렇지만은 아주 삼엄한 훈련 속에서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고. 단순하게 정부로부터, 국가로부터 여러 가지 지시가 내려오는 훈련 스케줄에 따라서 훈련을 했고, 거기에 따라서 임무 수행을 받게 되면 임무 수행을 했고.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저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순종밖에 없었습니다.
◆ 박귀빈 : 선택이 없었습니까?
◇ 김용덕 : 선택의 여지가 없죠.
◆ 박귀빈 : 그러니까 ‘저는 북한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임무인 거를 모르고 왔습니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나요?
◇ 김용덕 : 요새도 동일한 부대가 있다고 했는데 본인의 의사를 존중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부대가 안 맞다고 그러면 퇴사를 시켜 준다고 하긴 하지만, 저희들 시대에는 쉽게 보면 대장간하고 같았습니다. 그냥 갖다가 두드려서 만드는 거죠. 그 가혹하고 혹독한 훈련과 혹독한 채찍으로 이거를 위해서 만들어낸 거예요. 담금질해서.
◆ 박귀빈 : 1981년에 육군에 입대하셨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년도 훨씬 넘은 그 전에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예요. 아까 말씀하셨어요. 북파공작원 물색관들의 회유를 통해서 군에 들어가셨고, 알고 보니 북파공작원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그런 역할을 맡게 되셨고 하시게 된 겁니다. 얼마 동안 하셨어요?
◇ 김용덕 : 저희 같은 경우에는 3년 정도 했고요. 그다음에 일부는 5년 하신 분도 있고, 5년까지는 공작원 생활을 할 수가 있습니다.
◆ 박귀빈 : 공작원 훈련부터 실제 임무를 받아서 공작원 생활을 했을 때 그 이야기를 간략히 전해 주세요. 어느 정도의 혹독한 훈련이 있습니까?
◇ 김용덕 : 제가 이 훈련에 대해서 항상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말씀드리는 게 ‘인간의 한계점을 최극한 상황까지 끌고 가는 훈련’을 합니다. 그래야만이 이 사람의 본성이 나타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반항을 한다든지, 배신을 한다든지 아니면 여기서 뛰쳐나가려고 한다든지. 극한 훈련까지 끌고 가는 거니까 거기에 대해서... 저희들이 침투 루트가 예를 들어서 전선 공작원 같은 경우에는 전선도 있지만 공중도 있고, 해상도 있고 그 세 가지 훈련을 다 받게 됩니다. 물론 안에서 조별로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만은 세 가지 침투의 경우를 다 대비해서 훈련을 하는 거니까 일반 사람들이 상상을 하시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 박귀빈 : 그런데 훈련 중에, 혹은 임무 수행 중에 못 견디고 낙오된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 김용덕 : 낙오되었다기보다는 이제...
◆ 박귀빈 : 정확한 표현을 찾지 못해서 이런 말을 드린 건데.
◇ 김용덕 : 거기서 계시다가 적응을 못해서 이탈하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탈하시는 분들한테는 무엇이 찍히냐면 배신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시작합니다. 배신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면 사람이 아니고 그때는 동물 생활을 하셔야 됩니다. 어떤 동물 생활을 해야 되느냐, 구타는 가혹하게 당하고. 그다음에 전 대원들한테 배신자의 낙인이 찍혀서 잘못하면 죽음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실제로 그런 사례도 있었고. 우리의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히면 누구든지 가가지고 아주 그냥 그 사람을 위해하거나 아니면 살상을 할 수 있는, 그렇게 해도 법적으로 저촉을 받지 않고 훈련을 받을 수가 있을 수도 있고. 그런 배신이 찍히게 되면 일반 시설에 교도소나 이런 데 보내지지 않고 자체 교도소에 있는데, 그 교도소 수준이 동물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아주 그냥 이불이나 이런 시설이 없고 동물들이 사는 집 같은 거 가지고 생활을 하는 거예요. 이거는 뭐 그냥 거기서는 사람이 아니죠.
◆ 박귀빈 : 공작원 생활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이탈하는 경우에 지금 말씀하신 이런 걸 경험하게 되고. 공작원 생활하시다가 안타깝게 희생되거나 그런 분들도 계신가요?
◇ 김용덕 : 그렇죠. 희생되는 분들이 있는데 그 희생되는 분들에 대해서 정식적으로 아마 집안에 통보가 안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고 이 사람이 왜 죽었으며, 어떤 부대에 근무하다 죽었으며 하는 관계에 대한 정보는 일절 제시하지 않고 아마 시신만 인도하는 경우를 저희들이 목격했습니다.
◆ 박귀빈 : 나라를 위해 그분들은 목숨을 바쳐서, 우리 회장님 포함해서 북한에 공작원으로 가셔서 이 나라를 위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에 임무 수행 중에 돌아가셨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국가유공자가 되셔야 되는 거거든요. 특수 임무 활동하셨던 분들 중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으신 분들이 많이 되십니까?
◇ 김용덕 : 지금 현재 저희들이 한 6천여 명 정도 회원이 있는데, 현재로서 한 30% 미만 정도가... 그거는 신체적으로 우리가 상해를 입었거나 하는 분들에 대해서는 한 유공자로서, 상이자로서 인정을 해줘서 조금에 대한 연금을 받게 돼 있지만. 나머지 한 70% 정도 되시는 분들은 국가로부터 받는 보상이 전혀 없습니다.
◆ 박귀빈 : 아니, 3년 동안 활동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집으로 돌아가셔서 그동안에 있었던 그 활동에 대해서 말할 수 없죠?
◇ 김용덕 : 나올 때 각서를 쓰고 나오기 때문에 말할 수도 없을뿐더러, 말을 하더라도 일반 국민들이 그게 사실이라고 동조해 주는 국민들이 없었다는 거죠.
◆ 박귀빈 : 믿지를 않는군요.
◇ 김용덕 : 네, 안 믿는 거죠. 한마디로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하면은조금 더 부풀려서 이야기하시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그런 부대가 어디 있어?’ 그런데 그게 어쨌든 간에 <실미도>라는 영화 때문에 표면 위로 떠올라서 국민들이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죠. 그 전에는 그런 부대 이야기하면 조금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거죠.
◆ 박귀빈 : 실제 우리가 드라마나 이런 데 접하면 만약에 그런 공작원 활동을 하다가 적에게 붙잡혔습니다. 그러면 스스로 자결해야 된다 이런 임무 수행 그런 조건이 있고 막 그렇잖아요? 실제도 그렇습니까?
◇ 김용덕 :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공작이 저희들이 A 공작하고 B 공작, C 공작이 있다고 그러는데. 전선 공작팀들은 개인 소화기를 가지고 다니니까 저항해서 소화기 가지고 스스로 마지막 자기가 선택을 해야 되는 거고. 그다음에 A 공작 사항 같은 데 보니까 독약을 가지고 다닌다든지 하는 거는 전선 공작팀들하고 다른 이야기예요. 그리고 지금 <김부장>에 나오는 이야기는 보면 A 공작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옛날에 우리 대한항공 폭파했던 김현희 같은 분들은 A 공작 출신들이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들 주머니에 독약을 가지고 다녔고, 기본적인 임무인데 똑같습니다. 임무를 하는데 방법은 독약으로 하느냐 개인 소화기를 사용하느냐 그 차이는 있었겠죠.
◆ 박귀빈 : 방법의 차이인 거고 그냥 마지막에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없고 그냥 정해져 있군요. 이렇게 해야 된다라고.
◇ 김용덕 : 이렇게 돼 있죠. 저희들이 마지막에 하는 것은 저희들이 북한에 발각돼서 만약에 거기에 체포가 되더라도 대한민국에서 파견되어 있다는 근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예를 들어서 실제로 북한의 임무 수행을 하다가 북한 지역에서 죽었어요. 그래서 북한에서 시신을 우리한테 인도를 합니다. 대한민국 국가에서 받았겠습니까?
◆ 박귀빈 : 모른 척했겠군요?
◇ 김용덕 : 이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 박귀빈 : 그리고 나라에서도 북파공작원은 어쨌든 비밀리에 업무 수행을 하는 거니까.
◇ 김용덕 : 모든 게 비밀이라는 전제하에서 모든 권리가 다 묻혀지고, 권리가 무시당하고 하는 게 지금도 현실이고 과거에도 그렇습니다.
◆ 박귀빈 : 그런 활동을 하시고 사회로 복귀하셨는데, 그 활동한 것에 대해서는 회장님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통 이렇게 군대 활동하시고 나라를 지켰다는 사명감과 뿌듯함과 그런 마음들을 갖고 계시잖아요. 어떠세요?
◇ 김용덕 : 저희들이 사회에 복귀할 때는 희망을 가지고 복귀를 하죠. 그런데 저희들이 3년 동안 받은 훈련이 뭐겠습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쁘게 말하면 도둑질. 남을 죽이는 거, 남을 빼앗아 오는 거, 폭파하는 거 이런 것들만 배워서 3년 동안 몸에 익혀서 나온답니다. 사회에 나오게 되는데 그 사회에 나와서 할 수 있는 게 있습니까? 저희들이 가장 첫 번째는 각종 이권 단체에서 이용당하는 것이죠. 일부 조폭들에서 환영을 하는 거죠.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우리 조폭에, 우리 단체에 소속돼 있다. 이런 데 무수하게 이용당한 것이 현실이었습니다.
◆ 박귀빈 : 북파공작원 임무를 수행하실 때도 어떤 마음이셨을까가 여쭤보고 싶은 게, 드라마상에서도 그러거든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면서 임무가 계속 수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지 않습니까? 그런 적 있으셨는지.
◇ 김용덕 : 뭐, 저는 횟수가 많지 않아서... 횟수가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임무 수행 하는 사람들이 세미나를 가끔씩 하는데 그분들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첫 번째는 사명감을 가지고 간답니다. 국가로부터 자부심도 가지고 내가 수행하면 되겠다. 그런데 해가 거듭될수록 회의감이 오는 거예요. 와서 활약을 해줬다가, 한 일주일 환영받고 난 다음에 또 가라 그럼 가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거를 국가의 명령을 회피하게 되면 배신자로 낙인찍히고. 두려워서 가는 거예요. 그다음에 책임감이나 사명감이나 애국심이 없는 임무 수행을 하게 된다는 거죠.
◆ 박귀빈 : 회장님 사회 복귀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고, 어떻게 복귀하셔서 이 자리까지 오셨습니까?
◇ 김용덕 : 사회에 나와서 복귀했을 때에 정말로 군대에서 극한 상황까지 갔기 때문에, 어떠한 일이라도 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회에 희망을 가지고 오게 되죠. 하지만 현실은, 사회에 나와서 우리가 접하는 환경은 저희들이 생각하는 사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다음부터 여러 가지 안 좋은 유혹의 손길이 오기 때문에 저희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그 유혹의 손길을 잡을 수밖에 없는 거죠. 그 길로 자꾸 가다 보니까 점점 빠져나올 수 없는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아마 제가 우리 회원들을 조사해 보니까 한 60% 정도의 회원들은 대다수... 예를 들어서 지역 이권에 앞잡이를 쓴다든지, 어떤 종교 단체에 쿠데타의 앞잡이로 쓴다든지 이런 데 무수하게 이용당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거죠. 그래서 그분들이 ‘아,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마 2004년도에 정부에다가 호소하기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국가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못 했고.
◆ 박귀빈 : 지금 말씀하셨습니다. 2002년이 되어서 법원이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을 했고, 2004년에 특별법이 만들어졌잖아요. 그때 어떠셨어요?
◇ 김용덕 : 아, 저희들 다들 부둥켜안고 울었습니다마는, 끝까지 가는 과정을 아시는 국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기억하시는 거는 가스통밖에 기억 안 하시는 것 같은데, 그것보다 더 많은 저희들의 무언의, 아니면 무폭력 시위를 통해서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 무수하게 많은 세월을 했지만 일절 정부로부터는 실체 인정이나... 지금까지도 실체 인정이나 명예 회복도 안 해주셔서 마지막에 할 수 있는 방법이 그거밖에 없다 해서 가스통을 들었지만, 정말로 그 결과에 그런 최소한의 유공자 단체만이라도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직도 저희들은 실체 인정을 못 받아서... 지금 현재 참전 군인들에 대한 예우가 상당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북파공작원들은 참전 시에 임무 수행에 있던 사람들은 참전 군인이라고 예우도 못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이죠? 국가가 당신들 실체를 인정 안 하기 때문에 안 하는 거예요. 또 하나는 북파공작원들이 이루어낸 전과에 대해서는 정부가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다대포 사건에 대해서 다대포 간첩 생포 사건도 저희들 북파공작원들을 투입해서 그동안 계속 실패하다 보니까 생포를 해야 되겠는데, 중무장해서 오는 북 간첩들을 생포를 해야 되는데 할 수가 없으니까 저희들을 투입해서 생포를 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결과는 뭡니까? 일반 부대가... 매스컴도 그렇게 방송을 했고 지금도 일반 부대의 공적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모든 명예 회복 중에 하나의 전과 인정, 실체 인정 아무것도 못 받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정부에 가장 바라시는 거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김용덕 : 대한민국 특수임무 북파공작원들은 아주 약한 존재입니다. 현역 시절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전사로서 국가를 위해서 정말로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지금 저희들 남아 있는 것은 명예 회복인데, 그 명예 회복 중에 첫 번째는 실체의 인정입니다. 실체를 인정해 주시고, 저희의 전과를 인정받고 싶습니다. 큰 것도 아니고 왜 똑같은 참전 임무 수행을 했는데... 저희들은 북파공작원이라는 이유로서 참전 전가마저도 인정 못 받는지. 저희들은 국가로부터 정말 이거에 대해서 되묻고 싶습니다. 정말 우리 실체를 인정받아서 1만 3천 명 공작원을 양성해서 전사자가 무려 7,726명이 발생했습니다. 아마 6.25 전쟁 이후에 월남 전쟁보다 더 많은 전사자가 발생됐음에도 불구하고, 국회로부터 실체를 인정 못 받아서 그분들의 위패마저도 모실 장소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그분들의 위패를 모실 장소와 정부로부터 정말로 국가를 위해서 충성했던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정부가 지정한 장소에 묻힐 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귀빈 : 그리고 20초 있는데요. 이거는 국민들께 북파공작원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란다 짧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김용덕 : 아까 말씀드렸듯이 현역 시절에는 가장 용맹스럽게 대한민국을 위해서 충성하고 애국을 위해서 몸을 바쳐 왔습니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 복귀돼서 우리들의 생활상은 정말로 비참하기 그지없고, 대한민국 생활 수준 이하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들 북파공작원들을 기억할 때마다 안 좋을 때마다... 드라마가 생겼을 때 아니면 영화가 나올 때 아니면 계엄이 나왔을 때 기억하시는데, 그것보다는 정말로 진정한 북파공작원들의 애환을 돌아봐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귀빈 : 네. 지금까지 김용덕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장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용덕 : 예,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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