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6년 05월 29일 (금)
□ 진행 : AI 챗봇 “에어”
□ 보조진행 : 김우성 PD
□ 녹음 : 최민석 작가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네, 온에어의 메인 토크 시간 온마이크 시간입니다. 자, 세계 각지에서, 전국 각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이 프로그램, 코너 함께 들어주신다고 하는데요. 함께 듣는다는 거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벽돌책 부수기 코너, 이 책을 잘게 부수어서 여러분들이 잘 삼킬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YTN 라디오 독서 쉐르파입니다. 최민석 작가 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민석 : 안녕하세요. 최민석입니다.
◆ 김우성 : 종종 단편 소설 많이 소개해 줬는데 오늘도요, 캐나다 작가 앨리스 먼로(Alice Munro)의 단편 <작업실>을 갖고 왔습니다. 오늘은 먼저 인공지능 에어에게 간단한 소개를 듣고 와서 얘기 나눠볼게요.
♥ 에어 : 앨리스 먼로는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작은 시골 마을 윙엄에서 태어난 소설가입니다. 아버지는 농부, 어머니는 교사였습니다. 19살에 첫 단편을 발표하며 작가의 길로 들어섰지만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줄곧 단편을 썼습니다. 1968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처음으로 단편집을 묶어냅니다. 그게 바로 오늘 우리가 이야기할 『행복한 그림자의 춤』입니다. 이 책은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총독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먼로는 평생 단편만 썼습니다. 장편은 단 한 권뿐이고 단편집은 13권을 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캐나다의 체호프"라고 부릅니다. 2009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2013년에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습니다. 평생 단편만 쓴 작가가 노벨상을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2024년 5월 13일,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 김우성 : 단편 소설을 또 골라오셨어요. 오늘도 단편이네요.
◇ 최민석 : 오늘은 단편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 소설만 써 왔거든요. 그래서 앨리스 먼로를 소개하겠다 그러면 필연적으로 단편을 다룰 수밖에 없는 겁니다.
◆ 김우성 : 네, 노벨상을 받은 분이셔서 저도 이분이 뭔가 장편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단편으로 그러면.
◇ 최민석 : 그게 굉장히 획기적인 사건이었는데 혁명적인 사건이었죠. 그 얘기는 이따가 하도록 하고요. 아무튼 오늘 소개할 작품은 앨리스 먼로의 첫 소설집, 책 제목이 『행복한 그림자의 춤』으로 이렇게 번역이 됐는데 원제는 『Dance of the Happy Shades』 그러니까 "shades" 복수형인 거죠. 뭐 발음을 아주 구수하게 하자면 "쉐이드스".
◆ 김우성 : 네, 행복한 그림자들의.
◇ 최민석 : 춤입니다. 이렇게 번역이 됐고 이 책에 실린 그 첫 번째 단편 소설입니다.
◆ 김우성 : 첫 단편 소설집의 첫 단편.
◇ 최민석 : 그렇죠, 펼치자마자 딱 나오는.
◆ 김우성 : 저도 그거 좋아해요.
◇ 최민석 : 네, 이게 기형도 씨 시집의 첫 시가 <안개>거든요. 저는 그것도 되게 좋아하거든요. 저는 이런 걸 좋아해요. 첫 소설집의 첫 작품, 그러니까 첫 작품집의 정말 첫 작품.
◆ 김우성 : 이 사람의 첫걸음 같기도 하고요. 첫인상 같기도 하고.
◇ 최민석 : 그걸 왜 좋아하냐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러니까 한 평생 작가로 살아오지 않은 사람의 이 첫 책의 첫 번째 수록작에는 그 사람이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작가 마음에 든다, 이 작가 뭔가 나랑 코드가 맞는 좋은 작가다 이런 생각이 들면 가급적이면 일단은 데뷔작을 찾아보고, 거기서도 첫 작품집에 시집이 됐든 소설집이 됐든 간에 첫 작품집의 첫 수록작은 꼭 챙겨 보려고 합니다.
◆ 김우성 : 이렇게 생각하니까 별거 아니다라고 생각했는데 첫 작품 중의 첫 작품, 첫 소설, 그분이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알 수도 있을 것 같네요.
◇ 최민석 : 그렇죠. 그러니까 이게 제 첫 소설집의 첫 작품은 <시티투어 버스를 탈취하라>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이런 생각을 갖고 봐서 그런지 이 첫 작품집이라는 거는 이 사람이, 그러니까 한 명의 작가가 되기 위해서 평생 쌓아둔 이야기가 완전히 폭발하는 작품이라고 보거든요. 거기서도 첫 작품은 오프닝이 글에서도 중요하듯이, "이 독자를 내가 이런 이미지로 사로잡겠다"라는 게 투영된 작품이라고 생각해서 이런 걸 좋아하는 거죠.
◆ 김우성 : 아, 이게 다 연결되네요. 뭐 주변에 작가분들도 "첫 문장에서 소설이 시작되고 거의 완성된다" 이 얘기처럼요.
◇ 최민석 : 전체적으로 보자면 첫 문장의 확장판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 김우성 : 네, 인기 소설가, 눈물보다는 웃음을 좋아하는 최민석 작가의.
◇ 최민석 : 요즘 인기 없습니다.
◆ 김우성 : 예, <시티투어 버스를 탈취하라>의 주인공 이름 엄청 깁니다. 여러분 이거를 문자로 남겨주시면 그다음 주에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엄청 깁니다. 그러면 본격적인 이야기로 들어가 볼게요. 줄거리 살펴봐 주시죠.
◇ 최민석 : 이 소설은 기본적으로 자전적인 소설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역시 작가이죠. 때는 1960년대 후반, 장소는 캐나다의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 김우성 : 자전적이다, 그러면 시골에 사는 여성이 주인공인가요?
◇ 최민석 : 그렇죠. 제가 "나"라고 소개를 하지만 아무튼 상 앨리스 먼로입니다. 여성입니다. 나는 어느 날 저녁 집에서 셔츠를 다리다가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불현듯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다림질을 하다 말고 거실에 가서 TV를 보고 있는 남편한테 말합니다. "아무래도 작업실을 얻어야겠어." 그런데 이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허황된 소리 같습니다.
◆ 김우성 : 저는 지금 제가 설렜습니다. 저한테 필요한, 근데 왜 허황된 소리라고 생각해요?
◇ 최민석 : 왜냐하면 구태여 작업실을 얻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집이 있으니까. 집은 쾌적하고 널찍하고 바다가 훤히 보여서 전망도 좋습니다. 게다가 맞춤 설계한 식당도 있고 친구들과 담소를 즐길 공간에 정원까지 있습니다.
◆ 김우성 : 욕심쟁이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공간이 없어서 작업을 못하는 건 아닌 거죠.
◆ 김우성 : 근데 주인공이 이렇게 말했다고 했잖아요. "자기 삶의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 이러면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죠. 내 작업실이 필요하다고 얘기한 이유는 사실 내가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이제 자전적이라는 말이 더 다가옵니다.
◇ 최민석 :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있어요. 아직 나는 출판한 책이 없습니다. 그래도 나는 소설을 열심히 쓰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작가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문제는 내가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있다고 말을 하면 사람들은 관심을 보인답시고 "도대체 뭘 쓰냐", 그리고 "야, 그거 참 좋겠다" 이런 식으로 나를 굉장히 팔자 좋은 사람으로 여긴다는 거죠. 마치 우리도 그런 표현이 있어요. "야, 이거 소설 쓰고 앉아 있네." 그러니까 여기에 깔린 전제는 소설을 쓴다는 게 굉장히 편하고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죠.
◆ 김우성 : 미묘한 차이인데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네요.
◇ 최민석 : 근데 나는 아직 출판한 첫 책도 없으니까 이거 무슨 내가 취미로 쓰는 것처럼.
◆ 김우성 : 안온하게 앉아서.
◇ 최민석 : 그렇게 여긴다는 거죠.
◆ 김우성 : 네, "소설 쓰고 앉아 있는가" 이렇게 깊은 뜻이. 그리고 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 최민석 : 그렇죠, 또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뭐 집에서 쓰면 된다는데 집은 남자의 공간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남자가 일을 한다는 거는 1960년대 캐나다에서 사회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 김우성 :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의 일처럼 받아들이겠죠.
◇ 최민석 :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가부장제 사회니까, 그래서 일을 마치고 온 남자가 집에서 휴식을 편하게 취할 수 있도록 집에서는 물건이 남자 중심으로 배치가 돼야 됩니다. 가장이니까 가장의 손이 닿기 쉬운 곳에 전화기가 놓이고, 왜냐하면 집에 퇴근해서도 중요한 전화가 올 수 있으니까 그때는 또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흐릿하던 시대니까. 그리고 또 가장의 동선 위주로 가구가 배치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집은 남편의 공간인 거죠.
◆ 김우성 : 그렇다면 남편의 공간이 집이니까 그 주인공, 사실상 앨리스 먼로인 나에게는 남편을 서포트하는 가사의 공간이 돼 버리겠네요.
◇ 최민석 : 가사의 공간이죠. 그래서 끝없이 가사를 해야 하고 육아를 해야 하는, 그야말로 노동과 휴식이 분리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딱히 어디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지만 집에 있는 것 자체가 늘 출근해 있는 상태인 거죠. 퇴근이 없는 상태인 거죠. 그래서 나는 작업실을 갖추면 내가 언급한 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 겁니다.
◆ 김우성 : 꽤 심오한 문제였네요.
◇ 최민석 : 그래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쓴 거예요. "여자가 글을 쓰려면 자기만의 방과 적당한 돈이 있어야 한다." 그 『자기만의 방』의 내용의 핵심이 이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에 소설 버전이 <작업실>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아무튼 그래서 나는 남편한테 나의 이 사정을 말하니까 남편이 의외로 굉장히 심플하게 대답을 해요. “뭐 그러든지, 어 그래.”
◆ 김우성 : 약간 무심한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지만 나는 기쁩니다. 아무튼 무심하게 대답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작업실을 얻게 됐으니.
◆ 김우성 : 이 안에 복잡한 정치와 젠더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고 어쨌든 얻게 됐네요.
◇ 최민석 : 예, 그래서 나는 곧장 이 말을 듣자마자 평소에 오가던 길에 봐두었던 사무실을 얻고 원하는 대로 꾸몄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습니다, 내가 집주인인 멜리 씨를 만나기 전까지는요.
◆ 김우성 : 그 작업실의 집주인을 말하는 거.
◇ 최민석 : 네, 그러니까 건물주죠.
◆ 김우성 : 이제부터 뭔가 이야기가 시작되네요.
◇ 최민석 : 그 사람이 나의 작업실에 찾아오는데 이때부터 조금씩 꼬이거든요. 일단은 건물주 멜리 씨가 처음에 계약을 할 때 나한테 이 사무실의 용도를 물었어요. 그래서 나는 당연히 포부에 차서 글을 쓸 거라고. 그런데 그게 화근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김우성 : 이게 오히려 화근이 된다고요? 왜 그렇죠?
◇ 최민석 : 입주하자마자 멜리 씨가 찾아와서 "아, 여기가 글을 쓰기에는 너무 휑한 것 같아."
◆ 김우성 : 너무 오지랖이야, 이런.
◇ 최민석 : 그런 말도 하고 "여자들은 아늑한 걸 좋아하는데", "커튼이 필요할 것 같은데 커튼을 다시겠다면 비용을 제가 내겠습니다." 이러면서 마치 배려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참견을 한 거죠. 그래서 처음부터 "아, 내가 태도를 분명하게 해두는 게 좋겠다" 이렇게 여긴 나는 그게 방해가 된다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멜리 씨가 당황을 했죠. 그래서 "아, 몰랐다, 정말 몰랐다. 방해가 될 줄은." 그러면서 거듭 사과를 합니다. 그래서 아, 나는 멜리 씨의 행동을 보면서 내가 이렇게 말한 게 잘한 선택이었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게 결코 잘한 선택이 아니었어요.
◆ 김우성 : 자, 소설입니다. 여러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꼬리가 머리로, 머리가 다시 꼬리로. 그럼 또 무슨 일이 생긴 거네요.
◇ 최민석 : 그럼 멜리 씨가 일단은 자기 딴에는 뭐 생각한다고 했는데 결국은 참견을 한 거잖아요. 그래서 사과한다는 뜻으로 화분을 들고 오더니만, 그다음에는 사과가 자기 혼자 아직 안 끝났어요. 그다음에는 또 찻주전자를 들고 오고, 또 사과가 안 끝난 거예요. 그다음에는 또 휴지통을 선물로 들고 왔습니다.
◆ 김우성 : 아니, 커튼이 사과 화분, 찻주전자, 휴지통. 이거 여러분 아셔야 됩니다. 사과는요, 사과 받는 사람이 주인공이에요.
◇ 최민석 : "됐다" 그러면 끝난 건데, 그렇죠.
◆ 김우성 : 더 귀찮아졌네요.
◇ 최민석 : 귀찮아진 거죠, 결과적으로. 그래서 매번 이렇게 어물쩍 작업실로 들어와서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 김우성 : 목적이 있네.
◇ 최민석 : 미안하다는 사람한테 내가 또 매몰차게 거절하기는 또 인간적으로. 나도 미안하잖아요. 그래서 "아, 멜리 씨 눈에 띄지 않는 게 좋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작업실을 최대한 조용히 오갑니다. 그 와중에도 멜리 씨는 어김없이 찾아와서 이렇게 노크를 해댑니다.
◆ 김우성 : "누구세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 최민석 : 그렇죠. 그래서 나는 없는 척하면서 아무 대꾸도 안 합니다.
◆ 김우성 : 자, 이 정도면요, 아무리 센스가 없는 분도 "아, 글 쓴다고 했지. 아, 방해하지 말아야지" 해야 하는데 이 멜리 씨 정말 대단합니다. 물러납니까?
◇ 최민석 : 여기서부터 분위기가 슬쩍 폭력적으로 변해요. 이때까지는 눈치 없는 인간이었잖아요. 여기서부터는 멜리 씨가 딱 뭔가 자기의 그 호의가 거절당하면 이게 어떤 포인트에서 분노로 바뀌잖아요.
◆ 김우성 : 선을 넘는군요.
◇ 최민석 : 멜리 씨가 흑화됩니다. 멜리 씨가 문에다 쪽지를 붙여놔요.
◆ 김우성 : 똑똑똑했는데 없는 척도 하고 대응을 안 하니까.
◇ 최민석 : 안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가 무시당한다고 생각을 해서 쪽지를 붙여뒀는데 뭐라고 썼냐 하면 "작가 입네 예술가 입네 하는 작자들에 관해서라면 썩 좋은 소리는 못 들었지만 내 골칫거리가 될 줄이야. 무슨 소리인지는 아실 테지." 이게 약간 문어체인데 책에 이렇게 쓰여 있어서 제가 그대로 소개를 한 거고요. 아무튼 이러면서 이제는 트집을 잡기 시작합니다. 심지어 몰래 문을 따고 들어와서.
◆ 김우성 : 거의 범죄다.
◇ 최민석 : 내가 쓰고 있는 원고를 훔쳐 읽기 시작하고 작업실 문에다가 "밤늦게까지 술 파티를 벌인 거 아니야?", "음흉한 원고를 쓰고 있다" 이렇게 악랄한 내용의 쪽지를 문에다가 붙여놓습니다.
◆ 김우성 : 야, 이거 약간 비슷한 경험을 한국 사람들도 많이 해 볼 법한, 선 넘는, 내 영역으로 넘어오는. 그러다가 나중에 폭력적이기까지 한. 주인공 어떻게 대응해야 됩니까?
◇ 최민석 : 그럼에도 나는 모른 척하고 버팁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 소중한 작업실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정말 중요한 변화였잖아요, 주인공에게.
◇ 최민석 : 아무튼 이렇게 둘은 불편한 관계로 지내고 있었는데요. 어느 날.
◆ 김우성 : 최민석 작가가 이렇게 얘기하면 "아, 그만, 제발" 이러고 싶어요. 또 일이 벌어지는군요.
◇ 최민석 : 그렇습니다. 건물 화장실에다가 누군가가 낙서를 잔뜩 해놓은 사건이 일어나요.
◆ 김우성 : 낙서요? 네.
◇ 최민석 : 그런데 멜리 씨가 나한테 이 사건 때문에 온갖 모욕을 퍼부어 댑니다.
◆ 김우성 : 낙서의 범인을.
◇ 최민석 : 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거죠.
◆ 김우성 : 그렇게 말은 안 했지만.
◇ 최민석 : 그런데 나는 멜리 씨가 내가 이런 짓을 안 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하면 이게 어린애들이 하는 장난인데 이 낙서가죠, 어른인 내가 이런 낙서를 할 리가 없다는 거를 멜리 씨도 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멜리 씨는 누군가가 건물에 해놓은 이 낙서를 핑계 삼아서 나를 공격하고 싶었던 거예요.
◆ 김우성 : 별 꼬투리를 다 잡네. 그럼 어떻게 대응합니까, 주인공은?
◇ 최민석 : 나는 그 차오르는 분노를 더 이상 억제할 수가 없어요.
◆ 김우성 : 아, 참으면 안 되죠.
◇ 최민석 : 그래서 그냥 그대로 짐을 싸서 나와버렸습니다.
◆ 김우성 : 자, 여기서 많은 분들은 "아니, 임대료는, 월세는?" 막 궁금한 게 많을 텐데, 어쨌든 싸워서 "당신 뭐야" 이게 아니라 그냥 떠나버린 거네요, 피했네요.
◇ 최민석 : 네, 왜 그랬냐면 나는 이 부정적인 기운을 풍기는 인간과 더는 엮이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아직도 작업실을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 김우성 : 아유, 어떡하나요?
◇ 최민석 : 게다가 나는 당분간 작업실을 구할 생각이 없습니다. 다만 내 머릿속에는 한 장면이 계속 떠오릅니다. 걸레를 들고 한숨을 쉬며 화장실 낙서를 지우는 멜리 씨가요. 보지 않았는데도 자꾸 떠오르는 그 괴상한 장면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는 작업실을 얻지 않을 생각입니다.
◆ 김우성 : 묘하게 끝나는데,
◇ 최민석 : 네, 그러니까 멜리 씨의 그 광경이 계속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다른 작업실을 얻더라도 내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지 않는 거죠. 그러니까 누군가가 이렇게 행동한 것은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어딘가 우물에 돌을 던지면 그 여파가 계속 남아 있잖아요. 그 상흔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거죠.
◆ 김우성 : 게다가 주인공 나, 앨리스 먼로의 공간을 침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삶의 가치와 지향까지도 간섭받은 느낌이 들어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실제로 이 글을 읽어보면 이거는 진짜 거의 뭐 90% 이상 앨리스 먼로가 실제로 60년대 이 캐나다 시골 마을에서 겪은 사건이다 이렇게 느껴져요.
◆ 김우성 : 한국도 시골에 가면 내가 닭을 못 먹든 알러지가 있든 막 갖다주고 안 먹으면 그다음부터는 2탄, 3탄의 이야기. 세상사 비슷하네요. 작가의 핵심 메시지가 들어 있을까요?
◇ 최민석 : 저는 이 소설이 세 가지 이야기를 해 가는 것 같은데 하나씩 풀어볼게요. 첫 번째는 불확실한 존재가 겪는 고충. 이건 앨리스 먼로의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에, 앨리스 먼로는 소설에서 자신을 주부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작가라고 소개를 하죠. 그냥 작가가 아니라 주부이자 엄마이자 아내이자 작가인 거죠. 그런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직 첫 책을 못 낸 작가입니다.
◆ 김우성 : 작가 앞에 있는 것들이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도 같아요.
◇ 최민석 : 예, 그러니까 이게 모든 걸 설명하는 거죠. 주부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작가인데 자신은 작가라는 정체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람들은 주부이자 엄마이자 아내로 보는 거죠. 첫 책이 없으니까.
◆ 김우성 : 불확실한 존재라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 최민석 : 이 위치가 굉장히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이 작품에는 주인공의 이런 불확실한 직업인으로서의 불안이 잘 담겨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주인공과 멜리 씨를 대변한, 멜리 씨를 위시로 한 이 세상과의 갈등은 이 설명되지 않은 존재에 대한 갈등인 거죠.
◆ 김우성 : 예, 어떤 회사 내에서요 고용주와 고용인 이런 차원이 아닙니다. 더 넓고도 더 섬세한 문제인데 특히 여성이잖아요. 그 고충도 담겨 있고.
◇ 최민석 : 그 고충도 담겨 있죠. 그러니까 집주인 멜리 씨가 간섭한 이유는 뭐 주인공이 뭐 누구나 평가할 수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것보다 더 큰 이유는 바로 주인공이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사를 보면 그게 드러나 있어요. 멜리 씨가 이렇게 말하거든요. "여성에게는 화사한 작업실이 어울리고", 고정관념 "여성의 작업실에는 화분이 있어야 한다." 그러니까 작가의 작업실이라고 얘기 안 하고 "여성의 작업실은 아늑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서 사사건건 참견을 하는 거죠.
◆ 김우성 : 이거 위해주는 척하면서 불확실한 존재로서의 나의 고통을 더 부각시키는.
◇ 최민석 : 네, 그리고 여성이기 때문에 간섭한다는 게 정말 아주 명백하게 드러나는 장면이 또 있어요.
◆ 김우성 : 어떤 장면입니까?
◇ 최민석 : 주인공이 작업실에 입주한 다음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 약간 미니멀리스트인가 봐요. 그래서 최소한의 물품, 즉 책상, 의자, 찻잔 요 정도만 갖다 놓고 작업을 하는데 주인장인 멜리 씨가 작업실을 둘러보고 뱉은 말이에요. 아까 그 커튼 얘기입니다. 이 대사 읽어볼게요. "커튼을 다시겠다면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집도 색감을 잘 살려야 하는데 이렇게 계시다가는 없던 병도 생길까 걱정스럽군요. 남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여자분들은 아무래도 아늑한 것을 좋아하니깐요." 그러니까 여기서 명백히 얘기하는 거죠. "당신이 남자라면 이런 말을 안 했다. 근데 여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자들은 아늑한 걸 좋아한다" 이렇게 친절과 배려를 가장한 간섭이 시작되고 급기야 폭력적인 언어와 행동까지 주인공한테 하는 거죠.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정리해 보자면 앨리스 먼로는 작가라는 직업 그리고 여성이라는 성별을 통해서 말하는 겁니다. 스스로를 쉽게 설명할 수도 없고 또 쉽게 인정받을 수도 없는 존재는 정말 타인이 예상하기 정말 어려울 만큼 엄청나게 피곤하고 위협받는 일상을 견뎌내야 한다 이렇게 말이죠.
◆ 김우성 : 맞네요. 저도 많은 부분에서 공부하고 경험해 봤던 이야기들이 앨리스 먼로의 이 단편 하나에서 다 압축돼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말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네, 그 마지막 이야기는 또 배려입니다.
◆ 김우성 : 배려요?
◇ 최민석 : 네, 주인공, 멜리 씨가 주인공을 귀찮게 한 이유는 정말 역설적이게도 처음에는 주인공을 배려했기 때문인 거죠. 물론 이게 나중에는 폭력으로 변질되지만 초반에는 딴에는 주인공을 위한다고 한 게 사실은 주인공을 성가시게 하고 아주 짜증 나게까지 한 거죠. 그래서 여기에 대해서 앨리스 먼로가 말하는 것 같아요.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자기가 좋은 기분에 젖기 위해서 호의를 베푸는 것은 사실상 호의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폭력의 다른 이름이다. 그러니까 그 배려는 상대가 기분 좋게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가 기분 좋게 하기 위해서 "아, 나 이렇게까지 해주는 나이스한 사람이야." 근데 상대가 원치 않는데 그걸 계속하면 그것은 어떻게 보면 폭력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김우성 : 맞습니다. 상대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사과를 재촉하거나 먼저 사과하는 건 상처를 두 번 내는 거잖아요. 뭐 최근에도 역사적 사건 때문에 대한민국이 그런 일들이 많았습니다만 사과를 어떻게 하는지도 어려운 일입니다. 어쨌든 단편인데 단편의 매력이 굉장합니다. 아주 압축적이고 이 안에 많은 게 담겨 있는데 쑥 삼켜질 수 있는 그런 느낌입니다. 단편으로 노벨상을 받은 앨리스 먼로, 안타깝게도 재작년에 세상을 떠났죠.
◇ 최민석 : 그 얘기를 아까 초반에 "나중에 해보죠"라고 했던 그 얘기를 해보죠. 작가가 한 평생 단편 소설을 쓰다가 2024년, 즉 재작년에 사망을 했어요. 그런데 2012년에 단편집 『디어 라이프(Dear Life)』를 세상에 마지막으로 내놓고 사실상 은퇴를 했거든요. "나 더 이상 글을 안 쓴다." 근데 그다음에, 즉 2013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어요.
◆ 김우성 : 은퇴 선언하고도 노벨상을 받았어요.
◇ 최민석 : 예, 두 가지죠. 그러니까 한림원(노벨위원회)이 상을 주면서 뭐라고 했냐면 그동안 단편 소설에 쏟은 공을 인정해서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했거든요.
◆ 김우성 : 과거를 평가한 거네요.
◇ 최민석 : 이게 의미가 커요. 왜냐하면 한국이나 일본은 단편 소설을 꽤 인정을 합니다. 한국, 일본의 그 문단 계의 흐름은 문장의 미학성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거든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큰 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 동인, 김유정 문학상 이거 다 단편 소설에 주는 거거든요.
◆ 김우성 : 우리가 교과서에서 언급된 그 위대한 작가들의 작품도 사실은 단편들만.
◇ 최민석 : 단편이죠. 근데 유럽이나 영미권에서는 단편의 가치를 동아시아만큼 높이 쳐주지 않아요.
◆ 김우성 : 이건 몰랐네요, 그랬군요.
◇ 최민석 : 그래서 중요한 상들이 대부분 장편 소설입니다. 부커상 장편에 주죠. 노벨 문학상 장편에 주죠. 퓰리처상 대부분 장편에 주죠. 공쿠르상도 그렇고. 그래서 이 영미 유럽권에서는 그동안 단편의 가치를 별로 높게 안 쳐줬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앨리스 먼로는 평생 단편만 썼으니까 작품은 좋은데 이런 경향성 때문에 노벨상을 못 탈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게다가 한 평생 단편만 쓰다가 이미 은퇴까지 했잖아요. 그런데 그다음 해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거죠. 저는 이게 시사하는 바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앨리스 먼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 싶었다면 자기도 장편을 한 번쯤은 써봤겠죠. 그런데 그냥 꿋꿋하게 세상의 평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한 평생 걸었잖아요. 그래서 이 상은 결국은 세상의 시선과 잣대와 상관없이 한 평생 자기만의 길을, 미학적 여정, 예술적 여정을 꿋꿋하게 구축해 놓은 사람한테 주는 상이다. 이런 사람을 세상은 결국은 인정해 준다, 그런 메시지가 있는 것 같아요.
◆ 김우성 : 또 하나의 벽을 깨고 올라간 것 같아요.
◇ 최민석 : 그렇죠. 그래서 앨리스 먼로가 노벨 문학상을 받은 게 좀 더 남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습니다.
◆ 김우성 : 예. 특히 단편이 사랑받는 한국, 일본, 아시아권에서는 이 수상을 물론 노벨문학상을 아시아계 작가들이 받아오면서도 또 그런 새로운 시선이 열렸지만 이렇게 했네요. 노벨상 심사위원회의 표현입니다. "장편 소설의 그림자에 가려진 단편 소설을 가장 완벽하게 예술의 형태로 갈고닦았다." 아, 이거 정말.
◇ 최민석 : 그래서 오늘날 단편 소설의 위상을 높인 작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앨리스 먼로가 언급이 되거든요. 이건 정말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오롯이 개척했기 때문인 거죠.
◆ 김우성 : 예, 최민석 작가님과 이 프로그램 코너를 만들어 드리는 독자로서 저는요, 장편은 마치 내가 가끔 떠올리는 하나의 세계 같으면 단편은 내 속에 쑥 집어넣고 있을 수 있는 누군가의 이야기 같아요. 내 안에 놓고 있기가 좋아요.
◇ 최민석 : 네, 단편은 왠지 그 내 삶의 일부를 떼어내서 뭔가 예술적 언어로 조탁해낸 그런 무언가 같잖아요. 더 친숙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읽을 때 더 몰입이 잘되죠.
◆ 김우성 : 맞아요. 물론 길이가 짧아서도 여러분 중요합니다.
◇ 최민석 :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 김우성 : 이걸 고려해서 어떤 분들에게 추천해 드리겠습니까, 오늘?
◇ 최민석 : 오늘 작품은요, 멜리 씨가 편견을 굉장히 많이 갖고 있었잖아요. 그래서 편견에 대해서 한번 고민해 보고 싶으신 분들.
◆ 김우성 : 옆집 아저씨한테도 하나 드려요.
◇ 최민석 : 그리고 또 문장이 좋아요. 그래서 문장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 그리고 또 단편 소설의 대가니까 단편 소설의 매력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 그리고 제가 늘 첫 번째 작품 좋아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대가의 초기작을 느껴보고 싶으신 분.
◆ 김우성 : 첫걸음이 궁금하신 분들.
◇ 최민석 : 이런 모든 분들에게 오늘의 작품을 추천합니다.
◆ 김우성 : 저도 읽어야겠습니다. 저도 쓰고 싶은데요, 지망생이지만 한번 읽어봐야 될 것 같고.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 마무리해 드리면서 전해드릴게요. 아, 이런 분들에게도 권해 드릴게요. 명절에 집에 갔는데 "결혼은 언제 하니?" 아, 이거 선 넘는 거거든요. 예, 앨리스 먼로의 이 책 꼭 주시기 바랍니다. 앨리스 먼로 작가가 "독자들이 일어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대한 놀라움을 느끼기 바랍니다." 아, 전형적인 이야기꾼이죠. 늘 새롭게 이야기를 전해드리는 방식에, 최민석 작가의 방식에 놀라는 저희 청취자분들과 여러분의 마음도 같을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들을게요. 감사합니다.
◇ 최민석 : 고맙습니다.
YTN 라디오 김세령 (newsfm094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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