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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시간[월~금] 10:15~11:30
제작진진행: 박귀빈 / PD: 이시은 / 작가: 김은진
야당 의원들마저 '탁월한 영도력' 극찬한 與의원, TK '빨갱이 약사' 과거 재조명
2026-05-07 15:27 작게 크게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5월 7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전혜숙 전 의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시민학교 ‘K-여성정치’> 시간입니다. 약사 출신의 보건의료 전문가로 출발해서 비례 탈락, 공천 취소 이런 굵직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다시 일어나서 3선 국회의원 여성가족위원장, 여당 최고위원의 자리에 오른 여성 정치인이 있습니다. 치열한 정치판에서 오뚝이와 같은 뚝심과 오랜 현장 경험으로 실력까지 겸비하면서 자신의 길을 개척해 온 분이죠. 18대, 20대, 21대 3선 국회의원. 전혜숙 전 의원 오늘 K-여성정치 시민학교 7교시 선생님으로 모셨습니다. 선생님, 어서 오세요. 저희가 ‘시민학교’다 보니까 항상 선생님으로 제가 이렇게 호칭을 해 드립니다. 처음 오셨으니까 저희 청취자분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려요. 

◇ 전혜숙 : 예, 선생님이라고 하니까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그리고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이라는 의미 자체가 슬기롭다는 게 너무 좋고, 그리고 시민학교라서 또 굉장히 이미지가 좋아서. 저도 여기 오면서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잘 지내고 싶습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되게 마음에 드시나 봐요. 너무 감사합니다. 앞서 제가 쭉 설명을 간단하게 드렸지만, 최초의 여성·최연소 약사회장 거치셔서 3선 국회의원까지 오셨어요. 일단은 사실 남성분들도 굉장히 많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까? 여성 약사로도 인정받기가. 약사 회장을 하셨잖아요. 그것도 최연소부터 해서 또 정치에 입문하시게 된 그 계기까지가 굉장히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인지 간략하게 부탁드려요. 

◇ 전혜숙 : 1993년도에 정부가 ‘한약 파동’을 일으켰어요. 그때 한약의 조제권을 약사로부터 박탈하는 그런 일 때문에 젊은 약사들이 굉장히 분노를 하고. 저희 집행부에 있는 분들은 다 여당을 했고, 젊은 약사들은 ‘우리가 이렇게 해선 안 되겠다’ 하고 야당을 갔습니다. 근데 아시다시피 대구 경북이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대통령 되기 전이에요. 분위기가 어땠을까요? 

◆ 박귀빈 : 그때 어떠셨어요? 

◇ 전혜숙 : 김대중을 찍어달라고 하면 박카스를 바닥에 던져버리기도 하고, ‘이 약국에 안 온다’ 그러기도 하고. 그래도 대구 경북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끊임없이 그렇게 했어요. 저희들이 그 일을 한 것은 그냥 독립운동한 거하고 똑같은 일이라고 보시면 돼요. 그러다가 저희들이 젊은 약사들은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 그래서 PC 통신이라는 걸... 그 당시 하이텔 천리안. 혹시 아세요? 

◆ 박귀빈 : 저 들어봤습니다. 

◇ 전혜숙 : 그 하이텔 천리안을 통해서 PC 모뎀을 다 설치하고 전국의 하나로 되는 대화방을 만들었거든요. 

◆ 박귀빈 : 약사분들이요?

◇ 전혜숙 : 거기서 약사 정책이라든가, 처방이라든가 이런 걸 같이 공유를 했죠. 근데 문제는 제가 그때 사람들이 부추겨 가지고 ‘약사 회장을 나가라’는 거예요. 

◆ 박귀빈 : 부추겨서 나가셨어요?

◇ 전혜숙 :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43살의 젊은 나이에, 여성이 약사회장이 된 적이 없어요. 거기다가 나이도 제일 어리고.

◆ 박귀빈 : 몇 살 때 되셨던 거예요?

◇ 전혜숙 : 43살요. 

◆ 박귀빈 : 40대 초반에?

◇ 전혜숙 : 지금도 약사회장들이 보통 50에서 60 사이에 되거든요. 그 젊은 나이에 하는데 김대중을 했으니까. 얘는 빨갱이니까.

◆ 박귀빈 : 당시에는 좀 그런 이야기들이...

◇ 전혜숙 : ‘지지하지 마라’하고 도청 공무원까지 나섰어요. 도청 공무원이 우리 대의원들한테 다 전화를 한 거예요. 그래 가지고 ‘전혜숙 찍지 말라’. 그런데 우리 약사 회원들이 저에 대한 열망이 너무너무 강해서. 그 당시에 대구까지 오는데 도로가 굉장히 안 좋았어요. 3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한 명도 빠짐없이 다 나온 거예요. 전혜숙 만들려고. 그래서 제가 압도적으로 당선됐습니다. 

◆ 박귀빈 : 최연소 여성 약사 회장인 데다가 그리고 정치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를 바로 다 스토리로 풀어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시작을 하셔서 정치 인생을 걸어오셨는데, ‘오뚝이’라는 표현이 참 잘 어울리신다 이런 말씀 많이 들어보셨죠? 특히나 비례 탈락, 공천 취소, 경선 탈락 이런 좌절을 딛고 3선 최고위원까지 일어서셨는데. 특히나 유리 천장이 그 어느 곳보다도 강한 그런 곳인데, 우리 선생님을 버티게 했던 원동력, 힘 무엇이었을까 궁금합니다. 

◇ 전혜숙 : ‘오뚝이’는 혼자 힘으로 일어설 수 있잖아요. 오뚝이라기보다는 저는 주변에서 참 많이 도와줬어요. 그래서 제가 많은 여성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거는 ‘인간관계를 참 잘해야 된다’. 신뢰받고 서로 밀어줄 수 있는 그런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으면 여기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제가 그때 떨어졌을 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상임감사로 추천을 해서 건강보험상임감사를 갔거든요. 그런데 그게 참 잘 된 게, 우리가 그 의약품 DUR이라고 해서, 이번 코로나 때 큰 역할을 했는데요. DUR를 제가 심평원에 가서 장관님한테 말씀드려 가지고 그걸 하게 되는 계기가 됐어요. 그러니까 이게 안 좋은 것이 때로는 좋은 것이 되는...

◆ 박귀빈 : 전화위복이 되는군요.

◇ 전혜숙 : 전화위복이 됐고요. 또 제가 의원들하고 비례대표로 원내부대표 할 때 우리가 본청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한 달 이상을 농성을 했습니다. 

◆ 박귀빈 : 뭐 때문에 그러신 거죠? 

◇ 전혜숙 : 그때 이명박 정권에 맞서기 위해서 쇠사슬로 몸도 묶고 이런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어요. 지금은 우리 여당이 숫자가 많아서 마음대로 하는데. 그때는 상대방이 뭐든지 자기들 마음대로 하니까. 본청을 점거를 할 때 제가 거기 간식 먹는 거, 청소, 거기에 들어가는 여러 가지 일들을 제가 그냥 묵묵히 했어요. ‘여성 의원이 이걸 왜 하느냐’ 하고 따지는 사람도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거는 ‘우리 당 의원들이 불편하지 않고 힘들지 않아야 이 농성을 잘 이어갈 수 있다’ 하는 생각으로 그냥 제가 한 거예요. 그랬더니 나중에 정세균 우리 국회의장님이 그때 당 대표 하실 때인데, 의총에서 ‘전 의원 일어나라’고 그래서 일어났더니 ‘당신은 우리 당의 어머니 같은 역할을 이번에 했다’. 여러분 빨리 박수 한번 쳐주라고.

◆ 박귀빈 : 박수 받으셨네요. 우리 선생님이 처음에 정치 시작하신 게 몇 년도쯤이었죠? 

◇ 전혜숙 : 제가 정치를 시작한 게 2014년이요.

◆ 박귀빈 :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제가 뭘 여쭤보려고 하냐면, 지금이야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만 여전히 정치계의 여성들이 현격히 적은 수로 계시기도 하고. 실제로 예전에 ‘아이는 누가 키우냐’, ‘남편이 허락했느냐’ 이런 말씀을 들으셨다는 얘기를 제가 들어가지고. 이게 그 당시인가요? 정치 시작하시기 초창기에 들으셨던 말씀이세요? 

◇ 전혜숙 : 그때 당시는 은행원, 스튜어디스, 심지어 대기업. 지금까지 결혼하면 그만둬야 돼요. 

◆ 박귀빈 : 예전에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죠. 

◇ 전혜숙 : 그래서 여성들은 집에서 애 키우고 사회 활동 안 하는 분위기였어요. 여성들이 만약에 ‘내가 나가서 일을 하겠다’ 하면 남편들이 굉장히 반대를 많이 하고. 그리고 나가서 어떻게 하냐면 여성들이 하는 일들이 정해져 있는 일들이 많았어요. 

◆ 박귀빈 : ‘이거는 여성이 할 일’ 이런 식으로 정해져 있는 게 좀. 

◇ 전혜숙 : 그래서 그때는 육아휴직은 꿈도 못 꿨습니다. 그리고 또 출산 휴가를 해도 눈치가 보여서 출산 휴가 한 달을 받았는데 보름 만에 나가야 돼요. 

◆ 박귀빈 : 아이고.

◇ 전혜숙 : 그게 눈치 보여요. 계속 회사에서 전화 와서 사람들이 그때만 해도 애들을 키우기 위해서 이분들이 사표를 내고 경력 단절이 부지기수로 일어났습니다. ‘경력 단절’이란 말이 이런 일로 해서 일어났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오히려 남성들, 여성들 할 거 없이 같이 아이를 키워야... 현재처럼 애를 안 낳으려고 할 때 아기를 많이 낳을 수 있는, 공동 육아가 돼야 일과 가정이 양립되고 우리나라 경제도 발전한다. 그래서 제가 해외를 가봤어요. 가봤더니,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육아휴직이 여성만 있었어요. 

◆ 박귀빈 : 네.

◇ 전혜숙 : 그런데 외국에는 남성 육아휴직이 있는 거예요. 있는데 안 쓰면 아내한테 주는 것이 아니고 없애버리는 거예요. 

◆ 박귀빈 : 남편들 본인이 꼭 써야 되네요?

◇ 전혜숙 : 그래서 내가 ‘어떤 게 좋으냐’ 했더니 남자들이 어설퍼도 육아휴직을 받아서 애를 키우는 과정 속에서 남자들이 아이를 사랑하게 되고, 친가정적이 되고. 그리고 가정에 일찍 오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좋더라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 박귀빈 : 그래가지고 우리 선생님이 앞서 직접 겪으셨잖아요? 여성으로서 유리 천장과 차별의 순간들을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그래서 육아휴직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그러다 보니까 정치 활동 하시면서 결국 사람의 삶을 돌보는 일, 대표적으로 여직원들을 위해서 수요 공간을 가장 먼저 챙기신다거나. 말씀하셨지만 육아휴직 확대, 돌봄 정책 이런 것도 꾸준히 힘써 오셨잖아요? 그럼 많이 변화됐다고 느끼세요? 

◇ 전혜숙 : 예. 많이 나아졌어요. 제가 처음 할 때만 해도 직장 내에 어린이집이 잘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장 내에 어린이집을 항상 의무적으로 줘야 된다’ 하는 이야기를 제가 했었고. 그다음에 육아휴직뿐만 아니라 수유 공간이... 수유를 여성들이 하고 있으면 눈치가 보여서 수유 공간 확보를 못 하는 거예요. 제가 심평원에 있을 때도 그래서 ‘수유 공간을 만들어라’ 아기 엄마가 마음 편안하게 수유를 해야 될 거 아니냐. 그런데 직장 내에 어린이집이 없으니까 엄마가 너무 신경 쓰이는 거예요. 그래서 이거는 어린이집이 직장 내에 있어야 되고 또 그렇게 육아휴직도 해야 되고, 수유 공간도 만들어줘야 된다. 너무 안 돼 있구나. 왜냐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여성이 많아요. 여성이 많은데 거기 제 또래 정도에 있었던 사람들은 결혼 안 하고 혼자 지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 박귀빈 : 그게 혹시 제도적으로 뒷받침이 안 되니까 경력이 단절되거나 그런 걸 우려해서 안 하신 분들이 많으셨던 거예요? 

◇ 전혜숙 : 예. 가슴 아픈 일이죠. 그래서 ‘이렇게 해서는 절대로 안 되겠다’ 생각하고 제가 일을 하는 게 여성들만 위하는 일을 하는 게 아니고, 전체적으로 앞서 나가서 사회 전체의 일에 중요한 일을 하는데도... 저한테 ‘아이는 누가 키우냐’, ‘남편이 허락하냐?’고. 한마디 더 나가면 ‘나 같으면 다리 몽댕이 분질러 버린다’ 이런 거죠. 그래서 제가 ‘그대 같은 남편을 안 둬서 천만 다행이다’. 

◆ 박귀빈 : 우리 선생님 남편분은 많이 도와주시고 그러세요?

◇ 전혜숙 : 참 이해를 잘해주고 바깥에 활동하는 거에 대해서 늘 좋게 생각해줘요. 

◆ 박귀빈 : 그러니까요. 돌봄과 일·가정 양립 같은 것들은 우리 사회에 정말 많이 필요한 제도고, 이 체계가 잡혀야 된다는 건 누구나 다 공감하고 있는 내용이고. 그 ‘선구자 역할’을 하셨던 분이 바로 우리 선생님이신 건데요. 그래서 남성 육아휴직도 점점 증가하고 있고, 남성 육아휴직 도입도 강력히 주장을 해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 선생님의 한 12년간의 의정 활동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성과가 있는데요. 바로 ‘미투 3법’입니다. 그 당시에 여야 대치가 굉장히 극한 상황이었다고 알고 있고, 그런데 극적으로 이 ‘미투 3법’을 유일하게 통과시키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 당시 얘기 간략히 부탁드려요. 

◇ 전혜숙 : 그 당시 분위기로 치면 미투 3법이고 뭐고 아무 법도 통과 안 될 분위기였는데... 그래서 제가 그때 뭐라고 했냐면 그때 마침 우리 국회의장님이 ‘여성가족위원회 사무실을 빼라’는 거예요. 

◆ 박귀빈 : 그 당시 여성가족위원장이셨잖아요.

◇ 전혜숙 : 내가 되자마자. 왜? 문화관광위하고 교육위원회가 같이 있다가 분리되는데 ‘문화관광위하고 교육위원회를 줘야 된다’는 거예요. 위원장 맡자마자 사무실 뺏기게 생겼잖아요. 그리고 또 그때 아실지 모르지만 2018년도에 서지현 검사 ‘미투 사건’으로 세계가 그때 들불처럼 일어났어요. 우리도 광화문에서 매일 집회하고 있었거든요. 1월 쯤 집회하고, 제가 위원장이 됐을 때가 굉장히 불이 많이 타오를 때예요. 그래서 제가 여야 간사를 불렀어요. ‘내가 여당이지만 여당 국회의장이 방 빼라는데, 도대체 여성 인권에 대해서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우리 위원회 빼는 게 말이 되냐. 우리가 지키자’ 그러니까...

◆ 박귀빈 : 두 분이 뭐라고 하시던가요? 

◇ 전혜숙 : 위원회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 전혜숙 : 보통 여당이면 여당 편을 들어야 되는데, 그게 아니고 여성가족위원회를 지키자 하니까. 그 당시 야당 간사가 두 분이었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그분들이 함께 해 가지고 국회의장 찾아가고. 결국 교육위원회는 7억 원을 들여서 위원회를 만들고, 저희 위원회는 그냥 그대로 존치를 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단결을 한 거죠. 단결을 하면서 야당 간사들이 저한테 뭐라고 이야기하냐면 ‘탁월한 영도력을 지니신 지내신 위원장님이다’.

◆ 박귀빈 : 영도력이라는 표현 나왔습니다. 

◇ 전혜숙 : 그 이야기를 야당 간사 두 분이 다 하신 거예요. 그래가지고 무슨 김정일도 아니고 이렇게 발언을 하시나 이런데 자기들은 여성 운동에 대해서 굉장히 센시티브한 분인데 그렇게 되니까 속상한 거죠. 그래서 제가 그걸 찾아버리니까 이분들이 ‘그렇게 하자’.

◆ 박귀빈 : 영도력이라는 표현까지 나온 이유가, 왜냐하면 당시에 여야 대치가 굉장히 심한 상황인데. 한 2018년도 정도였나요? 그 극한 대치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여야가 ‘미투 3법’이 합의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표현이 나왔겠죠. 

◇ 전혜숙 : 그래서 법안 통과가 전체 상임위에서 2등 했어요. 23개 법안을 한 개도 탈락 안 하고 100% 통과를 하니까. 그게 통과율이 엄청 높아져 버렸죠. 남성 의원들은 조금 거북하기도 했겠지만, 우리가 워낙 강하게 이야기하니까 다 동의해 주고. 그래서 그게 그 당시 광화문에서의 불길 이런 게 2018년을 기준으로 해서 여성의 인권이 완전 달라진 거예요. 2018년 전에는 그냥 길 가는 여성들도 막 남자들이 그냥 만지고, 지하철에서도 만지고 이래도 그게 죄가 안 됐어요. 그런데 2018년에 미투법이 되고 나서는 지하철이나 이런 데서 누가 함부로 행동 못하는 거예요. 2018년 이후에는 미투법 때문에 남자들이 초긴장을 해서 회식 문화가 없어졌잖아요. 

◆ 박귀빈 : 그렇게까지 영향을 미쳤군요.

◇ 전혜숙 : 예, 회식 문화가 없어졌어요. 그리고 안타깝게도 많은 분들이 그걸로 인해서 안타까운 일들도 있었고. 그런 거 생각하면 제가 마음이 아프기도 한데. 하여튼 체육계, 연예계 학교 할 거 없이 곳곳에 당시에 산재돼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기억하실 거예요. 그래서 제가 어떤 임원들하고 이야기해 보면 옛날에 우리 몸은 우리 몸이 아니었어요. 

◆ 박귀빈 : 그런 표현까지 나오실 정도였군요.

◇ 전혜숙 : 막 쓰다듬고 해도 뭐라고 싫은 소리를 못 했다는 거죠. 

◆ 박귀빈 : 참 여성 정치인의 역할이라는 것이, 입법 정치인 분들은 아무래도 국회에서 입법 활동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보니까 그거를 법적 테두리 안에 가지고 온다는 것, 여성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을 만든다는 것,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굉장히 큰 초석이 됐다고 생각을 하고. 이렇게 여성의 삶의 변화뿐만 아니라 앞서도 제가 말씀드렸지만 ‘약사 출신’이시기다 보니까 보건복지 전문가세요. ‘국민건강지킴이’로도 정말 다양한 활약을 하신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여성 정치인의 힘, 전문성을 갖춘 여성의 정치 그 의미를 한번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문성을 가진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해줘야 된다. 

◇ 전혜숙 : 국회의원들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너무 법률가만 국회의원을 하는 게 문제가 있죠. 그런데 외국에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그 지역의 대표로 와서 입법을 하는 거예요. 지금은 그게 너무 없어요. 그래서 걱정이 되죠. 저는 여당도 하고 야당도 했지만, 항상 제가 생각하는 거는 ‘여야를 떠나서 국민에게 올바른 거는 언제라도 해야 된다’ 저는 그런 생각이에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제가 여야 없이 그런 역할을 많이 하죠.

◆ 박귀빈 : 전문성을 갖춘 여성 정치 역할이 앞으로도 많이 필요하다 이런 말씀이신데. 제2, 제3의 전혜숙을 꿈꾸면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기르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후배 여성분들이 많이 계실 겁니다. 그분들에게 끝으로 ‘오늘 수업의 핵심 포인트’ 한 줄로 정리 부탁드려요. 

◇ 전혜숙 : 제가 학교 다닐 때 교장실이나 교무실을 다른 애들 못 들어가는 거 제가 다 받아서 들어갔어요. 가서 애들 문제점 선생님한테 이야기하고, 교장 선생님한테 이야기하고 이거 잘했거든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사람들은 문이 있으면 그 문에 대해서 ‘내가 저기 들어가도 돼?’ 그렇게 느껴요. 근데 저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 박귀빈 : ‘문을 열고 들어가라’ 오늘 핵심 포인트 한 줄입니다. 여러분 문을 열고 들어가십시오. 지금까지 전혜숙 전 의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YTN 라디오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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