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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13:00~13:35^
제작진기획 : 김우성 장정우 / 연출 : 김세령 / 진행 : AI챗봇 “에어”/ 인간보조출연 : 김우성 외.
아이 낳으면 원시인? 패륜적인 나라가 어떻게 '멋진 신세계'?
2026-03-20 15:15 작게 크게
YTN라디오(FM 94.5) [YTN ON-AI RADIO]
□ 방송일시 : 2026년 3월 20일 (금)
□ 진행 : AI챗봇 “에어”
□ 보조진행 : 김우성 PD
□ 출연 : 최민석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김우성 : 네. 금요일을 기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전쟁 이야기도 하고, 주식 이야기도 하고, 또 영화 이야기도 하면서, AI의 다양한 얘기를 하면서도 결국은 AI와 인간의 관계에서의 인간의 마음, 생각. 이게 가장 궁금하잖아요? 그 이야기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금요일이니까요. 좀 마음 편안하게 운전하시면서, 러닝 하시면서, 또 집안일 하시면서, 일하시면서 이 코너 사랑해 주시는 분들 오늘도 많이 와서 들어주십시오. 왜냐고요? 어려운 책, 혹은 알고는 있는데 안 읽어본 책. 이런 책을 쉽게 도달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독서 셰르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 이분이 네팔에서 태어났으면 이름이 갈 길이 쿠만리. 최민석 작가 오늘도 스튜디오에 나와 주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최민석 : 안녕하십니까? 쿠마리 최민석입니다.

◇ 김우성 : 예. 도대체 그 갈 길의 끝엔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 최민석 : 구만 리 가면 끝나겠죠? 지금 한 8만 9천 리 정도 왔기를 기대하면서, 늘 방송에 임하고 있습니다.

◇ 김우성 : 우문 현답이네요. 목적지보다 계속 그 길을 가고 계신 분입니다. 그렇게 책과 작품의 세계를 최민석 작가의 시선에서, 또 AI 프로그램의 분위기에서 좀 편안하게 여러분들께 전달 드리니까요. 오늘도 즐겨 주시면 됩니다. 왜냐고요? 이거 쓰여진 거 보면, 작년에 쓰여지지 않을까 싶은데, 무려 약 100년 전에 쓰여진 책입니다. 그러면서도 굉장히 SF적 요소를 담고 있는 책인데요. 오늘 책을 쓴 작가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거든요. 정말 헉소리 나게 저희 와이프도 이 책 너무 좋아합니다. 올더스 헉슬리부터 소개하고요. <멋진 신세계>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요?

◆ 최민석 : 농담 삼아 그 말씀을 해 주셨는데, 굉장히 박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 <멋진 신세계>는 소설이 아니라 생물학 서적이 아닌가 싶을 만큼 생물학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거는 작가의 집안 내력과 연관이 있습니다.

◇ 김우성 : 많은 분들이 이 방송 들으면서 ‘작가를 이해하니까, 작품이 더 이해하기 쉬워졌고, 폭이 넓어졌다’ 얘기하는데 역시 오늘도 나옵니다. 저는 굉장히 뭐랄까 상상력이 풍부한 줄 알았는데, 과학적인 이해가 많은 분이군요. 집안 내력이 그래서 그렇다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 최민석 : 올더스 헉슬리는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생물학자를 배출해 온 집안에서 자랐습니다. 그중에 동생 앤드류입니다. 앤드류 헉슬리는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이기까지 합니다. 자연스럽게 이렇다 보니까, 올더스 헉슬리도 생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원래는 의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려고 했죠. 그런데 불행히도 18살 때 한쪽 눈이 거의 실명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생물학자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 김우성 : 우와 아니 집안이 이 정도고, 노벨상 받을 정도면 아예 그쪽으로 머리가 특화된 유전자가 있을 정도인데 눈을 잃었다니. 그럼 그분 앞이 거의 잘 안 보이는 상태인 건가요?

◆ 최민석 : 근데 다행히도 나중에는 시력을 회복을 해요. 아무튼 그래서 결국 올더스 헉슬리는 굉장히 광범위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력을 바탕으로 문학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다룰 작품인 <멋진 신세계>라는 역작을 남기게 된 거죠. 아무튼 생물학에도 조예가 깊었기 때문에, 이 책에는 굉장히 많은 생물학적 지식이 활용이 되는데, 이게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김우성 : <멋진 신세계> 뭔가 제목에서는 멋진 신세계면, 어떤 멋진 신세계를 썼을까? 의문이 들 텐데, 점점 들어가 보겠습니다. 일단은 생물학이 이 소설의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  저희가 따지고 보면 잘 모르니까요. 어떤 역할입니까?

◆ 최민석 : 당연히 우리는 인간은 출산하는 거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 김우성 : 그렇죠.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 최민석 : 그렇죠.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인간이 그렇게 태어나는 게 아니라, 배양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유전자를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게 아니라, 유전자 조합을 해서 원하는 인간상을 만들어 낸다. 이게 바로 올더스 헉슬리가 그린 미래의 모습입니다.

◇ 김우성 : 우와 이게 1930년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도 대단하지만, 요즘 애 태어나기 전부터, 막 결혼하기 전부터 유전자 검사하고 난리인데, 이게 이렇게 더 구체적이었군요. 인간을 출산하는 게 아니라 배양해서 조합해서 만든다. 자, 그럼 줄거리로 들어가 봐야 될 것 같습니다. 일단은요. 우리 에어가 준비한 요약된 줄거리, 이야기를 살짝 듣고 와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에어 : 겨우 34층밖에 안 되는 나지막한 잿빛 건물. 그 정문 위엔 부화, 습성 훈련 런던 총본부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그 아래 새겨진 세 단어,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 이것이 9년 전쟁 이후 탄생한 새로운 세계의 신조입니다. 이곳에선 더 이상 생명의 신비란 없습니다. 국장의 엄숙한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집니다. 이것들은 인공 부화이다. 그리고 여기 꽂힌 시험관들이 이번 주에 생산된 난자 드리지, 알파부터 엡실론까지 철저히 국가의 필요에 따라 배양된 인간들. 수십만 번의 세뇌 교육은 그들의 의지를 박탈했고, 태어날 때 정해진 계급의 굴레를 행복이라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완벽한 톱니바퀴 사이에 결함이 생깁니다. 알파 계급이면서도 열등감에 시달리던 버나드 마르크스. 그는 남들과 어울리는 대신 체제가 가장 엄격히 금지하는 고독을 즐깁니다. 뜻밖에도 그는 전형적인 상류층 여성 레니나와 함께 야만인 보호 구역으로 향합니다. 문명의 혜택을 거부한 채, 과거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그곳에서 버나듬은 세계국이 추악하고 혐오스러운 것이라 가르쳤던 부모와 자식의 실체를 마주합니다. 그곳엔 세계국에서 버려진 여인 린다. 그리고 그녀가 부화습성국 국장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존이 있었습니다. 자신을 좌천시키려는 국장의 음모에 맞서, 버나드는 이들을 런던으로 데려오는 파격적인 선택을 합니다. 아버지라는 단어가 모욕으로 통하는 사회에서 국장은 몰락하고, 존은 일순간 유명 인사가 됩니다. 하지만 존이 목격한 신세계는 그저 가짜 행복에 절어 있는 수용소일 뿐이었습니다. 어머니 린다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존을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 분노한 존은 외칩니다. “이건 가짜야! 당신들은 인간의 영혼을 팔아넘겼어!” 존의 폭로는 폭동으로 번지고, 유일한 친구였던 버나드마저 섬으로 유배됩니다. 홀로 남은 존은 다시 문명을 거부하고 황무지 등대로 숨어들지만, 잔인한 구경꾼들은 그곳까지 찾아와 그의 고통을 즐깁니다. 결국 어느 날, 아침 등대 꼭대기에서 차갑게 식은 채 발견된 존. 그의 죽음은 소름 끼치도록 고요한 멋진 신세계의 완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며, 막을 냅니다.

◇ 김우성 : 우와, 에어의 설명으로 들으니까 더 실감납니다. 인공지능 에어가 이 작품을 설명하니까 말이죠. ‘아버지’라는 단어가 모욕으로 통하는 사회, 정말 독특하죠 여러분? 마치 공장이라는 느낌도 들고요. 작품 이야기로 좀 들어가 보겠습니다. 줄거리 듣고 왔는데, 일단 이분의 배경 들었어요. 생물학적으로 정말 빠방한 집안의 분인데, 올더스 헉슬리가 설정이 어마어마해요.

◆ 최민석 : 네. 그래서 이 소설의 장점은 치밀한 설정인데요. 1932년에 발표된 소설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아직도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굉장히 세세하게 그리고 있어서, 이건 혹시 예언서가 아닌가. 이런 기분이 들게 만들 정도인 거죠.

◇ 김우성 : 맞아요.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 신세계, 멋진 신세계 금지시킨 세 가지. 이거 알아야 되잖아요?

◆ 최민석 : 네. 그건 바로 예술, 과학, 종교. 요 세 가지인데, 이 세 가지를 왜 금지시켰냐? 그 이유는 이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사유하게 하고, 질문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인간은 원래 이런 욕구가 있으니까, 이걸 막으면 대체품이 있어야겠죠? 과거에 우리나라에서 이제 ‘3S 정책’이 80년대 있었듯이, 이 신세계에서는 누구와도 쉽게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자유연애 사회입니다. 그러니까 육체적 관계를 쉽게 맺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골치 아픈 생각을 못하게 만드는 촉감 영화라는 게 있어요.

◇ 김우성 : 이것도 신세계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우리 요즘 영화 보면, 4DX관 가면 향기도 나고, 의자 떨리고 그러잖아요?

◇ 김우성 : 물방울 툭 튀고, 바람 확 불어오고.

◆ 최민석 :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손에 장갑을 끼고 옷을 입어요. 그러면 그게 다 느껴집니다. 이게 그 영화를 보면서 모든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거예요.

◇ 김우성 : 네.

◆ 최민석 : 뭔가 상상이 되죠?

◇ 김우성 : 그러니까요. 미래로 왔다 간 것 같기도.

◆ 최민석 : 그러니까 이제 갱스터 영화를 보면, 내가 갱이 되는 거고. 진한 사랑 영화를 보면, 진짜 진한 사랑을 한 번 하고 나오는 거죠. 그리고 전자 골프와 전자 전구가 있습니다.

◇ 김우성 : 이건 닌텐도 아닌가요?

◆ 최민석 : 아니 비슷한 거예요. 직접 하는 것처럼 느끼는 거죠. 그러니까 정말 ‘3S 정책’과 유사한 거죠. 여기에 하나 더, 그래도 해결 안 되는 그 현실의 고통 있잖아요? 그것을 잊게 만드는 환각제 ‘소마’가 있습니다.

◇ 김우성 : 이거 대단하네요. 완벽한 통제.

◆ 최민석 : 네. 이 소설에서 상정한 신세계에서는, 계급에 따라 이름이 부여되거든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이렇게 해서 입실론까지 나가는데, 알파건, 델타건, 감마건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은 여가 시간에 이 환각제 ‘소마’를 복용하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거죠.

◇ 김우성 : 이게 1932년에 나온 작품이라는데, 올더스 헉슬리 잠시 타임머신 타고 왔다 가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세상 같아요. 주목할 게 또 하나 더 있다고 합니다.

◆ 최민석 : 네. 그리고 이 소설에서 노동자 계층은 엡실론과 감마인데, 이 두 계층은 책을 안 읽습니다. 사실 책을 못 읽는 거예요.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그 책을 손에 잡으면, 손에 전류가 흐르게 해서 ‘책은 위험하고 해로운 것이다’ 이런 인식을 주는 거죠.

◇ 김우성 : 조건 반사를 시켰네요. 종치면 멍멍 짖는 것처럼.

◆ 최민석 : 그렇죠. 세뇌를 시킨 거죠. 그런데 왜 그러냐? 책을 읽으면 인간이 사유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 기득권층이 만들어 놓은 이 사회 질서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 계층은 그냥 일만 하면서, 이 사회에 유지해 복무해라’ 그런 의미에서 책을 못 읽게 만든 거죠.

◇ 김우성 : 완벽한 통제 사회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만약에, 이 소설이 아니라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가 지금의 우리 세계였다면, 이 코너는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요. 우리 코너는 책이 있어야 되고, 독서가 있어야 되는데.

◆ 최민석 : 그렇죠. 네. 그래서 저는 우리 코너가 이 사회에 반드시 필요하고, 인간성을 회복하는 코너다. 그렇다고 생각을 해요.

◇ 김우성 : 네. 정말 작품 이야기 같지만요. 사실 또 기성 작가로서, 최민석 작가가 여러 작품에 붙어 있는 생각과, 이야기와 작품의 뜻, 혹은 해석을 나눠주니까 나만의 독서가 아니라 모두의 독서가 되거든요? 정말 여러분, 사랑해 주십시오.

◆ 최민석 : 갑자기 그런 홍보를 하십니까.

◇ 김우성 : 예. 홍보를 좀 했습니다. 자,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완벽한 통제가 느껴집니다. ‘아무 생각하지 마. 우리가 정해놓은 사람’ 이런 느낌인데, 이런 사회 실로 참 위험해 보여요.

◆ 최민석 : 그렇죠. 그리고 나아가서 꽃도 위험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줍니다. 이 꽃은 왜 위험하냐? 이런 인식을 심어줘야 휴식을 할 때 노동자들이 자연 속으로 가지 않고, 베드타운. 그러니까 잠만 자는 곳에서 살면서, 공장에서 일하는 거를 오히려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입니다.

◇ 김우성 : 이야, 여러분. 배두나 주연의 영화도 그렇고, 또 이 얘기와 거의 비슷한 구조를 가진 영화들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것보다 작품 속에서는 더 완벽하게, 그 세계를 묘사하는 것 같은데, 주인공 이름이 마르크스예요.

◆ 최민석 : 그렇죠. 이거 의미심장하죠.

◇ 김우성 : 의미심장을 넘어설 정도인데, 왜 그렇습니까?

◆ 최민석 :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여러 명이거든요? 그러니까 복수의 주인공이 나오는 거죠.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 버나드인데, 그 풀네임이 버나드 마르크스예요. 그리고 이 소설에서 나오는 문명색이라 불리는, 이른바 ‘신세계’는 안정과 물질 복지를 추구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건 그냥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이고 사견인데, 이 소설에서 말하는 신세계는 기본적으로 ‘유물론’에 입각한 세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이들이 겪는 고통은 물질의 부재에서 오고, 그 물질의 부재를 해결하면 고통도 해소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이 버나드가 ‘막스주의자’라는 것을 천명하듯이, 작가가 이름을 마르크스라고 붙였다. 저는 이렇게 이해를 했고요. 그리고 더불어서 이 버나드가 굉장히 불평등하면서도, 안정적인 기이한 체제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었어요. 전형적인 지식인인 거죠.

◇ 김우성 : 변화를 추구하려는 사람이네요?

◆ 최민석 : 네. 지식인인데, 나중에 이 버나드가 신세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존재가 돼요. 그가 권력과 자본을 다 갖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체제의 불합리를 수용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 체제를 수용하면서도 버나드는 이 체제의 모순점을 계속 비판한다는 겁니다.

◇ 김우성 : 버나드는요. 아까 말했지만 ‘생각하지 마세요. 변화 주지 마세요. 늘 정해진 대로 사세요.’ 이게 지금 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만들어 놓은 세계인데, 거기서 금지하는 고독도 즐기고, 좀 불만도 품고, 변화도 꿈꾸는데 결국은 수용을 합니다. 그런데 체제의 모순을 또 계속 비판해요. 이것도 모순인데요?

◆ 최민석 : 그렇죠. 근데 불합리를 수용해 놓고, 체제의 모순을 왜 비판하느냐? 왜냐하면 그 비판 행위 자체가 자기의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게 만들고, 자신의 지적 허영을 채워주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기가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이 사회의 기득권자이면서, 사회 체제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이다. 결국은 사회를 생각해서 비판을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지적 허용과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회를 비판하는 거다. 이런 점을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는 버나드 마르크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비판을 하는 거죠.

◇ 김우성 : 뭔가 지금의 모습과 너무 겹쳐 보인다 라는 생각 드실 겁니다. 많은 뉴스 매체에서 떠드는 사람들, 정말 체제를 비판하거나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인가, 나의 인정 욕구 기득권 이런 게 있는가. 그런데 또 특이한 게 하나 있습니다. ‘야만인 보호구역’ 저는 여기서 오면 야만에 속했을 것 같습니다만, ‘야만인 보호 구역’도 굉장히 의미심장합니다.

◆ 최민석 : 네. 이 작품에서는 미래 문명을 거부한 사람들을 야만인이라고 묘사를 해요. 왜 그러냐면, 이 야만인들만 오늘날 우리처럼 자연 출산을 합니다.

◇ 김우성 : 지금 이 세계에 존재하는 우리들은 다 야만인이네요? 이 기준에 보면.

◆ 최민석 : 우리는 거대한 야만인 종족인 거죠. 근데 이 신세계에서는 이 야만인들이 지정된 보호 구역에서만 삽니다. 좁은 구역이거든요. 그리고 배양을 통해서 태어난 이른바 문명인들은 보호 구역이 아닌 전 세계에 걸쳐서 사는 거죠. 그런데 이 작품에 주인공이 여러 명이 있다고 했잖아요? 복수의 주인공인 또 다른 사람은 존이라는 인물인데, 이 존이 야만인이에요. 근데 존이 가끔 자기 자신을 가리켜서 ‘인디언’이라고 표현을 해요. 그런데 원래 이 세상은 자연 출산을 하고, 자연스럽게 늙어가고, 사람이 죽으면 슬퍼하는 그런 사람들의 땅이었던 거죠. 우리 같은 사람들인 거죠. 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서는 야만인으로 그려지고, 보호 구역에서 살아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걸 보고 작가가 미국 사회를 비판하고 싶은 마음이 좀 있었구나, 쉽게 이해가 되는 거죠.

◇ 김우성 : 인디언이라고 하는 순간, 또 그 메타포네요.

◆ 최민석 : 그렇죠. 원래 미국은 원주민들, 네이티브 아메리카들의 땅이었는데, 그 사람들을 ‘인디언’이라고 부르면서 그 사람들을 ‘원주민 보호 구역’에서 살게 만들잖아요? 그리고 이주민들, 즉 소설에서는 문명인으로 등치되는 거죠. 이 사람들이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되어서, 보호 구역이 아닌 미국 전 지역에서 살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 소설은 읽어보면, 기본적으로는 SF 소설인데, 아까 지식인들이 체제를 수용하면서도 체제를 비판하는 건, 그냥 자신의 똑똑함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현실 풍자를 하잖아요? 그래서 SF 소설이면서도 동시에 정치, 혹은 세태 풍자적인 면이 굉장히 많은, 사회적 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는 거죠.

◇ 김우성 : 예. 마르크스라는 이름 때문에 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공장 현대 사회에 아주 톱니바퀴 같은 모양으로 그려놓고, 인디언이 있고. ‘인디언’이라는 이름도 참 특이해요. 사실 인도와 무관한데.

◆ 최민석 : 그렇죠. 그것도 웃긴 거죠.

◇ 김우성 : 그러면 이 내용 속에서 우리는 1930년에 아주 먼 미래를 너무 정확하게 읽어낸 듯한, 이 작품 속에서 여러 의미들을 뽑아냈습니다. 최민석 작가가 이 소설에서 좀 탁 짚어줘야 될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 있을까요?

◆ 최민석 : 저는 마지막 장면이 굉장히 문학적이라서 마음에 들었는데요. 그 소설을 쭉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가면, 주인공 중에 한 명인 야만인 존. 이 존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처럼 그려져요. 그러니까 정확히 묘사를 안 하고, 그런 식으로 묘사가 돼서 서술이 되거든요? 그런데 이때 ‘존의 몸이 등대에 매달린 채 좌우로 움직인다’고 쓰여져 있어요.

◇ 김우성 : 대략적인 모양이 그 의미가 있네요.

◆ 최민석 : 네. 그러니까 아마 바람에 흔들리는 걸 이렇게 묘사한 것 같아요. 근데 여기에  의미심장한 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일단 첫 번째는 위치입니다. 이게 ‘등대에 매달려 있다’고 하거든요? 등대는 목적이 사람들이 항해를 할 때,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바닷길을 비추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메타포인 거죠. 우리가 인생이라는 항해를 할 때, 등대가 없으면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릅니다. 고로 등대는, 인생의 기준점이자 이정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야만인인 존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장소가 등대라는 이 점은, 바로 문명인들한테 시사 하는 바가 있는 거죠. 생의 방향을 알려주는 곳에서 문명 질서를 거부한 야만인이 문명 세계로의 진입을 거부한 그 실패의 결과를 보여주는 거다. 간단히 말해서, ‘반면교사’를 보여주는 거죠. 그런데 굉장히 섬뜩한 엔딩이에요.

◇ 김우성 :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낌은요. 과연 이 야만인과, 문명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라고 궁금해지네요.

◆ 최민석 : 그러니까 문명인들에게는 이게 이제 경고로 다가가는 거죠.

◇ 김우성 : 자, 그런 점에서 첫 번째 어떤 의미심장함도 있었지만, 이 마지막이 묘사하는 건 사실 앞서 여러 가지 아주 치밀하게 구성돼 있는 것에 대한 열린 결말 같기도 한데, 두 번째로 의미심장했던 부분도 짚어주시죠.

◆ 최민석 : 그런데 ‘존의 시체가 등대에 매달린 채 좌우로 움직인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때 마치 시계추처럼 움직여요. 그러니까 시계추는 좌우로 움직여야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시계가 오류 없이 작동하잖아요? 야만인의 죽음 소설의 표현에 따르면, 이 야만인의 죽음은  ‘문명인이라는 세계의 시곗바늘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선결 조건 같은 것이다’ 이런 암시를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 ‘신세계는 유지되고, 지탱되고 흘러간다’ 이런 느낌을 선사하는 거죠.

◇ 김우성 : 참 특이합니다. 태어난 인간들이 모두 내 의지로 태어나진 않아요. 배양돼서 조건을 맞춰 태어나서, 알파 등급으로 태어났던, 입실론으로 태어났던, 혹은 엄마 아빠의 사랑으로 태어났던. 그런데 죽음이라는 걸 마지막에 딱 놓으니까, 사실은 이 앞에 두 전제. 야만인과 문명이라는 전제 조건이 크게 흔들리면서, 최민석 작가가 해석하고자 하는, 설명해 주신 두 가지 의미에서 정말 크게 와닿았어요.

◆ 최민석 : 그러니까 소설에서는 존을 ‘야만인’이라고 표현을 했는데, 사실 야만인은 우리가 이해하기에는 ‘자연인’인 거죠. 자연 속에서 사는 게 아니라, 그냥 자연의 상태로 태어난 인간. 즉, 우리와 같은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인 거죠. 그런데 이 소설은 결국은 평범한 가장 인간다운, 인간의 희생과 죽음으로 이 문명인들의 세계가 작동된다. 이 일반인의 희생이 전제 조건이다. 그것을 마지막에 이렇게 등대에 매달린 시계추처럼 흔들리는 존의 시체로, 굉장히 문학적으로 끝내는 거죠. 그래서 그 점이 저는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 같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 김우성 : 맞습니다. 저희가 이런 많은 작품들을 이야기 나누면요, 정답이 아닙니다. 여러분. 최민석 작가의 시선에서 가이드를 해 주고, 또 저도 옆에서 따라가면서 추임새로 제 감상을 말하고요. 여러분들은 또 여러분들의 해석이 존재할 겁니다. ‘AI한테 열린 질문을 했더니 모두 똑같은 답을 했다’ 라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있었잖아요? 문학은 그렇지 않습니다. 100개의 열린 결말을 물으면, 천 개의 열린 답이 나올 수도 있거든요. 그게 문학의 힘인 것 같고요. 오늘도 최민석 작가 덕분에 그걸 알게 됐습니다. 저는요, 여기 등장하는 얘기가 사실 내 얘기 같기도 하고, 아이들을 또 좋은 대학에 보내려고, 직장에 보내려고 키우는 그 상태 같기도 한데, 어떤 분들이 좀 읽어보고 생각하면 좋을지 마지막 한마디 덧붙여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최민석 : 이 소설에서 책을 읽으면 전류가 흘려서 책을 못 읽게 만들거든요? 조건 판사. 근데 실제 책은 전혀 그렇지 않으니까, 당연히 부담 없이 그냥 읽으시면 되고요. 이건 농담처럼 얘기한 건데, 이 소설은 제가 이제 좀 해석을 덧붙이면서 사회 비판적인 면을 좀 부각을 시켰는데, 기본적으로는 SF 소설이에요. 그래서 미래 사회에 대한 상상을 극으로 달리게 만들거든요? 그래서 좀 상상하기를 좋아하고, 미래 사회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 기본적으로 SF 독자,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시는 분들한테는 취향에 굉장히 잘 맞을 거라고 생각이 들고요. 거기다 한 스푼 더 얹자면, 그냥 밝고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 난 조금 디스토피아 같은 좀 어두운 미래를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런 분들은 이 <멋진 신세계>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제목이거든요? 전혀 멋지지 않습니다.

◇ 김우성 : 이제 ‘멋진 신세계가 진짜 멋진 게 아니네’ 라고 하실 거예요.

◆ 최민석 : 그렇죠. 내 삶이 우울할 때 이 암울한 미래를 읽으면, 오히려 ‘지금 내 삶이 낫네’ 이런 생각이 들 겁니다. 그래서 조금 나의 그 삐딱한 취향을 좀 충족시키고 싶은 분, 그런 분들에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추천합니다.

◇ 김우성 : 예. 최민석 작가의 추천으로 읽으신 분들은요, 전기 통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이들은 전기가 안 통해도 안 읽어요. 어떻게 하면 책 좀 읽게 할까요? 그런데 가족끼리 모여서 “야 이거 봐봐. 재밌어” 읽어보시고 끝에 마지막 문학적이라는 부분 있잖아요? 사실 이 끝부분이 굉장히 사람마다 다를 것 같아요. 여러분들은 과연, 그 마지막 엔딩 장면과 주인공의 대사에서 뭘 의미할까? 라는 생각이 있으시면, 저희 홈페이지나 혹은 댓글창에다가 남겨주시면, 저희가 또 다음 번에 한번 수다를 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역시 마치 네팔에 여행 와서, 조용히 책 한 권 쌓아놓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라디오에서 마련해 주신 분입니다. 최민석 작가와 함께 했습니다.

◆ 최민석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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