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6년 1월 30일 (금)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사상자는 200만 명에 육박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는데요. 종전 평화 협상이 이루어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러시아가 고강도 공세를 이어가면서 민간인 피해도 계속 나오고 있고요. 지난해 이 참혹한 전쟁의 현장을 직접 찾아서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삶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공개된 북한군 포로들의 이야기까지 전해 주신 분이 있습니다. 김영미 국제 분쟁 지역 전문 PD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PD님, 어서 오세요.
◇ 김영미 : 안녕하세요.
◆ 박귀빈 : 잘 다녀오셨습니까? 귀국하신 게 언제죠?
◇ 김영미 : 귀국은 11월에 했고 그동안 방송 준비하느라고 편집하느라고 바빴어요.
◆ 박귀빈 : 맞습니다. 일단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다음 달이면 4년이에요. 직접 가서 보시고 온 느낌은 어떠셨어요?
◇ 김영미 : 제가 매년 갔거든요. 개전 초기부터 네 번째 간 건데. 갈 때마다 안 좋아지는 모습들, 계속 이렇게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까 안타까움이 많은데. 특히 우크라이나가 굉장히 추워요. 공중 폭격이나 이런 게 발전소라든지, 그다음에 에너지 시설 이런 데 많이 폭격이 되다 보니까. 올 겨울은 에너지 시설이 파괴된 역대급. 그러다 보니까 지금 수도 키이우에 전기가 안 들어온 지 한 열흘 넘었대요. 이 추위에 노약자들 같은 분들은 집 안에서도 영하 8도라고 하니까. 그래서 힘들어하는 모습들 그런 게 점점 국민들의 고통으로 다가오는 거고요. 최전선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굉장히 치열해요. 우리도 왜 종전 협상 있을 때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고 하잖아요? 고지전 하면서. 지금 똑같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이 전쟁이 되게 어려운 전쟁 같지만 영토 전쟁이에요. 땅을 얼마큼 가지고 가느냐 이런 거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땅을 뺏기고, 종전을 하기가 힘들고. 그다음에 러시아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그래도 4년간의 전쟁과 이 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할 거고. 그러다 보니까 평행선을 가는 거죠.
◆ 박귀빈 :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어느덧 이 전쟁이 4년째가 됐나’ 이런 생각이 들고 그 참상을 전해 주시니까. 일반인들, 주민들의 삶이 그렇다는 거잖아요? 지금 교전이 일어나고 있는 그 지역의 모습은 어떨까도 상상이 안 될 정도인데. PD님이 그쪽에 가서 북한군 포로를 실제 만나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취재기가 방송이 됐어요. 한 다큐멘터리 방송이 돼서 그거 보신 분들 많은 분들이 가슴 아파했다는 말씀 저도 전해 듣고 있고 저도 역시 그랬는데. 북한군 포로 2명을 직접 만나셨어요. 취재를 할 수 있게 된 그 시작도 너무 어려웠을 것 같아요.
◇ 김영미 : 이 프로젝트는 사실 제가 우크라이나 취재하고 있는데 북한군이 온 거잖아요? 그래서 저는 북한 관련 취재는 해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 부분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나 그게 되게 궁금했는데. 사실은 외신들도 많이 접근이 안 되는 부분이잖아요? ‘카더라’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래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한민국 언론은 이 카더라를 다 체크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군의 전력이 어떻게 1년 동안 바뀌었는지는 대한민국 국민은 알 권리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에 시도를 했는데. 다들 외신들도 ‘다 취재 안 된다.’ 왜냐하면 우크라이나 정부도 이 사실을 별로 말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우리 정부도 그렇게 저한테 호의적으로 생각 안 할 수도 있고, 러시아 정부도 마찬가지일 거고. 다들 반대하는 취재를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거죠. 제가 그걸 취재하다 보니까 실제 북한군 부대를 취재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북한군을 만나서 ‘이게 사실이니?’ 이렇게 물어봐야 되는 게 취재의 정석인데. 그렇게 못하다 보니, 그나마 포로로 잡힌 그 두 사람이 그래도 현역의 북한군이잖아요? 확인할 수 있는 루트가 그 사람들이구나라고 생각해서 처음에 섭외를 시작했고. 단순히 특종성 때문보다는 확인하는 과정에 ‘이 사람들의 증언이 반드시 필요하겠다’라는 판단이었습니다.
◆ 박귀빈 : 10월에 만나신 거죠? 작년 10월에 북한군 포로 2명을 만나셨고 11월에 귀국하셨다고 했어요. 지금 한 두 달 정도 돼 가지 않습니까? 만나고 온 그 두 사람에 대한 그 이후에 소식 전해 들은 거 있으세요?
◇ 김영미 : 일단 거기 수용소에 계시는 간수들이죠? 그 사람들하고 다 친해져 가지고 와서 물어보죠. ‘잘 있냐. 아프지는 않냐’ 특히 평강 군... 저희가 ‘리강’하고 ‘평강’이라고 했는데 백평강이 평강. 이거 가명입니다. 그래서 이 평강 군 같은 경우는 다리에 쇠심을 1년째 박고 있잖아요? 한국 같으면 한 한 달이면 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런 의료적인 처치나 이런 것들도 누군가 물어보는 사람도 없고 1년이라는 시간이 그냥 흘러갔던 거죠. 그래서 ‘혹시 아픈 데는 없나’ 이런 정도는 제가 물어보곤 합니다.
◆ 박귀빈 : 괜찮대요? 그게 그냥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인가요? 취재가 진짜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 영상에도 나옵니다. 그들을 만나기까지 한 6개월 정도 걸렸다고 말씀하셨어요.
◇ 김영미 : 일단 섭외를 해야 되잖아요. 저희 PD들은 섭외를 해야 되는데 막막한 거죠. ‘뭘로 섭외를 해야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특히 외신들도 굉장한 경쟁을 했었어요. 그들을 인터뷰하려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처음에 공개할 때 이미 얼굴을 다 공개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그때만 반짝 선전전을 이용하려고 했고, 그다음에 이걸 놓기로 해서 전혀 아무도 공개를 안 하다 보니. 제가 우크라이나 정부를 설득한 명분은 ‘안위를 확인하겠다’라는 부분이었어요. 그래서 잘 있는지, 그리고 어디 다치거나 아니면 우크라이나 정부가 가혹 행위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는 건지 이걸 확인하고 싶다고 계속 지속적으로 요청을 했었고. 한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굉장히 멀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유럽이나 이런 쪽에서 봤을 때는 굉장히 가깝다고 생각을 하나 봐요. 그래서 그동안 제가 우크라이나 취재를 하면서 유럽 쪽이나 이쪽에서 알려진 저널리스트가 되다 보니 무시할 수 없었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그렇게 해서 북한군 포로 2명을 직접 우크라이나 포로 수용소로 찾아가서 만나셨어요.
◇ 김영미 : 맞습니다.
◆ 박귀빈 : 그들은 PD님이 오는 걸 모른 채로 PD님을 처음 만난 거예요? 첫 만남 어땠어요?
◇ 김영미 : 경계심이 어마어마했죠. 더군다나 제가 취재하는 과정에서 알았던 게 초창기에 온 북한군들이 그냥 대충 이런 군인이 아니라 ‘특수부대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돼 가지고. 여기 한국에 있을 때부터 탈북 주민들 중에 그쪽 부대에 소속됐던 분들을 계속 찾아다니면서 들은 얘기들이 되게 무서운 거예요. ‘칫솔 하나만 있어도 죽인다’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갔을 때 혹시 칫솔 있나 막 이렇게 보기도 하고...
◆ 박귀빈 : PD님도 그런 마음으로 직접 만나신 거네요. 일단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있었네요.
◇ 김영미 : 처음엔 경계도 심했고 방송에도 나오는데 저한테 ‘당국이 머리가 좋습니다.’ 그러면서 ‘여성 동무를 보내면 제가 막 감동할 것 같습니까?’ 막 이렇게 나오니까. 이 사상이 변하지가 않았구나. 왜냐하면 변할 일이 없었던 거죠. 탈북 주민들 같은 경우는 생각이 바뀌어서 오시니까. 이 사람들은 그게 아니고 둘만 있었으니 서로 그런 사상이 바뀔 기회가 없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처음에 한 말은, 제가 PD는 이해 못할까 봐 ‘기자’라고 표현을 했고. 갈 때 탈북 주민들이 저한테 ‘남한 여자처럼 삐까뻔쩍하게 가면 말도 안 할 거다’ 그렇게 얘기를 해서 가능하면 굉장히 수수하게 가려고 이렇게 노력을 했었는데 방송에는 되게 이상하게 나와요.
◆ 박귀빈 :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 김영미 : 서로 이렇게 눈빛이라는 게 있잖아요? 되게 눈빛이 무서웠는데, 저는 그게 좀 안쓰러웠어요. 진짜 자기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는데 그 눈빛이라도 쏘면서. 뭔가 이렇게 고양이들이 등을 콱하고 으르렁거리는 것 같은...
◆ 박귀빈 : 사실 그 눈빛도 두려움의 눈빛이었을 거예요.
◇ 김영미 : 그랬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그거를 이렇게 보면서 굉장히 안쓰럽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 제 눈빛을 계속 읽는 것 같았고. 그러다가 ‘담배를 달라’고 그래가지고 저희 카메라 감독이 담배가 있었는데. 딱 하나 피우고 이렇게 있었던 갑인데 그거를 준 거예요.
◆ 박귀빈 : 되게 소중한 거였을 것 같은데.
◇ 김영미 : 포로 생활하면서 그런 걸 받을 데가 없잖아요. 사식을 넣어줄 북한군들이 없으니. 그래서 그 담배를 피우면서 조금씩 괜찮아져서. 이걸 한국 방송에는 담배 피우면서 인터뷰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냥 가자. ‘내가 모자이크 할 테니까 그냥 갑시다’ 그래 가지고.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을 터놓더라.
◆ 박귀빈 : 그 수용소가 방도 되게 좁더라고요?
◇ 김영미 : 너무 좁았어요.
◆ 박귀빈 : PD님이랑 카메라 감독 두 분 들어가신 거예요?
◇ 김영미 : 저희 직원하고 현지 직원도 있고.
◆ 박귀빈 : 아, 그렇죠. 대화 이런 것들 해야 되니까 총 네 분이 들어가셨고. 그분은 두 분인 거잖아요? 며칠 동안 하신 거예요? 몇 시간이었어요?
◇ 김영미 : 사실은 5시간밖에 저희가 허락을 못 받았었어요.
◆ 박귀빈 : 그 만남이 5시간이었어요?
◇ 김영미 : 그것도 엄청 설득해 갖고 된 거예요.
◆ 박귀빈 : 저는 그래도 한 며칠 정도 만나신 거 아닌가...
◇ 김영미 : 아니에요. 5시간 동안 계속 카메라를 돌려야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5시간도 우크라이나 정부가 처음에는 ‘1시간’ 얘기했다가 설득을 해서 5시간이 됐던 건데. 그 시간이 이렇게 가는 게 다 안타까운 거예요. 저도 그렇고 그 포로들도 그렇고. 계속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서부터는 서로 막 마음이 급한 것 같아요. 그들도 말을 진짜 많이 해요. 그 간수들이 얘기하길 이 사람들이 말을 잘 안 한대요. 그리고 ‘웃는 것도 처음 봤다’고 그러고 그리고 중간에 저한테 노래를 불러줬는데 다 깜짝 놀랐어요.
◆ 박귀빈 : 그렇죠. 그 안에서 다 깜짝 놀랐겠죠.
◇ 김영미 : 그 수용소가 벽이 울려요. 얘가 또 바리톤 목소리로 노래를 하니까.
◆ 박귀빈 : 한 분이 자기가 전공을 제대하면 북한에서 성악 공부하고 싶다고 그랬거든요. 노래 잘하시더라고요.
◇ 김영미 : 그러더라고요. 턱을 다치면 성악하기가 힘들 텐데도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그래서 수용소가 쩌렁쩌렁 울렸어요.
◆ 박귀빈 : 그 북한군 포로 2명이 나이가 어떻게 돼요?
◇ 김영미 : 한 명은 26, 또 한 명은 24살.
◆ 박귀빈 :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인데요. 가서 대화를 나누시면서 5시간밖에 안 됐지만 얼마나 많은 대화가 오갔을까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뭐셨어요?
◇ 김영미 : ‘전쟁이 어떻게 돼가는지’ 물었을 때. ‘지금 정세를 알려달라’고 본인들이 나온 전쟁을 자기네들이 모르는 거예요.
◆ 박귀빈 : 왜 나왔는지?
◇ 김영미 : 그것도 모르고 적이 누군지도 잘 헷갈리는 상황인데. 제가 이들을 만나러 가기 전에 러시아 포로들을 만났거든요. 그중에 북한군과 같이 생활을 했거나, 군 작전을 같이 했거나 그런 사람들을 만나서 대화를 했는데. 그 러시아 포로들이 하는 말이 ‘북한군이 되게 무섭다’는 거예요. 그래서 ‘왜 무섭냐?’ 그랬더니 러시아 군을 쏜대요. 구분이 안 되니까. 우크라이나 사람과 러시아 사람이 똑같은 백인이니까, 구분이 안 가니까 러시아군을 쏘기도 하고. 자기네 지휘관을 포로로 잡아갔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크라이나 군, 러시아군도 구분을 못하는 전쟁터에 이들이 나왔구나.’ 그래서 나중에 러시아군들이 빨간색으로 표식을 했어요. 러시아 군이라고 ‘우리 쏘지 마’라고. 그래서 그 말도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전혀 다른 환경에 전투하러 왔다는 게 너무 힘든 작전을 했겠구나라고 유추를 할 수 있고. 그만큼 이들이 실전 경험치를 많이 쌓겠구나라는 것도 추측할 수 있는 거죠. 저는 사실 취재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현상이 이렇다라고만 그거를 알아내는 것, 사실을 알아내는 것 그것을 중심으로 하는 사람이니까. 어떤 식의 전쟁을 이들이 개입했는지에 대한 거를 계속 추적을 하거든요. 그날 포로들을 만나서 최종 확인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드론전. 북한군이 파병됐을 때 처음에 드론에 막 도망 다니는 북한군의 영상이 굉장히 화제였고. 그것도 1년 전에 것이란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드론에 적응하게 됐는지, 진짜 드론전에 대해서 북한군의 병사로서 어떻게 생각했는지 이런 것들을 물었을 때 대답을 잘 해줬고 저의 궁금증도 많이 해소가 됐었어요.
◆ 박귀빈 : 그러면 실제로 전쟁터에 있었던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파악한 모습은 무엇이었어요?
◇ 김영미 : 처음 북한군 파병이 됐을 때, 저는 뭔가 뛰어난 병사들보다는 일반 병사들을 보내지 않았을까 이렇게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라 최정예 부대를 보냈고 이들이 드론에 막 죽고, 다치고 이런 피해를 입은 거를 그 경험을 가지고 극복을 했구나라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큰 거였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드론을 극복했냐?’ 그랬더니 한 사람이 미끼가 돼서 드론을 유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 드론을 쏘아서 떨어뜨리는 방법. 그렇게 해서 자기네들이 방법을 만들었다. 그리고 놀라웠던 것 중에 하나는 북한군과 교전을 했던 우크라이나 군들을 취재를 했을 때 그 드론을 피하기 위해서 거의 1800미터를 기어서 왔대요. 풀 같은 걸 뒤집어쓰고. 그러니까 드론이 못 본 거예요. 그래서 자기네 부대 50미터까지 접근을 해서 그거 보고 놀랐다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이런 거를 봤을 때 북한군이 상당히 우크라이나 개활지에서 전투하는 걸 많이 터득을 했구나.
◆ 박귀빈 : 그러네요. 북한군 2명 모두 한국행을 희망한다고 이야기하잖아요? 만약에 이들이 북한으로 송환이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 김영미 : 그 부분을 물어봤더니 애시당초 처음부터 한국행을 희망한 사람이 있었고, 그다음에 마음을 바꾼 병사가 있었는데. 둘 다 하는 얘기는 ‘북한에 가면 자기네들은 죽는다.’ 6.25 전쟁 이후에 북한도 전쟁 포로가 처음 난 거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아느냐’ 그랬더니 아주 정색을 하고 ‘우리는 전시법에 포로는 나올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역적이나 마찬가지고 이미 포로가 됐다는 게 죄다’
◆ 박귀빈 : 북한에서 법으로 그렇게 돼 있어요?
◇ 김영미 : 그렇게 돼 있대요. 그래가지고 자기네는 ‘100% 확신한다’는 거예요. 가면 죽는다고.
◆ 박귀빈 : 지금 얼굴이 다 세계에 공개가 돼서... 이 부분도 안 좋을 수 있을까요?
◇ 김영미 : 우크라이나 정부가 얼굴을 공개한 거는 러시아 포로 공개하듯이 본인들도 공개를 한 건데 북한의 특수성을 몰랐던 거죠. 그래서 조금만 신중하게 했으면 그때 얼굴을 공개 안 했으면 더 나았을 수도 있는데. 이미 공개가 다 된 상황에서 그들 입장에서는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힘든 거고. 원래 법을 어긴 데다가. 완전히 그때부터 끝난 얘기인 거예요.
◆ 박귀빈 : 그러면 북한에 있는 그 군인들의 가족이나 친인척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얼굴이 다 공개가 됐는데 되게 안 좋게 되는 거 아니에요?
◇ 김영미 : 그래서 그런 부분 때문에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데. 알려진 바는 없고 제가 러시아 쪽을 통해서 확인해 본 바는 아마도 그 부분에 대해서 함구하지 않나. 북한 정부가 공식적으로 얘기한 적도 없고 그런 상황인데. 이번에 다큐멘터리에서 제가 얼굴을 공개하기로 결정한 거는 이미 얼굴이 공개된 상황에서 오히려 더 얼굴을 공개하는 게 북한 정부 입장에서 함부로 할 수 없다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고, 한국에 있는 탈북민 사회의 요청도 있었어요. 그래서 방송에서 모자이크를 안 하고 나간 부분인데. 걱정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은데요. 이미 그 상황은 우크라이나 정부가 공개했을 때 끝난 상황이고, ‘지금은 오히려 공개를 하는 게 이들에게는 구명할 기회가 더 있다’는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전문가들의 조언이나 이런 걸 듣고 공개를 했던 부분인데. 사실 제네바 협약에 자기네들이 가고 싶은 데를 가게 돼 있어요. 그래서 법적으로는 이미 ‘한국행을 가겠다’고 본인들이 의사 표현을 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받아들여야 되는 게 맞고. 헌법에 북한 주민은 우리 국민으로 되어 있고, 북한 영토도 우리 영토로 되어 있단 말이에요. 우리 정부에서 영사 조력을 하고 있는 건데 문제는 우크라이나 정부인 거죠. 그래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이들을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풀어주면 좋은데, 본인들이 갖고 있는 포로에 대한 정책은 맞교환인 거예요. 러시아 포로들과 맞교환을 해서 자기 자국의 국민들을 데리고 온다. 이건 법적인 것보다는 러시아 쪽과 합의를 본 거죠. 그런데 우크라이나 정부는 한 번도 포로 협상이나 이런 데 정식으로 협상에 응해 본 적이 없어요. 대부분이 러시아와 아랍 에미레이트 혹은 터키, 제3국이 했던 협상에서 받아들이는 것만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부분도 마찬가지인데 어쨌든 주권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우크라이나 정부쪽에서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그리고 한국과의 외교 관계도 있잖아요? 그런 거를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고. 모자이크 안 하는 바람에 우크라이나 정부가 훨씬 더 지금 압박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 박귀빈 : 혹시 우크라이나 취재 계획 있으세요?
◇ 김영미 : 우크라이나 전쟁은 우리 안보와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계속 할 생각이고, 대한민국 언론 입장에서는 ‘누군가는 가야 된다’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박귀빈 : 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영미 국제분쟁 전문 PD와 함께 했습니다.
◇ 김영미 :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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