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5년 11월 18일 (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이수덕 사무총장, 정희태 배우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의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시간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5년 전입니다. 한반도에 깊은 상처를 남긴 6.25 당시 미국을 비롯한 UN군 16개국이 이름도 위치도 모르던 대한민국을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전투 병력과 무기를 지원했는데요. 참전 UN군 16개국 중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적과의 전투에서 전승을 거둔 참전국이 있습니다. 바로 ‘에티오피아’인데요. 지난 <스틸러브 시즌 1>에서도 6.25 전쟁 참전국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이야기 전해 드렸던 적이 있죠. 오늘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직접 전할 수 있었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이수덕 사무총장, 그리고 따뜻한 하루의 나눔지기로 활동하고 계신 분이죠. 정희태 배우 두 분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 이수덕, ■ 정희태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박귀빈 : 일단 한 분 한 분 짧게 자기소개와 인사 한 말씀해 주시겠어요? 먼저 사무총장님부터요.
□ 이수덕 : 저는 1979년도에 해군 사관학교에서 해병대 소위로 임관을 하고, 해병대에서 15년간 군 복무를 하다가 원치 않는 부상을 입고 상이 군인이 되어 지금까지 상이 군경에서 여러 가지 직책을 수행하다가 지금은 사무총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이수덕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사무총장님 인사 먼저 해 주셨고요. 오랜만에 뵙습니다. 배우님 인사 말씀 짧게 해 주세요.
■ 정희태 : 안녕하세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따뜻한 하루라는 NGO 단체의 나눔지기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정희태입니다. 사무총장님 말씀 들으니까 가슴이 뭉클해지는데요. 일전에 에티오피아 강뉴부대 할아버지들을 뵙고 왔었는데 이 자리에 함께 참석하게 돼서 영광스럽고 감사드립니다.
◆ 박귀빈 : 다시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 우리 사무총장님도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번 <스틸러브 시즌 2> 오늘이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자유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 한국전쟁의 참전 용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마련을 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어려운 일이고 저희가 그분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먼 타국의 조그마한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런데 본인의 목숨 바쳐서 그 나라의 자유를 지키겠다고 오신 거란 말입니다. 에티오피아 강뉴부대원들과 가족들에게 여러분이 따뜻한 위로와 도움을 주실 수 있습니다. 후원하실 수 있는 방법을 저희가 알려드릴게요. ARS 번호 1877-1752로 전화하시면 후원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두 분과 나누는 이야기 들으시고 여러분의 마음 함께 나눠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무총장님 앞서 20년 넘게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에서 지금 일하고 계신다고 했는데요. 많은 것들이 기억나실 것 같거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어떤 걸 꼽으실 수 있을까요?
□ 이수덕 : 어려운 회원들 복지를 위해서도 일을 많이 하고 있지만, 베트남 전쟁, 6.25 전쟁 참전에서 부상을 입은 회원들로 이루어진 단체지 않습니까? 베트남 같은 경우는 치열했던 교전을 뒤로 하고 민간 외교 역할도 해야 되겠다 해서 ‘평화의 마을’이라는 마을을 건립해서 베트남 정부에다 기증을 하고. 그 이후에도 1년에 두 번씩 의료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 2주 전에도 다녀왔습니다마는 그 마을에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고 고엽제 2세, 3세 환자로 어렵게 사는 한 180명 정도가 마을에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에서 베트남에 평화의 마을을 건립을 하신 거예요.
□ 이수덕 : 정부 지원을 받고 우리 단체의 예산을 한 20억 원을 들여서 2010년도에 1만 평의 대지에 건물을 지어줬습니다.
◆ 박귀빈 : 여전히 매년 가시나요?
□ 이수덕 : 1년에 두 번씩 갑니다.
◆ 박귀빈 : 사무총장님은 항상 가시나 봐요?
□ 이수덕 : 저는 2년에 한 번 정도 갑니다.
◆ 박귀빈 : 늘 그 일을 맡아서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찾아가실 때마다 변화를 느끼세요?
□ 이수덕 : 대한민국의 위상이 이렇게 높나 하는 정도를 느낍니다. 참 감명 깊었던 것은 2012년도였을 겁니다. 그때 의료지원을 갔는데 의사들이 가운을 입고 앉아서 진료를 보고 있는데, 마을의 환자들이 들어오는데 신발을 다 벗고 들어오는 거예요. 우리는 신발을 신고 있는데.
◆ 박귀빈 : 신발을 벗는 곳이 아닌데요?
□ 이수덕 : 예. 그래서 물어봤죠. ‘왜 신발을 이렇게 벗게 하느냐’ 하니까 ‘아니 대한민국 의사 선생님들을 만나는데 우리가 어떻게 신발을 신고 들어갑니까?’라고 존경을 표하셨어요. 그래서 이 정도로 대한민국의 위상이 있구나라는 걸 느꼈었어요.
◆ 박귀빈 : 배우님도 에티오피아 갔다 오셨잖아요. 거기 마을도 굉장히 열악하다고 당시에도 말씀하셨던 거 같은데.
■ 정희태 : 맞아요. 오랜 대기근과 가뭄,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많이 어렵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들 어려워하시고. 말씀하신 것처럼 75년의 시간이 흘렀으니까 아흔이 다 넘은 나이로 어렵게 생활하고 계신 걸 목격했는데 아직도 한국을 그리워하고 애틋해하고 있더라고요. 자기 조국인 것처럼. 자신들이 목숨 걸고 지켰으니까 당신들의 조국인 것처럼 우리나라를 되게 아껴주시고. 발전된 모습에 되게 감동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네요.
◆ 박귀빈 : 75년 전입니다. 그리고 2025년입니다. 정말 대한민국은 기적적으로 달라졌다고 저희도 느끼고 있는데 그분들은 어떤 마음이실까 이런 생각이 들고, 한국전쟁 참전 UN군 전상자 초청 위로 행사하시잖아요.
□ 이수덕 : 네, 2007년도부터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행사 취지가 6.25 전쟁에 참전을 하고 각자 나라로 돌아가신 분들이 연 한 190만 명 정도가 6.25 전쟁에 참전을 했잖아요. 그때 한 4만 명 정도가 전사를 하시고, 10만 명 이상이 부상을 입고 돌아가셨잖아요. 그래서 부상을 입은 당사자들로서 부상을 입고 힘들게 사시는 16개 참전국 분들을 위로를 해줘야 되겠다 해서 1년에 한 번씩 일주일 동안 서울로 초청을 했습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잘 모셨죠. 좋은 호텔에서 귀거하게 하고, 항공편을 끊어드리고, 일주일간 국내의 산업단지나 관광지를 구경시켜 드리면서 당신들이 지켜준 대한민국이 당신들 덕분에 이렇게 발전했노라 하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 박귀빈 : 뭐라고 하세요?
□ 이수덕 : 눈물을 흘리죠. 참 감명 깊은 이야기가, 우리가 여러 나라를 참전을 했는데 이렇게 초청해 줘서 잔치해주고 해 주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참 보람을 많이 느꼈습니다.
◆ 박귀빈 : 그 행사가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나요?
□ 이수덕 : 한 3년 전까지 그 행사를 계속하다가 그분들 연세가 90이 넘었잖아요. 우리가 불안해서 안 되겠어요. 모시고 오기가. 그래서 찾아가자 해서 지금은 나라를 선정해서 찾아갔습니다. 올해는 뉴질랜드 호주를 다녀왔습니다. 찾아가면 그분들은 지역 내에서 이동만 하시면 되니까. 많은 분들이 참석을 해 주시더라고요.
◆ 박귀빈 : 사무총장님은 앞서 배우님이 다녀오셨던 에티오피아도 다녀오셨었다고요?
□ 이수덕 : 예, 그때는 찾아가는 행사 중에서 에티오피아를 제일 먼저 갔었어요. 제일 어려운 나라일 거다 싶어서. 가는데 직항이 그때 없어서 두바이를 경유해서 어렵게 찾아갔던 기억이 나고. 에디오피아 하면 엄청 더워서 어떻게 다녀올까 했는데 아디스아바바 같은 경우는 해발이 높더라고요 고산병에 시달리는 분들도 계실 정도로. 거기에 가보니까 이렇게도 힘들게 사는 나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에디오피아는 힘들더라고요. 참전했던 당시 노병분들은 중간에 70년대 군사 쿠테타로 공산 정권이 들어와서 셀라시에 황제도 비참한 생활 마감을 했고. 참전국들은 공산 진영이 들어오다 보니까 ‘왜 자유진영에 너희들은 편을 섰느냐’ 해서 박해도 당하고. 자기들이 대놓고 참전했다는 말도 못하고 숨어 지내고 그래서 참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 박귀빈 : 몇 년도에 가셨던 거죠?
□ 이수덕 : 2016년도니까 9년 전이네요.
◆ 박귀빈 : 2016년에 사무총장님은 에티오피아 다녀오셨고, 배우님은 언제 가셨던 거예요? 그 이후에 가신 거죠?
■ 정희태 : 이후에 갔어요. 2023년인가?
◆ 박귀빈 : 얼마 안 됐네요. 2016년에 보셨을 때 너무나 열악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한 6, 7년이 지난 후에 가셨는데 그때 보실 때도 역시 열악한 환경이었나요?
■ 정희태 : 그전에 가보지 않아 가지고 어떤지 잘 모르겠는데, 아디스아바바가 에티오피아 중심 도시로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한 60년대 70년대 거리를 연상시켰습니다. 그 이외에 제2의 도시라고 하는 곳도 갔었는데 그냥 시골 마을 같은 느낌. 아직도 과일 나무들 거기서 따먹고 이렇게 지내고 있던 것 같아요.
◆ 박귀빈 : 그때 배우님도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사무총장님이 살짝 언급을 하셨는데, 한국에 참전해서 승전을 계속 하고 고국으로 돌아갔는데 오히려 그분들은 고국에서 박해를 받고 억압받고 더 힘들게 사셨다는 말씀을 해 주셨었죠. 그래서 더 힘들게 사시는 분들인데 그때 나오셨을 때 참전 용사 중에 한 60여 분 정도 살아계신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 정희태 :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시다 보니까.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된 모습을 직접 초청해서 보셨잖아요. 그때도 병상에 누워서 한국이 그렇게 발전한 게 꼭 내 나라가 발전한 것 같다고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그러셨거든요. 어떤 분은 태극기도 가지고 계시고. 되게 뭉클한 시간들이 많았었는데 실제로 만나서 뵈니까 몸도 많이 불편하시고, 아픈 와중에서도 어려운 환경에서 생계를 유지해 가시고 하면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올해 제가 듣기로 51 분 정도가 남으신 것 같아요.
◆ 박귀빈 : 한 10분 정도 돌아가셨네요.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현재 일상의 모습은 어떻던가요?
■ 정희태 : 전쟁에 와서 다치신 분들도 있고, 거기서 노환이 들어가지고 아프신 분들도 있는데 그분들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정권이 바뀌면서. 제가 그 차량으로 이렇게 운행하면서 ‘여기가 어딘지 아세요?’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어요. 그래가지고 ‘글쎄요. 여기가 어디일까요?’ 그랬는데 북한 깃발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어디예요?’ 그랬더니 북한 대사관 이 아디스아바바 시내에 있다더라고요. 정권이 바뀌면서 그분들이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반대 나라들 자유진영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서 숨어 지내고. 지원도 못 받고 이러시다 보니까 사람들한테 따로 마을도 만들어주고 지원도 해주고 했었는데, 그 일이 벌어지고 나서는 숨어 지내고. 아무 지원도 받지 못하고 하면서 근근이 어렵게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안타까웠습니다.
◆ 박귀빈 : 그런 분들 중에서 참전 용사셨던 분이 여전히 태극기를 간직하고 계신다 이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어떤 가정을 가신 거예요?
■ 정희태 : 테메라트 씨 가정인데요. 되게 말로 참 담기 어려운 그런 과정을 지내고 있었더라고요. 따님도 되게 몸이 불편해요. 결핵이라는 병을 앓아서
◆ 박귀빈 : 참전 용사이신 분의 따님도 편찮으세요?
■ 정희태 : 그리고 또 손자도 낳았는데 불미스러운 일로 낳게 되고, 좁은 방에서 이렇게 세 분이 기거하고 있는데 허리 쪽에 큰 혹이 있어가지고 그 혹 때문인지
◆ 박귀빈 : 치료를 못 받고 계신 거예요?
■ 정희태 : 네 그리고 혹 때문에 제대로 눕지 못하고 쪼그리고 주무시더라고요. 너무 가슴 아프게 했던 게 세탁기가 갖고 싶다고
◆ 박귀빈 : 세탁기가 갖고 싶다고 말씀을 하셨대요.
■ 정희태 : 사줬는데 너무 황당한 건 전기 시설이 안 돼서 그걸 틀 수가 없는 거예요. 되게 가슴 아팠어요.
◆ 박귀빈 : 그렇군요. 사실은 생필품도 전달해 드리고 당시에도 그런 말씀해 주셨어요. 세탁기도 드렸는데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니까.
■ 정희태 : 재봉틀 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서 재봉틀을 하나 선물해 드리고
◆ 박귀빈 : 그러니까요. 얼마나 그분들은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위로를 받으셨을까. 그분의 일상에 갑자기 큰 변화를 드리지 못하더라도 그분 마음속에는 굉장히 큰 기억으로 남으실 것 같은데, 우리 정희태 배우님이 울컥하셔 가지고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셨는데 사무총장님 도와주셔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사무총장님도 에티오피아 방문하셨을 때 직접 감사의 마음 전하고 오셨잖아요.
□ 이수덕 : 그때 기억이 우리가 어려운 분들이니까 경제적인 도움을 주자고 해서 참전 상이군인들하고 유족들을 모시고 잔치를 베풀고 하면서 미화 500달러씩을 드린 기억이 있어요. 그게 우리나라 수준에서 큰 돈이겠습니까? 거기서는 시골에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 된대요. 그래서 우리가 적은 금액을 드렸는데 큰 도움이 됐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거기에 있는 또 명성병원 우리 교회에서 지어준 명성병원이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는 거의 서울대학 병원 정도의 수준이더라고요. 병원을 방문을 했더니 6.25 참전용사들에게는 무료로 진료를 해준다고 해서 거기에도 감사함을 표시하고 왔었습니다.
◆ 박귀빈 : 방송 들으시면서 0808번 님이 ‘젊은 나이에 자유를 위해 싸워주신 것에 국가유공자 가족으로서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입니다. 당연히 우리나라가 그들을 위해 보답해야죠.’ 라고 문자 주셨어요. 우리 청취자님은 또 국가유공자 가족이시네요. 훨씬 더 공감을 많이 해 주시는 것 같고, 이분들에게 따뜻한 위로 또 도움 드릴 수 있습니다. 1877에 1752번으로 전화하시면 후원하실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청취자분들이 후원을 하시면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위해서 바로 쓰이는 거잖아요. 소중한 여러분의 마음 모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많은 분들이 우리가 전쟁을 겪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배우고 해서 6.25 전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데요. 우리가 참전 용사 외국인 분들 외국 참전 용사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 다들 느끼실 거는 같지만, 다시 한 번 우리 두 분이 한 번씩 짚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거는 어떤 이유로 우리가 그걸 전달해 드려야 될까요?
□ 이수덕 : 전에도 언급했지만 에티오피아에 참전하셨던 분들이 부대 이름이 강뉴부대잖아요. 황제 근위대 병력들인데, 이분들이 한국에 와서 듣지도 이름도 알지 못하고 처음 와보는 곳을 배를 타고 두 달 이상 걸려서 왔지 않습니까? 기후도 얼마나 추운 혹한기 전투를 치렀겠어요. 강원도에서 주로 전투에 임했는데, 250여 회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가 없고, 또 황제의 엄명에 따라서 포로가 없잖아요. 항복한 사람이 없다는 거 아닙니까? 근데 250여 전투에서 한 번도 지지 않고 싸워서 이겼다는 숭고한 정신, 그리고 용맹성, 너무나 고생한 그분들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참 많이 생각을 해야 될 것 같아요.
◆ 박귀빈 : 맞습니다. 우리 정희태 배우님은 따뜻한 하루 나눔지기로 얼마 동안 활동하고 계신 거죠?
■ 정희태 : 제가 나눔지기 1호로 거의 10년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어떤 마음으로 하고 계시고, 활동을 하시면서 어떤 느낌으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으세요?
■ 정희태 : 제가 사실은 누군가를 돕는다, 봉사한다는 말에 대한 거부감 이런 것도 있었어요. 왜 그런 마음이 들까라고 고민해 봤었는데, 사실 누군가를 돕고 그를 위해서 내가 무언가가 되는 것처럼 이렇게 우쭐해하는 모습이 되게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 박귀빈 : 그러실 것 같지도 않지만 본인만 그렇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 정희태 : 그래서 이걸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돌려 혹은 어떤 호칭을 바꾸면 좋을까라는 생각에 따뜻한 하루와 처음으로 ‘나눔지기’ 라는 말을 쓰게 됐고, 나눔이라는 또 다른 가치로 생활하고 있는데, 여러분들도 우쭐한 자기의 마음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나눔으로써 나누고 나누면 결국 다 모든 사람들이 나누고, 자기에게도 돌아오는 되게 묘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을 해요. 아까 강뉴부대 얘기 잠깐 하고 싶은 게 그분들이 나이가 80 몇 되신 분도 계셨어요. 그러면 그분은 우리나라에 몇 살 때 오신 거지? 라고 하니까 10대 때 온 거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자유로운 대한민국에 있지만 전쟁 속에 여기저기 날아드는 포화들 그리고 옆에서 동료들이 죽어가고, 시체들이 쌓여 있는 이곳에 열다섯 아이들이 자기 나라도 아니고 우리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싸워줬다는 마음이 너무 감격스러웠던 생각이 나요. 그 와중에 강뉴부대 분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서 우리나라 전쟁 고아들을 위한 고아원까지 차려주고 그런 일도 있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우리가 전생에 무슨 좋은 일을 해 가지고 이런 복을 받고 있나 할 정도로 그랬었는데, 사실 상이군경회가 어떤 분들이 모여 계시는지 잘 몰랐었어요. 근데 전쟁이나 기타 여러 가지 훈련이나 이런 것들로 다치신 분들로 알고 있거든요. 다치고 이런 분들이 모여서 더 아픈 사람들을 돕는다고 이게 또 무슨 일인가 싶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게 저는 너무 감격스러운 것 같아요.
◆ 박귀빈 : 우리 모두가 다 같이 해야 되는 일인데 특별한 것이 아니라 당연히 해야 되는 것 이렇게 생각을 해 주셨으면 좋겠고, 우리 사무총장님 끝으로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수덕 : 우리가 도움을 받은 나라잖아요. 1950년도 6.25 전쟁 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나라에 190만 명의 젊은 청춘들이 와서 나라를 지켜줬기 때문에, 우리가 번영한 대한민국의 자유를 누리고 살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어려운 참전국들을 도와주는 베푸는 나라, 돕는 나라가 돼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맞습니다. 7796번 님 ‘사무총장님의 진심 어린 말씀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공자 예우 향상을 위해서 앞장서 주시는 모습에 많은 힘을 얻고 있습니다.’ 라고 또 응원의 문자 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에티오피아 참전 용사에게 여러분 직접적으로 후원하실 수 있는 방법 ARS 1877에 1752번입니다. 기억해 주시고요. 저희 마지막 인사드리겠습니다. 스틸러브 대한민국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 생활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 7화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이수덕 사무총장, 따뜻한 하루 나눔지기 정희태 배우 두 분과 함께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희태, □ 이수덕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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