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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 10:15~11:30
제작진진행: 박귀빈 / PD: 이은지 / 작가: 김은진
"철모도 뚫던 모기가 안 와, 이상하다 했지" 상흔 위에 평화 세운 사람들
2025-06-27 15:06 작게 크게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5년 6월 27일 (금)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이완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상임부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박귀빈 아나운서(이하 박귀빈):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의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시간입니다. 후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가슴 아픈 유산, 전쟁의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밀림을 제거하기 위해 살포했던 고엽제, 그 후유증이 2세, 3세, 4세.. 후손 세대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재 베트남에는 고엽제 후유증으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부모, 형제, 가족들에게 버려져 갈 곳을 잃은 채 하나 둘 모여 한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베트남 꿩남성에 위치한 평화의 마을이라고 하는데요. 이 마을은 대한민국 상이군경회가 만들었습니다. 시대의 아픔으로 한때 총부리를 겨눴지만, 지금은 서로를 치유하는 사이.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얼마 전 평화의 마을을 다녀온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이완규 상임부회장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이완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 상임부회장(이하 이완규): 네.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에서 상임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완규입니다.

◆박귀빈: 어서오십시오. 작년에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유을상 회장님께서 나오셔서 단체의 소개를 해주시면서 베트남 의료지원을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나는데요. 부회장님도 베트남전쟁 참전용사이신 거죠? 지금도 거동이 조금 불편해보이시는데요. 언제 어떤 계기로 참전하게 되신 건지도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완규: 저는 해병대 소대장으로 1970년 4월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였습니다. 황룡작전에서 소대원들과 함께 베트콩에 맞서 치열한 전투중 적이 매설한 부비트랩이 터지면서 우측 다리와 팔, 양손에 심한 전상을 입고 1급 상이용사로 국가유공자가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신체에 장애가 있다보니 일상생활하는데 불편함이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장애를 극복하고 국가유공자로서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세계평화를 위해 앞장서 노력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직장생활과 사회에 봉사를 한 공로를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화랑무공훈장, 국민훈장 동백장, 국민포장, 대통령 표창, 국가보훈처장 표창 등을 받았습니다. 


◆박귀빈: 1970년에 해병대 소대장이셨고 당시에 베트남 전쟁을 참전을 하신 건데요. 앞서 말씀하셨지만 그래서 좀 부상을 입으셔가지고 지금 걸어오실 때 조금 거동이 불편하신 것 같고, 부상을 입으셨고 당시에 참전하셨던 그거를 가끔은 그래도 후회하시는 일은 없으실까 이런 생각을 하거든요.

◇이완규: 네 없습니다. 미국은 6.25전쟁으로 우리 민족이 풍전등화에 놓인 절박한 때 즉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구해 유엔의 대북한 군사제재 결의를 이끌어내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고 적절한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을 결정하였으며, 한국전쟁을 수행할 유엔군 사령부를 설치하고 미국을 비롯한 16개국에서는 직접 전투병력을 파견했고 5개국은 병참 및 의료지원 등 비전투 지원병력을 파견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를 적화통일로부터 막고 현재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게 해준 미국의 지원 요구로 세계평화를 위해 파병되었으며, 197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북한보다 뒤처지는 상황이였으며 먹고 살기 힘든 시절 이었습니다. 월남전 파병으로 참전수당과 미국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아 오늘날 경제 성장에 기여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셔서 좀 부상도 입으셨고요. 아픈 상처도 안고 살고 계신데요. 앞서 저희가 제가 이 시간 시작하면서 잠깐 말씀을 드렸는데 베트남 평화의 마을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에서 만든 곳이고요. 상이군경회에서 직접 세운 것이라고 말씀을 들었었기 때문에요.어떻게 세우신 건지 좀 궁금해요.

◇이완규: 대한민국 상이군경회에서 2010년 20억 2천만원 건립사업비를 비롯한 재원을 투입하여 공동체 마을 시설을 건립하여 베트남정부에 기부체납하고 꿩남성에서 관리운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우리회가 매년 2회에 걸쳐 의료지원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2010년에 재원 투입해서 대한민국상이군경회에서 만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이 그러면 살고 계시는 거예요?


◇이완규: 평화의 마을에는 고엽제 후유증 환자와 고아 그리고 베트남 전쟁 당시 터지지 않았던 포탄으로 인해 팔, 다리 절단 환자 등 200여명이 지내고 있습니다. 그곳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며 아이부터 노인까지 거동이 원활한 사람부터 불편한 사람까지 다양하게 있습니다.


◆박귀빈: 그러면 고엽제 후유증이 대를 이어서 나타나기 때문인가요? 어떤가요? 우리 부회장님도 고엽제에 대해서 잘 아실 것 같은데요. 그분들의 피해 상황이 어떤지 좀 궁금해요.


◇이완규: 고엽제라는 거는 군에 안 갔다 오셔서 잘 모르겠지만 사계청소라고 그래 가지고 전방위 사격을 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걸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뿌립니다. 그러면 아침에 한 9시쯤 뿌리면 1시간 정도 되면 그 커다란 이파리들도 다같이 푹 쳐져요.

◆박귀빈: 나무들 이파리도 다 죽는 거군요.

◇이완규: 베트콩들이 그 뒤에 숨어서 우리들 아군한테 조준 사격을 하게 돼 있습니다.

◆박귀빈: 고엽제 뿌리고 나면 적이 잘 보이니까.

◇이완규: 그렇죠. 우리는 잘 보이니까 집중 사격을 하기 때문에 다 퇴출 시키는 거죠.

◆박귀빈: 고엽제가 몸에 너무 안 좋기 때문에 그 후유증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신다고.

◇이완규: 그때는 그런 걸 몰랐습니다. 우리 소대원들이 밤에 야간에 매복을 나가면 이 모기 약을 못 바르게 돼 있습니다. 냄새가 나니까 베트콩들이 알기 때문에. 그래서 소대장들이 절대 못 바르게 하는데 잡초 나가기 전에 그걸 뿌릴 때 작전 안 나가니까 팬티만 입고 작업을 하지 않습니까? 뛰어와 가지고 얼굴과 여기저기에 막 발라요. 그러고 나면 그 저녁에 모기가 안 문답니다. 모기가 보통 센 게 아니에요. 비가 오는데도 철모 밑으로 이마로 와서 쏘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그걸 바르고 나면 그다음 날 작전 나갔는데 모기가 물지 않을 정도니 얼마나 독했겠습니까? 우리는 그때는 그런 걸 전혀 몰랐죠.

◆박귀빈: 그게 후유증이 너무 심각하고 대를 이어서 후유증이 이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유튜브 썸네일에 이제 보시면 청취자분들이 보시면 평화 마을에 지내는 분들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요. 이제 몸이 비틀리고 팔다리가 없어서 또 이제 기저귀를 차신 분들도 계시고 또 식사도 직접 못 드시니까 누군가가 도와줘서 먹여 드려야 되고 이런 거를 이제 보실 수 있을 텐데 평화의 마을 다녀오셨잖아요? 그때 그 모습 보고 어떠셨어요?


◇이완규: 올해 4월 21일부터 25일까지 중앙보훈병원 의료진과 함께 베트남 평화의 마을에 의료지원을 다녀왔습니다. 우리회에서는 2011년부터 매년 2회에 걸쳐 한국의료복지공단 소속 전국 서울, 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 6개 보훈병원 의료진과 함께 의료지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위탁병원과도 연계하여 부산대 치대, JC빛 소망안과, 세종 충남대 병원 의료진도 함께 의료지원을 다녀왔습니다.  아시겠지만 보훈병원의 의료진들은 우리나라 국가유공자들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전문의 숫자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분들이 베트남 의료봉사를 가기 위해서는 모든 일정을 일주일 미루고 다녀와야 합니다. 다녀와서는 미루었던 일정을 소화해야 해서 많이 힘들지만 우리 대한민국상이군경회와 함께 국위 선양에 기여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의료봉사를 갈 수 있는 의료진 확보에 어려움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료복지공단 소속 의료진들은 어려운 환경과 빠듯한 일정속에서도 베트남 의료봉사를 위해 적극 협조 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베트남 평화의 마을에 우리회에서 격려금과 물품지원을 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성인용 기저귀와, 분유, 쌀, 목욕용 휠체어 등 생필품 등을 풍족하게 지원해 주지 못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박귀빈: 의료지원 가셔서 만났던 분들 중에 사연이 정말 안타깝다 느끼셨던 사연도 있으실까요? 어떤 점이 가장 가슴 아프셨는지요?

◇이완규: 아이들이 평화의 마을에 와서 그나마 치료를 치료와 돌봄을 받을 수 있지만 이 사람들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것이 가장 마음 아픕니다. 이제 매년 갈 때마다 작년에 있던 친구가 안 보이고 새로운 친구가 들어오고 계속 반복되면 진행형이라는 것이 가슴 아픕니다.


◆박귀빈: 그러니까 고엽제, 전쟁의 상처, 상흔이 그대로 대를 이어서 가다 보니까 그것 때문에 오래 못 사시는 건가요?

◇이완규: 네

◆박귀빈: 워낙 상황이 되게 열악하고 안 좋으니까 바로바로 치료받기도 어려운 형편일 거고 물론 우리 한국에 상이군경회에서 매년 두 번씩 의료지원을 가시지만 사실은 그게 매년 두 번이면 그분들은 그걸 기다리시겠지만 1년 365일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지내시겠어요? 그 평화의 마을 에 살고 계신 분들 보시면서 이거는 지금 정말 필요하겠다 하는 거 있으셨어요?

◇이완규: 아주 불편하고 말도 못하고 아까 그런 사람들이 있는데 불편한 게 이제 꼭 필요한 거는 그 사람들이 우선 먹고 사는 거는 그냥 한다고 그러지만 치료받는 거 그러니까 어린애들한테는 뭐 과자 이런 것도 필요하겠고 그다음에 중환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성인용 기저귀라던가, 목욕을 할 때 필요한 휠체어 같은 게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리가 충분히 참 우리도 국가의 보조를 받아 가지고 하다 보니까 자금상 다 못하고 그렇습니다.

◆박귀빈: 청취자님께서 ‘보훈병원이랑 상이군경회가 참 좋은 일 하십니다. 평화의 마을에 정말 필요한 지원인 것 같습니다.’이런 의견 주셨어요. 다른 청취자님도 ‘전쟁의 상흔이 있는 곳에 평화가 마을을 이루었다니 이름이 뭔가 감동적입니다.’ 이런 의견도 주셨는데요. 그래서 이게 후원도 받고 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럼 만약에 그 후원 받아서 그 후원금으로 지금 말씀하신 그런 물품들을 지원해서 물품을 주는 거군요. 지금도 혹시 후원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이완규:  지금도 이제 평화의 마을에 우리 회사 이제 격려금과 이제 물품 지원을 하고 있지만 우리 이제 참 자금 사정상 그게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들이 필요한 성인용 귀족이라든가 어린애들 분유 쌀, 목욕용 휠체어 등 생필품 등이 부족 하게 지원해주지 지원해 주지 못한 아쉬움이 많습니다.

◆박귀빈: 평화의 마을이 아닌 다른 지역에 있는 분들에게도 의료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나요?

◇이완규: 이제 베트남 정부에서 요청을 해서 우리가 베트남 꿩남성 부근에 다른 병원에 가서 양로원, 고아원 등 의료진을 요청해서 하노이 다낭에 있는 양로원과 고아원 등을 방문하여 의료약품 등을 지원하고 그들이 원하는 생필품 분유, 쌀, 우유, 기저귀 등도 함께 지원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의료지원 말고도 정기적으로 건물 외벽을 페인트 공사를 한다거나 건물 내부에 전기 배선 작업한다거나 이런 지원들도 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베트남 의료지원이 매년 2회라고 하셨어요. 지난번에 4월에 다녀오셨는데 다음 계획은 언제인가요?

◇이완규: 다음에는 이제 하반기 의료 지원 한 11월 경 이제 예정하고 있습니다. 의료진 인원 예정은 이제 6명 내지 한 8명 정도 예상하고 있으며 그때도 마찬가지로 보험병원 소속 의료진들이 함께 할 예정이며 지원자가 없을 경우 위탁병원의 의료진도 함께할 예정입니다.

◆박귀빈: 베트남 평화의 마을에 다녀오신 의료지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요. 여러분도 말씀 들으시면서 참 마음이 아프실 거고 또 대한민국 상위 군경에서 정말 이런 일들을 하고 계시는구나 새롭게 아셨을 텐데요. 끝으로 우리 청취자분들께 베트남 전쟁 참전 용사로서 이 말만큼은 내가 꼭 남기고 싶다 하는 말씀 있으시면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이완규: 이제 그 전쟁이 끝난 지 오래 돼가지고 이 전쟁이라는 걸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저희 나이가 이제 우리 참전 용사 참전해 본 이제 마지막 세대입니다. 이제 막내가 지금 한 70대 정도 됐을 거고, 저는 장교로 갔기 때문에 이제 나이가 조금 더 먹었습니다만. 이제 지금은 아쉬운 게 국민들이 어느 그걸 보니까 Forgotten War라고 그러더라고요. 잊혀진 전쟁이다. 이러다 보니까 우리 국민들도, 공무원들도 이 사람들이 참전 용사고 우리가 왜 베트남에 이제 참전을 해 가지고 싸우고 팔다리를 끊었느냐 그리고 우리가 갔다 옴으로써 참 여러 가지 우리나라에 이제 경제적인 혜택이 많지 않습니까? 그전에 독일 가서 간호사니 광포를 갔다고 그러지만 우리 참전 용사들은 30만 명이 넘습니다. 그 수당과 그렇게 되다 보니 미국에서 지원해 주는 게 많았죠.

◆박귀빈: 경제적 지원을 해줬었죠.

◇이완규: 그게 아마 우리나라의 발전에 기초가 되지 않았나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박귀빈: 베트남 참전 용사분들이 그렇게 목숨 바쳐서 다른 나라에 파병돼서 갔던 그 시절로 인해서 우리가 지금의 우리가 있다는 것 많은 분들이 꼭 기억을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부회장님이 이제 마지막 인사를 할 건데요. 제가 스틸러브 하면 대한민국이라고 해 주시면 됩니다. 인사하겠습니다. 스틸러브

◇이완규: 대한민국

◆박귀빈: 우리는 그때도 지금도 내일도 나라를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국가보훈부와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공동 프로젝트  스틸러브 대한민국 제2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이완규 상임부회장과 함께 했습니다. 오늘 소중한 시간 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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