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일시 : 2025년 5월 13일 (화)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윤종복 서울시의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아나운서 (이하 박귀빈) : 천만 서울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입법기관, 서울시의회와 함께하는 슬기로운 특별시민생활 시간입니다. 오늘은 윤종복 서울시 의원과 함께 합니다. 의원님 안녕하세요. 청취자분들께 인사 한 말씀 먼저 해 주세요.
◇ 윤종복 서울시의원 (이하 윤종복) : 네, 안녕하세요. 천만 서울시민의 목소리 그리고 뜻을 대변하는, 여러분들의 권익과 삶의 질을 올리는 서울 도시계획 운영위원회에서 일하고 있는 윤종복 의원입니다. 특별히 이렇게 시민들의 소통하는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서울을 더욱 살기 좋은, 경쟁력 세계 6위에서 더욱 앞서가는 서울이 되기 위해서 작은 힘이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박귀빈 : 의원님께서 서울시의회의 최고령 당선자이시라고 말씀을 들었는데요. 혹시 몇 년생이신지 여쭤봐도 될까요?
◇ 윤종복 : 48년생입니다.
◆ 박귀빈 : 최고령 당선자이신 건데요. 정치를 오랫동안 하셨던가요? 아니면 어떤 계기를 통해서 정치를 하시게 된 거예요?
◇ 윤종복 : 북촌 아시죠? 원래는 제가 젊을 때 사업을 하다가 제가 좋아하는 한옥, 제 노력에 의해서 산 한옥에서 전세 들어 살던 젊은 사람이 아까운 사람이 연탄가스로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때 제가 수리를 못 하게 했어요. 장례식을 제가 치렀습니다. 그 후에 법적으로 기본 구조물에 의한 사고는 집주인에게도 전세지만 책임이 있다 해서 집 전체에 대한 배상을 그분들에게 하게 되죠. 그런데 집을 없애지 않고 기둥만이라도 남겨놓으라는 누구 조언을 받아들여서 빚을 내서 배상을 하고 집을 남겨 놓은 상태였는데요. 한옥은 수리를 못하니까 물이 새면 기둥들이 썩어서 집 하나가 내려앉아 가지고 아이들까지 해서 다섯 식구가 몰살을 하는 그런 상황이 벌어집니다.
◆ 박귀빈 : 그게 언제쯤 얘기하시는 거예요?
◇ 윤종복 : 한 40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때 제가 ‘나 같은 사람이 또 나오면 안 되겠다’ 그래서 나섰는데, 무슨 제도권에 들어가고 목적이 있어야, 보기 싫어서 순수한 봉사로 이걸 하려고 하다 보니까 그 상황에서 시민들과 대화하면서 또 개발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세월이 흘렀고 어느 시점이 됐을 때 ‘아 이건 제도권 안에 들어가야 해결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 박귀빈 : 계속 봉사를 하시다가 이제는 제도권에 내가 직접 들어가서 뭔가 법을 바꾸거나 실질적으로 뭔가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신 거군요.
◇ 윤종복 : 전에는 그렇게까지 생각을 안 했으나 하다 보니까 책임감까지 생겨서 결국은 들어오게 됐습니다.
◆ 박귀빈 : 서울시의회에 그래서 들어오셔서 의정활동 해 보시니까 어떠세요?
◇ 윤종복 : 참 잘 왔다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어떤 부분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세요?
◇ 윤종복 : 우선 서울시는 서울시민전체나 나아가서는 모든 부분에 행정적으로 책임져야 책임질 수 있는 권한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것을 잘 행사하기에 따라서 우리 서울시 시민들이나 모두가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생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잘 들어온 것 같습니다.
◆ 박귀빈 : 우리 의원님께서 월남전도 참전을 하셨다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들도 굉장히 큰 의정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실 것 같은데, 월남전 참전 이야기 살짝 해 주시죠.
◇ 윤종복 : 당시에는 애국심으로 갔습니다. 대부분 그때 저희 또래는 그랬습니다. 어머니가 군대에 와 있는 사이에 혼자 계시다 돌아가 셨습니다. 그래서 핑계로 해서 지원을 해서 월남을 갔습니다. 월남에 가서 많은 인생에 대한 것을 배웠습니다. 생명의 소중함. 옆에 전화하고 다리가 끊어지는 게 낫겠냐 팔이 떨어지는 게 낫겠냐. 정색으로 하나라도 떨어뜨려도 와야 되겠더라고요. 생명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 박귀빈 : 그럼 많은 경험을 하시고 나서 원래가 내가 사람들에게 봉사를 해야 되겠다 이런 마음을 가지셨던 분이고 실제 서울시 의회에 들어오셔서 의정 활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저희가 한번 여쭤볼게요. 서울시 의회에서 의원님들이 나오시면 하나의 코너로 진행을 합니다. 서울시 의원의 시민 보고 코너인데요. 시민들에게 결재를 올린다는 마음으로 말씀해 주시면 되고요. 오늘은 윤종복 서울시 의원의 시민 보고가 됩니다. 첫 번째 보고하실 내용은 앞서도 한옥 말씀하셨는데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오셨네요. 한옥이 어려움이 있군요.
◇ 윤종복 : 계기가 제가 한옥 부분인데 한옥을 규제로 묶어서 아무것도 못하게 하고 수리도 못하게 해서 그런 사고도 나고 하다 보니까 제가 머리띠를 들고 한옥 보존 해제 운동을 해 가지고 해제시켰습니다. 고건 시장 때입니다. 해제시켰는데 사람들이 아궁이 같은 걸로 너무 불편하게 살다보니까 연립으로 바뀌기 시작하는 건데 어떤 분들이 저에게 충고하시기를 학자님들이 ‘교수님 되게 이 한옥은 정말 소중하다. 우리가 다른 국가들에게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건 선문화다. 선문화의 대표적인 것이 한옥이다. 아름다운 처마 끝에 모습이 우리의 독특한 맛인데 저거 없어지면 우리 후손들이 어떡하냐’
◆ 박귀빈 : 그러니까 한옥은 보존하고 지켜야 된다 이런 전문가들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또 그러다 보니까 한옥에 사시는 분들은 너무 생활이 힘드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걸 규제를 완화해서 보수도 할 수 있고 그럴 수 있게 해 주신 건가요?
◇ 윤종복 : 해제를 하고 막 한옥이 없어지는 중에 제가 급선회를 합니다.
◆ 박귀빈 : 어떻게 급선회를 하셨나요?
◇ 윤종복 : 한옥을 지켜야 되겠구나. 지켜야 되겠구나. 늦게나마 깨달은 게 참 감사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한옥은 왜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 윤종복 : 아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가치, 전통, 역사 그리고 나름대로의 우리 의미적인 가치관 이건 지켜 나가고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줘야 되는 거구나. 그래서 아주 급선회해서 설득을 하고 다녀서 한옥이 그나마 지금 남아있어요.
◆ 박귀빈 : 그런데 북촌 같은 경우는 지금 서울의 명소잖아요. 관광객들도 굉장히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보니까 보시는 분들은 좋지만 북촌 한옥에서 살고 계시는 분들은 주거권이 보장이 안 되는 측면이 있어 가지고 그게 문제가 되고 있지 않나요? 이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 윤종복 :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정주권, 아침이면은 사람들이 하도 많이 관광버스를 잡아서 골목을 들어오니까 실제로 아침에 오면 어머니가 딸내 집으로 피난을 갑니다. 다른 동네로. 너무 시끄러워서요. ‘시끄럽게 하지 맙시다’ 아무리 캠페인해도 시끄러워요. 그걸 겪으면서 사람들은 ‘여기서 어떻게 살아’
◆ 박귀빈 : 어떤 방안이 있을까요? 그럼 그분들을 위해서.
◇ 윤종복 : 그러다 보니까 한옥의 가치가 떨어져요. 왜냐하면 사서 오겠다는 사람이 없으면 떨어져요. 재산상의 가치도 떨어지고 정주권도 안 되고 그러니까 한옥을 보존할 수가 없죠. 그렇다고 나라에서 전부 다 사 가지고 할 수는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존재해 줘야 되는 여러 가지 정책을 하게 되는데요. 그동안 여러 가지 정책을 나름대로 써가지고 많이, 세금도 조금씩 낮춰주고. 우선 첫째 한 것은 수리비를 무상 제공하고 싼 이자로 할 수 있게끔 해놨는데 현재 그것도 한참 전이라서 지금 현실화가 안 돼 있어서 제가 지금 현실화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첫 번째 시민 보고로 북촌에 있는 한옥 관련한 이야기를 해 주셨고 두 번째 시민 보고 내용을 보니까 이거는 ‘비한옥 건축물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거든요. 이건 또 어떤 말씀이실까요?
◇ 윤종복 : 원래 정책적으로 바란 건 수리비와 새로 신축하는 것에 대해서 보조해 주는 이것을 만들 때는 정책적으로 어떤 내심이었냐 하면 3층짜리 낡은 비한옥들을 헐면 한옥을 지어라. 그걸 유도하려고 그랬던 거예요. 근데 그건 불가능하더라고요. 실행해 보니까. 비한옥이 낡으니까 젊은 사람들이 다 떠나요.
◆ 박귀빈 : 비한옥도 낡아서 사람들이 살기 힘드니까 안 들어오는군요.
◇ 윤종복 : 그래서 한옥과 깨끗한 비한옥이 함께 했을 때 현대와 과거가 같이 어울릴 수 있는 정책으로 가자, 지금 그걸 추진하고 있습니다.
◆ 박귀빈 : 그렇군요. 한옥은 한옥대로 네 빌라나 아파트 같은 경우는 또 그거에 맞춰서 건축물 규제 기준을 완화해야 된다 이런 말씀을 해 주신 거예요. 의원님도 첫 집 마련도 앞서 한옥이라고 말씀을 해 주셨고, 그리고 지금 종로가 지역구시시잖아요. 종로에 오래 계셨어요?
◇ 윤종복 : 제 고향이 강원도입니다. 고향인 강원도 촌사람이 서울에 와서 모든 분들 덕분에 농담처럼 출세했습니다. 올라와 가지고 처음 떨어진 데가 몇 군데 있었는데, 제가 제대하는 날 여관비를 아끼려고 남산에서 올라가서 노숙을 했어요. 그때 남산이 지금 같지 않고 훤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가지고 저쪽 북쪽으로 가다 보니까 청와대, 복궁 그다음에 우리 지금 얘기하는 북촌이 쫙 다 보입니다. 내려다보니까 과연 내가 여기는 땅 한 평이라도 내가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절망감을 많이 느꼈어요. 순간 청소차가 새벽종이 울렸네 하고 새마을 노래를 부르더라고요. 근데 내가 제대하기 전에 새마을 교육을 받았거든요. ‘하면 된다’, ‘너도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때 좋다 해보자 해 가지고 해서 거기다 집을 마련한 겁니다.
◆ 박귀빈 : 종로에 첫 집을 마련하셨고 지금도 종로구 의원으로 계신 건데 종로구에 변화 발전상 그대로 다 알고 계시겠네요?
◇ 윤종복 : 네, 그렇죠.
◆ 박귀빈 : 누구보다 종로를 잘 알고 계셔서 아마 지역구에서 각종 현안들을 해결하고 계실 것 같은데요. 세 번째 시민 보호로 넘어가 보면 세 번째로는 어떤 말씀 해 주실까요?
◇ 윤종복 : 제가 서울시에 와 가지고 이번에 조례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구도시, 다시 말하면 강북의 구도시라고 말씀드립니다. 거기의 초가집에서, 기와집에서 적금 연립으로 변하는 상황이었는데, 그게 40년 되니까 다 낡았어요. 수도관도 막히고 다 낡았어요. 근데 그런 경관지구가 대부분이거든요. 근데 3층밖에 못 짓게 돼 있어요. 그러다 보니까 사람들이 집단 건물에 살고 있으면서 새로 지으려면 100%의 건축비를 내야 돼요. 100%의 건축비를 다 낼 수 있다 하더라도 한 사람만 ‘나는 돈이 없어’ 하면 영원히 못 짓습니다. 영원히 그건 신축을 할 수가 없어요. 다 낡아가고 자식도 도저히 못 살겠다고 떠나가는데. 그런 곳이 한두 곳이 아니고 너무 많습니다. 이번에 만든 것이 뭐냐면, 경관지구의 사업성을 만들어 주자. 이제는 시대적으로 경관에 대한 의미도 달리하자.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경관이다 그런 제 논리로 조례를 만들었습니다. 공동 사업을 하는 모아주택이나 사업하는 경관지구는 24m까지그다음에 개별적인 곳은 경우는 3층이었는데 4층으로 올려주고 건폐율도 30%에서 40%로 올려줬습니다. 새로 짓고 살게 해줘야 되거든요. 구도심 그만 후퇴시켜야 합니다.
◆ 박귀빈 : 그러니까요. 그러니까 예전부터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게 하는데 크게 관심을 갖고 계신 것 같아서 부분들의 삶에 더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게 해 주시는 데 더 집중해서 의정 활동을 하고 계신다는 게 느껴지고요. 어느덧 시간이 훌쩍 지나서 마지막 질문드려야 되겠네요. 저희가 항상 마지막 질문은 OOO을 채워 주십사 이렇게 말씀을 드리거든요. 윤종복 서울시의원의 의정 아이콘은 OOO이다 어떻게 채워주실까요?
◇ 윤종복 : 저는 ‘머슴’이다. 서울시 시민의 말로만 모습이 아니고 진실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서울 시민의, 우리 어린 아이들한테까지도 내 주인이다. 나는 진솔한 머슴이다.
◆ 박귀빈 :청취자님이 인터뷰 듣고 계시는 청취자분이 문자를 주셨어요. ‘부암동 주민입니다. 윤종복 의원 응원합니다.’ 이렇게 응원의 문자 보내주셨네요. 지금까지 윤종복 서울시 의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종복 : 감사합니다. 오늘 정말 고마웠습니다.
◆ 박귀빈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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