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라디오 앱 소개

YTN 라디오


인터뷰전문

방송시간[월~금] 06:40, 12:40, 19:40
제작진진행: 이원화 변호사 / PD : 김세령 / 작가 : 강정연
가짜 스님 협박에 거짓 자백, 유력 용의자 무죄 판결까지…미궁 속 미제 사건
2024-10-25 14:06 작게 크게
[YTN 라디오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X파일]
■ 방송 : FM 94.5 (06:40~06:55, 12:40~12:55, 19:40~19:55)
■ 방송일 : 2024년 10월 25일 (금)
■ 진행 : 이원화 변호사
■ 대담 : 이현태 변호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원화 변호사(이하 이원화): 살인 사건이 발생했을 때 누군가 내가 진범이라며 자백하는 경우 정말 극히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아예 없는 일은 또 아니죠. 오늘 들려드릴 이 사건 같은 경우도 수사 초기 진범이 자백을 했던 그런 케이스였죠. A 씨가 저질렀다는 이 사건은 한 달 전쯤 강원도 강릉의 한 마을에서 발생했던 장 씨 할머니 살인 사건이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검찰로 송치했는데 이때 자백을 했던 A 씨가 진술을 번복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정말 황당무계한 소리 같지만 놀랍게도 A씨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럼 A씨에게 자백하라고 말했던 이 스님의 정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요?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했던 걸까요? 사건 X파일에서 이 사건 자세히 짚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원화 변호사의 사건 X파일 이원화입니다. 오늘도 로엘 법무법인 이현태 변호사와 함께합니다. 

◇이현태 변호사(이하 이현태): 안녕하세요. 로엘 법무법인의 이현태 변호사입니다.

◆이원화: 거의 20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입니다. 강원도 강릉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일이죠.

◇이현태: 네, 그렇습니다. 이 사건은 2005년 5월 13일 강원도 강릉의 한 산골마을인 구정면 덕현리에서 발생을 했습니다. 당시 69세였던 장 씨 할머니가 숨진 채 발견되었죠.

◆이원화: 할머니를 찾아갔던 주민이 범행 현장을 발견했다는 건데 진짜 놀랐을 것 같아요.

◇이현태: 네 할머니를 처음 발견한 것은 이웃 주민이었는데요. 그 이웃 주민은 경찰에게 현관문과 안방문이 열린 채 TV 소리가 들리는데 인기척이 없어 방 안으로 들어가 보니 장 씨 할머니가 숨져 있었다라고 진술을 했습니다. 이 숨진 할머니의 모습은 정말 참혹했는데요. 얼굴은 포장용 노란색 테이프로 칭칭 감겨 있었고, 손과 발은 전화선 등으로 꽁꽁 묶여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집안을 살펴보니 안방 안에 있던 장롱 서랍은 모두 열려 있었는데 금반지를 비롯한 78만 원 상당의 귀금속은 사라진 반면 3천만 원이 들어있던 통장과 도장, 그리고 현금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후 할머니의 사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이 진행됐는데요. 부검 결과 할머니의 사인은 기도 폐쇄와 갈비뼈 골절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를 근거로 경찰은 범인이 테이프로 할머니 얼굴을 감아 숨을 못 쉬게 한 뒤 저항하는 할머니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해 숨지게 했다고 보았습니다.

◆이원화: 목격자는 혹시 없었습니까?

◇이현태: 당시 목격자도 없었고 현장 주변에는 CCTV도 없었습니다. 경찰이 범행의 단서를 찾기 위해 정밀 감식을 진행했지만 범인이 지문, DNA 등 흔적을 다 지우고 도주했는지 특별한 단서가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당시 경찰이 17개의 지문을 확보하긴 했는데 감식 결과 할머니나 할머니의 가족들 것으로 확인이 되어서 수사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아주 중요한 단서 하나가 발견됩니다. 바로 숨진 할머니의 얼굴을 감고 있던 그 포장용 테이프 심지에서 1cm 길이의 흐릿한 쪽지문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 포장용 테이프가 원래는 동그랗게 말려 있고 안에는 종이로 된 심지가 있죠. 테이프를 뜯어서 자르려면 속지를 잡고 잡아당겨야 되는데 이 과정에서 지문이 남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아마도 저항하는 할머니의 얼굴을 테이프로 감으려고 하는데, 얼른 속지가 잘 떨어지지 않자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떼는 과정에서 범인의 지문이 찍힌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이원화: 그러면 용의자 찾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요.

◇이현태: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당시 기술로는 1cm의 쪽지문만으로는 용의자를 특정하기 어려웠다는 겁니다. 현장에서 확보한 지문과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지문을 비교하는 방법으로 범인을 특정하게 되는데요. 이때 지문에 끊긴 점이나 곡선을 비롯해 13가지 특징점이 뚜렷하게 나와야 범인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 발견된 쪽지문은 그런 특징들이 불분명했고, 그래서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다른 지문들과 비교하기 위한 대상으로 삼기는 어려웠던 거죠.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는가 싶더니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자신이 범인이라며 자백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원화: 살인 사건에서 자백을 먼저 한다는 게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닌데 누구였나요? 면식범이었습니까?

◇이현태: 바로 그 자백했던 인물은 숨진 할머니와 수양딸처럼 친하게 지내던 이웃 여성 A 씨였습니다. A 씨는 돈을 빌려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해 순간적으로 화가 나 죽였다고 진술을 했습니다. 그리고 강도 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해 할머니의 귀금속을 훔쳤고, 그 귀금속은 집 앞에 있는 밭에 버렸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자백도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범인이 면식범일 것이라고 전제하고 있었고, 이미 그 A 씨를 용의선상에 올려놓고 있었습니다. 할머니와 200만 원의 채권 채무 관계가 있었고, 또 A 씨가 당일 행적에 대해서 횡설수설했다는 점도 경찰이 의심을 사게 된 이유가 됐었죠.

◆이원화: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미제로 넘어가지 않고 진범을 잡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습니다.

◇이현태: 그런데 사건이 검찰로 송치된 후 A 씨가 진술을 번복합니다. 자신이 할머니를 죽인 게 아니라고 말이죠. 사실 경찰 조사 때 A 씨의 자백이 사건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았습니다. 훔친 귀금속은 집 앞에 있는 밭에 버렸다라고 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발견되지 않았었고, A씨가 썼다고 주장하는 범행 도구와 현장에서 발견된 범행 도구도 서로 달랐던 것이죠. 또 세 차례에 걸친 거짓말 탐지기 조사가 진행이 됐으나 이때에도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 사건을 A 씨를 용의자로 보고 검찰에 송치했던 겁니다.

◆이원화: 아니 정신 나간 사람도 아니고 왜 그랬답니까? 살인이 무슨 장난도 아니고 자기가 죽이지도 않은 사람을 왜 죽였다고 했던 거예요.

◇이현태: A 씨가 자백하게 된 이유는 사실 더 황당합니다. 할머니가 사망하고 나서 며칠 뒤에 한 여자 스님이 찾아왔는데 그 스님이 당신이 살인을 했다고 말하지 않으면 당신 아들에게 큰일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A씨는 그 스님의 말을 듣고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을 먹었고 허위로 자백을 하게 됐던 것이죠.

◆이원화: 어떻게 그런 말에 내가 누군가를 살해했다는 말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 가긴 하네요.

◇이현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사건에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이 많이 등장을 합니다. 그중 하나가 이 A 씨에게 허위 자백을 하도록 한 여자 스님이 바로 사건을 수사하고 있던 담당 형사의 친누나였다는 겁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이 일어난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경찰이 범인이 면식범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했고 이 A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았기 때문에 어거지로 함정 수사를 했던 것이죠.

◆이원화: 이거 그 스님도 그렇고 형사도 그렇고 처벌 대상 아닌가요?

◇이현태: 형사와 누나가 A 씨에게 허위의 진술을 강요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강요죄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 정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찌 됐든 A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다른 증거도 딱히 없었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였다는 A 씨가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자 수사는 사실상 중단되었습니다. 결국 미제로 남게 된 것이죠.

◆이원화: 이 사건이 거의 20년 전에 발생한 일이잖아요. 요즘 과학기술이 엄청 좋아져서 몇십 년 전 DNA로 사건 범인을 찾아내고 이게 가능해진 시대 아닙니까? 그러면 당시 쪽지문도 범인 식별해낸 만큼 기술이 좋아졌을 것 같거든요.

◇이현태: 네 맞습니다. 과학 수사 기법이 발전하면서 지문을 해독하고 범인을 특정하는 기술이 급속도로 좋아졌고, 이에 이 사건이 있었던 대로부터 12년 만인 2017년 유일한 증거였던 그 쪽지문을 분석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원화: 그러면 그 쪽지문의 정체 밝혀졌습니까?

◇이현태: 그렇습니다. 경찰은 그 쪽지문의 주인이 인근 동해시에 거주하고 있던 B 씨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B 씨는 이 사건이 있었던 당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한 상황이었고, 과거에도 유사한 방법으로 절도 범행을 저지른 전과가 있었습니다. 또 거짓말 탐지기 검사 결과 그의 진술이 모두 거짓으로 판명되기도 했고, B 씨가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에 동해시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고 알리바이를 진술했지만 이 또한 거짓으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경찰이 의심을 사기에는 충분했죠.

◆이원화: 전과도 있었군요. 사건 다루다 보면 저도 매번 놀라곤 합니다만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범죄자들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요. 정말 다행이다 싶은데 그럼 바로 체포됐습니까?

◇이현태: B 씨는 체포됐지만 자신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했습니다. 쪽지문이 나온 테이프는 도난당한 내 오토바이에 있던 건데 왜 거기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강릉에는 가본 적도 없다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모는 것은 부당하다라고 하면서 자신의 혐의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원화: 검찰의 선택은 뭐였나요?

◇이현태: 검찰은 B 씨를 강도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강도 살인죄는 유죄가 인정되면 사형 아니면 무기징역에만 처하게 되는 아주 중한 범죄인데 이런 무서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것이죠.

◆이원화: 당시 1심이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고 들었는데 결과가 어떻게 나왔습니까?

◇이현태: 1심에서 재판부는 B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판결 이유를 보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는 이 쪽지문이 유일하다. 지문 감정 결과를 보았을 때 이 쪽지문의 주인이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강하게 의심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이 지문은 이 사건 범행과 무관하게 알 수 없는 경위로 남겨졌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다시 말해 이 쪽지문만으로는 B씨를 유죄로 판단하기에는 부족하다고 보았던 것이죠. 또 B 씨가 이 사건으로부터 약 12년 후에야 범인으로 지목된 점을 언급하면서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여러 증거가 흩어지고 일부는 없어져 무죄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기 어렵게 됐다라고 하면서 B 씨의 방어권 문제도 지적을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배심원 9명 중 8명도 B 씨의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검찰이 여기에 항소해서 열심히 다퉜지만 2심에서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상고를 제기해서 마지막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1심과 2심의 판단이 번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판단하고는 상고를 포기했습니다.

◆이원화: 변호사님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정황 증거 그리고 당시 사건 현장에서 나온 유일한 물증인 쪽지문 이걸로 피고인의 범행을 단정지을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이현태: 범행 현장에서 그 범행 도구로 사용된 물건에서 피고인의 지문이 나왔다면 범행을 의심할 만한 충분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죄 판결을 위해서는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유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는 B씨가 자신의 혐의를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는 만큼 그 쪽지문만으로는 유죄를 인정하기에는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또 상고심은 사실심이 아니라 법률심이라는 점에 있어서도 상고를 제기하더라도 결과가 달라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한 검찰의 결정은 크게 틀리지는 않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도 중요했던 사건인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다퉈봤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은 물론 있습니다. 이렇게 유일한 증거였던 쪽지문이 유죄의 증거로 사용되지 못했고 이제는 이 사건이 영구 미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이원화: 이게 또 다른 사건도 아니고 강도 살인 사건이기 때문에 유죄를 인정하는 경우에 내릴 수 있는 그 형량의 폭이 법원 입장에서도 굉장히 제한적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더더욱 유죄 인정을 하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었겠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사건의 X파일 오늘은 20여 년 전 강릉에서 발생한 쪽지문 살인 사건 살펴봤습니다. 허위자백 그리고 유력 용의자의 무죄 판결까지 두 번의 해프닝이 벌어지며 지금까지 미제로 남아 있는 사건이죠. 도대체 누가 장 씨 할머니를 살해했던 걸까요? 그리고 왜 그랬던 걸까요? 어딘가에 또 다른 범인이 존재하는 걸까요? 미제 사건 중에서도 유독 물음표가 많이 생기는 그런 사건이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저희가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변호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사건 X파일 여러분 고맙습니다.

 

[저작권자(c) YTN radio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