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3년 5월 20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김언경 뭉클미디어 소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휘 아나운서(이하 최휘)> 한 주간 뉴스를 꼭꼭 씹어보는 시간, 미디어 비평입니다. 오늘은 김언경 뭉클 미디어 인권연구소장과 전화연결 되어있습니다. 안녕하세요.
◆ 김언경 소장(이하 김언경)> 안녕하세요.
◇ 최휘> 저희가 지난 장애 차별 철폐의 날 즈음에 장애인권 관련 언론보도의 문제점을 짚어봤는데요. 최근에도 인기 드라마 속에서 특정 질환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한 점이 논란 빚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엔 드라마 속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어떤 사례부터 살펴볼까요?
◆ 김언경> JTBC 드라마 <닥터 차정숙>에서 크론병 묘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 드라마 대사를 말씀드릴 텐데요. 미디어비평을 하면 가장 곤란한 것이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그 내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제가 심각한 내용은 되도록 어떤 문제가 있는 발언이었다 정도로만 전달하는데요. 오늘은 청취자 여러분들과 함께 생각해보기 위해서 되도록 드라마 대사를 그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닥터 차정숙>에서는 크론병에 걸려 인공 장루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젊은 남성 환자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의 장인 장모가 병문안을 와서 환자복을 들추며 장루가 있는 배를 확인한 후 “어떻게 이런 못된 병을 숨기고 결혼할 수가 있어? 이 병 유전도 된다면서, 이 결혼 내 딸이 괜찮다고 해도 자네가 포기했어야지. 내 딸 호강시켜 주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하지만 시작부터 남편 병수발 드는 것까지는 못 봐.”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극중 크론병 환자는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다 병원 옥상에서 투신을 시도합니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마무리가 되지만 크론병 환우에게는 이런 장면들이 큰 상처가 될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크론병 환우거나 가족을 둔 이들의 "아이가 볼까 두렵다" "너무 속상해서 눈물만 납니다" "잘 살고 있는 환자들에게 오히려 병을 안겨준 상황"이라는 등의 비난 댓글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 최휘> 크론병에 대해서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한 우려가 있단 지적이죠. 그럼 크론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부터 이야기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 김언경> <후생신보>에 게재된 기고문 <염증성장질환 전문의가 본 ‘닥터 차정숙’>에 따르면 크론병은 궤양성 대장염과 함께 염증성 장질환에 속하는 질병으로 안타깝게도 아직 완치가 없기 때문에 평생 투약 및 관리가 필요한 질환으로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 만성질환이라고 합니다. 크론병은 입에서 항문까지 위장관에 염증을 일으키며 심해지면 장의 협착으로 진행해 뱃속에 고름집(농양), 천공 등의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해 장절제술을 여러 번 받게 된다고 합니다. 다만 최근에는 다양한 치료약제가 개발돼 이런 합병증을 예방할 수 있게 됐으며 수술 후 환자에서 재발없이 유지가 가능해졌답니다. 크론병은 유전적 요인이 있는 사람에서 장내 미생물과 인체 면역시스템 사이의 이상반응이 지속돼 발병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음식, 흡연, 대기오염 등도 발병에 관여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데요. 그러나 이것을 두고 크론병은 유전병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양한 원인의 합으로 발생되며 각각의 환자에게 정확한 발병 원인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다만, 이 기사에서는 “염증성 장질환 환자에서 자살 의도, 시도는 일반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으며 크론병, 여성, 젊은 환자, 최근 진단받은 환자에서 더 위험하다. 자살은 주위 사람에게 의도를 은연중이든 아니든 내비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주위의 배려와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서 “특정 질환 에피소드로 환자분들과 가족분들께 상처를 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 최휘> 그렇다면 소장님은 이 사안을 어떻게 보시나요? 방심위 심의 과정에서 어떤 점을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이라고 보시나요?
◆ 김언경> <닥터 차정숙>의 경우 우선 크론병은 유전병이라는 부정확한 정보가 전달될 수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단 생각입니다. 조항을 찾아보자면 제42조 의료행위 등 1항 4호에 “질병 등에 관하여 시청자를 지나치게 불안하게 하는 내용”을 다루지 못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엔 이보다는 제21조(인권 보호)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할 것으로 보입니다. 드라마에서 ‘못된 병’ ‘유전병’ 운운하며 사위에게 몰아붙이는 장면이 맥락상 크론병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하고 환우에게 큰 상처를 주었단 점에서 21조 인권보호 ②항은 “방송은 심신장애인 또는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다룰 때에는 특히 인권이 최대한 보호되도록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③항 “방송은 정신적․신체적 차이 또는 학력․재력․출신지역․방언 등을 조롱의 대상으로 취급하여서는 아니되며, 부정적이거나 열등한 대상으로 다루어서는 아니된다.”는 내용입니다. 이 조항을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심의는 방심위원들의 심도깊은 논의 끝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결과는 지켜봐야겠지요. 다만, 방심위의 인권 감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봤을 때, 저는 개인적인 의견으로 상징적인 의미에서라도 방심위에서 이런 장면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고, 엄중한 심의 결과가 나왔으면 합니다.
◇ 최휘> 이렇게 드라마의 내용에서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점에서 징계가 이루어진 사례가 있나요?
◆ 김언경> 2019년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테러가 발생했는데 배우가 “조현병 환자였답니다. 망상에 빠져 폐하를 공격한 모양이에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조현병 환자를 폭력적이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표현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았고 방심위에서 법정제재인 주의를 받았습니다. 다만 당시 심의내용을 보면, 그때는 조현병 문제 묘사뿐 아니라, 선정적, 폭력적인 여러 문제가 복합적으로 존재했기 때문에 중징계가 나왔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번 <닥터 차정숙>에 대한 심의결과가 나올지 저도 궁금합니다.
◇ 최휘> 그렇군요. 지금 조현병, 크론병에 대한 문제적 묘사를 살펴봤고요. 인권침해면에서 중국 동포에 대한 드라마나 영화 등의 묘사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그려진다는 문제 지적도 계속됐죠. 관련해서 영화 ‘청년경찰’이 법정까지 가게 된 적이 있었어요?
◆ 김언경> 그렇습니다. 2017년 개봉한 영화 ‘청년경찰’ 이란 영화에 대해서 중국동포 60여명이 중국동포를 혐오적·악의적으로 그려서 잘못된 편견을 불러일으켰다면서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냈습니다. 이 영화는 경찰대학교 학생 두 명이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에서 우연히 한 여성이 납치되는 상황을 목격하고 신체 장기매매 범죄에 대한 조사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내용이었습니다. 2018년 1심에서는 중국동포 단체들이 패소했고요. 2020년 항소심에서는 제작사가 영화에서 중국동포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끼도록 표현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고 법원이 화해 권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신적 손해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내리는 대신 제작사가 사과하는 선에서 양측의 화해를 권고한 것입니다. 특히 재판부는 “‘청년경찰’ 제작사는 중국동포에 대한 부정적 묘사로 불편함과 소외감을 느꼈을 수 있는 원고들에게 사과의 의사를 전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영화를 제작하면서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이나 반감을 일으킬 소지가 있는 혐오 표현이 없는지 충분히 검토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제작사 측은 사과를 했습니다. 중국 동포 분들의 대리인 측은 환영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번 법원 결정은 영화 제작사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사실과 다른 내용으로 외국인 집단에 대한 부정적 묘사를 했다면 이에 대해 사과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 사법부 최초 판단”이라는 것입니다.
◇ 최휘> 다른 드라마의 사례도 있나요?
◆ 김언경> 2020년 KBS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는 한 남자의 전 부인과 현 애인의 대화에서 “하긴 얼마나 편해. 집에서 놀고 먹어도 따박 따박 양육비 들어와. 받은 위자료도 있겠다. 난 언니가 은근 부럽더라.”라고 말하자, 이혼한 여성이 “아니야, 내가 살게. 나 양육비 받잖아.”라면서 자녀 양육비로 식사비를 결제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방송 직후 양육비 수령이 부당하고 뻔뻔한 일인 것처럼 묘사한 것은 한부모 가정과 양육비에 대한 현실을 왜곡한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27조(품위유지) 5호, 제30조(양성평등) 제2항 위반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행정지도인 권고를 받았습니다.
◇ 최휘> 그런데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 사회적 문제들을 담고 있고요. 심한 갈등이 등장하고요. 그러다보니 악인이 등장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늘 밉상인 그런 말들을 하고요. 그런데 이런 것을 모두 누군가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까 고민이 되기도 합니다.
◆ 김언경> 그렇죠. 사실 드라마 비평을 하다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드라마를 다큐로 본다’는 말과 ‘피시주의자냐’라는 말입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그걸 하나하나 따지냐고 하거나, 드라마의 내용이 꼭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할 수 없다는 목소리지요.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드라마에서는 악역이 등장하기 마련이고, 그들은 늘 뭔가 부적절하고 하지 말아야 할 망언을 내뱉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망언이 사회적 소수자, 약자를 향한 차별적, 혐오적 표현인 경우에는 그것이 해당 소수자들에게는 비수를 꽂는 장면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번 <닥터 차정숙>처럼 정확한 정보도 아닌 유전병이라는 말과 함께 ‘못된 병’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해당 질병에 대해 부정적 인식과 편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소 불편한 발언이 한번 나왔다 할지라도 드라마 전개상 그들이 말한 부정확한 내용이 누군가로부터 정정되고, 그들이 한 망언이 부적절한 것임을 지적해주거나, 그들이 사과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권선징악적 결말을 맺거나 이렇게 극의 흐름이 전개되면 괜찮은데요. 그렇지 않고 그저 차별과 혐오가 정당한 것처럼 마무리될 때는 사실 시청자의 인권의식, 인권 감수성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특히 이번의 경우처럼 사실이 아닌 내용을 토대로 그리면 더욱 문제가 되겠죠.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드라마 속에서 노골적으로 조롱하고 차별받는 대상이 바로 자신과 같은 존재라면, 그 누가 이건 드라마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요. 장애인, 특정질환을 앓고 계신 분들, 성소수자, 탈북인, 난민, 이주민, 그리고 특정 직업에 종사하는 분, 특정 계층 등등 누구라도 드라마에서 자신을 차별적으로 대하고 잘못된 인식을 일반화시키는 장면이 나올 때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드라마에서 극적 갈등을 고조하기 위해서 사회적 소수자를 비하하고 조롱하고 차별하는 내용, 그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장면이 들어가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최휘>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김언경> 감사합니다.
◇ 최휘> 지금까지 김언경 뭉클미디어인권연구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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