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짜 : 2023년 4월 9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김윤태 체인지 컨설팅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조선왕 리더십 저자 김윤태"우리가 세종을 존경하는 이유"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처럼 역사를 통해 우리는 미래로 나아갈 방향을 찾곤 하죠. 오늘의 주인공 <조선왕, 그리고 리더십>의 저자, 체인지 컨설팅 대표인데요. 김윤태 대표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리더십에 관한 얘기를 나눌 거고요, 대표님 안녕하세요?
◆ 김윤태 체인지 컨설팅 대표(이하 김윤태)> 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한번 소개 좀 해주시죠?
◆ 김윤태> 저는 인문학 리더십을 저술하고 강연하는 체인지 컨설팅의 김윤태입니다. 청취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 이성규> ‘체인지 컨설팅’, 그게 무슨 뜻이죠?
◆ 김윤태> 체인지가 영어로는 변화를 의미하지 않습니까? 그 변화라는 의미를 한문으로 대입을 해서 확장을 해봤습니다. 그래서 한문의 몸 체(體) 자, 그리고 또 알 인(認) 자, 알 지(知)자로 의미를 추가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몸으로 체험하고 또 머리로 이해하고 또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교육을 통해서 사람들의 변화를 돕고 싶다는 그런 의미를 담은 그런 회사 이름입니다.
◇ 이성규> 이번에 책을 내셨더라고요 <조선왕 그리고 리더십>이라는 제목인데, 이 책을 쓰시게 된 계기 그리고 또 책이 무슨 내용인지.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 김윤태> 아마도 올바로 이해한다면 조선의 역사는 아마 자부심 덩어리인 것 같아요. 제가 거기서 힌트를 얻었는데, 삐딱하게 조선을 바라보면 끊임없는 당파 갈등 그리고 사대주의로 점철된 역사 때문에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조선은 단일 왕조로 518년을 견뎌낸 세계 유일의 민족입니다. 당쟁과 쇄국으로 500년 만에 망한 조선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로 500년이나 왕조를 유지한 그런 엄청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민족답게 엄청난 유산을 남겼는데, 그게 바로 조선왕조실록입니다. ‘날카로운 기억력보다 뭉뚝한 연필 한 자루가 낫다’는 그런 유럽 속담이 있습니다. 망각의 동물, 인간들이 기록보다 확실한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조선은 인류 역사에서 전무후무한, 방대한 역사 기록물을 후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게 바로 이 조선왕조실록이죠. 이 책을 본 전 세계 사람들은 놀랐고요.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해서 그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왕의 일과에는요, 항상 사관이 함께 했어요.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기록을 했습니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 명시했듯이 왕은요, 공식 근무 중에 사관이 없이는 누구와도 독대를 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정6품에서 정9품 정도니까 하급 관료거든요, 사관이. 이 사관이 왕의 옆에서 하루를 같이 하면서 글을 쓰고, 흘려 썼겠죠. 그리고 퇴근해서는 이거를 다시 정서해서 복원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사초(史草)’라고 하거든요. 근데 왕이 사망하게 되면 실록청, 지금으로 말하면 편찬위원회를 구성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걸 중심으로 실록을 완성하게 되는데, 실록이 완성되면 즉시 목판 활자를 만들어서 4부를 인쇄합니다.
◇ 이성규> 4부를 각기 다른 데 보관하는 건가요?
◆ 김윤태> 그렇죠. 각기 다른 장소에 보관을 하는데, 혹시 모를 변이나 화재 등으로 소실될 것에 대한 분산 보관인 거죠. 다시 말하면 현대판 클라우드를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가졌던 아주 지혜로운 민족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 조선왕조실록이 6,400만 자나 돼요. 엄청나지 않습니까? 이런 역사서를 가진 나라는 조선이 유일합니다. 근데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요. 세종께서 아버지 태종에 대한 실록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에요. 그래서 신하에게 “좀 보자”라고 했더니 세종의 핵심 참모인 맹사성과 황해가 만류를 했습니다. 어떻게 했냐면, “전하께서 실록을 보신다면 저 젊은 사관이 두려워서 사실을 기록하기 어려워집니다” 그때 세종께서 이제 변을 합니다. “난 단지 선대왕의 기록을 거울삼아서 좋은 정치를 하고자 한 것 뿐이야. 그런 의미는 아니야”라고 했죠. 그때 신하들이 또 얘기합니다. “전하의 마음은 이해가 가오나 전하가 선례를 남기시면 다음 왕도 실록을 볼 것이고 또 다음 왕도 실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면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전하께서는 마땅히 후대 왕 누구도 실록을 볼 수 없도록 교지를 내려서 엄중하게 지키게 하시옵소서” 하면서 세종이 응한 거죠. 그러면서부터 그 뒤로는 왕들이 실록을 볼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던 것이죠.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에게 전달된 500년 역사는 이게 바로 우리 선조들의 어떤 문화와 제도 그리고 정치와 백성들의 삶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아마도 이것들을 참고해서 후손들에게 더 좋은 나라를 만들려고 하는 의미는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 이성규> 그래서 그런 생각을 이렇게 정리를 하셔서 책을 내게 되신 건가요?
◆ 김윤태> 그렇죠. 조선왕조실록은 아마도 한국인의 자긍심이며 보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느 민족도 흉내 내지 못한 위대한 결과물, 이 의미 있는 유산에서 현재 대한민국에 필요한 가치 있는 교훈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책을 쓰게 됐습니다.
◇ 이성규> 근데 이 왕들을 통해서 리더십을 보셨는데, 시대도 많이 변했을 거고 그래서 더더욱 흥미로운데요. 대표님은 언제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지셨나요?
◆ 김윤태> 돌이켜 보면 학창 시절에 항상 국사 점수를 제가 만점을 맞았던 것 같아요. 네 학력 고사에서도 만점을 맞았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어릴 적부터 흥미를 느꼈고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이제 그렇게 어릴 때부터 역사를 좋아하셨는데, 리더십하고 어떻게 또 연결을 지어서 역사를 통해서 리더십 쪽으로 초점을 맞춰서 꾸며보실 생각을 하셨습니까?
◆ 김윤태> 제가 2000년부터 기업에서 리더십을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그 리더십의 모델이 외국인 분들이었어요. 좀 돌이켜 보면 우리 역사에도 참 훌륭한 리더들이 많은데, 빅 보스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제가 좋아하는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을 한 번 구성해서 강의를 하게 됐는데, 아주 인기가 뜨거웠어요. 인기가 되게 좋아서 그 뒤로 이렇게 한국의 위인들 또 빅 보스들을 중심으로 이렇게 리더십을 구성해서 강의하는 또 전달하는 그런 로를 한번 생각해보고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지금 이순신 말씀하셨는데 이순신 관련된 것도 책으로 나왔었죠? 그건 뭐죠, 책 이름이?
◆ 김윤태> <리더십, 난중일기에 묻다>
◇ 이성규> 상당히 유명해지셨군요, 그때부터?
◆ 김윤태> 네, 그 책 이후로 이순신 리더십에 대한 강연이 많아지면서 사랑을 받았습니다.
◇ 이성규> 이순신 리더십의 핵심은 뭐였죠?
◆ 김윤태> 아무래도 왕이 아닌 일반인이잖아요. 일반인, 백성이라고요. 근데 일개 백성의 모습이었지만 나라를 사랑하고, 백성을 사랑하고, 정말 그 충성의 모습이 정말 가슴 아플 정도로, 눈물 날 정도로 애처로운 게 많아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이순신 장군의 삶과 전투는요, 되게 드라마틱하고 되게 감동적이에요. 거기서 리더십을 좀 찾아봤습니다.
◇ 이성규> 근데 리더십 얘기를 많이 하고 그러는데, 리더십은 뭐죠?
◆ 김윤태> 리더십은 이제 사전적으로 이렇게 보면 ‘리더(leader)’ 플러스 ‘십(ship)’이에요. 다시 말하면 배를 이끌고 목적지에 도달하게 하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죠. 예 그래서 리더십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영향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구성원들의 판단과 행위를 리더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그러한 힘, 영향력을 리더십이라고 표현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지금 대표님 책에 보면 ‘자기 경영 리더십’이라는 말이 자주 나와요. 근데 ‘자기 경영 리더십’은 일반적인 리더십과는 좀 다른 건가요?
◆ 김윤태> 말 그대로 ‘리더십’ 앞에 ‘자기 경영’이 붙는 거잖아요. 말 그대로 타인 이전에 나를 경영하고 나를 이끈다는 의미죠. 다른 말로 ‘셀프 리더십’이라고 많이 들어보셨죠.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될 것 같아요.
◇ 이성규> 현대인의 리더십과 왕들의 또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이런 부분들이 많이 달라요?
◆ 김윤태>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은데, 이제 환경에 따라서 상황에 따라서 어떻게 그걸 해석할 것인가도 다른데. 현대인들에게 리더십이 필요하냐, 이런 질문을 들으면, 이런 것 같아요. 무엇을 하든 우리는 방향이 정해져야 준비하고 출발하지 않나요? 예를 들면 여행도 목적지를 정해야 항공도 예약하고 숙박도 예약하고 프로그램도 정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목적지가 정해져야 준비하고 계획하고 출발한다는 얘기인데, 우리 인생을 살아갈 때도 ‘나는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떻게 가야 하나’ 이런 질문의 연속일 텐데 그 대답을 스스로에게 하면서 살아가는 과정, 이거라고 생각합니다.
◇ 이성규> 그러다 보면 특히나 자기 경영 리더십은 누구에게나 필요할 것 같고요. 또 일반적으로 조직이나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십은 어느 직급 이상 사람들에게만 필요하다는 느낌도 드는데, 이 리더십은 지금 보니까 지위고하를 막느라고 다 필요할 것 같네요.
◆ 김윤태> 그럼요. 특히나 어떤 자신의 역할이나 지위와 상관없이 어떤 개인의 책임의식을 실천하고 또 긍정적인 기여 방안을 선택하는 사람. 이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보이지 않는 리더겠죠. 이런 사람들을 ‘무관의 리더’라고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요, 리더의 또 다른 롤이 나와 같은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 후배들을 성장시켜서 나와 같은 리더를 만들어내는 것도 또 하나의 리더의 어떤 롤이거든요. 그런 리더가 또 좋은 리더겠죠.
◇ 이성규> 리더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김윤태> 이거는 너무 어려운 질문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요, 상황에 따라서 필요한 리더십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예를 들면 지장, 덕장, 용장, 맹장, 이런 표현을 쓰지 않습니까? 각각의 특징을 담은 네이밍인데요. 서로 다른 것이 리더십의 모습인데, ‘어떤 게 우월하냐’ 이렇게 물어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또 이런 거죠. 빛이 프리즘을 통과하면 일곱 색깔이 나오지 않습니까?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이 나오는데 이 중에 ‘진정한 색깔, 진짜 색깔이 뭐야?’라고 묻는 것과 똑같은 거 아닐까요. 이전에 <리더십, 난중일기에 묻다>의 책을 마무리하면서 마지막에 ‘리더의 자질, 핵심5’ 해가지고 넣었던 게 있어요. 사실은 그 내용이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님이 직원들에게 ‘리더가 이 정도는 갖춰야 되지 않아?’라고 했던 다섯 가지 항목인데요. 그 덕목이 ‘지행용훈평’입니다. 지(知), 리더는 알아야 된다는 것이고. 그리고 행(行)은 행동하는 리더, 말만 하지 말고. 그리고 용, 쓸 용(用) 자. 어떻게 쓸 것인가. 그러니까 ‘사람이 물건이냐, 쓰게?’ 이렇게 대답하면 곤란한데 사람도 인적 자원이니까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거고. 그리고 훈(訓)은 교육시키고 훈련시켜서 성장시키도록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평(評)은 공정한 평가를 통해서 사기를 진작시켜야 한다는 것. 이 다섯 가지를 담았는데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 배우는 리더십, <조선왕, 그리고 리더십> 저자 김윤태 대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님, 우리가 이쯤에서 노래 하나를 듣거든요. 어떤 노래를 하나 추천하시겠습니까?
◆ 김윤태> 제가 추천한 노래는요,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노래입니다.
◇ 이성규> 이게 무슨 뜻이 있습니까?
◆ 김윤태>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대학 시절에 들국화가 가장 인기를 누렸는데, 이전에 보였던 보컬 그룹 사운드라고 그랬지 않습니까, 그때는? 이전에 보였던 연주와는 정말 색다르고 파격적인 것 같아서 너무 제가 좋아했던 그룹입니다.
◇ 이성규> 그러면 김윤태 대표께서 추천하신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 듣고 와서 다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들국화 / <걱정 말아요, 그대> Play
◇ 이성규> 들국화의 <걱정 말아요, 그대>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조선왕 그리고 리더십>의 저자, 김윤태 대표입니다. 김 대표님, 이 책을 보니까 지금 이러한 정치 환경 속에서 우리 사회가 우리 대표님이 쓰신 그 책에서 어떤 부분을 좀 받아들였으면 하십니까?
◆ 김윤태> 정말 추천하고 싶은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세종대왕 얘기인데요. 세종 12년에 조선 최초의 국민투표가 실시됩니다. 경작하는 토지에 대한 새로운 공법, 세금을 어떻게 낼 것인가 하는 거를 국민들에게 찬반을 물은 거예요. 그러니까 수확량의 10분의 1을 징수하던 기존의 세제 방식에서 토지 1결당 10두를 걷는 그런 정액세제 방식으로 공법을 마련하고 의견을 물은 거예요. 전 국민에게. 국민투표가 1430년 3월 5일에 시작이 됐는데 그게 8월 10일에 끝났으니까 5개월이나 소요된 거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전근대 사회에서, 특히나 왕권 국가에서 이렇게 백성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정책을 결정한 예는 없었습니다. 놀랍죠. 세종 12년 그래서 8월 10일, 담당 부서인 호조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를 했는데 찬성 57.1%, 반대 42.9%. 어떻게 나왔나 봤더니 평지가 많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는 99%가 찬성을 한 거예요. 수확량이 많으니까 정해서 내면 이득이잖아요. 근데 산지가 많은 그런 함경도나 평안도나 강원도 지역은 90% 이상이나 반대를 하는 거죠. 세종은 이렇게 반대가 많고 지역적 편차가 많은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 이성규> 그리고 어떻게 했어요?
◆ 김윤태> 현장의 관리를 파견합니다. 계속해서 검토하게 하고 대신들과 모여서 이 공법의 보완점, 개선점에 대해서 계속 논의를 합니다. 진지하게 논의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종 26년, 법률을 확정 짓는대요 그리고 전국적으로 시행하게 되는데 무려 14년이 걸린 겁니다. 전 이게 너무너무 마음에 와닿아요.
◇ 이성규> 그러면 지역별로 다르게 적용했나요?
◆ 김윤태> 이렇게 했습니다. 개선된 공법은 전분 6등법과 연분 9등법으로 최종 확정을 했는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전분 6등법은 토지의 비옥도를 여섯 단계로 나눈 거예요. 지역마다 다르니까. 그리고 연분 9등법은 한 해의 풍흉 정도를 9등급으로 나누는 거죠. 그래서 그 해의 등급에 따라서 토지 1결당 얼마의 세금을 내라는 것이었죠.
◇ 이성규> 정말 현실을 감안한 정책을 만들어낸 리더십이었다, 이렇게 보시는 거네요?
◆ 김윤태> 그럼요, 백성들의 형편을 섬세하게 살펴서 정교하게 다듬어낸 정책인 거죠. 다시 말하면 백성들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이거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느리지만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었다는 거죠. 이후에 450년 동안이나 조선의 과세 기준 원칙으로 적용됐어요. 그러면서 이 정책이 이렇게 백성을 위해서 고민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세종이 정말 백성을 사랑하는 애민군주라는 것이 이것에서 나타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제가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은, 국가 정책에 변화를 줄 때 이렇게 신중하게 접근하는 세종의 리더십은 우리 현재 정치인들이 깊이 들여다보고 본받아야 할 정치 철학이 아닌가, 이렇게 여겨집니다.
◇ 이성규> 또 세종 말고 세조의 경우는 카리스마가 넘치는 걸로 돼 있지 않습니까? 이런 분들을 제외하고 의외의 리더십을 갖고 계셨던 분이 또 계신가요?
◆ 김윤태> 카리스마 하면요. 조선의 27명 중에 넘버 원이 숙종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초강력 지도자를 꿈꾼 사람이죠. 한 가지 사례를 말씀드리면 숙종이 즉위 한 달 만에 당대 정치 거물이라고 하는 송시열과 맞서게 됩니다. 숙종의 아버지 현종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행장을 짓게 했는데, 그러니까 죽은 뒤에 행적을 그리는 글. 그걸 행장이라고 하거든요. 이 행장을 작성하게 하는데, 서인의 송시열의 잘못을 나타내는 그 예송논쟁을 빼고 기술한 거예요. 예조 참판이. 근데 알고 보니까 그 예조 참판이 송시열의 제자인 거예요. 스승의 잘못은 기록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아주 대노했죠, 숙종이. 너는 스승만 알고 임금은 알지 못하느냐 하면서 내쳤거든요. 다시 작성하게 하고. 왜 이런 일이 있었냐면, 당시 숙종은 14살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소년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송시열은 68세예요. 정계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공자, 맹자처럼 ‘송자’라 불렸습니다. 다시 말하면 조선 사상계의 중심인물이었죠. 이런 인물을 상대로 망설임 없이 송시호를 비난한 거예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때 14세의 어린왕 숙종이 노회한 정치인을 거침없이 몰아세우는 것을 보면서 『당의통략』에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어요. “이때 숙종의 나이가 14살이었는데 온 조정에서 두려워서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근데 숙종의 이러한 당당함, 이런 강함, 카리스마 이게 어디서 나왔는가 봤더니 완벽한 정통성에서 출발을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적장자의 적장자. 교수님 이해하셨나요?
◇ 이성규> 적장자 중에 적장자?
◆ 김윤태> 그러니까 아버지도 적장자고 그 아들이 적장자인 경우가 딱 두 사례예요. 바로 문종의 아들 단종. 문종도 세종의 적장자잖아요. 그 문종의 아들 단종이 첫 번째 적장자의 적장이고요. 두 번째가 바로 이 숙종입니다. 그러니까 조선왕조에 단 두 번밖에 없었던 적장자의 적장자가, 정통성.
◇ 이성규> 엄청난 힘을 줬군요?
◆ 김윤태> 네, 그것이 아마도 큰 역할을 했을 것 같아요.
◇ 이성규> 이렇게 밤새 얘기해도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집필하시면서 왕들의 빼어난 리더십을 아까는 세종에 대해서 팬이 됐다고 그러시고 그랬는데. 또 아쉬움도 주고 그랬을 텐데, 그 느낌 좀 말씀해 주시죠.
◆ 김윤태> 저는 이 스물일곱 명의 왕들을 보다가 가장 아쉬운 거 하나를 발견한 게 바로 광해군의 삶이 정말 아쉬웠습니다. 광해군은요, 어릴 적부터 그 총명함을 인정을 받았거든요. 그리고 임진왜란 중에는 아버지 선조를 대신해서 분조를 이끌고 전쟁터를 누볐어요. 백성들의 구심점이 됐거든요. 그래서 당시만 해도 모두가 기대하는 그런 새로운 임금이었거든요. 근데 결국 쫓겨나는 임금이 되고 말았지 않습니까? 이 광해군의 삶을 보면서 참 아쉬웠던 것은, 광해군의 현명함, 다시 말하면 요즘에 많이 나오고 있는 얘기인데요.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표방하면서 힘없는 조선을 지키려고 한 외교 정책. 이것은 광해군의 현명함을 보여줬단 말이죠. 근데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치의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래서 광해군의 가장 큰 패착은 아마도 소통의 부재가 아닐까. 일부 소수 강경파에게 휘둘려서 정치 집단과 소통을 완전히 실패했어요. 그래서 통합의 정치를 포기하면서 너무나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죠.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조선왕 그리고 리더십>의 저자, 체인지 컨설팅 김윤태 대표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김 대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김윤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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