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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전문

방송시간[일] 20:20~21:00
제작진진행: 이성규 / PD: 박준범 / 작가: 이혜민
[잠시만요] "브로콜리너마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줘…세상에 좋은 영향주고 싶어"
2022-05-16 14:36 작게 크게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1년 5월 1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덕원 브로콜리너마저 보컬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브로콜리너마저,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줘…세상에 좋은 영향주고 싶어"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따뜻한 음악으로 우리에게 위로와 공감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 덕원 님과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덕원 브로콜리너마저 보컬(이하 덕원)>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이성규>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청취자 여러분께 한번 소개해 주시죠.

◆ 덕원> 안녕하세요. 저는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는 덕원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베이스도 하시는군요? 이 요즘 워낙 바쁘시게 활동을 하시지만 요즘 봄이라서 조금 더 바빠지시나요. 어떻게 지내세요.

◆ 덕원> 이런저런 공연 섭외가 들어와서 준비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리고 또 여름에 있을 장기 공연도 준비를 미리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여름 공연을 많이 하신다고는 들었어요.

◆ 덕원>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준비에 들어갔군요. 

◆ 덕원> 네 그렇습니다. 

◇ 이성규> 근데 지금 보면 막 대학생 같기도 하고 그런데 데뷔 15년 정도 되셨더라고요. 

◆ 덕원> 벌써 그렇게 됐네요. 

◇ 이성규> 그리고 이제 뭐 많은 사람들이 믿고 찾는 밴드가 됐는데, 지난 활동들 15년을 한번 회상하면 어때요?

◆ 덕원> 글쎄요. 일단 인디 밴드들도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 같은 경우는 이제 음악을 한번 해보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을 했고, 이 일을 이제 계속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우발적이었던 일들을 일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좀 이제 익숙해진 것 같아요.

◇ 이성규>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시니까요?

◆ 덕원> 네 그렇죠.

◇ 이성규> 난 밴드다. 밴드를 하는 보컬이면서 베이스를 친다. 그게 내 직업이다.

◆ 덕원> 음악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조금 천천히 배워갔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그게 15년 중에 어느 무렵 중에 그런 생각이 익어가던가요?

◆ 덕원> 글쎄요. 저 같은 경우는 한 5년 이후에는 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이제 새롭게 닥치는 것들 뭐 놀라운 경험, 놀라운 경험들 이런 것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면 그 뒤에는 좀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다른 멤버들도 초창기 멤버 그대로 같이 가시나요. 아니면 많이 좀 바뀌셨나요?

◆ 덕원> 좀 변화가 있긴 했는데요. 일단 지금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은 초창기부터 함께하고 있는 친구들입니다.

◇ 이성규> 근데 아까 이제 베이스, 기타, 보컬 이런 거 한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기타는 어느 기록에 보니까 중학교 때부터 잘 치셨더라고요?

◆ 덕원> 아닙니다. 잘 친 것은 아니고, 처음 이제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고 이런 것이 중학교 때였는데요. ‘사실 그때는 이제 한 곡을 완전히 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그런 소박한 바람이었는데 잘 안 됐어요. 제가 재능이 많지 않았나 봐요. 그래서.

◇ 이성규> 여러 곡을 부분적으로 치셨나요. 그럼?

◆ 덕원> 이제 그런 상황이 됐던 것 같고, 이제 막상 대학교 들어와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이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해볼 수 있게 된. 그런 경우였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중학교 때 그렇게 기타를 막 연습을 하신 게 내가 이걸로 성공하겠다. 그 생각이 있었어요? 

◆ 덕원> 정말 취미였고, 심지어 대학교 때도 취미 생활이었는데, 하다 보니까 ‘내 노래를 만들고 싶다.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까 이제 밴드를 시작하게 된 것이죠.

◇ 이성규> 그러셨군요. 근데 모든 분이 그 취미로 그렇게 대성하고 자기 생활이 꾸려지고 이러는 세상이 되면 참 좋겠네요.

◆ 덕원> 쉽지는 않은 것 같은데, 또 많은 분들이 또 그 가능성에 문을 두드려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런데 2007년에 첫 번째 싱글 냈더라고요. ‘앵콜 요청 금지’ 제목이 참 재밌는데, 앵콜 요청 금지를 해놓으니까, 앵콜 요청 안 하던가요?

◆ 덕원> 그런 농담도 저희도 많이 했고, 팬분들도 많이 해 주셨는데요. 사실 너무 감사했던 것은 그때 어떻게 보면 아마추어의 경계에 있었던 상태였고, 저희가 그렇게 뛰어난 밴드는 아니었는데, 그 당시에 팀 이름이라든가 곡 제목이라는 것들이 좀 약간 눈에 띄었던 것 같고, 그 당시 저희의 실력에 비해서 좀 잘 나왔던 것 같아요. 근데 이제 그것들을 많이 사랑해 주셔서 지금까지 오게 된 계기가 됐죠.

◇ 이성규> 근데 그때 홍보도 별로 안 하고 전부 입소문으로 그렇게 흥행을 했다면서요?

◆ 덕원> 그러니까 그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니었나 생각을 합니다.

◇ 이성규> 대학에서 홍보 관련된 전공하지 않으셨어요?

◆ 덕원> 네 저 언론정보학을 전공해서 실제로 방송국 시험도 한 번 쳤었어요. 그때 라디오 pd였는데.

◇ 이성규> YTN 치신 거 아니에요?

◆ 덕원> 그때 주로 이제 라디오 pd 공고가 나온 것 위주로 해서 쳤었는데, 다 떨어지고. 다시 음악 해야겠다. 생각을 했었죠.

◇ 이성규> 잘 떨어지신 것 같아요.

◆ 덕원> 하지만 또 다시 이렇게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돼서 참 인연이라는 거, 제가 관심 있던 것들에 또 찾아가는 것이 신기한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근데 그 입소문 가지고 그 흥행을 했다. 그게 그냥 우연의 일치입니까? 아니면 나는 다른 인위적인 노력 안 하겠다. 그냥 알아주면 내가 유명해지는 거고, 안 알아주면 그냥 알아줄 때까지 뭐 한다거나 뭐 그런 무슨 소신이나 이런 게 있었어요?

◆ 덕원> 아까 말씀드렸듯이 내 노래를 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 하지만 좀 진지한 창작자로 들려주고 싶다. ‘나는 취미 밴드니까’라는 느낌보다는 내가 실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더라도 정말 어떤 프로로서, 혹은 진짜 정말 누군가에게 들려줄 만한 음악을 만들어주고 싶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사실 그 뒤에 뭐 잘 됐던 것은 운이 컸던 것 같습니다. 돌아보니까 모든 것들이 잘 안 되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많지만, 잘 되는 데는 많은 부분이 운이더라고요.

◇ 이성규> 되게 겸손하시네요.

◆ 덕원> 뭐 장점도 있었겠지만 그게 결정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이성규> 너무 겸손한 것도 좀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 덕원> 자신감은 혹시 있다면 내면적으로 체화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 이성규> 근데 이제 히트곡도 상당히 많고, 또 오늘 모시기 어려운 분 이렇게 모셨는데, 특히 그중에서 뭔가 이렇게 마음에 ‘아 이 곡은 공감을 팬들한테 일으켰던 것 같다.’ 근데 꾸준히 ‘이 노래를 들어주시더라. 그래서 뭔가 늘 내가 팬들과 소통하는 노래다’라고 하는 게 있으세요?

◆ 덕원> 사실 저희 노래를 다 많이들 사랑해 주셔서 너무 감사한 마음이 있고, 저도 개인적으로는 ‘좀 잘 만든 것 같은데’라고 느껴지는 곡이 좀 많습니다만, ‘유자차’ 같은 곡이 있는데요. 

◇ 이성규> 유자차가 제목인가요? 

◆ 덕원> 네. 그 곡이 길지 않은 곡인데도 뭔가 또 해마다 사람들이 날씨 차가워지면 들어주시고, 스스로 노래 부를 때 관객 분들과 소통을 좀 많이 하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아주 좋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이제 차가워지면 유자차를 찾으시는 건가요?

◆ 덕원> 그리고 이제 라이브 공연할 때는 중간에 잠깐 멈추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관객과 소통을 하기 위한 것이거든요.

◇ 이성규> 아 그때 차 마시는 거 아닌가요?

◆ 덕원> 그렇게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 눈빛을 마주친다거나 그런 것들이 아주 가능한 곡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유자차도 제가 언제 한번 다시 들어봐야겠네요. 그리고 또 이 생활인으로서 가정을 꾸리고, 지난 15년 사이에 결혼도 하시고, 애기가 초등학생으로 나오는데, 하나에요? 

◆ 덕원> 네. 아이 하나고 초등학교 3학년입니다.

◇ 이성규> 이제 학부영이 되었어요. 근데 이제 그럼 이 육아는 주로 누가.

◆ 덕원>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하고 있는데, 두 사람 다 프리랜서다 보니까 서로 시간을 좀 최대한 많이 내서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면 학부형으로서 학교도 좀 가시고, 그러죠?

◆ 덕원> 그렇죠. 오늘 아침에도 제가 학교에 같이.

◇ 이성규> 젊은 선생님들하고 막 애들이 막 몰려들지 않아요? 그렇지 교무실에 그래서 뭐 상담이 안 된다거나.

◆ 덕원>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많이 가지 못한 것도 있긴 하죠. 선생님도 뵙지 못하고.

◇ 이성규> 근데 이제 주로 창작을 하셔야 되니까, 작사도 하고, 작곡도 하고. 창작을 하시는 입장에서 보면 결혼 전후가 어떻습니까?

◆ 덕원> 사실 저는 이게 밴드 활동 되게 초기에 결혼을 해서, 대부분의 밴드 생활을 이제 기혼인 상태로 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제 ‘아 내가 이제 세상에서 청년이구나’ 이런 느낌보다는, ‘내가 어른이구나 세상에 이제 뒤에 올 사람들을 이제 배려를 좀 해야 되는 입장이 되어 가고 있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좀 더 좋은 말을 해야겠다. 남았을 때 누군가에게 조금 더 플러스가 되는 이 세상에. 좀 그런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서 그러다 보니까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표현이라든가 이런 것들에서.

◇ 이성규> 그 말과 뜻이 잘 전달되는 곡.

◆ 덕원> 그리고 또 그 노래가 들려짐으로써 뭔가 세상에 어쨌든 좀 더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곡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 이성규> 근데 그런 곡을 만들 때 책상에 앉아서 죽어라고 머리를 뜯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을 거예요. 창작을 하실 때, 영감이라고 하는 말이 옳을지 모르겠는데, 곡을 만들 때 떠오르는 그 어떤 것들을 어떻게 포착하세요?

◆ 덕원> 크게 본다면 창작자들이 어떤 픽션이나 어떤 상상력을 극단적으로 발휘시키는 방향이 있을 것 같고, 일상생활에서 끄집어내는 방향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굳이 얘기를 하자면 좀 일상적인 곳에서 가져오는 편이고, 특히 최근에는 이제 아이와 함께 보내고 있고, 아이와 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니까.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것들, 그리고 이제 아이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제 이전에 제가 없었던 그런 시각을 갖게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 이성규> 아이와. 그러면 그게 본인의 시각으로 볼 때와 아이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니까 많이 달라져요?

◆ 덕원> 그렇죠. 왜냐하면 이제 제가 살아온 세상과 또 이제 저보다 제 아이가 겪을 세상을 상상을 하면, 일단 보는 시야가 달라지는 것 같고, 또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느꼈던 아이의 그 감수성이나 혹은 그의 표현을 봤을 때 제가 잊고 있던 것들을 많이 깨우치게 되더라고요.

◇ 이성규> 이제 그런 곡들을 생각하면 그게 반영된 곡이 어떤 거가 있을까요?

◆ 덕원> 제가 이 아이를 항상 재우면서 책을 읽어주고 자는 걸 확인을 하고 이제 저도 잠에 드는데요.  그때 이제 참 내 소중한 사람 아름다운 이 아이를 잘 보살피고 아끼고 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만든 노래가 있는데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곡입니다.

◇ 이성규> 아 그게 아름다운 사람이구나, 그러면 한번 들어볼까요?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 덕원 님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평상시에 상당히 본인이 아끼는 노래 중에 ‘아름다운 사람’을 듣고 오겠습니다. 네 브로콜리너마저의 ‘아름다운 사람’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 덕원 님입니다. 근데 덕원님, 이제 거리 두기 이제 풀렸다고 봐야 되는데, 공연계도 여러 가지 좀 활기를 찾는 것 같던데요. 브로콜리너마저가 공연 중심 밴드 아닙니까? 그동안은 어떻게 어려움을 이겨내셨습니까.

◆ 덕원> 아무래도 공연, 일단 거리 두기 때문에 객석도 많이 부족한 상태고, 그런 여러 가지 심리도 공연을 보기 좀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래서 저희도 쉽지는 않았었는데요. 그래도 이제 저희 같은 경우는 직접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제 멤버들이 공연 기획을 하고 여러 가지를 결정하다 보니까, 조금 이제 상황이 좋지 않을 때도 ‘그냥 우리가 한 번 감수를 해보자’라고 생각을 하고 이런 저런 기획들을 해볼 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코로나 기간이었지만 공연을 어쨌든 계속 해오긴 했었고, 그러다 보니까 이제 또 올 여름이나 이후에 있을 공연들도 조금 준비가 빨랐던 것 같은데, 좀 동료들 같은 경우는 활동이 좀 많이 멈춘 경우가 많아서 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더라고요.

◇ 이성규> 그래도 이제 꾸준히 뭔가를 해오셨다고 그랬는데, 보니까 랜선 라이브 공연도 정기적으로 하셨더라고요?

◆ 덕원> 이게 그 온라인으로 공연을 하는 플랫폼들도 그 당시에 많이 생겨났고, ‘어떻게든 이런 걸 좀 해보자’ 이런 움직임도 있었고, 또 뭐 국가 지원 사업 같은 경우, 콘텐츠진흥원이나 이런 데서 이런 사업을 할 수 있게 조금 지원을 해주는 여러 가지 단체들, 국가 기관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것들을 활용하기도 했고 해서. 여러 가지 단계의 온라인 공연들을 해봤어요. 저희가 직접 이제 저희가 그냥 손으로 저희 손으로 한 것도 있었고, 지원 사업을 좀 받아서 한 것도 있었고, 그런 사업에 참가해서 공연을 한 적도 있었는데, 항상 이제 저희가 생각보다 도전적인 밴드여서 이런 저런 새로운 것들이 있을 때 많은 시도를 했었는데 그런 경험들이 코로나 때도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러니까 코로나 이전부터 그런 시도들을 많이 하셨었군요?

◆ 덕원> 그러니까 남들이 안 하던 거지만 한번 해볼까, 이런 것들을 좀 아무래도 직접 하다 보니까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이성규> 그래서 sns를 통한 것. 또 여러 가지 온라인 공연을 상당히 앞서서 해나가는 밴드다. 그런 평을 어디서 들었거든요?

◆ 덕원> 네 아무래도 이제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 저희가 직접 하다 보니까 할 수 있는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던 것 같고, 또 이제 저희 멤버 중에 건반을 치는 ‘잔디’라는 멤버가 그 친구는 이제 간호사 출신이어 가지고, 그 친구가 이제 방역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전문 지식이 있었고, 또 주변에 도움 받을 분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오프라인 공연을 할 때도 그런 걸 바탕으로 방역 준비를 철저히 했으니까. ‘여러분 한번 공연 보러 오시라’ 이런 얘기들을 했었고, 그런 신뢰감들이 그래도 계속 공연을 할 수 있게 한 원동력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 이성규> 그전에 코로나19 이전부터도 여러 가지 시도를 했었고, 코로나 기간에는 뭔가 힘든 방역 지침 등등을 뭔가 좀 관객들이, ‘이런 전문가도 있다.’ 

◆ 덕원> 그렇게 신뢰감을 줄 수가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왕좌왕할 때 조금 이제 판단을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 이성규> 그래서 모범 공연을 했다. 방역지침을 잘 지킨 밴드다. 그 글이 나오더라고요.

◆ 덕원> 그 당시에 이제 정말 공연들이 올 스탑 되던 시기였는데, 그 당시에 여러 가지 지침이랑 그 다음 방역 상황들, 그리고 우리가 해야 될 것들을 좀 빠르게 좀 저희가 정리해가지고 공연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때 뭐 인터뷰를 하거나 이런 경우도 많았습니다.

◇ 이성규> 그 간호사 선생님이 또 어쩌다가 또 브로콜리너마저에 또 합류를 했는지. 

◆ 덕원> 저와 대학 동창이고 동아리 친구인데요. 이제 졸업 후에 간호사 활동을 했었죠. 밴드와 병행을 해서.

◇ 이성규> 브로콜리너마저 꾸준하게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 덕원> 네 맞습니다. 

◇ 이성규> 2011년부터는 ‘이른 열대야’라는 장기 공연을 시작하셨더라고요? 

◆ 덕원> 네 맞습니다. 

◇ 이성규> 이게 ‘이른 열대야’ 이거 어떻게 시작된 거예요?

◆ 덕원> 여름하면 사실 일반적으로 공연의 비수기로. 좀 비수기까지는 아니지만 공연의 가장 성수기는 보통 연말이라고들 하거든요. 근데 여름에는 상대적으로는 조금 침체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저희가 그 2011년에 기억이 나는 게 그전에 저희가 야외 페스티벌에서 이제 헤드벵잉을 하면서, ‘이제 할 건 다 해봤다.’ 페스티벌에 제일 끝자리에 이제 서고, 약간 ‘이런 올라가는 걸 다 해봤으니까 새로운 걸 해보자’라고 해서 그 당시 라이브 홀 같은 경우는 주말 위주로 아무래도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그때 그거를 이제 여름 기간 내에 통으로 빌려서 우리가 좀 쭉 공연을 해보자 라는 새로운 기획을 했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너무 즐겁고 저에게도 의미 있는 기억이 되고, 또 계속 반복하면서 많은 분들이 찾으셔서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그러면 그 이른 열대야를 공연을 하면, 그 기간은 얼마나.

◆ 덕원> 저희가 보통 한 달 내외를 잡는데, 최대 한 15회까지 하고 15회 하고 지방 투어까지 간 적도 있었고, 좀 적게 할 때는 9회에서 10회 정도 했으니까. 최소 3에서 4, 5주까지도 공연을 했었죠.

◇ 이성규> 그러면 서울 지역에서 한 10회? 그리고 지방으로 이렇게.

◆ 덕원> 그때그때 조금씩 다르긴 합니다만, 한동안 또 지역 공연을 못 갔던 적도 있었는데, 그래서 올해 이른 열대야를 준비하면서는 지역도 여러 군데를 돌면서 공연을 할 예정이 있습니다.

◇ 이성규> 근데 이제 여름에 하는 공연에 관객들이 잘 찾아주는 이유가 있어요?

◆ 덕원> 그런 면이 있을 수가 있는데, 오히려 여름이기 때문에 공연장이 시원한 것도 있고, 그리고 여름에 공연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조금은 제 생각에는 좀 정취가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겨울에 좀 춥잖아요. 근데 여름에는 이제 공연 끝나고 나오면 조금 시원해지기도 하고, 여름의 날씨가. 그리고 저희가 항상 이제 뭘 했었냐면 1회 때부터 공연이 끝나고 나면 야외 앵콜를 했었거든요. 근데 이제 그런 어떤 모든 것들이 여름밤에 완벽하게 잘 들어맞아서, 저희에게도 그렇고 팬들에게도 되게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 많이 됐었습니다.

◇ 이성규> 그 추억이 팬들한테도 많고. 그 브로콜리너마저 팬들한테도. 

◆ 덕원> 왜냐하면 전해지는 것들이 크기 때문에, 

◇ 이성규> 한번 소개해 주시겠어요?

◆ 덕원> 그래서 제가 첫 공연할 때, 이제 야외에서 앵콜 할 때 사람들 너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런 걸 할 줄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깜짝 놀라는 모습, 그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행복했는데, 재작년에 공연할 때, 야외 앵콜를 해야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좀 긴장이 되잖아요. 다들 그래서 야외에 저희가 칸을 다 만들어 놓고 야외 앵콜을 했었는데, 그건 좀 뭉클하더라고요. 진짜 이렇게까지 우리가 해가면서 만나고 음악을 나눈다는 게, 그만큼 음악이 소중하고 또 음악을 통해서 이런 환경에서도 우리가 위로를 하고 서로 힘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걸 느껴주신다는 점에서 되게 인상이 깊었죠.

◇ 이성규> 그러니까 야외에 그 바닥에 테이프를 쭉 붙여서 이렇게 했군요.

◆ 덕원> 보통은 이제 막 운집 돼서, 이제 사람들이 막 북적북적하면서 봤었는데, 또 그렇게 하기는 좀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했다는 것이 저희에게는 되게 큰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근데 그런 거 기획하고 그럴 때도 그 잔디라는 멤버의 역할이 있었나요?

◆ 덕원> 그래서 그 친구가 좀 빠르게 ‘아무래도 1m 정도 띄어서 하면 될 것이다’라고 얘기를 하고, ‘그러면 이제 테이프를 붙이자’ 이런 아이디어를 내서 하게 된 거죠. 

◇ 이성규> 칸을 막 이렇게 벽 같이 막고 그러진 않았지만.

◆ 덕원> 그것은 너무 힘들기 때문에 어려웠지만, 그래도 이제 야외이기 때문에 거리를 두는 것으로.

◇ 이성규> 그 장소가 어디였어요?

◆ 덕원> 노들섬이요. 거기 야외 광장 있거든요. 그래서 그쪽을 좀 이용했죠.

◇ 이성규> 밤에 좋았겠네요. 밤 경치가 뭔가 떠오르네요. 

◆ 덕원> 그렇죠. 생각보다 정말 여름밤에 음악과 함께하고, 딱 끝내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 좋습니다. 

◇ 이성규> 그랬군요. 

◆ 덕원> 어려운 점이 있다면 이제 비가 오면 좀 변동이 있다. 

◇ 이성규> 그렇네요. 비 오면 어떻게 해요?

◆ 덕원> 일단 공연장이 실내이기 때문에 공연을 진행을 하고, 이제 앵콜 같은 경우 야외에서 할 때 조금 바뀌긴 하죠. 우비를 빌린 적도 있고 천장이 있는 곳으로 약간 이동을 하기도 하고, 하지만 그 느낌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 이성규> 비가 살짝 와도 또 운치는 있을 것 같아요.

◆ 덕원> 살짝 오면 매력이 있습니다. 

◇ 이성규> 근데 이번 여름에 또 이제 이른 열대야 공연 시작될 것 같은데, 곧. 예매 오픈한다면서요.

◆ 덕원> 5월 25일 6일 7일. 이렇게 해서 예매를 오픈하고, 실제 공연은 이제 7월부터. 6월 말 7월 이제 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이제 부제를 붙여서 ‘전국 인디자랑’

◇ 이성규> 전국 인디자랑.

◆ 덕원> 네 노래 자랑을 패러디한 건데요. 저희가 워낙 지역에 가기 힘들었긴 해요. 공연 준비하기 어려워서 이번에는 지역도 많이 다니면서, 또 그 지역에 있는 인디 밴드 동료들과 함께 무대를.

◇ 이성규> 같이 하는군요. 

◆ 덕원> 그래서 무대를 함께 공연하기 힘든 상황이고 하니까. 이분들과 함께 해서 그분들도 좀 많은 관객들을 만났으면 좋겠고, 저희도 다양한 팀들과 어울리고 교류하면서, 또 많은 자극을 얻으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 이성규> 그분들한테는 상당한 기회가 되겠는데요?

◆ 덕원> 좀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요. 저도 사실 작년에 이제 다른 팀들과 함께 콜라보 작업을 많이 하면서 많은 힘을 얻었었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여러 가지 좀 힘든 상황에서, 동료들을 이제 만난다는 게 그 자체로도 힘이 되더라고요.

◇ 이성규> 그렇게 해서 지역을 순회 공연하시면서, 인디 밴드 활동하시는 분들을 만나서 뭔가가 이루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 덕원> 좀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예 아까 뭐 제가 좀 더 이제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으로서 좀 더 이제 성숙한 느낌. 또 어른으로서 어떻게 행동할까에 대한 생각도 하는데, 또 한편으로 이제 함께 활동을 하고 있는 또 이제 후배 밴드들에게 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요즘 많이 하게 돼서, 그런 것들도 아마 공연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이 됩니다.

◇ 이성규> 근데 이제 여러 가지 메시지를 오늘 저는 이제 들었는데, 뭔가 남기는 말과 그 음악의 의미나 이런 부분들을 신경 쓰고 활동하신다고 그랬는데, 앞으로 특별한 계획 있으시면 한번 밝혀주세요.

◆ 덕원> 사실 새로운 앨범을 준비를 계속하고 있는데 쉽지가 않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좀 더 이 세상에 좀 의미가 있는 말을 던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또 그게 누군가를 상처 주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사람들이 정말 듣고 이걸 남기는 게 의미가 있는 노래를 만들고 싶어서 자꾸 작업이 늦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음악 작업도, 신곡도. 열심히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꼭 하시고 싶은 말씀으로 마무리 인사하시죠.

◆ 덕원> 네 앞으로 있을 이른 열대야의 공연 예매도 있고 공연도 있을 텐데요. 많이 좀 사랑해 주시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사실 저희가 지금까지 음악할 수 있는 것들은 저희를 또 이제 응원해 주시고, 또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 무게감을 크게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에 잘 부응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보컬 덕원 님과 함께 음악에 대한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덕원> 오늘 너무 즐거웠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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